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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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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학화상실적비
    광주시 북구 금곡동 864, 원효사1944년이 일학화상실적비(一鶴和尙實蹟碑)는 <무등산>(1988)에 기록이 있다.
    2018-12-01 | NO.104
  • 임방울선생흉상
    광주시 북구 북문대로 60, 광주문화예술회관1992년본명은 임승근(林承根), 임방울은 예명이다. 14세 때 광주에서 박재현에게 〈춘향가〉·〈흥보가〉를 배웠고, 후에 구례에서 유성준에게 〈수궁가〉·〈적벽가〉를 6년간 배웠다. 25세에 상경하여 김창준·송만갑의 소개로 무대에 올라 〈춘향가〉의 '쑥대머리' 대목을 불러 세상에 알려졌다.일본에서 취입한 음반 '쑥대머리'는 한국을 비롯하여 일본·만주 등에서 100만 장이나 팔렸다고 하며 지금도 그가 취입한 레코드가 전해지고 있다.그의 소리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맑고 아름다운 성음에 성량이 풍부하여 막힌 데가 없는 통성이었다. 창극이 성행하던 시절에도 창극운동에는 전혀 가담하지 않고 판소리의 전통을 지킨 사람으로도 유명하다. 판소리 5마당에 모두 정통하나 특히 〈춘향가〉 중 옥중가 대목의 '쑥대머리'와 〈수궁가〉에서 '토끼와 자라' 대목이 장기이다. 단가 〈호남가〉를 작곡한 것으로도 유명하다.그의 소리는 박귀희·한애순·김용준 등이 이어받았다. 2000년 10월 20일 문화의 날을 맞아 문화예술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임방울이 위대한 소리꾼으로 후세에 남고, 후세 사람들이 그의 예술을 통해 자긍심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이제 우리들의 몫이다. 그의 서민적 예술혼이 가치 있는 민족예술로 평가받고 후세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사랑받게 하는 일은 민족예술을 되살리는 일이다.
    2018-06-26 | NO.103
  • 임정마을 벅수
    광주시 남구 임암길 183 인근임정마을벅수임정마을에는 벅수 2기가 있는데, 마을앞 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보고 있다. 임정마을 앞에는 행림마을과 포충사 사이로 국도1호선이 관통하고 있고 이 길을 통해 대촌동 주민들도 시내 출입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에는 광주시내와 대촌동간의 길은 주로 벅수가 서있는 이 마을의 뒷길을 주로 이용했고, 이 때문에 임정마을은 속칭 ‘들머리’라는 별칭으로도 불려왔다.대촌 쪽에서 보면 좌측에 할멈벅수, 우측에 영감벅수가 서있다. 영감벅수가 서있는 곳은 마을쪽으로 남쪽에 해당된다. 벅수의 크기는 높이 300cm로 전면에 ‘天下大將軍’이란 글귀가 양각되어 있고 소나무의 뿌리를 이용하여 머리를 장식한 봉두난발형이다. 할멈벅수는 가죽나무 기둥 속을 이용하여 제작했는데 크기는 295.5cm로 전면에 ‘地下女將軍’이라고 양각되어 있으며, 벅수의 머리부분은 이 벅수의 여성성을 상징하기 위해 민머리형으로 되어 있다.이 벅수들은 1990년대 중반에 만들어 세웠던 것이 부식되자 2001년 3월 3일 추진위원회(번영회)가 주관하여 다시 제작하여 세웠다. 제작자는 이 마을 사람들로전정명(남, 65세, 번영회장), 김용연(남, 64세), 이재수(남, 54세), 전권섭(남, 43세) 씨 등이다.할멈벅수 앞에는 설명판을 설치해 일반인들의 이해를 돕고 있는데, 벅수를 세우게 된 동기를 풍수지리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마을의 지형은 오공복지(蜈蚣伏地), 즉 지네가 수풀 속에 엎드리고 있는 형국이다. 지네의 상극은 닭이고 닭이 비치면 마을에 큰 재앙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닭의 방향(酉方)인 서쪽에 나무를 심어 숲을 가꾸고 장승을 세워 기를 다스림으로써 마을의 살과액을 막고자 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장승이 서 있는 서쪽에는 방풍림(防風林)을 겸한 비보림(裨補林)으로 소나무와 팽나무 수십 그루가 서있다.1990년대 초에 세워진 장승의 영감벅수는 불에 탄 흔적이 있으며, 눈의 한 부분과 이마가 결실되었다. 턱과 코 부위는 수염을 조각하고, 입은 이빨이 서로 엇물리게 조각하여 야무진 인상을 주도록 표현하였으나 눈은 비례를 알맞게 치켜 올려 무서움이 덜하게 되어 있다. 맞은편의 목장승도 동일인의 작품으로 보이며 재료에 비해 코를 유난히 크게 조각하였으며 이빨도 서로 엇물리게 표현하였다. 조사 당시만 해도 이 마을에서는 매년 장승제를 지냈으며, 이 곳 장승의 기능 역시 이정표, 마을간의 경계 표시 이외에 마을의 재액을 막아주는 수호의 기능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임정마을의 벅수제는 매년 모시는데 마을민의 질병방지와 농사의 풍년 등을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원래는 현재 임정슈퍼마켓 옆에 당산나무 2그루(귀목나무, 버드나무)가 있어서 당산제를 지내고 벅수제도 함께 지냈으나 당산나무가 고사한 이후로 당산제는 지내지 않고, 지네명당의 거센 기운을 누르기 위해 벅수제만을 독립적으로 지내고 있다. 벅수제도 1970년대초에 젊은 사람들이 ‘미신타파’라는 명목으로 땅에 묻어버려 몇 해 못 모시다가 마을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하여 1987년 벅수를 다시 세우면서 부활되었다. 당산제를 지내던 과거에는 정월 보름날 저녁에 지내다가, 1987년 이후 음력 2월 1일 지냈다. 1993년에는 정월 15일 낮에 모셨는데 최근에는 다시 음력 2월 1일 낮 11~12시에 지내고 있다.정월 초순에 제관, 축관, 화주 등 제관을 선정하고, 돈이나 쌀로 호구전을 걷어 경비를 마련한다. 근래에는 마을사람들이 벅수에 걸려 있는 금줄에 돈을 끼워 놓고 각자의 소원을 비는데 이 희사금으로 제비를 충당한다. 제물은 두 벌을 준비하는데 돼지머리, 떡(백설기), 북어, 삼실과, 삼채, 막걸리, 탕, 초와 향 등이다.제의 시간이 가까워지면 벅수 주변과 마을 앞길에서 굿을 쳐서 제의 시작을 알리는데, 이 무렵 화주댁에서 제물을 가지고 나와 진설한다. 제는 영감벅수에서 먼저하고 할멈벅수로 제상을 옮겨서 모시는데 약 30분 정도 진행된다. 제관의 복장은 평상복을 깨끗이 세탁하여 입는다. 제의 절차는 유교식으로 설상 - 초헌 - 독축 - 아헌 - 종헌 - 일동재배 - 소지- 헌식의 순서이다. 이 마을에서 특이한 것은 여성이 종헌관으로서 제의에 참여하며 잔을 올리고 소지를 담당한다는 것이다. 또한 제를 모실 때 벅수에 감아놓은 금줄에 마을사람들이 돈을 끼워 희사하는데, 이 돈을 ‘복돈’이라고 한다. 헌식은 제물을 약간씩 덜어 짚을 놓고 벅수 부근에 놓아두고 명태는 벅수의 금줄에 묶어 놓는다. 옛날에는 제를 지낼 때 마을 앞을 지나지 못했으며 혹 지날 때는 통행세를 내야만 했다고 한다. 제가 끝나면 술과 음식을 동네사람들이 나누어 먹고 놀며 공동샘에 가서 굿을 친다. 옛날에는 샘굿에 이어 마당밟이를 하고 공동샘을 기준으로 우데미와 아랫데미로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였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2018-06-14 | NO.102
  • 임제-청초 우거진 골에
    광주시 남구 사직공원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엇난다홍안(紅顔)은 어디 두고 백골(白骨)만 묻혔는고잔(盞)잡아 권할 이 없으니 이를 슬퍼하노라-백호 임제(白湖 林梯)
    2020-03-19 | NO.101
  • 장렬사묘정비
    광주시 북구 동문대로112번길 99(장렬사 내)2009년이 장렬사묘정비(壯烈祠廟庭碑)는 이석종(李錫鍾)이 글을 짓고 김종태(金鍾泰)가 해석하고 쓰다.
    2018-11-12 | NO.100
  • 장봉익-민재공퇴장추모비
    서구 전평길 62(매월동)민재공敏齋公 장봉익張鳳翼의 퇴장退葬 추모비가 서구 매월동 영식재 앞 바위 위에 서 있다. 이 비는 조선 헌종 때에 어떤 가문에서 선산을 무단 침범해 투장하려는 것을 이에 격분한 효우공孝友公 장창우張昌友(1704~1774)의 증손 민재공 장봉익이 단독으로 범장犯葬을 물리치고 선영을 지킨 사실을 추모하면서 1950년 후손들이 세운 것이다.이 추모비가 평지에 세워지지 않고 영식재 앞에 수문장처럼 있는 커다란 바위 위에 세운 것이 특이하다. 멀리 내다보고 영식재와 선산을 지키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2018-05-25 | NO.99
  • 장흥고공남주기실비
    청담(淸潭) 고남주(高南柱, 1930~?) 선생의 기실비이다. 동구 운림동 산18에 있으며 운림동 석실고분 바로 옆에 있다.
    2021-06-17 | NO.98
  • 재명석등(在銘石燈)
    광주시 동구 광산동 13번지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호석등롱(石燈籠)은 광주 성내면(城內面)에 있던 고비명(古碑名)이다. 남내리(南內里)에 소재하고 신라시대 유물이다.  옛 광주 읍성 남문안의 대황사터에 있었던 석등이다.8각 기둥에 "무진년에 임금이 오래 살고 나라가 편안하기를 바라며 세웠다."는 글이 새겨져 있어 '재명석등'으로 부르고 있다. 이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등양식을 따른 고려전기 석등으로 나주 서문 석등과 비교되어 11세기 무렵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원래 대황사의 옛터에 남아있던 것을 도청 앞 무덕전 앞마당 담장 안에 옮겼다가 공사로 인해 현재의 자리에 세웠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등양식을 하고 있으나, 당시에 비해 조각기법이 조잡하고 섬세하지 못하다. 석등의 가운데 기둥에는 ‘무진(戊辰)’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조각양식과 관련지어 볼 때 고려 전기 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보인다.옛 전라남도 도청 앞뜰에 놓여 있는 8각 석등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고, 위에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올렸다. 받침부분은 길쭉한 가운데기둥을 사이에 두고, 아래 ·위 받침돌에 연꽃무늬를 대칭적으로 새겼다. 화사석은 4곳에 창을 두었으며, 그 위에 얹어진 지붕돌은 규모가 작아서인지 다른 부재들과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광주 동구 광산동 13 옛 전남도청안에 있었다. 경양방죽, 보들 땅이름이 있다. (조선지지자료)
    2018-07-03 | NO.97
  • 전 주사김공태선덕혜불망비
    광주시 북구 망월동 산 175(경렬사 입구)1927년이 전주사김공태선덕혜불망비(前主事金公泰先德惠不忘碑)가 몽리인 일동이 건립했다.
    2018-11-13 | NO.96
  • 전교서해송공옥기적비
    광주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5 (광주향교 뒤)2010년
    2018-11-30 | NO.95
  • 전남대 '임을 위한 행진'
    광주시 북구 용봉로 77, 전남대학교2004년전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앞 광장에는 용봉동 호수를 줄여 '봉지'라 불리는 분수가 나오는 곳에 있는 조각상이다. 학생, 교수, 직원, 시민을 상징하는 4개의 형상이 있다.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했던 박승희 열사의 추모석이 있다는 데 확인하지 못했다.
    2018-06-26 | NO.94
  • 전남대 상징탑(용봉탑)
    광주시 북구 용봉로 77 (전남대 역사관 앞)1978년우리 민족의 의식 깊숙한 곳에 가장 신성시되는 두 상상의 동물이 있으니, 바로 용(龍)과 봉(鳳)이라. 그런데 전남대학교에는 이 두 상상 속의 동물, 신조(神鳥)로 추앙받는 이 두 존재가 한 자리에 있다. 이보다 더 신성한 공간이 있으랴. 전남대학교 캠퍼스는 용봉골로 불린다. 대학이 들어선 곳이 용봉부락이었으니 자연히 ‘용과 봉’을 딴 대학의 별칭이 생겼고, 두 동물을 숭상하는 조형물을 세우게 된 일은 당연했다. 전남대가 자리 잡은 이곳은 애초 ‘용주’, ‘반룡’ 등 ‘龍’자가 들어간 마을이 있었고, ‘봉곡’이라는 ‘鳳’ 자를 쓰는 마을이 있었다.일제 때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이 마을 이름들의 ‘용’과 ‘봉’을 따서 용봉리가 되었다. 반룡마을은 지금의 경영대와 경영대 뒤를 중심으로 한 큰 언덕에 형성된 마을이고, 용주마을은 지금의 당산나무 주변 일대였는데 두 곳이 모두 용의 기운을 가득 안은 명당이었다 한다.용봉탑은 1978년 6월 8일 완공, 제막됐다. 개교 26주년을 맞아 학교와 학생들의 발전과 웅비를 비는 뜻에서 만들어진 조형탑이다. 높이 13.66M, 폭은 4.45M, 교시인 진리․창조․봉사를 의미하는 화강암 3좌대 위에 세 마리의 용이 몸을 틀어 여의주를 물고 위로 오르고 여의주 위엔 힘차게 날아오르는 봉이 자리하고 있다. 얼핏 미신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대학이 위치한 지명과 연계해 대학과 학생들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용봉탑은 그 조형미 자체만으로도 빼어나지만, 사시사철 주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연출하는 자태도 아름답다. 특히 50여 년간 대학의 심장이었던 구 본부 빨간 벽돌 건물과 용봉탑은 아주 잘 어울리는 한 폭의 그림이면서 전남대학교를 상징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2018-11-15 | NO.93
  • 전남대 설립과 광주전남향교
    광주시 북구 용봉동 전남대학교 옛 본관 앞2016년
    2018-11-30 | NO.92
  • 전라남도지사전공석홍거사비
    광주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아래1987년전남도지사 전석홍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이다. 1987년에 성균관부관장 광주향교전교 하동 정해규가 글을 썼고 죽산 안병식이 글씨를 썼다. 광주공원 비석군 입구 왼편에 별도로 있다.
    2018-10-19 | NO.91
  • 전부일장군송덕비
    광주시 남구 임암동 임정마을복지회관 옆2000년전부일(1924~2004)은 육군 중장으로 예편하여 박정희 4공화국 때 초대 병무청장을 지냈다. 이후 10976~1980년 유신정우회 9, 1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18-06-26 | NO.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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