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공간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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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덕산
    서구 덕흥동유덕동의 덕산은 야트막한 산이다. 예전에 동네 사람들은 똥뫼라 불렀다. 해발 30여m에 불과하여 산처럼 보이진 않지만 주변으로 넓고 평탄한 들녘이 펼쳐져 있어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띈다. 덕산이라는 이름에는 ‘큰 산’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예전에는 드넓은 들판에 우뚝 솟아있어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던 듯하다. 지난 수년간 이 산만한 높이의 건물들이 주변에 쭈뼛쭈뼛 들어서면서 지금은 예전만큼 그렇게 도드라져 보이지 않다. 덕산에는 오래된 노거수가 있고 정월대보름(음력 정월 14일)에 당산제를 지낸다. 예전에 12당산이 있었는데 지금은 3당산만 남은 듯 하다. 1990년대 초까지 당산제를 지내다 농악을 할만한 사람, 젊은 사람들이 크게 줄어 당산제를 지내지 않다가 2018년에 복원했다.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 산은 동학농민전쟁과 관련이 깊은 장소다. 1894년 12월 동학농민군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거듭된 나주 공략이 연거푸 수포로 돌아가고 북쪽에서는 전봉준의 농민군이 관군에게 패했다는 소식이 연일 날아들었다. 결국 전봉준은 태인전투에서 패한 뒤 군대를 해산하고 장성 갈재를 거쳐 순창으로 몸을 피하는 중이었다. 관군은 그의 행적을 쫓아 언제든 갈재를 넘을 기세였다. 이 때 전남지역을 총괄하던 동학지도자 손화중은 농민군을 이끌고 덕산이 머물렀다. 당시 덕산에는 태인전투에서 패한 농민군도 있었다. 그들은 고향으로 되돌아갈 수도, 오던 길을 되밟아 북쪽으로 발길을 돌릴 수도 없었다. 그들을 토벌하겠다고 이름 없는 유생들과 아전들이 상처 입은 먹잇감에 달려드는 포식자처럼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그렇게 공을 세워서라도 보잘 것 없는 직함이라도 하나 꿰차려고 안달이었다. 농민군들이 의지할 곳은 오직 손화중이 장악하고 있던 광주뿐이었다. 나주공략이 실패했지만 그들에겐 아직 덕산에서 진영을 갖출만한 여력이 있었다. 그들이 이곳에 유진留陣할 무렵은 추운 겨울이었다. 덕산은 살을 에는 북풍을 막아줄 산치고는 너무 작았다. 사방도 툭 터져 있었다. 한여름이라면 모르되 많은 군사가 머물기에는 분명 적합한 장소는 아니었다. 그래도 여기에 유진한 것은 그간 나주 공략 때 겪은 뼈아픈 실패 때문이었을 것이다. 1894년 내내 나주는 완강했다. 감영이 있는 전주 공략에도 성공했던 전봉준까지 내려와 나주목사 민종렬과 담판을 지으려 했지만 나주는 백기를 내걸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방비를 다지고 사람들을 끌어 모았다. 나주에 대한 공략은 크게 세 차례에 걸쳐 시도됐다. 첫 번째는 황룡강변인 선암장터(광산구 호남대 근처)에 본진을 두고 선발대를 나주 접경인 광산구 동곡동의 침산까지 내려 보냈다. 이러한 농민군의 공세에 나주 수성군도 은밀히 야산지대를 파고들어 침산에 이르렀고 벼락같은 함성을 내지르며 기습을 가했다. 수적 우세를 믿고 방심했던 농민군은 부리나케 황룡강 쪽으로 내달렸고 수성군은 그들을 쫓아 선암나루(호남대 남쪽 강변) 앞까지 몰려왔다. 농민군의 명백한 패배였다. 두 번째 공략은 나주 남쪽에서 이번에도 농민군의 선제로 시작됐다. 무안과 함평 등지에 전갈을 넣어 손화중과 최경선의 군대가 나주 북쪽에 머물며 수성군의 눈을 빼앗는 동안 나주의 약한 지역인 남쪽을 가격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수천의 농민군이 기세등등하게 나주 다시면 일대의 세곡을 털어 군량으로 삼고 북상했다. 하지만 기습이라 하기엔 그들의 규모는 너무 컸고 행군도 떠들썩했다. 금세 남쪽에서 농민군이 올라온다는 소식이 나주성에 파다하게 퍼졌고 수성군은 채비를 갖추고 다시면 쪽으로 나갔다. 접전은 고막원천에서 절정에 달했다. 농민군에게는 나주 맛재에서 고막원천에 이르는 비교적 험준한 산세도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산세는 수가 적지만 화력은 더 센 수성군이 은밀히 접근하는데 유리했다. 그리고 수성군의 위력사격에 놀란 농민군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총탄과 화살에 죽은 이들보다 허겁지겁 퇴각하느라 고막원천에 빠져 익사한 이들이 더 많았다. 이번에도 농민군은 완패했다. 세 번째 공략은 그래도 전투경험이 풍부한 북쪽의 농민군에 의해 다시 시도됐다. 수성군은 여전히 나주성 밖으로 나올 조짐이 없었다. 전략적 거점을 잃을 위험이 없는 한 그들은 나주성이란 둥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 때문에 손화중이 이끈 농민군은 노안면 남산리까지 들어갔다. 그들은 선발대를 보내 위력정찰을 실시해 나주성의 전력을 가늠해 봤다. 하지만 나주성의 반응은 떨떠름했다. 금방 역습을 가해 올 기미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밤 12월 남산리에는 수천의 농민군이 이런 분위기에 안도하며 결전의 시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추위에 다들 민가에 들어가 한기를 피했고 경계를 소홀히 했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수성군은 야음을 틈타 침투해 들어왔고 총포를 쏘며 달려들었다. 밤의 정적을 깨는 기습에 농민군은 어찌해 볼 도리도 없이 혼비백산했다. 역시 농민군의 패배였다. 그리고 다시 제기하기 불가능하다는 우울한 결론에 도달했다. 다만, 그래도 마냥 흩어지기에는 불안과 두려움이 짓눌렀다. 그래서 그들은 사방이 확 트인 이곳 광주의 덕산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것이 영산강 유역에서 농민군의 마지막 유진이었다. 이들은 이후 일부는 능주로, 일부는 장흥으로 갔다. 그리고 한때 남평 관아를 점거하기도 하고 장흥과 영암 병영을 장악하기도 했지만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장흥 석대들에서 무너졌다. 이후 피비린내 나는 보복과 학살이 뒤따랐다. 지금, 덕산에는 그 마지막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순간을 기억하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 다만, 높다란 언덕 위로 수령 300여 년의 느티나무만이 당시의 혼미한 기억을 홀로 품고 있을 따름이다.
    2018-05-25 | NO.40
  • 1 한생이산(팔학산)
    서구 서창동 1번지 164.1m의 이 산은 지도에서는 한생이산이지만 삽봉 김세근 장군 문중에서는 팔학산이라 부른다. 김세근 장군의 학산사가 있다. 아마도 여덟개의 봉위리가 학의 날개 처럼 보인 때문이라는 구전이 전한다.
    2018-05-25 | NO.39
  • 2 마한제
    서구 용두동 503-1마한제는 1944년에 축조됐고 수혜면적은 21ha이며 저수량은 40㎡이다.
    2018-05-25 | NO.38
  • 2 마현제
    서구 용두동 2334신용마현경로당 인근에 있다.
    2018-05-25 | NO.37
  • 2 매월제
    서구 매월동 684-2 1944년에 만들어졌다. 매월동 전평호수 건너편 길로 들어가 한생이산 동쪽 자락에 있다.
    2018-05-25 | NO.36
  • 2 사동제
    서구 서창동 358-9사동제는 절골마을의 뒤편, 송학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사동제는 1968년에 조성됐고 갈대와 줄 및 물억새가 자생하고 있고, 주변은 대나무 숲으로 에워싸인 특이한 자연생태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 대나무 숲 위로는 소나무군락이 송학산 능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곳은 녹지축이 잘 연결되어 있어 야생동식물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서식처이자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임을 알 수가 있다. 사동제는 광주시 서구지역의 11개소 저수지 중에서 식물 출현종수(43분류군)가 3번째로 높은 지역이다. 주요 자생식물은 갈대와 갈퀴나물 및 고마리, 금강아지풀, 금방동사니, 달뿌리풀, 물억새 등이며, 조류 중에 가장 많이 출현한 종種은 노랑턱맷새와 직박구리, 멧비둘기, 딱새 순이다. 멸종위기종과 희귀종은 조사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사동제는 1484㎡의 조그마한 면적에 불과하지만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서는 그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2018-05-25 | NO.35
  • 2 산청제
    서구 용두동산청제는 1968년에 만들어졌고 수혜면적은 13ha이고 저수량은 8천㎡이다.
    2018-05-25 | NO.34
  • 3 상무시민공원
    서구 상무공원로 101(치평동) 서구 치평동 상무 신도심 아파트 단지 내에 자리한 아름다운 공원이다. 1994년 11월 12일 지정되어 각종 운동시설과 아름다운 수경관 연출이 가능한 호수 및 열린광장, 조각공원 등 각종 조경, 편의시설 등을 갖춘 광주에서 최대 규모의 공원이다. 상무시민공원은 17만 384.9㎡로 인공호수 2개, 광장(39360㎡), 체육시설(종합운동장, 육상트랙, 테니스장 3, 농구장 1, 배구장 1), 여성발전센터, 환경조형작품(공룡나라외 15종)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운동시설로 3천470평의 국제규격 잔디축구장 및 6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잔디스탠드, 맨발 조깅이 가능한 4백m 우레탄 트랙 등이 설치돼 있는 종합운동장과 소운동장이 있다.조각공원은 2000년 10월 20일 개장되었다. 상무시민공원내 호숫가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각 작품마다 경관 조명시설을 설치해 야간에도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누구나 만지고 체험하면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보는 즐거움’과 ‘체험의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준다. 인공암벽은 폭 14m, 높이 15m, 각도 95~140도로 3개면이 구성되어있다.휴먼파크를 주제로 조각가 18명의 작품 22점이 설치되어 있다. ‘공룡나라’는 익룡 21, 아기공룡, 티라노, 잃어버린 세계 등이 테마로 꾸며진 곳으로 티라노 미끄럼틀을 타며 뛰노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눈부시다.
    2018-05-28 | NO.33
  • 3 상무조각공원
    서구 상무누리로 148(치평동)시민들의 주거공간인 아파트촌에서 가까이 위치해 있어 시민들이 언제든 산보를 하면서 야외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조각공원이다. 시민들이 이처럼 편하게 조각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은 없을 듯싶다. 상무시민공원 안에 있는 상무조각공원은 시민들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조각 등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선물같은 공간이다.2000년에 조각가 18명을 초대해 인간적인, 그러면서도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한 야외 조각품을 설치해 상무시민공원을 중심으로 산보하는 시민들에게 즐겁고도 유익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전시작품의 주제는 휴먼파크로 환경, 공간, 지역 정서를 고려한 조각품 22개점이 호숫가 여기저기에 설치돼 있다. 가족들이 손에 손을 잡고 찾는 공간인 점을 고려해 만지고 올라타도 부서지거나 파손의 위험이 없는 조각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편안하다. 시각적 즐거움도 크다.21세기 문화관광산업시대를 맞아 광주시가 광주비엔날레, 518기념공원 등과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조성한 문화예술 공간이다. 작품은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제별로 배치돼 있다. 파아란 호수, 그리고 드문드문 배치된 나무와 어우러져 풍광도 그만이다.주말이면 주변 아파트촌에서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산책 나오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 해질녘 송정리 쪽으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기에 딱 좋은 장소다. 해를 꿀꺽 삼키자마자 어둑어둑해질 즈음 실루엣으로 보는 조각품도 일품이다.
    2018-05-28 | NO.32
  • 3 평화공원
    서구 상무중앙로104번길(치평동)평화공원은 광주광역시청에서 내려다보이는 도심형 공원으로 시청로가 공원 주변을 감싸고 상무중앙로104번길이 중앙을 가로지른 지역이다. 인근에 시청, 광주지방법원 등기국, 광주가정법원, 광주광역시선거관리위원회, 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은행 등이 있어 근처 직장인들이 점심 후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1994년부터 상무지구 택지개발사업 추진당시 화강석과 콘크리트 광장으로 조성된 시청 앞 미관광장은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느끼고 지구온난화 대응과 녹색도시로 성장시키기 위해 지난 2007년 산림청 주관 녹색자금 공모사업으로 선정돼 국.시비 등 총 89억 원을 투입, 숲과 물과 빛이 어우러지는 광장으로 확대 조성하고 명칭을 평화공원으로 명명했다.시민들에게 개방된 평화공원은 광주의 상징인 무등산 입석대를 형상화한 자연석 벽천과 나무숲이 어우러진 녹색 휴식공간이다. 답답한 사무실에서 나와 커피를 한 잔 손에 들고 공원에 가서 잔디밭이나 벤치에 앉아 일광욕하기에도 적당한 공간이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여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산책하기에 딱 좋다. 주간에는 유치원생의 자연학습장으로 야간에는 상무지구를 찾는 시민과 외지인의 휴식공간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2018-05-28 | NO.31
  • 5.18 자유공원
    광주시 서구 상무평화로 13(치평동)   5.18자유공원은 이곳은 1980년 당시 상무대의 군사법정과 영창 등이 있던 곳이다. 1980 5.18민주화운동 당시 정권찬탈을 기도하던 일부 정치군인들의 강경진압에 맞서 싸우신 분들이 구금되어 군사재판을 받았던 상무대 군사법정과 영창을 월내의 위치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이곳으로 옮겨와 원형으로 복원해 재현한 곳이다. 드높은 민주화 의지와 젊은 열정으로 불의에 항거했던 분들의 뜨거운 용기와 숨결이 남아있는 이곳은 역사적 투쟁의 자취요, 인권.평화.화합의 상징으로 기억될 역사의 현장이다.상무대 영창은 자유공원 내 가장 안쪽, 철조망이 둘러쳐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많은 시민들이 폭도라는 누명을 쓰고 이곳으로 끌려와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의 온갖 고문과 구타에 몸과 마음이 멍들었고 하루 16시간씩 정좌자세로 앉아있어야 했다.여섯 개의 방이 부채꼴로 배치되어 있으며, 수감자들을 한눈에 감시할 수 있는 감시대가 중아에 버티고 있다. 한방에 많게는 1백50명씩 총 8백여 명이 수감되어 혹독한 더위와 배고픔을 이겨내야 했던, 죽음과 삶의 경계였다.군사법정 내무반에 들어서기 전 왼편으로 보이는 건물이 ‘80년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구속자들이 군사재판을 받았던 곳.’ 80년 그날 수많은 시민들이 부당한 군사재판에 대한 항의표시로 소리 높여 애국가를 불렀던 곳이다.당시 재판은 법정에 총으로 무장한 헌병을 입장시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 가운데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군사재판부는 사형, 무기징역 등 실형을 선고했다. 주요시설 보존시설로는 법정(222㎡), 영창(617㎡), 헌병대중대내무반(414㎡), 헌병대본부사무실(425㎡), 헌병대식당(181㎡), 식기세척장(19㎡), 창고(55㎡) 등이 있고 지원시설로는 자유관(1020㎡, 영상실 및 5.18전시실)과 편의시설인 조경수, 분수시설 등이 있다.내무반에 들어서기 전 왼편에 보이는 건물인 법정은 1980년 8월에 5.18군사재판을 위해 지어졌다. 5.18 당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구속자들이 군사재판을 받았던 곳이다.영창은 자유공원 내 가장 안쪽, 철조망이 쳐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5.18 당시 상무대 헌병대 영창이라고 불렸던 이곳은 일부 정치군인들의 정권찬탈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분들이 구금되었던 곳이다. 6개의 방이 부채꼴로 배치되어 있으며 수감자들을 한눈에 감시할 수 있는 감시대가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전시실은 역사의 사건, 맨 주먹의 저항, 죽음과 부활, 천년의 빛 5.18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상실이 있어 당시의 상황을 볼 수 있다. 들불야학 운동가 7인의 모습을 새긴 기념조형물인 들불열사 기념비도 있다.
    2018-05-28 | NO.30
  • 5.18기념공원
    서구 내방로 152(쌍촌동)1995년 상무대 이전과 함께 정부가 광주시민에 대한 보상차원에서 상무 신도심 개발지구내에 330,000㎡을 시민공원 부지로 무상 양여함에 따라, 5.18의 명예회복과 값진 교훈을 올바르게 계승 발전시키기 위하여 208,000㎡ 규모의 5.18기념공원을 조성하였다.5.18기념공원에는 기념문화원, 현황조각 및 추모승화 공간, 오월루 등 5.18관련 시설물과 휴게 공간 및 공원기반 시설이 들어서 21세기를 준비하는 발전의 장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5.18을 상징하는, 빛의 작가 우제길 화백의 조형물이 장엄한 형상으로 서 있어 오가는 이들에게 오월영령들을 추모하게 하고 광주의 내일을 기약하게 한다. 특히 기념문화관은 5.18정신에 대한 교육의 장 및 인권센터의 기능을 수행하며, 숭고한 정신의 계승.발전 도모하고 있다.관람객 및 관광객들에게 5.18의 참모습이 정신적 문화적 차원에서 소개하고 있다. 5.18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밝은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진취적인 시민상을 표출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나아가 시민 일상생활의 장으로서 기념공원 일상생활 속에서 시민들이 자주 접하고 이용하는 생활 속의 공원을 지향하고 있다. 근린공원의 기능 확보와 관광 명소화 기념공원의 성격을 중심으로 하되 공원 주변에 사는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며 산책을 즐기는 등 자연과 접할 수 있는 근린공원의 기능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더불어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역사 체험의 장을 제공하는 관광 명소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5.18기념공원의 기본 컨셉은 5.18 기념사업을 펴는 동시에 미래의 광주 도시이미지를 덧씌워 융.복합의 묘미를 살려낸 점이다. 광주의 5월 정신이 광주광역시 상무 신도심 공간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더불어 오픈 스페이스 체계를 확립시켜 역사체험의 장으로 그 기능을 다하고 있다.망월묘역-도청-상무공원의 세 지역이 미래 광주광역시 도시 이미지와 융화되도록 기본계획 및 설계 개념을 정립한 것이 지향점이다. 또 광주광역시 경관로와 공원 연결로를 구성해 인근에 거주하는 시민들이 주변 경관로를 돌다 자연스럽게 5.18기념공원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흥미롭다. 공원 안에는 1972년 상무대 내에 창건된 무각사와 홍익인간 정신을 계승하는 단군전이 있다.조성면적은 전체 204,985㎡이고 5.18기념문화관(10421㎡), 대동광장(2700㎡), 오월루(900㎡), 현황조각 및 추모승화공간(3310㎡), 광주학생운동기념탑(350㎡) 등이 있다. 이외에 연못(5000㎡), 다목적 잔디광장(6200㎡), 계류정(2500㎡), 산책로(3200㎡), 어린이놀이터(2800㎡), 휴게공간.완충녹지(26300㎡), 진입광장(1715㎡), 팔각정, 단성전(10㎡) 등이 있다.그 중 5.18 현황조각 및 추모승화공간은 5.18민주화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빛으로 형상화한 작품으로 빛의 작가 우제길 화백이 만든 조형물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태극모양이다. “아! 광주여 영원한 빛이어라”라는 주제로 지상 현황조각과 지하 추모공간으로 나누어 조성하였다. 지상 현황조각에는 제기, 인물상, 관부조, 스테인리스 조형물이 있고 지하 추모공간에는 지하 인물상, 횃불, 부조, 5.18관련자 명단 등이 있다.대동광장은 기념공원과 추모공간의 진입로로써 신분을 초월하여 한 덩어리로 뭉친 대동정신을 표현하고 있다. 광장의 주요 설계요소들은 중앙의 구심점으로 향하는 단결된 모습을 보여주고 중앙에 위치한 분수는 5.18정신의 승화 계승 발전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분수의 중앙 조형물은 민중의 힘이 땅으로부터 솟아 하늘을 향하고 5.18의 정신이 타오르는 불꽃으로 형상, 5.18희생자를 받드는 손의 이미지를 의미한다.연못은 조선시대 남도 전통정원 양식을 기조로 보길도 부용동에 있는 세연지의 이미지를 도입하여 전통 조경요소 및 입수 기법으로 조성하였다.계류정은 기존 정자와 연못을 정비하여 세심천의 개념을 갖도록 자연적인 계류경관을 고려하여 조성된 연못이다.
    2018-05-28 | NO.29
  • 개금산
    서구 매월동 회산마을 북쪽풍암 유통단지와 전평호수, 서광주역을 품고 있는 듯한 개금산은 매월동 회산마을 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백마산과 마주보고 있다. 개금산蓋金山은 ‘아름답고 돈이 많이 모인다 하여 마치 금으로 덮인 것 같다’는 뜻을 갖고 있다. 높이는 179.2m로 일명 계관산鷄冠山으로 불린다. 산봉우리가 세 갈래로 크게 갈라져 ‘마치 닭의 볏[鷄冠]과 같다’ 해서 붙여진 명칭이다. 산의 경사가 급해 벼랑산, 깔끄뫼, 깨그뫼, 개금산開金山이 됐다고 전해진다. 별명으로 화개산 또는 개감산蓋甘山으로도 불린다. 이 산의 남쪽은 주로 솔밭으로 이뤄지고 경사가 완만해 그 자락에 많은 민가와 음식업소가 들어서 있지만 근방 수려한 경관 때문에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쉬었다 가곤 한다. 이 산 뒷면 북쪽은 광주 도심이 가까워 전망이 좋고 산 끝자락에는 화개마을이라는 조그만 취락이 있었다. 마을 이름의 유래는 마을 가까운 언덕에 매화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고, 진달래가 군락을 이룬데서 지어졌다. 소나무가 주종을 이루는 이 산은 녹지자연이 7∼8등급에 해당해 식생이 양호하다. 남서사면에 대동고등학교와 살레시오초등학교가 있고, 그 아래는 호수공원으로 꾸며진 전평제가 있다. 동쪽 자락의 회산마을은 임진왜란 때 공신이자 나주목사 등을 지낸 조선조 명종. 선조 때의 문신 회재懷齊 박광옥朴光玉(1526∼1592)의 탯자리가 있던 곳이다. 박광옥은 성리학을 연구하며 선도향약船道鄕約을 실시하는 등 주민들을 교화하는 일에 힘썼다. 박광옥의 딸과 관련하여 주역각시의 정절에 관한 설화도 친근하게 전하고 있다.                 조선 선조 때 문인 회재 박광옥에게는 영특한 딸이 하나 있었다. 여자지만 학업은 사서삼경에 통달했고 짐승의 말소리까지 알아듣는 신통한 재주를 지녔었다. 그녀의 나이가 15~16세가 되자 전북 남원의 명문가로 이조판서를 지낸 노정(盧楨)의 아들과 혼례를 올렸다. 그런데 결혼 첫날 밤 쥐들이 천정에서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웃는 것이 화근이 되어 시집에서 퇴박을 맞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옛날 이 마을 경치에 끌린 탁발승이 마을 뒤편 언덕에 조그만 암자를 짓고 살았다. 그런데 그 중이 워낙 게을러서 봄과 여름이면 옷을 벗고 이를 잡기 좋아했으며, 개[犬]까지 잡아먹는 파계행위가 심해 마을사람들이 나서서 내쫓았다고 한다. 지금도 그 자국이 남아있다고 한다. 무등산에서 장불재로 내린 용맥 중 하나가 안양산으로 가고, 또 하나는 너릿재로 비룡飛龍해 달리다가 칠구재가 있는 분적산을 세우고 다시 효덕동을 지나 금당산으로 힘차게 낙맥 하니 나쁜 기운은 다 떨쳐내어 고은 자태로 화방산을 만들어 이곳까지 이르고 있다 한다.서광주역이 있는 화개마을에서 출발해 개금산 팔각정인 개금정을 거쳐 매월농장, 전평호수에 이르는 3.5km 구간이 등산 코스로 각광을 받고 있다. 팔각정과 의자, 안내판이 잘 구비돼 있다. 서구의 가장 남쪽에 있는 백마산과 남구의 경계 중간쯤에 자리하고 있다. 김목 시인, 동화작가의 ‘서광주역’이라는 시가 있다. 기차역을 보면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진다.서광주역사람들 마음을어디론가 보내기 위해 문이 열렸다. 기차역에 오면떠나간 사람이 보고 싶어진다.기인 기적 소리가떠나간 그 사람 마음을여적도 내 마음에 살아있게 한다.   기차역을 지나면봄여름, 갈겨울이 함께 지나간다.세월 속에서 변하지 않은 건우리들 사랑사랑하는 사람을 언제나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다.(2011년 4월 20일 김 목)
    2018-05-25 | NO.28
  • 개머머리
    쌍촌동 소삿골 북쪽에 있는 추녀처럼 내민 추녀모팅이 북쪽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2018-05-25 | NO.27
  • 계숫봉
    계숫봉:계수봉(桂樹峯)은 쌍촌동과 치평동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를 말한다.
    2018-05-25 | NO.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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