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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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밀양박씨효열비
    광산구 본량에 있는 유인 밀양박씨의 효열비이다. 최근에 비신을 교체하였다. 경위도좌표: N 35˚11´19.3″, E 126°40′08.3″  
    2020-05-11 | NO.119
  • 유치선선정비
    광주시유치선(兪致善)은 1880~1883 광주목사로 재임했다.나도규의 <덕암집>에 비문이 실려 있다.
    2018-11-09 | NO.118
  • 유현장공재철공덕비
    이 유현장공재철공덕비 惟玄張公在鐵功德碑는 서구 서창동 동하마을 만귀정 입구 도로변에 있는 것으로 백마수리계 계원 대표 동하 장민환, 마산 정해용, 세동 김종완 이름으로 세워졌다. 백마양수장을 개인경영으로부터 몽리인자영으로 만든 공로를 기려 1968년에 세운 공덕비이다.비 뒷면에는 글이 있다.당신의 의지, 그것은 오직 우리를 위한 진리에의 충성이었고 이 고장의 여명이었다. 산이 그 앞에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당신은 놓지 않고 그 많은 풍작을 우리에게 안겨주었다.단기 4301년 3월백마수리계원 일동김일수金馹洙의 글과 송곡 안규동의 글씨로 썼다.장재철은  대동사 사우祠宇 밖에 류인대의 공적비도 세웠다.2019. 1. 8. 수정 
    2018-11-20 | NO.117
  • 윤상원 열사 생가
    광산구 천동길 46 1979년 들불야학 1기에 일반사회를 가르치며 교사로 참여했고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큰 활약을 했으며 <투사회보>의 발행인으로 활동하다가 5월 27일 전남도청 본관 2층 사무실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하였다.윤상원 열사의 생가에는 '해파제海波齋'라는 현판이 있다.
    2018-06-26 | NO.116
  • 윤상원열사
    광주시 북구 전남대 사회대 앞2007년윤상원(1950년 8월 19일 ~ 1980년 5월 27일)은 대한민국의 노동운동가이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활약했다. 다른 이름으로는 윤개원도 있다. 전라남도 광산군(현 광산구) 임곡면 신룡리에서 태어나 임곡국민학교, 북성중학교, 사레지오고등학교, 1978년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1979년에 들불야학 1기에 일반 사회를 가르치며 참여했다.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때 ‘민주투쟁위원회’의 대변인과 광주시민의 눈과 귀와 입이었던 〈투사회보〉의 발행인으로 활동하다가 5월 27일 전남도청 본관 2층 민원실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윤상원의 사인을 두고 '자상', '화상', '총상'이라는 엇갈린 견해가 있었지만,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총상으로 밝혀졌다. 항쟁지도부 기획실장 김영철이 윤상원을 매트에 눕힌 뒤 최루탄 때문에 불이 붙은 커튼이 매트에 눕혀져 있던 윤상원에게 떨어지면서 윤상원의 시신에 화상 흔적이 남게 됐다. 1978년 12월 27일에 사망한 노동운동가 박기순과 영혼결혼식을 치렀고, 이를 모티브로 한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가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만들어졌다.
    2018-11-30 | NO.115
  • 율리전사비
    광주시 광산구 안청동 안청마을1945년栗里田舍碑는 광산 김문옥 짓다.
    2018-12-02 | NO.114
  • 의재허백련선생상
    광주시 동구 남문로 166(학동)이 의재허백련선생상은 학동삼거리 소공원에 있다. 광주 출신으로 한국화의 대가였던 의재 허백련 화백(毅齋 許百鍊, 1890-1977)의 동상이다. 허백련은 조선 후기 한국 남종화를 완성했던 허련의 후손으로, 허련의 아들 허형에게서 그림의 기본을 익히고, 일본과 서울에서 그림공부를 하면서 경험을 쌓았다. 1938년 광주에 정착하여 활동하면서 연진회를 발족하여, 전통서화와 후진 양성에 노력하였고, 삼애학원을 설립하여 농촌지도자를 육성하였다. 또 일본인이 버리고 떠난 무등산의 차밭을 인수해 춘설다원을 경영하면서, 전통차의 재배와 보급에 힘썼다. 원로 유명조각가 김영중의 작품이며 미당 서정주 시인의 글과 일중 김충현님의 글씨로 기록을 남겼다.
    2018-11-16 | NO.113
  • 의혼비
    광주시 광산구 신촌동 산4-11951년의혼비는  송정공원 내에 있다. 1951년 10월에 광산군민의 이름으로 세운 비이다.
    2018-10-22 | NO.112
  • 이백헌-계암이공백헌실적비
    광주시 서구 염주동 계암이공백헌실적비桂菴李公白憲實績碑는 염주마을  쌍샘(雙泉) 상단에 있었다. 마을사람들과 인근 주민이 계암공桂菴公의 행적을 찬양하여 세웠다. 도시개발에 따라 도로개설시 비를 이설할 때 중동이 부러져(折倒) 비돌은 현재 李忠範의 셋째인 李載日이 보존하고 있다. 계암 이공은 이충범의 조부이다.
    2018-12-04 | NO.111
  • 이성부 시비-무등산
    광주시 동구 계림동 광주고등학교2013년시 ‘무등산’과 연작시 '전라도'와 '백제' 등으로 유명한 이성부 시인(1942∼2012)은 광주에서 태어난다. 1954년 광주사범병설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학생 잡지 『학원』에 여러 차례 작품을 발표한다. 그는 광주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고교 선배인 박성룡 · 윤삼하 · 정현웅 · 강태열 등을 만나며 문학적 분위기 속에서 습작을 계속한다.전국 규모의 고교생 문예 작품 현상 모집에 여러 차례 입상하며 시적 재능을 뽐낸 그는 고등 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60년 『전남일보』 신춘 문예에 시 「바람」을 응모해 당선된다. 1960년 그는 조병화 · 황순원 · 김광섭 등이 교수로 있던 경희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해 본격적인 습작기를 가진다. 이성부는 이듬해인 1961년 『현대문학』에 「소모(消耗)의 밤」으로 초회 추천을 받고 이어 「백주」 · 「열차」 등으로 완료 추천을 받으며 정식으로 문단에 나온다. 그는 1967년 『동아일보』 신춘 문예에 「우리들의 양식(糧食)」이 당선되면서 다시 이름을 알리기도 한다.1968년 그는 ‘68문학’ 동인으로 참여해 「전라도」 연작을 발표하면서 1970년대부터 활발하게 일어나는 민중시의 흐름을 계시하고 민중 지향적 서정시의 기반을 닦는다. 1969년 ‘한국일보사’ 기자로 입사한 뒤 곧바로 첫 시집인 『이성부 시집』을 ‘시인사’에서 펴내는데, 그는 이 시집으로 제15회 ‘현대 문학상’을 받는다. 1974년 그는 두 번째 시집 『우리들의 양식』을 ‘민음사’에서 간행한다.그는 같은 해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에 참여하고, ‘문학인 101인 선언’에 서명한다. 1977년 세 번째 시집 『백제행(百濟行)』을 ‘창작과비평사’에서 펴낸 그는 이 시집으로 제4회 ‘한국 문학 작가상’을 받는다. 이 시집은 고통스런 삶과 역사의 어둠을 이겨내고 일어서고자 하는 극복과 인고의 정신을 노래한 시편들로 채워져 있다. 광주민중항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81년에 네 번째 시집 『전야(前夜)』를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한 뒤 이성부는 여러 해 동안 시를 발표하지 않는다. 그가 다섯 번째 시집인 『빈 산 뒤에 두고』를 ‘풀빛’에서 펴낸 것은 1989년의 일이다. 오랜만에 내놓은 이 시집에서 그는 비극의 현장에 같이 있지 못한 데 따른 죄의식 탓인지 시에 대한 회의, 꺾인 희망과 의지 등을 드러낸다.제6시집 『야간산행』(1996) 이후 지리산 시편 82편을 묶어 제7시집 『지리산』(2001)을 펴냈다. 『야간산행』이 삼각산, 설악산 등 산행 체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지리산』은 지리산의 역사와 문화, 산행을 통해 얻은 산과 시인이 하나 되는 자기성찰을 담고 있다. 시인에게 산은 자연물로서의 산일뿐만 아니라 지리산으로 상징되는 우리들의 고통받는 삶과 역사의 현장이 되어 시세계의 중심을 흐르고 있다. 『작은 산이 큰 산을 가린다』(2005), 『오늘의 양식』(2006) 등을 간행하였다. 2012년 2월 28일 향년 70세를 일기로 타계하였다.
    2018-11-16 | NO.110
  • 이수복 '봄비'
    광주시 남구 양림동 108-101994년팔각정에서 관덕정 방향 150m 아래에 자리하고 있는 함평 출신 이수복(1924∼1986)의 ‘봄비’ 시비는 1994년 2월 광주시에서 건립했다. 이 비 그치면내 마음 강나루 긴 언덕에서러운 풀빛이 짙어 오것다푸르른 보리밭길맑은 하늘에종달새만 무어라고 지껄이것다이 비 그치면시새워 벙글어질 고운 꽃밭 속처녀애들 짝하여 새로이 서고임 앞에 타오르는향연과 같이땅에선 또 아지랑이 타오르것다그의 대표작으로 교과서에 실릴 만큼 널리 알려져 있다.  이 시비의 조각은 문옥자, 글씨는 정광주가 각각 맡았다. 
    2018-06-21 | NO.109
  • 이순신-한산섬 달 밝은 날에
    광주시 남구 사직공원한산섬 달 밝은 밤에 위루(威樓)에 혼자 앉아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잠길 적에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歌)는 남의 애를 끝나니.-충무공 이순신(忠武公 李舜臣)-
    2020-03-19 | NO.108
  • 이식 '송죽문답' 시판
    서구 천변우하로 337, 죽림근린공원동천휴먼시아 2단지아파트 옆 죽림근린공원의 조형물에는 이식李植(1584~1647)의 송죽문답松竹問答이라는 시가 시판 형태로 새겨져 있다. 자기 주장만 내세우지 말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라는 뜻이다.
    2018-06-26 | NO.107
  • 이철수-군수이공철수송덕비
    광주시 서구 용두동 산 79(봉산정사)1968년광산군수 이철수의 송덕을 기리는 비이다. 용두동 봉황산 봉산정사 입구 왼편에 있다. 나무덩쿨에 가려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1968년 6월 담양군수, 1969년 5월 나주군수로 이동했다.
    2018-12-06 | NO.106
  • 이회춘-수리계장이회춘 동계이사 장창섭 공적기적비
    광주시 서구 서창동 동하마을 만귀정 입구 도로변에 수리시설인 백마양수장 건설에 따른 공덕비이다. 1939년(소화 14년)에 동하수리계원 일동으로 세웠다.2019. 1. 8. 수정
    2018-11-20 | NO.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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