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28
게시물 검색 폼
  • 광주 십신사지 석비
    광주 북구 서하로 48-25,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유형문화재 제3호(1986. 11. 01지정). 이 광주 십신사지 석비(光州 十信寺址石碑)는 십신사지 석불과 함께 있다가 1977년 현 위치인 광주시립민속박물관으로 이전 복원한 것이다. 1978년 2월 보수 공사 때 비석에 씌어진 글에서 '정사년'이라는 글귀가 발견되었다. 석비의 형태는 거북 모양의 받침돌, 기둥, 지붕돌을 모두 갖추고 있다. 받침돌에 새겨진 '왕' 자는 고려적인 요소이나 팔작지붕과 퇴화된 거북 부분으로 미루어 고려 전통을 이어 받은 조선 초기의 작품으로 보기도 한다. 기둥에는 윗부분에 범자를 새기고 그 아래에 글을 새겼다. 그 내용은 불경의 한 종류인 능엄경에 나오는 글로 '병을 막고 오래오래 살기'를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다. 이 비는 옥개석 일부가 결실되었을 뿐 비신과 귀부가 완전히 갖추어진 것이다. 비의 규모는 총고 5.15m, 길이 2.98m, 너비 1.68m의 지대석 위에 길이 2.73m, 너비 1.32m의 귀부를 놓고, 그 위에 길이 3.96m, 너비 0.98m, 두께 0.5m의 비신을 결구한 다음 높이 0.35m인 옥개석을 올려놓았다. 비신의 상단부에 길이 83㎝, 너비 68㎝로 구획을 만들고 보주와 같은 문양을 새겨 놓았다. 이 문양은 범자의 옴(唵)자를 도안화한 것이다. 이로 인해 사서에 범자비로 기록되어 있다. 비의 제호는 범자문양 밑에 가로로 ‘大佛頂尊勝陀羅尼幢(대불정존승다라니당)’이라 오목새김되어 있어, 이 비가 불정존승다라니경을 세긴 경당(經幢)임을 알 수 있다. 석질이 약하고 마멸이 심하여 판독이 힘들지만 대개 총 9행으로, 1행 31∼32자를 음각하였으며 제 9행의 말미에 ‘丁巳(정사)’란 간지가 있다. 건립 연대는 세종19년(1437) 또는 연산군 3년(1497년)으로 비정할 수 있어 15세기를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이 비에 새겨진 ‘대불정존승다라니당’이란 문자와 같은 불당을 새긴 예로는 황해도 해주와 평안북도 용천의 〈대불정다라니당〉이 있고 개성 선죽교와 평양 범수교의 교재에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증심사범자칠층석탑의 경우도 이러한 경당으로서의 성격을 갖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고 있다. 불정존승다라니경은 존승법(尊勝法)이라고도 한다. 그 내용은 석가여래불정으로부터 출현한 불정존승을 본존불로 삼고 ‘존승다라니’를 외우면서 얽매여 있는 일체의 생각이나 미망에서 벗어나려는 밀교의 수도법이며 또한 질병을 막거나 장수 등을 기원하는 현세구복적인 기도법이다. 이 석비도 이러한 경의 내용이나 기도법에 관한 것을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불교의 한 계통인 밀교의 진리를 설법하는 비문을 새긴 범자비로서 남한에서는 처음 확인된 것이다.
    2018-06-19 | NO.28
  • 나무아미타불
    광주시 광산구 송정공원이 나무아미타불 비는
    2018-11-30 | NO.27
  • 너릿재 시비공원 입구 문인석
    광주시 동구 선교동 71, 너릿재공원너릿재공원은 어린이생태숲으로 개발되었고 광주지역 시인들의 시비가 있는 시비공원이다. 입구 주차장쪽으로 문인석 2기가 있다. 다만 문인석 받침돌이 대리석판으로 만들어 어울리지 않다.
    2018-11-30 | NO.26
  • 문신조형강생구비
    광주시 광산구 비아동 문신조형강생구비(文臣趙珩降生舊碑)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665년에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도쿠가와 이에야츠를 만나고 돌아왔으며 『부상일기(扶桑日記)』를 남긴 취병 조형(翠屛 趙珩, 1606~1679)의 탄생비가 이 마을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조형의 유허비는 광산구 비아동에 있고, 그곳에서는 조형이 천곡면(泉谷面)인 지금의 비아동 일대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고 있다.
    2018-06-17 | NO.25
  • 박정 제각건립비
    서구 사동길 118(서창동)충주박씨하촌공제각건립비忠州朴氏荷村公祭閣建立碑는 1989년 하촌공 문중에서 건립했다. 눌재 박상의 큰형인 하촌荷村 박정朴禎(1467~1498)은 중국 송나라 삼소三蘇에 견주어 동국에 형제삼박兄弟三朴이 있다고 할 때 중심이 된 인물이다. 32세로 요절하였으나 수백년이 지나도록 재실이 없어 안타까움에 14대손인 박하련朴夏璉 박하만朴夏樠 두 사람의 노력으로 1947년(정해년)에 완공하였다. 그 뜻을 후손에게 알리기 위해 1989년에 이 비를 세웠다.
    2018-05-25 | NO.24
  • 서석산 신지위비(瑞石山 神之位牌) 또는 서석산(瑞石山) 신단
    서석산 신지위비(瑞石山 神之位牌)는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 722-27 약사사 藥師寺(약사암)에 있는 비석으로 조선말~근대 시기로 추정된다. 언제 세워졌는지는 알 수 없다. 산신각 대신 세워진 것으로 보이며 산신이 일반 중생들을 돌보듯 불교신앙이 민속신앙과 습합되어 산신과 소통하는 것을 보여준다.증심사와 약사사 사이에 있는 서석산신단 옆 암벽에 음각으로 새겨 있다. 증심사 경내의 북쪽 암벽이다. 절과는 무관하게 방문객들이 찾아와서 공을 들인다. 암벽에 ‘서석산신지위(瑞石山神之位)’라는 음각명문이 있고 이 명문 주위로 단을 설치했다. 기와지붕형태로 석재를 다듬어 부연(副椽)까지 양각했으며 8각기둥을 양 옆에 세웠다. 지붕의 안쪽은 암벽에 맞물려 있다. 지붕 너비는 110㎝, 암벽에서의 너비는 80㎝이다. 기둥의 높이는 122㎝, 둘레는 48㎝이며 기둥간의 간격은 80㎝이다.서석산신단 옆에는 증심사의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어 산신신앙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 산신각 안에 40㎝ 높이의 제단에는 촛대 2개와 향로, 정화수를 담은 그릇이 놓여있다. 
    2023-07-17 | NO.23
  • 서호비
    광주시 서구 쌍촌동 운천호수2016운천호수는 일부 서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2011년 5월 ‘서호’로 함께 부르기로 한 기념식을 가질 만큼 아름다운 호수다. 2016년 강원구, 탁인석 박사를 주축으로 이 비를 세웠다.
    2018-06-20 | NO.22
  • 석인상
    광주시 동구 학동 필문대로329번길 22(武光祠)이 석인상石人像은 구 전남여상고교 숙직실에서 무광사武光詞로 가는 석계石階 좌측에 세워져 있으며 1기만 서있다. 원래는 묘 앞에 세워졌던 문관석을 이곳에 옮겨 왔을 가능성이 많으며 출처가 어딘지는 정확하지 않다.두부는 관이 없이 이마를 양각으로 튀어나오게 하고 눈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이 구멍을 얕게 파서 코를 주먹코로 하여 하루방의 코를 닮게 하였다. 얼굴은 전제적으로 살이 쪄 보이며 고집스런 할아버지 인상을 풍긴다. 얼굴과 턱의 구분이 없이 볼이 쳐져 있으며 목 부분이 없고 두부와 몸이 바로 연결되어 있다.어깨에는 옷자락의 형태가 보이지 않고 팔은 양손을 합장하는 모습으로 가슴 중앙에 대고 있으며 하부는 생략 한듯하다. 이러한 석인상은 묘성에 주로 세워져서 묘수호의 기능을 가지는 것이 통상적인데 우치동처럼 비각 앞에 세워진 예도 가끔 볼 수 있다.
    2018-11-15 | NO.21
  • 석저촌비
    광주시 북구 덕의동(석저마을)1991년석저마을 입구에 금곡동, 충효동 등 10개 마을 주민들이 함께 석저촌비를 석저마을 입구에 세웠다. 옛 석저면의 중심지가 석저마을 이라는 점을 알려주고 있다.
    2018-12-07 | NO.20
  • 성촌마을 벅수
    광주 동구 운림동 847 (성촌마을)이 성촌마을 벅수(石長栍)은 윈래 성촌城村마을 입구에 위치해 있었으나 도로 확장으로 1981년 학운鶴雲초등학교로 옮겨 본관 건물 현관 입구의 석인상石人像과 함께 위치해 있었다. 그러다가 2017년 10일 성촌마을 지킴이 벅수 이전행사를 갖고 마을 입구로 옮겼다.좌측장승 안부顏部의 형상은 우측장승보다 약간 둥글고 귀는 얼굴에 알맞게 위치하고 목은 없다. 흉부에는 횡선이 2줄로 조식彫飾되어 어깨와 몸통은 치졸하게 처리하고 좌우 손은 상하로 손등을 포개어 조각하였다. 눈과 눈썹 코는 양각되어 있으나 옛 할아버지의 근엄한 모습이다. 우측장승은 얼굴은 볼이 길고 귀는 목 부분까지 길게 내려와 있다. 의상衣像은 저고리 치마를 입은 듯이 보이며 오른손에는 긴 부채처럼 생긴 것을 왼손가락으로 쥐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중후한 인상을 주고 있다.
    2018-11-15 | NO.19
  • 성촌마을 쌍석
    광주시 동구 운림동 성촌마을 입구(전통문화관 건너편)
    2018-11-30 | NO.18
  • 송산동 내동마을 하마비
    광산구 송산동 내동마을조선시대 성현을 모신 곳 또는 향교 등에 세워진 하마비는 많으나 송산동 내동 자연마을에 하마비가 있는 경우는 드문 경우이다. 원래는 마을 앞 도로변에 있던 하마비는 현재 광산사 앞으로 옮겨졌다.
    2018-06-20 | NO.17
  • 신도삭녕최군성기록비
    광주시 남구 도금동 도촌마을 앞 1987년신도삭녕최군성기록비(新陶朔寧崔君盛紀錄碑)는 윤의순효열비와 같이 세워졌다. 최군성의 이름은 성한(盛漢), 신도(新陶)는 그의 호이고, 군성(君盛)은 자(字)로 본관은 삭령이다.공은 도촌마을 태생으로 국악을 좋아하여 1981년 제1회 전국고수대회에 출전하여 장려상을 받았고, 1982년 제2회 전국고수대회에 참여하여 차상을 받았으며, 1983년 제3회 전국고수대회에서 입선하는 등 고수로서 두각을 나타냈다.그리고 그는 체육 가운데 마라톤에 소질이 있어 노장(老壯)마라톤대회에 출전하여 기록을 남기었다. 그 내용을 보면 1984년 제11회 전국노장마라톤대회(60-64세대) 겸 제5회 국제친선마라톤 대회에서 20㎞ 완주기록, 1시간 32분 28초를 기록하였고, 1985년 제12회 전국노장마라톤대회(60-64세대) 완주기록, 1시간 31분 50초의 기록을 남기었다. 또한 동년 제6회 국제친선노장마라톤대회(60-64세대)에서 2,195㎞ 완주기록 4시간 3분 52초 3의 기록을 남긴 노익장의 투지를 보였다.이러한 기록을 남긴 최군성의 국악사랑과 마라톤의 투지를 찬양하기 위하여 1987년 광주 각계의 협찬으로 이 비를 세웠다.
    2018-06-17 | NO.16
  • 신라왕자단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신라왕자단비(新羅王子壇碑)는 <광주읍지>에 따르면 주(州)의 북쪽 50리의 거리인 평장동(平章洞)에 있는 건물로 광산김씨시조(光山金氏始祖)의 제향(祭享)을 모시는 김씨문중(金氏門中)의 단소(壇所)이다.기문(記文)후손 참판(參判) 김철현(金喆鉉) 지음우리의 시조(始祖) 이신 신라왕자(新羅王子) 김공(金公)의 이름은 흥광(興光)으로 신라말기의 어지러운 시기를 만나 광주의 북쪽 불대산(佛臺山) 아래에 있는 서일동(西一洞)으로 거처를 옮겨 이곳을 중심으로 그의 몸을 숨기어 드러내지 않는 둔적(遯跡)의 일생을 마치었다. 이로 인하여 광산(光山)이라는 우리의 본가가 생기게 된 것이다.우리 시조께서 이처럼 이곳에 터를 잡아 많은 학덕을 쌓은 관계로 그의 자손들이 세(世)를 이어 이곳에 살면서 8대(代)의 오랜 세월을 거쳐 연이은 평장사(平章事)의 벼슬을 하였기 때문에 일부러 이 마을의 이름을 평장(平章)이라 한 것이다.고려(高麗)로부터 조선(朝鮮)에 이르는 사이에 여러 후손들이 더욱 번창하여 팔도의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대를 이어 세거(世居)하는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오늘의 이 마을이 옛날과 달라 이처럼 황폐하게 된 그 시기에 대한 많은 궁금함이 없지 않다. 이는 다름 아닌 우리 김씨가 이미 오래 전부터 이 마을에 살지 않은 관계로 이러한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왕자부군(王子府君)께서 생존하신 그 당시의 년기가 애매하고 또 그의 유적이 모두 없어져 이를 고증할 수 있는 별다른 문헌(文獻)이 없다. 그러나 다행히 당시의 사적을 상상할 수 있는 그 유허(遺墟)가 있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제향의 사원(祠院)을 세우려는 그간의 많은 거론이 있었음에도 마침내 이의 뜻을 이루지 못한 안타까움이 없지 않다.슬프다! 이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세정(世情) 인사(人事) 등의 변화를 생각할 때 앞으로의 후손들이 어찌 오늘의 우리와 다름없는 이러한 생각을 가질 수 있겠는가? 지난 경신(庚申)년에 나의 사제(舍弟)인 판서(判書) 각현(H )이 경향각지의 여러 종친들에게 통문(通文)을 보내 이 사실을 알린 나머지 민현(珉鉉) 용주(容柱) 진현(珍鉉) 세 유사(有司)와 함께 유허(遺墟)위에 제단(祭壇)을 쌓아 매년 늦가을에 여러 종친들과 함께 향사(享祀)의 예를 다함으로써 비로소 옛날의 시조(始祖)를 추묘(追墓)하고 종족(宗族)의 화목(和睦)을 다질 수 있는 결정적 계기를 이루었다.이로 인해 사람과 영혼이 서로 감응하고 정의와 예도가 함께 어울리는 이의 사실을 생각할 때 어찌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반드시 그 시기가 있고 또 이를 주도하는 그 사람이 있다"는 옛날의 이 말에 대한 깊은 실감을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의 뒤를 이어 반드시 있어야 할 이 단소(壇所)의 표석(表石)을 미처 세우지 못한 이 사실을 생각할 때 또다시 이에 대한 제2의 아쉬움이 없지 않았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수년의 오랜 세월을 끌어온 사이에 판서(判書) 각현(珏鉉)이 이미 세상을 떠나 거의 중단된 상태의 침체를 면치 못하였다.다행히 금년 봄에 장성(長城)의 종인(宗人) 영관(永寬)이 이미 앞에서 말한 바 있는 세 사람의 유사(有司)와 함께 서로의 성금(誠金)을 모아 이 일을 착수하면서 나를 찾아와 이 사실을 알리었다. 내 그 성의에 깊은 흠모(欽慕를 느낀 나머지 대략 이러한 내용의 전말을 서술하고 아울러 명사(銘辭)를 지어 이르기를"불대산(佛臺山)과 서석산(瑞石山)이 서로 함께 어울리니신라왕자(新羅王子) 귀한 분이 이 가운데 살았도다여러 자손 사랑하는 맑은 유덕(遺德) 남기었고동국(東國)에서 으뜸가는 많은 영화 누렀도다지난 옛날 그 유지遺趾)가 오늘까지 이어지니여러 종친 힘을 모아 맑은 제단(祭壇) 쌓았도다추모(追慕)하는 그 마음을 무어라고 말할손가오늘날의 이 빗돌이 그지없이 빛나리라"하였다축문(祝文)"우리 시조(始祖) 어진 덕이 그지없이 뛰어나니지난 옛날 이곳에서 그의 몸을 숨겼도다그 당시의 그 유지가 오늘까지 이어지니그 위에 단(壇)을 쌓아 추모제 향 모셨도다보본(報本하는 이런일을 어찌 감히 잊을손가한결같은 성심으로 많은 감응(感應) 얻었도다."후손 판서(判書) 김각현(金珏鉉) 지음
    2018-06-18 | NO.15
  • 양림동 개비(狗碑)
    광주시 동구 양림동 157번지의 11558년 (명종 13) 양촌 정엄의 효행정려가 있으며, 정려 앞에 석상이 있다. 여기를 양림동 일대의 주민들은 속칭 '개비'라고 부른다. 지금으로부터 4백여년전 (명종·선조연간)에 한양 천리를 달려 조정에까지 주인이 심부름을 하였던 충견의 석상이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양림동 오거리에서 사직공원쪽으로 50m 지점에 있는 이 개비는 광주 정씨인 양촌이 자신이 길렀던 명견의 넋을 달래기 위해 세운 것이다. 이 개는 양촌이 써주는 상소문이나 조정에 보내는 각종 문서를 보자기에 싸서 목에 걸고가 전하는 심부름을 사람 이상으로 해냈다는 것이다. 양촌은 개에게 심부름을 시킬 때 전대에 엽전을 넣어서 따로 목에 걸어주며 한양까지 가고 오는 길에 밥을 사먹도록 했는데, 이 개는 주막집 아낙이 주는 밥을 먹고도 돈을 너무 많이 가져가면 떠나지 않는 등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영특했다는 것이다. 이때는 통신 및 교통수단이 불편하여 비둘기 발목에 쪽지를 매달아 편지를 띄우기도 하고 또 말을 타고 가도 10일 이상이나 걸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개의 간단한 서신 심부름은 시간과 경비를 크게 줄이는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조정을 드나들며 주인의 심부름을 충실하게 해오던 이 개는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날 전주 부근의 강변 다리밑에서 새끼 9마리를 낳고 한 마리씩 집으로 물어 나르다가 9번째 마지막 새끼를 물고오다 그만 지쳐 길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양촌은 애견이 새끼를 낳을 때가 닥친 것도 모르고 심부름을 보냈다가 죽게 되자 개의 모양을 한 석상을 세우고 충견의 죽음을 슬퍼하고 그 넋을 위로했다는 것이다. 이 석상은 양촌공이 죽은 뒤 후손들이 그의 정려 앞에 세웠다. 이 땅의 소유주가 여러번 바뀌는 가운데 관리를 제대로 안되어 정려의 지붕이 썩어내리는 등 문제가 많아 결국 무너졌으나 나중에 석재로 지붕을 만들고 주변에 담을 쌓아 보존하고 있다.
    2018-06-13 | NO.14
  • 광주광역시
  • 한국학호남진흥원
  • 사이버광주읍성
  • 광주서구청
  • 광주동구청
  • 광주남구청
  • 광주북구청
  • 광주광산구청
  • 전남대학교
  • 조선대학교
  • 호남대학교
  • 광주대학교
  • 광주여자대학교
  • 남부대학교
  • 송원대학교
  • 동신대학교
  • 문화체육관광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광주문화예술회관
  • 광주비엔날레
  • 광주시립미술관
  • 광주문화재단
  • 광주국립박물관
  • 광주시립민속박물관
  • 국민권익위원회
  • 국세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