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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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산재
    서구 회재로 551(서창동)구산재龜山齋는 서구 서창동 절골마을과 서창동주민센터 방향을 가르는 백마교차로에 있다. 백마산과 팔학산이 좌우에 있고 바래봉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다. 구산재는 구산龜山 김규환金奎煥(1769~?)으로 문중에서 세운 입비에 따르면 김해 가락국 수로왕의 66대손 삼현파이다.삼현은 사헌부,집의 절효공 金克一, 이조판서 문민공 탁영 金馹孫, 홍문관 응교 삼족당 金大有 등 세 사람을 말한다. 김규환은 삽봉 김세근 장군의 7세손으로 가선대부 호조참판을 증 받았다. 자녀로는 在平, 在亨, 在邦, 在旺 등 4남1녀를 두었다. 서창에 살면서 불우한 이웃을 자애로 보살펴 마을에서 칭송이 높았다.구산재는 그 후손들이 시대정신과 숭고한 효사상을 기리며 가문의 융성과 화평의 상징으로 1960년 구산재각을 건립해 재를 올렸다. 이후 광주-남평간 도로 확장사업으로 인하여 철거되면서 근처에 새로운 터를 마련하여 2004년 재건축 단장하였다.구산재 뒤편 언덕에 묘소가 있고 구산동산이라는 비석을 세운 것을 보니 문중 산으로 활용하고 있는듯 하다.
    2018-05-24 | NO.16
  • 귀후재
    광산구 광곡길 133에 위치해 있다. 고봉 기대승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마을의 서당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의 한옥으로 건물 상태가 좋지 않아 보수가 시급한 실정이다. <귀후재기>에 따르면 고봉 기대승의 후손인 기동준이 세웠으며, 건립 시기를 1917년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선시대 건축의 특징인 단조로움과 깔끔함을 갖추었다. 고풍스러운 느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정내의 현판 글씨는 구한말의 문신으로 1871년(고종 8) 문과에 등제하여 예조·이조판서에 이르렀으나 한일합방 후 일본 정부에서 남작을 수여하였으나 거절하고 세사를 멀리하고 야인의 길을 걸었던 서울 출신 명필인 석촌(石村) 윤용구(尹用求, 1853~1939)가 쓰인 것으로 보아 재건립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2019-12-03 | NO.15
  • 덕호재
    서구 덕흥로 312(덕흥동)극락강변에 유유자적하며 금성錦城(나주) 송암거사 오길주吳吉柱가 지냈던 곳이나 지금은 금성오씨 재각인 덕호재德湖齋로 대신하고 있다. 학사 민병한閔丙漢이 쓴 기문이 『조선환여승람』(1935)에 남아 있어 이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후손인 오동수吳東洙의 찬기가 있다.지금은 빨간 벽돌로 사면의 담을 쌓았고 담 위로는 철조망을 쳐놓았으며 알루미늄 대문에 열쇠가 굳게 잠겨있다. 재각 왼편에는 1988년에 세운 덕암德菴 오경렬吳璟烈의 공적비와 은진恩津의 송재성宋在晟이 찬하여 1971년에 세운 충신忠臣 증선무원종훈贈宣武原從勳 와헌卧軒 오공吳公 기적비紀蹟碑가 서 있다.덕호재가 있었던 덕흥홍등德興弘澄에서 바라보이는 강변은 한때 서구5경西區五景이 이야기될 때 제1경으로 꼽힌 바 있다. 덕호재에서 바라보이는 극락강변은 왼쪽으로 덕흥대교가 길게 뻗어있고 그 밑을 흘러가는 강변의 아름다움이 절로 묻어나온다.덕호재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거대한 암석으로 물길이 굽어지는 곡점을 형성하고 있어 이곳에서 서편으로 물길을 바라 볼 수 있어 풍경이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또한 암벽의 조대가 있어 낚시를 즐기며 풍류를 즐겼다.민병한의 기문 내용은 이렇게 시작된다.德湖額因地名也此盖錦城吳氏爲其先祖臥軒公以下諸墳墓享之齋宿所而所建也 ……
    2018-05-24 | NO.14
  • 문신조형강생구비
    광주시 광산구 비아동조형은 문신조형강생구비(文臣趙珩降生舊碑)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1665년에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가서 도쿠가와 이에야츠를 만나고 돌아왔으며 『부상일기(扶桑日記)』를 남긴 취병 조형(翠屛 趙珩, 1606~1679)의 탄생비가 이 마을에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조행의 유허비는 광산구 비아동에 있고, 그곳에서는 조형이 천곡면(泉谷面)인 지금의 비아동 일대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고 있다.
    2018-06-17 | NO.13
  • 봉산재(눌재 박상)
    서구 사동길 93(서창동) 봉산재鳳山齋는 충주 박씨忠州朴氏의 재실로서 소촌동의 송호영당松湖影堂과 더불어 눌재訥齋 박상朴祥(1473-1530)의 재실이다. 2019년11월 1일 새로운 재실을 중건하고 기념식을 가졌다. 재실 앞에는 박상 선생의 행장비도 새로 세웠다.재실 안에는 박상 선생 영정과 광산 김충호金忠浩가 쓴 '봉산재중건기'와 박래호 朴來鎬가 쓴 '봉산재중건상량문'이 있다.원래 건물은 1895년에 세운 것으로 정면 4칸, 측면 1칸으로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문은 완절문完節門이라는 편액이 있는 솟을대문이었다. 재실에는 기문記文이나 재각기齋閣記는 없고고 상량문에 을미구월초육일乙未九月初六日이라 쓰여 있었다. 눌재는 조정에 있을 때 관직과 권세에 얽매이지 않고 훈구파와 왕의 인척들을 비판하고 정론을 펼쳤다.봉산재 옆 낮은 산을 ‘뒷메’라고 불렀으며 봉황산과 한새봉 사이 골짜기 맨 위쪽을 ‘남바우’ 그 아래를 ‘한생이골’, 그 윗부분 봉황산 아래쪽을 ‘모길, 불암마을 앞에서 마을 앞 야산 사이를 ’작살앞‘이라 불렀다.눌재의 묘소는 봉산재 옆 ‘뒷메’라 부르는 낮은 언덕에 있다. 눌재의 묘소는 정부인 진양 유씨와 함께 모셔져 있다. 이 묘의 발음發蔭으로 조카사암 박순이 출생했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사암 박순(1523~1589)은 박상 선생이 돌아가시기 7년 전에 출생하였기 때문에 이 구전은 앞뒤가 맞지 않다. 또 사암이 눌재의 묘비를 세울 때 특별히 중국에서 백비에 가까운 돌을 구해와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재일은 매년 음력 10월 16일이다. 다음은 봉산재 중건기념일 문간공 문중회장의 인사말이다.봉산재 중건 기념 인사말안녕하십니까? 충주박씨 문간공 문중회장 박종률입니다.결실의 계절을 맞아 눌재 봉산재 중건을 기념하는 자리를 갖게 되어 무한한 기쁨으로 생각합니다.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축하의 자리에 함께하신 천정배 국회의원님, 서대석 서구청장님, 박성수 광주전남발전연구원장님, 정인서 서구문화원장, 충주박씨 대종중, 판서공, 회덕참의공, 찬성공을 비롯한 여러 문중 어르신들, 그리고 중건기문을 써주신 고당 김충호 선생님, 상량문을 써주신 노강 박래호 선생님, 주련글을 지어주신 원파 박수섭 선생님과 주련글을 아름답게 써주신 취석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봉산재 건축을 맡아 수고하신 대목장 감양수 님과 담장과 포천 사암묘역을 조성해주신 최정기 사장님과 삼복더위에 땀흘려 봉사한 우리문중 박화조 감독님과 총무님, 마을 통장님 그리고 많은 관심과 협조를 아끼지 않은 마을 주민 여러분과 문중종원들의 협조로 아름다운 봉산재를 중건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축하의 화한을 보내주신 모든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눌재 박상(訥齋 朴祥, 1474~1530)선생은 광주광역시 서구 방하동(芳荷洞)에서 태어나, 28세 1501년 연산군 7년부터 관직에 나아가 56세1529년 중종 24년까지 공직자로서의 책무를 다하였습니다. 담양 부사 시절 순창 군수 충암 김정(冲庵 金淨)과 무안 현감 석헌 유옥 선생과 함께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신비복위상소를 올린 일로 남평 오림으로 유배당하셨고, 담양 부사와 충주 목사로 재임 시 청백리(淸白吏)에 두 번이나 뽑히셨습니다.눌재 선생은 1,200여 수의 시(詩)와 부(賦)가 담긴 문집 눌재집(訥齋集)과 역사서 동국사략(東國史略) 등을 남겼습니다. 불의에 대한 과감한 지적과 비판은 이 시기 사림(士林)의 정신적 지표(指標)가 되었으며, 의리사상(義理思想)의 선도자(先導者)로 높이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후세에 사림의 부단한 요청과 군왕들의 호응으로 여러 차례 포장과 치제를 받으셨으며, 1688년 숙종 14년에 이조판서에 증직되셨고. 1729년영조 5년 문간(文簡)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문은 글에 밝고 견문이 넓다는 뜻이고, 간은 정직하고 거짓이 없다는 뜻입니다.뒷산 이름이 봉황산이어서 눌재 선생을 봉산거사라 했으며 재각 이름이 봉산재이고, 퇴계 선생은 눌재 선생을 ‘원우의 완인’이라 했으며 절의를 완성했다는 뜻으로 대문을 완절문(完節門)이라 했습니다. 봉산재는 1919년 기미년에 세워진 재각으로 올해로 100년만에 중건하게 됬습니다. 재실앞 마당에 세워진 눌재 행장비는 귤정 윤구선생(1495-미상)이 눌재선생 돌아가신지 1년 후인 1531년 4월에 두 아들 부사공 민제와 진사공 민중의 요청으로 쓴 글입니다. 눌재 선생의 그 당시 眞面目을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글로 그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눌재집에 면앙정 송순이 정만종에게 쓴 글에서 눌재 선생의 경의사상에 대한 가르침을 治心以敬(치심이경) 하고 處事以義(처사이의)라 했습니다. 즉, 매사에 마음을 경으로 다스리고 일을 의로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곧게 새워 나태함을 경계하고, 일을 행할때는 방정하게하고 사욕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눌재선생의 경의사상을 본받아 올바른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분들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2019년11월1일 문간공문중회장 박종률드림2019.11.15. 수정
    2018-05-24 | NO.12
  • 삼산정사
    광주시 북구 효령동 종방마을 산 189번지1963년 삼산정사(三山精舍)는 효령동 종방마을 내에 위치해 있으며, 건물은 콘크리트 기단 위에 4개의 신발돌과 다듬어진 주초를 놓고 그 위에 변주를 세워 정면 4칸, 측면 1칸의 일식기와로 된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내부에는 <三山精舍 上樑文三山精舍記 原韻 次韻(삼산정사 상량문삼산정사기 원운 차운)>등 모두 11개의 제액(題額)이 걸려있다.
    2018-12-13 | NO.11
  • 삼이재 심곡재
    서구 금호만호길 45-5금부마을에는 ‘서당터’에 일신당日新堂이라는 4칸집과 전주이씨들이 많이 살아 제각 삼이재와 심곡재心谷齋, 광산이씨 효열각이 있다.광주향교 『광주지』(1964)에는 심곡영당이 병천사 동쪽에 있어 정몽주, 지용기, 지여해, 지계최를 제향하는 곳이라 했다. 이 심곡영당이 금부마을로 옮긴 뒤 돈의당과 함께 자리하면서 심곡재로 바뀐 듯 하다.
    2018-05-24 | NO.10
  • 어산재
    서구 서창동 92-1 서구 서창동 백마교차로에서 절골마을로 들어가는 왼쪽으로 들어가다가 약 300m 쯤 되는 곳 왼편에 있다. 어산재 옆에 장흥고씨 묘소가 있다.
    2018-05-25 | NO.9
  • 영모재
    서구 서쪽 30리영모재永慕齋는 『광주읍지』(1924)에 주의 서쪽 30리인 조교동造橋洞에 있다고 했다. 진사 둔암遯庵 김덕일金德鎰 및 참의 소천素泉 김성도金成道가 건립했다.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1836~1905)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1846~1916)의 기문을 비롯하여 교리 이병관李炳觀(1858~ ?), 진사 임원철林源喆의 차운 등이 있다고 했다.그러나 여러 문헌을 찾아도 ‘조교동’의 지명을 찾지 못했다.
    2018-05-24 | NO.8
  • 영사재
    무등산 입구에 순흥안씨 영사재가 있다.
    2019-12-03 | NO.7
  • 영식재
    광주시 서구 전평길 62(매월동)1929년매월동 개산마을에는 흥성 장씨興城張氏의 향제소享祭所이며 효우공孝友公 장창우張昌友(1704~1774)의 제향을 위한 재각이 영식재永式齋이다. 1928년 11월 문중회의에 의해 건축하기로 의결하고 1929년 8월에 건립되었다. 장정섭張整燮 장안섭張安燮 장창섭張昌燮 등이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재각 구조는 재실 1동과 정문으로 되어 있으며 재실은 4간 기와 방풍집으로 단층 평기와 팔작지붕 건물이다. 내부에 대청마루 1칸, 좌우 온돌방 2칸을 조성하였고 천정은 평천정으로 되어 있다. 천정은 종도리를 중심으로 5량집이며 처마는 겹처마로 대문은 소슬대문으로 되어 있다. 동서 양재兩齋와 대청 2간이고 정문 역시 3간이다.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이 상량문을 짓고 후석後石 오준선吳駿善, 안동후인安東后人 김서규金瑞圭 지사知事가 기문을 남겼다. 정원에는 문화적 가치가 높고 신선 세계에서 볼 수 있는 동자상童子像이 서있고 수령 높은 고목이 아름다운 풍치를 이루고 있다. 대청 앞에는 영식永式이란 현판이 걸려있는데 이는 효우공의 아름다운 행적을 오래도록 본받자는 뜻에서 고종황제의 아들 의친왕義親王이 써준 것이라 한다. 이런 연유는 효우당이 평소 부모님을 효도로 극진히 모셨고 마침내 부친의 상을 당하여 3년간 시묘하였다. 하루도 눈물이 마를 날이 없어 그 자리에는 풀도 자라지 못하였고, 효성에 감동한 호랑이가 여막 주위를 호위하였다는 일화가 전한다.  이런 까닭으로 주위에서는 칭송이 자자하고 지방 사림士林이 다투어 칭찬하여 공의 훌륭한 행적에 대해 향론鄕論이 계속 있었으니 이 사실이 광산읍지光山邑誌 및 삼강록三綱錄에 기록되어 왔다 또 기둥에는 8개의 주련이 있는데 모두 자손에게 교훈된 문구로 되어 있다.  영식재 주련一樹開花各自紅 四時芬苾肅恭中 百世羹墻瞻仰上 千流分派同歸碧 拜謁斧堂正鞠躬 光前裕後業無窮遙知萬事求在我 追遠誠心戒愼終 기문은 다음과 같다.영식재서永式齋序광주 동하의 동쪽에 높은 산이 있는데 화개산華蓋山이라 한다. 이 산 양지에 송림이 우거져 있고 초동들도 함부로 도끼를 들지 못 하며 향인들도 이곳을 지나갈 때는 의관을 단정히 매만지고 절을 올리는 곳이 있으니 바로 장 효자의 묘墓라. 공公의 휘諱는 창우昌羽요 자字는 자칠子七 호號는 효우당孝友堂이라. 어려서부터 성품이 특이하여 부모에게 효도하였는데 공양과 보살핌에 극진하였다.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슬퍼함에 극도에 달하여 예禮를 넘었다. 3년 동안 시묘할 때 호랑이 와서 보호해 주었는데 이는 효성에 감동된 소치라고 사람들은 말하였다. 향촌 선비들이 이를 칭송하고 관에서는 포창을 하였으니 읍지에 소상히 기록되었고 지금까지 수 백년 동안 시골의 노인들에게 계속 전해져 오고 있다. 그 자손은 각지에 흩어져 살고 번창하고 또한 가문의 빛난 이름을 잃지 않고 있으니 이 어찌 공의 음덕이 아니랴.장군張君 안섭安燮은 즉 공의 7세손이라 하루는 나에게 말하기를 우리 선조 효우당 제각이 지어진지 오래되었고 편액은 영식이라 하였으니 묘를 바라보거나 지날 때 본을 받고자 하는 뜻이라. 제각에 오르고 내리며 나가고 들어갈 때 그 사모함은 깊으나 아직까지 실기實記가 없어 내가 심히 부끄럽소이다. 한마디 좋은 말을 해주시어 오래토록 전해진다면 다행이 아니겠습니까.내가 응하여 말하기를 공의 행의行義가 매우 돈독하오. 묘를 보살피면서 반드시 실천하고 또한 그침이 없으니 과연 본손들이라 할 수 있오. 재齋의 이름을 살피고 뜻을 생각해보니 매우 훌륭합니다. 공을 흠모하는 사람들은 묘를 지나나면 뵈옵지 않더라도 긍식矜式은 궁행躬行할 수 있을 것이며 공을 본받아 각자가 오래토록 효를 다 한다면 옛날의 거룩한 일들이 현 세상의 도리가 되었으면 다행일 것이다. 드디어 졸렬함을 물리치고 이와 같이 쓴다. 경오(1930년) 春 下浣 安東后人 金瑞圭 謹記
    2018-05-24 | NO.6
  • 오남재(吾南齋)
    광주시 광산구 임곡용동길 1661560년오남재는 광산구 신룡동 용동마을로 고봉의 부친인 물재 기진이 동생 복재 기준奇遵(1492~1521의 기묘사화로 인한 죽음에 서울 생활에 회의를 느끼고 남쪽인 이곳에 처음 내려와 살던 곳이다. 광주 광산구 신룡동, 광산군 소고룡면召古龍面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신촌리新村里·천동리·용동리·구룡리九龍里) 등의 일부를 합하여 임곡면林谷面 신용리가 되었다가 1995년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용동이 되었다. 행주幸州 기씨奇氏 집성촌으로 형성됐다이 마을 입구 중앙 언덕에 기씨의 재각인 청량재淸凉齋와 함께 낙암정樂庵亭이 자리하고 있다. 이 정자 안쪽에는 기대승의 유허비인 기고봉유허비奇高峯遺墟碑), 오남재는 기대승의 아버지인 덕성군 물재物齋 기진奇進(1487 ~ 1555) 제향하는 재각으로 1560년에 건립되었다.  기진은 1487년 출생해 1555년에 세상을 떠난 조선 전기 문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자순子順, 호는 물재勿齋이다. 1487년 응교를 지낸 기찬奇襸은 김수형金壽亨의 딸 안동김씨와의 사이에서 기형奇逈, 기원奇遠, 기괄奇适, 기진奇進, 기준奇遵 등 아들 다섯을 두었다. 기진은 넷째 아들로 동생 기준과 함께 성리학을 연구했다. 기준이 1519년에 일어난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1521년에 죽자, 둘째 형 기원과 함께 낙향하여 광주에서 여생을 보냈다. 1522년 진사가 되었고 1527에 경기전 참봉을 제수받았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평생 시골에 은거하다 1555년에 죽었다. 아들 셋을 두었는데 둘째 아들인 기대승奇大升이 종계변무宗系辨誣(조선 건국 초기부터 선조 때까지 200여 년간 중국 명나라에 태조 이성계에 대한 잘못된 기록을 고쳐달라고 주청하던 일)의 주문奏文을 훌륭하게 쓴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오르자, 그도 사후에 숭정대부崇政大夫)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를 추증받고 덕성군德成君에 봉해졌다. 기대승 문집인 고봉집을 보면 기진은 기대승이 8살일 때 부인을 잃는다. 혼자 아들 셋을 길렀는데 기대승은 “어려서부터 오직 아버지만을 의지하였다. 아버지께서는 고생하시면서 나를 길러 주셨는데, 어려서부터 질병이 많아 죽다가 살아나곤 하였다. 이제 와서 아련히 그때 일을 생각하니, 비통함이 하늘에 사무친다. 아, 곤궁하고 고통스러운 사람 중에 나보다 더한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하고 회상했다. 오남재 건물은 정면 5칸, 측면1칸의 골기와 8작지붕이며 건물 내부 우측에 "금송유사 공사원 유사임자" 3월 29일이란 현판내용과 제각정면에 고봉선생과정기훈高峰先生過廷記訓이란 제하의 기문이 걸려있다.오남재 근처 산에 물재공의 묘가 있으며. ‘덕성군물재기공유허비’가 근처에 있다.2019.1.8. 수정
    2018-12-16 | NO.5
  • 이상재
    서구 서창동 세동마을광주향교의 『광주지』(1964)에는 서구 서창동 세동리 삽개봉揷盖峰 아래에 김해김씨金海金氏 문중의 충입재실忠立齋室로 첨지僉知 취헌翠軒 김명택金鳴澤을 기리는 이상재履霜齋가 있었다. 다른 자료에는 이곳이 일제의 침입에 대항한 항일운동을 했던 김원국金元國을 함께 제향하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골기와 팔작지붕 건물이라 한다.
    2018-05-25 | NO.4
  • 추모재 (박정)
    서구 사동길 118(서창동)서구 송학산 북쪽 기슭의 사동마을은 오래 전부터 절골마을로 불리었다. 조선시대 말까지 방하동芳荷洞에 있는 추모재追慕齋는 당시에 눌재 박상의 큰형인 하촌荷村 박정朴禎(1467~1498)의 재실이다. 1989년에 지었다.광주 서구청에서 이곳까지는 약 10km이다. 백마교차로에서 오른쪽은 서창동주민센터 방향이고 왼쪽이 절골마을이다. 입구에서 절골마을의 중심인 사동경로당까지는 약 8백미터이다. 사동경로당에서 2백여미터 쯤 더 들어가면 눌재 박상의 봉산재가 있고 50여미터를 더 들어가면 부친 박지흥의 추원재와 큰아들 박정의 추모재가 나란히 있고 위에 묘소가 있다.해발 201m의 송학산은 금당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능선은 화방산을 지나 솟아있다. 압촌과 개동마을의 배산이 되고, 북편에는 충주 박씨 집성촌인 절골[寺洞]이 있다. 임진왜란 의병장 제봉 고경명은 “송악산 골짜기가 석양처럼 붉어있네[松岳山溪夕陽紅]”로 끝나는 시를 지었다. 절골은 송학에 서북서쪽으로 내린 이문등이 좌청룡이고, 장흥고씨 재각이 있는 둔덕과 마을 어귀 바리봉[鉢山]이 북서풍을 막아준다. 북동쪽으로 뻗어 오른 팔학산은 학산사가 있는 불암마을로 내려서며 우백호를 이룬다. 사동은 분지 안 은신처 같다.
    2018-05-25 | NO.3
  • 추원각
    광주시 남구 압촌동 산14(압촌길68)고씨 제각으로 고경명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옆에 고씨삼강문이 있다. 들어가는 문에는 ‘승훈문(承訓門)’이라는 이름이 명명돼 있다. 제봉의 뜻을 후손들이 길이 새기라는 의미일 터다.추원각 대청 위에는 ‘세독충정(世篤忠貞)’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항상 나라에 충성하고 올바른 마음을 굳게 지녀야 한다’는 뜻으로 제봉의 좌우명이었다.
    2018-10-21 | NO.2
  • 광주광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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