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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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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각시바우
    광주시 광산구 선암동 선암마을 솔땟거리 서쪽에 각시처럼 예쁘게 생겨서 부르게 된 바위 이름이다.
    2020-05-15 | NO.35
  • 각화동 조탑(돌탑)
    각화동 조탑(돌탑)은 각화산 중턱에 위치한 바탈봉 산제굿당인 화암사(각화동 45) 입구 1기와 그 위쪽에 위치한 신흥사찰 태고종 용문사(각화동 4산 68) 입구 2기 등 모두 3기가 있다. 이 조탑들의 조성 시기는 40년 정도로 추정되는 데 조탑신앙이 현재에도 주민들의 의식속에 존속하고 있는 것을 반영다. 화암사 입구의 조탑은 서쪽편에 인위적으로 구멍을 내어 그 안에 촛불 등을 놓을 수 있도록 하여 무엇인가 소원을 빌었던 흔적을 볼 수 있으며 규모는 높이 160cm, 폭 200cm이다.용문사 입구의 조탑은 2기가 나란히 마주 보고 있으며 상부에는 소규모의 선돌을 별도로 세워 도촌동의 조탑과 같은 형태이지만 크기는 소규모이다. 이곳 조탑의 기능 역시 금곡동 원효사 입구 조탑의 기능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세워진 조탑이라고 할 수 있다. 규모는 1호 높이 170cm, 폭 100cm. 2호 높이 180cm, 폭90cm이다.이것 외에도 각화동 각화제에서 청풍동 군왕봉으로 오르는 길에 또다른 돌탑이 있다.
    2020-05-19 | NO.34
  • 내산동 쌍내마을
    광산구 내산동 쌍내마을 선돌 3기는 쌍내마을 입구의 김종균, 이학봉씨 논을 중심으로 도로변에 세워져 있다. 원래는 도로공사 이전에는 4기가 있었다고 한다. 선돌옆에는 마을의 당산나무가 있다. 1호는 상협하관형으로 크기는 높이 124cm, 폭 140cm, 두께 40cm로서 상부는 파괴되어 떨어져 나갔으며 선돌에 대한 주민들의 특별한 치성은 없다. 2호는 3기 가운데 가장 크고 하부는 오목 들어가 줄을 맨 흔적이 있다. 크기는 높이  193cm, 폭 52cm, 두께 48cm로서 전체적인 모양은 사각형에 가깝다. 중심부에는 군데군데 채흔의 흔적이 나있고 측면에는 선돌 주변을 할석으로 부석하여 선돌이 넘어지지 않도록 하였다. 이곳의 선돌은 마을의 당산제와 연관을 갖는 선돌로 마을 주민들의 치성과 함께 마을의 풍요와 액막이 기능을 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3호는 2호 선돌에서 북동으로 40여 미터 거리에 위치하며 논뚝과 실개천 사이에 있다. 크기는 높이 140cm, 폭 58cm, 두께 29cm이다.선돌의 형태는 끝이 호형을 이루면서 납작하고 선돌 자체의 석재는 변성암재로 되어있다.
    2020-05-15 | NO.33
  • 당산독배기
    광주시 광산구 선암마을  안말 남쪽 당산나무와 함께 있었던 바위
    2020-05-15 | NO.32
  • 대산동 대야마을
    광산구 대야(大也)마을 선돌은 마을입구에 세워져 있다. 규모는 높이 160cm, 폭 50cm, 두께 40cm이다. 원래 이 선돌은 이곳에서 300여 미터 떨어진 김형철씨 논에 있던 것을 주민들이 옮겨다 하부를 시멘트로 견고하게 다진 후 세웠다. 선돌 가까이에는 논과 인접되어 있고 물이 흐르는 곳에 위치해 있다. 당시 망월마을에서 이 선돌을 몰래 가져가려고 하다가 발각되어 이곳으로 가져왔다고 한다. 선돌의 모양은 상협하관의 모습이며 선돌을 조성할 때 마을 주민들이 치성을 다하여 돼지머리와 막걸리로 제를 지냈다고 한다. 전체적인 선돌의 기능은 물과 가까이 있기도 하지만 원래 위치가 논에 있었기에 물이 마르지 않을 것과 농경의 풍요를 기원했던 선돌로 보인다.
    2020-05-15 | NO.31
  • 덕림동 금동마을
    광산구 덕림동 금동마을 좌우에 1기씩 모두 2기가 있다. 크기는 1호 높이 90cm, 폭 47cm로 상협하관의 형태, 2호는 높이 130cm, 폭 44cm이며 화강암재이다.마을이 생기면서 마을의 수구맥이 액맥이의 기능을 위해 세웠다고 한다. 1호는 마을 서쪽입구에서 마을의 재액을 막아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2호는 마을 동편 입구를 지키는 선돌이다.
    2020-05-15 | NO.30
  • 덕림동 학동마을
    광산구 덕림동 학동마을 선돌은 마을 입구와 논어귀 2곳에 위치한다. 2기의 선돌형태는 상협하관형이며 마을 입구의 선돌은 남근형태로 되어있다.  1호 선돌의 규모는 높이 140cm, 폭 40cm, 두께 27cm이며 2호 선돌은 높이 110cm, 폭 37cm, 두께 28cm이다.논 어귀의 선돌은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매끄럽게 다듬어 아담한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대체적으로 한 곳에 2기가 있는 경우 풍요의 기원과 남녀 음양의 상징으로 세우는 경우가 많다.
    2020-05-15 | NO.29
  • 도촌동 조탑(돌탑)
    남구 도촌동 조탑은 마을 앞에 위치한 김재철씨와 양동필씨 논 2곳에 있다. 원래의 위치는 이 마을앞 논에 있었으나 경지정리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에 옮겼다. 마치 사찰 입구의 조탑이나 제주도의 방사탑 모양으로 원형의 기단을 쌓고 꼭대기 중앙에 선돌을 세웠다.양동필씨 논에 위치한 조탑은 높이 150cm의 화강석을 6단으로 쌓아 올려 그 위에 선돌을 세웠는데 선돌의 높이는 110cm, 폭 50cm, 두께 39cm로서 1976년 1월 25일에 단을 쌓고 다시 세웠다는 기록이 보인다.김재철씨 논에 위치한 조탑은 화강석을 8단 정도 쌓고 그 위에 선돌을 세웠다. 기단에는 정월 대보름날  당산제를 지낸 후 새끼줄을 감아 놓았다. 선돌의 모양은 상협하관형으로 높이 110cm, 폭 76cm, 두께 30cm 크기이다.주변에서는 백제시대로 보이는 경질토기가 군데군데서 발견되고 있다. 선돌의 조성과는 관련성이 없겠지만 백제시대 주거지 발견 가능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2020-05-19 | NO.28
  • 들돌
    광주 광산구 본량동 본촌마을에 들돌(뜽돌)이 있다.동호동 166 느티나무 아래에 있다.
    2020-05-18 | NO.27
  • 매곡동 석인상
    매곡동 석인상은 매곡동 313-1번지 김용학 가옥의 하은 김희수시혜비 우측면 가까이에 세워져 있다. 석인상의 얼굴은 약간 계란형이며 일자형 입으로 꼭 다물고 숙연한 모습을 하고 있다. 얼굴에 비해 코는 오똑한 편이며 일자형 눈썹에 눈은 지그시 감고 있다. 목은 가느다란 선으로 처리하였으며 가슴에는 양손을 모은 공수자세로 중읍례 모습을 보인다. 하부는 생략되어 법수라기 보다는 문인석에 가깝다. 조성시기는 1980년대이며 규모 62cm × 31cm × 20cm의 화강암재로 되어있다.
    2020-05-19 | NO.26
  • 복룡현 관아터
    광주 광산구 용동 기곡마을 홍태희씨 집과 논을 중심으로 .복룡현 관아터가 남아 있다.평동사무소 삼거리를 못미친 오른쪽 길옆 논가에는 옥동이란 돌 표지석이 있다. 백제 때 복룡현의 ‘치소(감영)’가 있던 자리다. 향토사학자 김경수씨는 이곳은 본래 나주땅으로 나주와 광주, 장성의 요충지였다고 말한다
    2020-05-18 | NO.25
  • 본량동 황산마을
    광주 광산구 본량동 황산마을에 입석이 있다.
    2020-05-18 | NO.24
  • 삼도동 동촌마을
    광주 광산구 삼도동촌길 32 (삼도동)광산구 삼도동 동촌마을 선돌은 마을 어귀에 위치해 있다. 선돌의 모양은 상협하관의 형태이며 크기는 높이 145cm, 폭 56cm, 두께 16cm이다. 선돌에 대한 마을주민들의 특별한 치성은 없으나 개인적으로 정월 대보름날 음식을 가져다 놓고 개인의 기복이나 안녕을 비는 경우는 있다. 삼도동에 분포한 선돌은 신동의 선돌이나 내산동의 선돌과 같이 대부분 납작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다는 점이 주목되며 논 어귀나 마을 입구에 세워지고 있다는 점을 특징적으로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와 같은 지점에 위치한 선돌의 기능은 대부분 마을의 액막이, 벽사, 농경의 풍요를 기원하는 기능을 가진 선돌이 대부분이다.
    2020-05-15 | NO.23
  • 서창동 발산 석인상
    발산마을 석인상은 서창동 538번지 가정집 정원 언덕받이에 세워져 있다. 석인상의 모습은 머리와 몸이 변성암질의 1매석으로 되어있으며 전체적인 모습은 장승의 모습과 유사하다. 머리에는 쪽을 찐듯한 머리털 모습과 뒷머리를 약간 튀어나오게 조각하여 여성적인 모습을 표현하였다. 얼굴은 둥글고 눈과 눈썹은 밝은 표정을 하고 있다. 코와 입은 음각으로 처리하였으며 목은 생략되었고 어깨는 사각형의 재료를 그대로 놓고 두 손은 가슴 약간 아래부분인 배꼽부분에서 공수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다리와 발은 생략되었다. 크기는 길이 148cm, 폭 48cm, 얼굴길이 40cm, 폭 30cm, 상부 어깨폭과 하부폭은 50cm이다.
    2020-05-19 | NO.22
  • 석재연자방아
    광산구 내산동 쌍내마을에 조선 후기의 것으로 보이는 연자방아가 있다. 연자방아는 현재의 정미소와 같이 재래의 곡물가공기구였다.연자방아는 오늘날 전통마을에 있어서는 그 잔재가 남아 있었으나, 마을의 담장 축조나 휴식처의 초당부근 또는 골동품 상인에게 반입되어 소멸되고 말았다.쌍내마을락의 연자방아는 1950년에 대산슈퍼앞에 위치하여 활용되었다가 정미소의 출현으로 소멸되었다.현재는 마을 당산나무(300년생)밑에 있으며 기둥구멍은 시멘트를 발라 막아버렸다.크기는 직경 120cm, 두께 26cm, 120cm×40cm이며 구멍크기는 12cm×13cm 이다. 또한 현재의 초당밑에는 정사각형의 화강암제 석재(76cm×79cm)가 있으며 주변은 김성연(63)씨 소유밭의 고인돌로 보이는 개석들이 남북 1열로 배치되어 있다. 그위로 높이 138cm의 돌담장을 쌓아 버려 확인할 수가 없다.(크기는 120cm×110cm×90cm, 150cm×220cm, 250cm×140cm이다.)
    2020-05-16 | NO.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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