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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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평동 유적
    서구 치평동 92-1번지 일대광주 최초의 인간 흔적이 남아 있는 서구 치평동 일대는 극락강과 그 지류인 광주천의 동쪽과 남쪽에 형성된 해발 30~40m의 낮은 구릉이 이어지는 곳이다. 이러한 지형은 선사시대 유적이 입지하는 일반적인 지형이다. 비슷한 환경을 갖춘 극락강 상류 지역에서 적지 않은 선사 유적들이 발견되어 그 중요성이 일찍부터 주목되어 왔다.치평동 유적은 행정구역상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92-1번지 일대이다. 상무택지개발지구에는 상무대가 위치했고 지금 전남중학교 주변 일대가 구석기인들의 보금자리였던 것으로 보인다. 광주시도시개발공사는 신도심 개발에 따른 문화재 파괴를 최소화함과 아울러 상무대의 역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학술조사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전남대학교 박물관에 의뢰하여 1994년 12월 30일부터 1995년 12월 30일까지 ‘광주 상무택지개발지구 종합학술조사’가 이루어졌다. 종합학술조사는 상무지구의 지리, 상무대의 연혁과 기능, 지역사회에 끼친 영향 등 상무대에 대한 학술적인 의미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택지개발에 앞서 문화유적이 확인될 경우 그 현상을 파악하여 발굴조사와 보존 대책에 대한 자료로 삼기 위한 것이다. 종합학술조사를 통해 조사된 내용은 상무지구의 자연 지리, 고고학 유적, 역사적 변천, 상무대의 역사와 지역사회, 지역경제, 약사 및 연표 등 7개 분야로 나뉘어 보고서가 간행된 바 있다. 상무지구에 대한 고고학적 조사를 통해 확인된 유적은 초기철기~원삼국시대의 유물산포지 3개소이며 치평동 1곳, 쌍촌동 2곳이다. 광주시도시개발공사에서는 이 가운데 치평동 유적은 구 상무대 내에 위치하고 있고 개발공사가 진행 중이므로 공사로 인해 유적이 파괴 되지 않도록 보존 조치를 먼저 했다. 아울러 조선대학교 박물관에 발굴조사 용역을 의뢰하여 1996년 3월 18일부터 5월 20일까지 약 2개월간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치평동 유적에서는 조선대학교 이기길 교수에 의한 별도의 환경영향평가 조사 때 구석기 시대의 유물이 채집된 바 있어 구석기 시대 유물 포함층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여 치평동 유적에 대한 조사가 마무리 되었다.발굴 조사 결과 9개의 지질층을 갖고 있었고, 그 지질층에서 2개의 구석기 문화층이 확인되었다. 구석기 1문화층에서는 몸돌 1점, 조각돌로 만든 긁개 2점이, 그리고 구석기 2문화층에서는 몸돌 2점, 격지, 찍개, 여러면석기, 조각돌이 각각 1점 등 지표에서 채집된 유물을 포함하여 총 12점이 확인된다.이 유적의 연대는 토양쐐기를 마지막 빙하기의 추운 시기에 형성된 언땅트기(mud crack)의 결과로 볼 때, 산소동위원소에 따른 시기구분상 2기(24110±4930~12050±3140)에 해당하는 것으로 제시되었다. 이를 치평동 유적의 지층에 적용해보면, 구석기 2문화층은 후기 구석기의 늦은 시기에 해당되고, 구석기 1문화층은 이보다 이른 시기로 판단된다. 구석기 1문화층의 연대는 구석기 2문화층에 이르기까지 쌓인 약 3m에 이르는 퇴적 두께와 그 사이에 적갈색 모래질찰흙층이 있는 점을 고려한다면, 적어도 중기 구석기시대에 속할 가능성도 있다. 광주 치평동 구석기 유적은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된 최초의 구석기 유적이며, 제1문화층이 중기 구석기 단계에까지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이 함축되어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굴된 유적은 다시 흙으로 덮어지고, 그리고 그 위로 고층 아파트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수 만년이 흐르면서 구석기인들의 주거지였던 막집은 이제 21세기의 주거지인 아파트로 변해버렸다. 아파트 빌딩 속에서 수만 년 전의 구석기인들의 막집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지만, 치평동 유적은 광주에 남은 인간 최초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2018-05-25 | NO.3
  • 풍암동 당산어린이공원 유적
    서구 풍암동 1129번지 일대서구 풍암동 1129번지 당산어린이공원에는 크고 작은 고인돌과 선돌이 있다. 청동기시대에 주로 만들어진 고인돌은 당시 사람들의 ‘돌’에 대한 의식과 죽음에 대한 사후관, 그 속에 비쳐진 고대인의 삶과 정신을 들여다볼 수 있다. 서구 풍암동 산 43번지 일대가 20여년 전 대규모 택지로 개발되는 과정에 몇몇 유적이 드러나면서 1996년 전남대학교박물관이 발굴 조사했다. 풍암동 일대는 작은 분지를 이루고 있는데 풍암마을 진입로의 동쪽 구릉에 고인돌 1기가 있었다. 덮개돌[上石]은 부정형이며 크기는 280×220×170㎝, 무게 13톤에 달한다. 덮개돌 아래의 350×170㎝ 범위에서 적석시설積石施設이 노출되었다. 돌을 1겹 들어내자 바로 생토면이 드러났다. 아쉽게도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박물관 측은 이곳이 가묘이거나 다른 제례의식으로 쓰였을지 모른다고 했다. 수천 년전 고대인들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하도록 유물을 다른 곳에 감췄는지도 모를 일이다. 풍암동 당산어린이공원에 있는 고인돌은 풍암마을 입구에 있던 고인돌과 선돌을 옮겨왔다.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면서 전남대 박물관이 발굴조사를 한 뒤에 마을 입구의 고인돌을 옮겨와 복원했다. 선돌은 당산나무 주변에 3기가 있었다. 땅에 얕은 구덩이를 파고 그 안에 선돌을 세운 다음 선돌 주위에 작은 돌들을 쌓아 선돌이 넘어지지 않도록 했다. 당산제를 지낼 때면 당산나무와 함께 금줄을 걸어 신성을 표식한다. 이곳에서는 삼국시대의 움집터 2기와 조선시대 기왓가마 3기가 발견되었다. 이들은 이전 복원되지 않고 발굴조사 보고서에만 기록으로 남아 학술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풍암마을은 이러한 유물로 인해 그 오래 전부터 선조들이 살아왔던 지역임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기록으로는 풍암동에서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2기, 초기철기시대 수혈유구 1기, 삼국시대 주거지 2기, 조선시대 기왓가마 3기와 입석 1기, 옹관 2기 등이 조사되었다.이곳 고인돌은 적석 위에 상석만을 얹은 구조로 매장시설이 확인되지 않았다. 가묘이거나 특수한 의례를 행했던 곳일 가능성이 있다. 조선시대 전기의 기왓가마와 민속학적으로만 조사되던 근대 입석의 발굴도 의미 있는 유물들이다.
    2018-05-25 | NO.2
  • 풍암동 신암근린공원 유적
    서구 풍암동 1126번지 일대신암근린공원은 풍암동주민센터 건물 뒤쪽으로 맞붙어 있다. 신암근린공원에는 도심철도 이설지구에 해당하는 서구 매월동 동산마을 뒤편 구릉에 있던 고인돌과 임암동 화방마을에 있던 고인돌들을 옮겨왔다. 전남대 박물관이 1997년에 발굴조사를 끝내고 옮겨온 유적이다.매월동에서는 무게가 1~12톤에 달하는 덮개돌을 가진 고인돌이 모두 9기가 있었다. 시신의 매장을 위한 돌널을 갖춘 것도 있고 굄돌만 있기도 했다. 또 주변에서 지하에 숨어 있던 1기의 돌널이 조사되어 복원했다. 이 유적에서는 돌화살촉, 돌칼, 민무늬토기편 등의 유물이 출토되었다.2014년에는 서구 매월동 동산마을 한국아델리움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청동기시대 주거지 8기와 조선시대 수혈유구 2기, 시대 미상 수혈유구 4기 등이 발견되었다. 이 지역은 주변 1㎞ 이내에서 발굴조사가 실시된 매월동 동산지석묘 ‘가’·‘나’군, 벽진동 월산유적, 매월동 동산 구석기유적, 만호유적들이 분포하고 있어 이와 관련된 유적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은 곳이다.임암동에서는 지면에는 무게 1톤 내외의 덮개돌을 가진 고인돌 3기가 발견되었다. 매장을 위한 돌널이 발견되지 않았다. 지상이나 지하에 돌널을 갖추기도 하지만 지하의 경우 돌널이 없는 경우도 있다.
    2018-05-25 |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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