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란 때 의병을 일으킨 김천일의 포상을 의논하다 - 선조 37년 갑진(1604) 10월 20일(병인) 전라 감사(全羅監司) 장만(張晩)이 아뢰기를,“도내(道內)의 나주 생원(生員) 강위호(姜渭虎) 등 58인이 정서(呈書)하였는데, 그 대략에 ‘창의사(倡義使) 김천일(金千鎰)은 호남의 석유(碩儒)로 지난 임진 왜란 때 왕성(王城)이
고 나주 목사 박광옥의 포장 요청에 문안을 토대로 포장하기로 하다 - 선조 37년 갑진(1604) 5월 20일(경오) 광주(光州) 진사(進士) 이한용(李翰龍) 등의 소장에,“고(故) 나주 목사(羅州牧使) 박광옥(朴光玉)은 지난 임진년에 고경명(高敬命)ㆍ김천일(金千鎰) 등과 서로 서찰(
영암의 문익주 등이 상소를 올려 최득수를 효자로 표창해 줄 것을 청하다 - 선조 36년 계묘(1603) 3월 14일(경오)전라 감사 한준겸(韓浚謙)이 아뢰었다.“영암(靈巖)에 사는 전 현감 문익주(文益周) 등 20여 인이 연명(連名)하여 와서 정소(呈訴)하기를 ‘군(郡)에 사는 사인(士人) 최득수(崔得壽)는 고(故) 명현(名賢) 최
참의 고공 신도비명 병서 〔參議高公神道碑銘 幷序〕 -월정집 제6권 / 비명(碑銘) :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 1537~1616)만력(萬曆) 임진년(1592, 선조25)에 왜란이 일어나 참의 고공(高公)이 목숨을 바쳐 큰 절개를 드러내었는데, 그 후 십여 년이 지나도록 아직 신도비문(神道碑文)을 맡긴 데가 없었다. 어느 날 공의
남원 부사로 부임하는 고용후를 전송하는 시의 서문〔送南原府使高用厚 詩序〕 -어우집 제3권 / 서(序) : 어우(於于) 유몽인(柳夢寅, 1559~1623)내가 듣건대, 호랑이의 새끼는 소를 잡아먹을 수 있고 천리마의 새끼는 어미를 추월한다고 한다. 양이 젖을 먹을 때 무릎을 꿇고 먹는 것은 공경할 줄 알아서이고, 새가 먹이
화양동 어록〔華陽洞語錄〕 -손재집 제9권 / 어록(語錄) : 박광일(朴光一, 1655~1723)○ 을축년(1685, 숙종11) 2월에 화양정사(華陽精舍)에 가서 선생을 뵈었다. 선생께서 “해를 이어 방문하니 극히 다행이네만, 이번에는 또 무슨 까닭에 궁벽한 산속 적막한 곳을 찾아왔는가?”라고 하고, 이어 부모 모시고 지내기 편한지 물
선고 우헌 부군 광지〔先考寓軒府君壙誌〕 -손재집 제8권 / 묘지(墓誌) : 박광일(朴光一, 1655~1723)선부군의 휘는 상현(尙玄)이고, 자는 경초(景初)이며, 성은 박씨(朴氏)이고, 본관은 평양(平陽)이다. 본래 고려 시대 순천부원군(順天府院君) 휘 난봉(蘭鳳)의 후손이며, 우리 왕조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 시호 문숙공(
임진왜란 당시 광주에 의병도청을 설치하고 의병 모집과 군수물자 조달 등에 힘쓴 공신인 회재 박광옥(1526~1593) 선생의 벽진서원이 광주광역시 서구 향토문화유산으로 지정 예고됐다.광주 서구(청장 서대석)는 서구 향토문화유산 발굴 및 보호에 관한 조례에 따라 서구 풍암동의 벽진서원을 향토문화유산 제2호로 지정키로
문곡 김상국에게 보내는 편지〔與文谷金相國書〕 - 서하집 제17권 / 서독(書牘) : 이민서(李敏敍, 1633~1688). 봄날이 아직도 찬데, 삼가 이 시기에 대감의 조섭이 계절에 맞게 편안하시리라 생각하며, 구구한 마음에 지극히 우러러 사모합니다. 저는 집안의 우환이 잇달았는데, 지난달에 또 서매(庶妹)의 상을 당하였습
의열사 상량문〔義烈祠上梁文〕- 서하집 제13권 / 상량문(上梁文) : 이민서(李敏敍, 1633~1688).향선생을 사(社)에 향사하여 오래전부터 정성을 바치는 사당이 있는데, 열장부(烈丈夫)가 때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유독 충(忠)을 나타내는 전례(典禮)가 빠졌도다. 이에 옛 사당을 새롭게 하여 영령(英靈)을 함께 향사하도다
박광옥(朴光玉)ㆍ김덕령(金德齡)의 사우(祠宇)에 대하여 대신들에게 논의하게 하여 사액하는 건 - 숙종(肅宗) 6년(1680) : 서원등록(書院謄錄)윤8월 25일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이번 윤8월 24일 주강(晝講)에 입시(入侍)하였을 때, 동지사(同知事) 이민서(李敏敍)가 아뢰기를, ‘신이 광주(光州)에서 직책을 수행하고 있
저작자 고유후(高由厚) 발표시기 1599년(선조 32) 발행 고용후 조선시대 문신·의병장 고경명과 맏아들 종후·둘째아들 인후의 충절 정신과 그 사실을 기록 1599년에 간행한 실기. 충절기록이다. 1책. 목판본. 책의 이름을 ‘정기록’이라 한 것은 중국 송나라의 충신 문천상(文天祥)의 「정기가(正氣歌
선비 숙부인 고씨의 세계와 행적〔先妣淑夫人高氏世系行蹟〕 - 목재집 제8권 / 행장(行狀) : 목재(木齋) 홍여하(洪汝河)선비(先妣)의 성은 고씨(高氏)로 그 선대는 제주(濟州) 고씨에서 나왔다. 고려 말에 이르러 장택(長澤)을 관향으로 하사받았기 때문에 장흥(長興) 고씨가 되었는데, 지금의 광산(光山) 고씨이다. 나라
박광옥ㆍ김덕령의 사우에 사액하는 데 대한 의〔朴光玉金德齡祠宇賜額議〕 - 노봉집 제5권 : 노봉 민정중(1628~1692)김덕령(金德齡)이 화를 입은 지 이미 거의 백 년이나 되었지만, 지금도 그의 풍도(風度)를 들은 사람들은 비록 아녀자와 어린아이들일지라도 모두 원통하게 여기니, 단지 호남 지역의 인사들만 감개할 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