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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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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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동익(奇東益)
    기동익(1829~1897)은 본관이 행주이며 자는 노일(魯一), 호는 수곡(水谷)이다. 광주 우치동에 거주했다. 부 : 奇正鉉조 : 奇思淳증조 : 奇商師외조 : 咸陽 吳漢應처부1 : 光山 金江稷처부2 : 全州 李培煥노사 기정진에게 수학하였고 1889년에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을 기리는 모임에 참여하였다.참고 眉巖先生墓下會案 , 『蘆沙門人錄』
    2020-02-21 | NO.612
  • 기동준(奇東準)
    기동준(1869~1918)의 본관은 행주이며 자는 평중(平仲), 호는 춘담(春潭)으로 진사를 지냈다.부 : 奇昌鉉조 : 奇文國증조 : 奇象德외조 : 海州 崔煥潤처부1 : 長興 高濟斗1860년 11월 17일 奇大升의 후손인 昌鉉의 아들로 光州 廣谷里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용모가 단정하고 총명하였으나 잦은 질병에 시달렸다. 평소 어버이 섬기기를 극진히 했으며, 항상 『小學』의 가르침으로 몸을 검속했다. 18세에 奇正鎭을 배알한 뒤 인고의 노력으로 제자백가서를 탐독했다. 선조인 文憲公 奇進이 己卯士禍로 인해 光州의 古龍에 내려와 卜居했는데, 1877년 기동준은 이곳으로 옮겨와 살면서 講學을 하면서 선조의 業을 이었다. 1880년 勉庵 崔益鉉을 만났으며, 1888년 한 달에 한 차례 講會를 열자, 사방의 문사들이 모여들었다. 노사 기정진에게 수학하였고 1889년에 미암眉巖 유희춘柳希春을 기리는 모임에 참여하였다. 1894년 司馬試에 합격했으나 벼슬에 뜻이 없음을 밝히고 다시 기정진에게 귀의하여 松沙와 함께 학문에 전념했다.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많은 제자들을 배출했다. 1895년 을미사변이 발발하자 두문불출했으며, 1896년에는 송사선생이 의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듣고 鰲城 李恒福에게 가서 계책을 진술했다. 1901년 9월 11일에 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에게 편지를 보냈고, 1903년에는 문헌공의 문집을 새로이 간행했고, 기봉선생의 續集 2권과 別集, 附錄 1권을 1907년 간행했다. 1910년에는 나라의 변고에 통한하면서 『春秋』한 권을 들고서 산으로 들어가자 수많은 사람이 따랐다. 항상 諸葛亮의「出師表」, 司馬遷의 「俠客傳」과 杜甫의 「古栢行」 등을 읽으면서도 『대학』에 심취했다. 1913년 도산서원을 방문했고 이해 이황의 『陶山及門錄』을 찬집하면서 후진 양성에 매진했다.1916년 기우만 선생 장례를 지낼 때[襄禮] 참석하였다. 1918년 9월 29일 59세로 세상을 떠났다.고봉 기대승의 <고봉속집 논사록 발高峯續集論思錄跋>을 쓴 조찬한趙纉韓의 글에 따르면 "사칠이기 속편(四七理氣續篇)은 청주서원(淸州書院)에서 별도로 간행하였으나 중간에 유실되었는데, 정조 병오년(1786)에 관찰사인 조공 준(趙公竣)이 의연금을 내어서 거듭 중간한 것이었다. 속집(續集) 2권과 별집(別集) 부록(附錄) 1권은 족조(族祖)이신 춘담공(春潭公) 기동준(奇東準)이 나의 조고(祖考)와 더불어 고종(高宗) 정미년(1907)에 비로소 간행하니, 모두 11권이었다."는 내용이 있다.*참고: 『澹對軒重建扶成錄』 『蘆沙門人錄』 『眉巖先生墓下會案』 1901년 기동준(奇東準) 서간『春潭文集』
    2020-02-21 | NO.611
  • 기동직(奇東稷)
    기동직(1869~1919)의 본관은 행주이며 자는 중백(仲百)이다.부 : 奇中鉉조 : 奇師贒증조 : 奇商胤외조 : 南平 文世憲처부1 : 咸平 李台範1916년 송사 기우만 선생 장례를 지낼 때[襄禮] 참석하였다.*참고 『澹對軒重建扶成錄』
    2020-02-21 | NO.610
  • 기동찬(奇東燦)
    기동찬(奇東燦, 1823~1853)의 본관은 행주, 자는 경문(敬文) , 호는 매천(梅泉)이다.부 : 奇恒錫조 : 奇師忠증조 : 奇商胤외조 : 高時奎처부1 : 宋文信노사 기정진에게 수학하였다
    2020-08-08 | NO.609
  • 기문현(奇文鉉)
    기문현奇文鉉(1811~1861)의 본관은 행주이다. 자는 우용(羽用)이고 호는 송대(松臺)이다. 기백연奇百衍의 아버지이다.부 : 奇在善조 : 奇象仁증조 : 奇學祿외조 : 商山 金漢基처부1 : 延日 鄭在洙1844년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급제하였고 기주관(記注官), 휘릉 별검(徽陵別檢), 승문원 박사(承文院博士),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 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 선전관 겸 금위영종사관(宣傳官兼禁衛營從事官), 충청 도사(忠淸都事), 웅천 현감(熊川縣監),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을 거쳐 1856년 홍문관 부수찬(弘文館副修撰)을 거쳐 교리(校理)에 임명(任命)되었다. 1857년 홍문관 부수찬(弘文館副修撰)을 거쳐 사간원 헌납(司諫院獻納)이 되었고 은산 현감(殷山縣監)을 거쳐 홍문관 교리(弘文館校理)에 다시 임명(任命)되었으며 1860년 동부승지(同副承旨)에 임명되었다. 문집에 《송대유고(松臺遺稿)》가 있다.노사 기정진에게 수학하였고 1859년 9월 18일에 奇陽衍에게 편지를 보냈다.  하엽정을 경영했다.노사집蘆沙集 권1 시편에 과거에 급제한 기문현의 처지에 다음과 같이 문중의 기대가 크다는 기쁨을 드러낸 글을 보냈다.왕가에서 선비 많이 났으니 / 王家富產士온 나라의 굴혈이 되었네 / 環海以爲穴선배들도 그 속에서 나왔으니 / 前輩出其中지금 좋은 종자가 어찌 끊기리요 / 好種今豈絶청아의 교화가 아직도 높으니 / 菁莪化猶隆악독의 영기가 다하지 않았네 / 嶽瀆靈未竭식년시가 삼년마다 이어지지만 / 令式三年比기재는 간혹 좋아하지 않았다네 / 奇才或不屑인재 구할 때 깊이 두려운 건 / 深懼夢卜下뛰어난 인물이 누락됨이니 / 有漏匪熊揲별도로 굉사과를 두어 / 別有宏詞科국가가 국경일 뒤에 설치하였네 / 邦家慶後設길목이 조금 넓혀지니 / 路陌差寬坦베틀 북이 맘대로 하여 / 機杼任出沒드디어 뛰어난 힘 가진 말이 / 遂令超乘蹄머리 숙이고 굴레를 받게 되었네 / 屈首受羈紲근일에 옥체가 강녕하시어 / 近日玉體康기쁜 기운이 온 누리에 넘치는데 / 喜氣寰宇溢병든 나는 궁산에 체류하여 / 病我滯窮山식은 마음은 다시 뜨거워지기 어렵네 / 灰心難再熱아직도 사방 이웃 쟁기질 부러워하며 / 尙戀四隣耒앉아서 과거장의 인걸들을 세어보네 / 坐數圍中傑한스러운 것은 이목이 좁은 것이니 / 所恨耳目狹자부하는 이 누가 기와 설인고 / 許身誰夔契우용은 우리 집안의 수재로서 / 羽用吾家秀문단에서 맘대로 척결하였네 / 藝苑恣剔抉준걸스런 자리에 혹시 오를까 / 俊遊行儻躡문중의 기대가 특히 간절하다네 / 門戶翹待切
    2020-02-24 | NO.608
  • 기분 奇賁 세조 10년(1464) 10월 13일∼세조 12년(1466) 2월 12일
    기분 奇賁 세조 10년(1464) 10월 13일∼세조 12년(1466) 2월 12일기분(?∼?)의 본관은 행주(幸州)다. 딸이 덕수이씨 이조(李祖)와 혼인하여 이거(李琚)를 낳았는데, 이거는 이순신의 증조부이다. 1455년 12월에 판관 벼슬로 정난원종공신 3 등에 책록되었다는 기록 외에는 실록에서도 행적을 찾을 수 없다. 『금성일기』 「갑신년 1464년」에 “신임 목사 기분이 10월 13일에 도임하였는데 통정대부이다.”라고 기록되 었으며, 「병술년 1466년」 기록에 “전 목사 기분이 가선대부 호조참판이 되어 2월 12 일 서울로 떠났다.”라 되어 있다. 『금성읍지』에는 “갑신(1464년) 10월 13일에 도임하 였고, 병술(1466년) 10월 12일에 가선대부 호조참의로 발령되어 상경하였다.”라고 되어 있는데, 다음 김자행 목사의 부임이 1466년 3월이기 때문에 1466년 10월 12일은 2월 12일의 착오라 할 수 있다.*자료: 나주문화원(2023), 《국역 금성읍지》.
    2024-10-15 | NO.607
  • 기사곤(奇師坤)
    기사곤(?~)의 본관은 행주이다. 1842년 11월에 奇象忠 奇象黙 등과 함께 고양군 元堂面에 마련한 祭田을 奇宗秀가 문서를 위조하여 金正黙에게 팔았으니, 이 둘을 처벌해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으로 고양군수와 관찰사에게 소지를 올렸다.부 : 奇商嵒조 : 奇宗履증조 : 奇世勳
    2020-02-24 | NO.606
  • 기사직(奇師稷)
    기사직(1780~1858)의 본관은 행주이다. 1842년 11월에 奇象忠 奇象黙 등과 함께 고양군 元堂面에 마련한 祭田을 奇宗秀가 문서를 위조하여 金正黙에게 팔았으니, 이 둘을 처벌해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으로 고양군수와 관찰사에게 소지를 올렸다. 부 : 奇商學조 : 奇宗壽증조 : 奇重勳외조 : 羅星燁처부1 : 金致勳
    2020-02-24 | NO.605
  • 기상규(奇象奎)
    기상규의 본관은 행주이다.       1842년 11월에 奇象忠 奇象黙 등과 함께 고양군 元堂面에 마련한 祭田을 奇宗秀가 문서를 위조하여 金正黙에게 팔았으니, 이 둘을 처벌해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으로 고양군수와 관찰사에게 소지를 올렸다.부 : 奇彦升조 : 奇宗文증조 : 奇挺尙외조 : 江陵 金命演처부1 : 全州 李처부2 : 驪州 李
    2020-02-24 | NO.604
  • 기상묵(奇象黙)
    기상묵(1835~1904)의 본관은 행주이고 자는 성회(聖會)이다. 부 : 奇學元조 : 奇彦漸증조 : 奇挺鮮외조 : 金白亨처부1 : 宋繪相1842년 11월에 奇象忠 등과 함께 고양군 元堂面에 마련한 祭田을 奇宗秀가 문서를 위조하여 金正黙에게 팔았으니, 이 둘을 처벌해줄 것을 청원하는 내용으로 고양군수와 관찰사에게 소지를 올렸다.
    2020-02-24 | NO.603
  • 기상춘(奇象春)
    기상춘(奇象春, 1777~1849)의 본관은 행주, 자는 원중(元重)이다.부 : 奇學祿조 : 奇彦鼎증조 : 奇挺後외조 : 朴重一처부1 : 梁瀚觀처부2 : 金璲1842년 11월에 광주 유학 奇象忠 奇象黙 등 54명과 함께 경기도 순찰사와 高陽郡守에게 단자를 올렸다.
    2020-08-08 | NO.602
  • 기상충(奇象忠)
    기상충(奇象忠, 1760~1846)의 본관은 행주, 자는 대숙(大叔)이다.부 : 奇學心조 : 奇彦復증조 : 奇挺範외조 : 權世僖처부1 : 金夢洙1842년 11월에 광주 유학 奇象忠 奇象黙 등 54명과 함께 경기도 순찰사와 高陽郡守에게 단자를 올렸다.
    2020-08-08 | NO.601
  • 기세관(奇世觀)
    기세관(1890~1955)의 본관은 행주이다. 자는 광국(光國)이며 호는 양묵재(養默齋)이다. 부 : 奇蘭燮조 : 奇東參증조 : 奇夏雲외조 : 長澤 高濟馨처부1 : 長興 高燦柱송사 기우만에게 수학하였고 기우만의 문인들이 寒泉齋에서 계를 맺었다. 1924년 담대헌(澹對軒)의 중건 때 330냥을 성금으로 내었다.담대헌은 노사 기정진이 1878년에 정사(精舍)를 지어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다. 후손들이 1924년 중건하였으며, 1927년에 고산서원(高山書院)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1994년 사당과 주변 담장을 보수하였다. 1982년 10월 15일 전라남도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되었다. *장성 고산서원
    2020-02-24 | NO.600
  • 기승섭(奇承燮)
    기승섭(1976~1939)의 본관은 행주이다. 자는 치술(致述)이며 호는  월곡(月谷)이다.부 : 奇東秀조 : 奇連永증조 : 奇師復외조 : 洪洲 宋日宗처부1 : 珍原 朴瓊柱송사 기우만에게 수학하였고 1916년 송사 선생 襄禮 때 참석하였다.
    2020-02-24 | NO.599
  • 기언관
    기언관(奇彦觀, 1706~1784)의 자는 백담(伯瞻), 호가 국천재(菊泉齋), 본관은 행주(幸州)이다. 광산 임곡 두정리(光山 林谷 斗亭里) 출신으로 고봉 기대승의 6대손이며, 낙암 기정용(樂菴 奇挺龍)의 조카이고 기정후(奇挺後, 1676~ 1722 :덕성군(進), 19세)의 아들이다. 16세 때 아버지를 여의고 모친(母親)의 슬하에서 공부하여 1744년(영조 20년) 알성문과(謁聖文科)에 병과(丙科)로 급제하였다. 한림천거(翰林薦擧)에 그가 차점(次點)이 되었는데 영조가 고봉의 후예라 하여 특별히 점수를 더 주어 입선시키고 궁중소시(宮中召試)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다.하지만 그는 특점(特點)을 가산한 것은 공평한 선례가 아니라며 부름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로 인해 왕의 노여움을 사서 북방으로 3년간 귀양을 갔다. 그는 종성(鍾城)에 3년간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국역조선왕조실록  영조 20년(1744) 5월22일에 " ......임금이 기언관(奇彦觀)을 종성(鍾城)에 유배시키라고 명하였다. 기언관은 고(故) 명신(名臣) 기대승(奇大升)의 후예이다. 임금이 그가 명현(名賢)의 후손이라 하여 어필로 특별히 한권(翰圈)에 2점을 더해 주어 선발에 참여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김양택 등이 함께 같이 나아와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임금이 그가 향곡(鄕曲)의 사람을 권장하여 발탁하는 뜻을 생각하지 않고 곧 당목(黨目)을 배웠다는 것을 미워하여 특별히 심하게 죄를 주어....."라고 적고 있다.귀양에서 풀려나 승문원(承文院)에 들고, 이어 연원찰방(連原察訪)으로 나갔다. 1780년에 대신들의 추천으로 통정대부로 승진되고 입조(入朝)한 지 30여 년 동안, 병조정랑(兵曹正郞),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 헌납(獻納), 개성경력(開城經歷), 봉상사정(奉常寺正), 곽영도정(郭寧都正), 첨지중추(僉知中樞), 호조(戶曹), 형조참의(刑曹參議) 등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사임하고 나아가지 않았으며 오직 개성경력(開城經歷)만 취임했다. 《국천재유고(菊泉齋遺稿)》가 있다.
    2020-04-13 | NO.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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