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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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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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호제
    서구 금호동 676만호제는 1943년에 축조됐고 수혜면적은 14ha이며 저수량은 40천㎡이다.
    2018-05-25 | NO.25
  • 매월제
    서구 매월동 684-2 1944년에 만들어졌다. 매월동 개산제(전평호수) 건너편 길로 들어가 한생이산 동쪽 자락에 있다.
    2018-05-25 | NO.24
  • 모장재
    서구 세하동모장재는 지도를 펴놓고 보면 만귀정과 백마산, 서광주역의 한 가운데쯤 자리하고 있다. 모장재는 순재와 마찬가지로 백마산 일대에 있는 고개다. 송학산과 개금산 사이에 있는 백마산은 현재 광주에 속하지만 옛날에는 광산군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영산강 너머 평야지대로 연결되던 통로 쯤에 해당된다. 권안제 옆 능선에 자리한 모장재는 산을 넘나드는 역할을 한 순재와 달리 산자락 아래 마을과 마을의 왕래에 더 요긴한 통로 역할을 했다. 정확히는 세하동 저수지인 권안제 아래 자락에 위치해 있다. 동하마을 주민들에게 모장재를 물었더니 대다수 젊은 층에서는 알지 못했다. 다만 정자에 모여 있던 나이 지긋한 노인 한 분이 겨우 기억해냈을 뿐이다. 손으로 정확히 가리키면서 ‘저 곳이 옛부터 모장재로 불리던 곳이었다’고 했다. 비포장 길로 조금 들어갔더니 길은 끊겼고 묘소를 지나 언덕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곳이 모장재였다. 모장재가 돌고개나 마재처럼 대로변이나 아스팔트도로로 편입됐더라면 시민들에게 기억됐을 것이다. 안내이정표라도 세워놓으면 좋으련만 백마산 숲유치원 쪽 산자락 산길에 불과해 점차 그 존재마저 희미해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행정의 손길은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모장재는 동하마을을 예로 들면 동하마을에서 매월자연농원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2018-05-25 | NO.23
  • 백마산
    서구 세하동과 매월동 경계백마산은 서구 세하동과 매월동 경계에 위치해 있는 산이다. 금당산에서 남서쪽으로 화방산을 거쳐 송학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절골[寺洞] 동편을 타고 북쪽으로 향하면서 솟아있다. 서쪽으로 극락강이 흐르고, 광주공항과 송정리 일대가 조망된다. 개금산을 마주보고 있으며 해발고도는 162.1m다. 백마산으로 불리는 설은 대략 몇 가지가 전해지고 있다. 먼저 중종.연산군 때 전라도사와 담양부사를 지낸 조선 중기 문신 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과 밀접하게 연관이 돼 있다. 박상의 부친이 충청도 대덕 와동에서 처갓집(정지 장군 손녀)을 따라 마땅히 거처할 곳을 정하기 위해 오던 중 장성 갈재 주막에서 꿈을 꾸었는데 입암산 산신령께서 흰 말 두 마리를 내어주면서 하얀 말이 멈추는 곳에 정착하라 했다 한다. 그런데 백마가 서창 방하동 방마산에 이르러 더 이상의 이동을 멈추었다. 그래서 원래 방마산이라 불렸는데 이 백마 사건 이후 백마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 하나는 대동여지도를 통해 유추되는 부분이다. 대동여지도에는 송악 출신의 호족으로 궁예 밑에서 세력을 키우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王建이 진을 쳤다는 왕조대王祖臺가 표기돼 있는데 그 터가 나주시 노안면 학산리 봉호마을 뒷산과 이곳 백마산이라는 것이다. 그런 때문에 ‘우뚝 선 뫼’로 몰매→말매→마산→백마산으로 변화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산은 서창동 동사무소가 자리한 세하동 세동마을 뒤에 있다. 임란왜란 의병장 삽봉揷峯 김세근金世斤(1550∼1592) 장군이 조선조 중기 관직을 버리고 고향인 경남 함안군 마륜동을 떠나 거주하기 위해 들어선 곳으로 그 행자를 따서 부르게 되면서 마을 이름이 세동이 됐는데 세동마을의 병풍 같은 역할을 한다. 높이는 그리 높지 않으나 그 모습이 새끼 말을 거느린 어미 말을 닮아 더욱 친근감을 안겨준다. 그 말의 입이 닿는 듯한 곳에 송학초등학교가 있다. 어미말과 새끼말 사이가 깊은 계곡을 이루고 있으며 소나무 숲이 우거져 있는, 수려한 곳이었다. 항간에는 백마산이 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지역 명칭에 따른 오류라는 지적이다. 세동마을을 언급할 때는 김세근 장군을 빼놓을 수 없다. 김세근 장군은 조선 선조 때 문신이자 의병장으로 임진왜란 당시 백마산에 장정들을 모아 훈련을 시켜 의병으로 키워냈다. 이 의병 300명을 이끌고 임진왜란에 출전, 나중에 관군 200명까지 규합해 충남 금산 전투에서 제봉 고경명 장군과 왜적에 맞서 싸웠으나 1592년 7월10일 순국했다. 김세근 장군이 장정들을 모아 의병들을 키워냈던 군사훈련장이 바로 이곳 백마산이다. 그리고 이 훈련장이 자리한 골짜기를 수련골이라 부른다. 또 산 정상에 조그만 암굴이 있는데 김세근 장군이 무더운 여름철을 이곳에서 머물렀다 하여 장수골로 불린다.동하마을에 있는 담에 거석(巨石)이 끼어 있다. 백마산 김장사(세근)와 무등산 김장사(덕령) 간 힘겨루기를 하여 백마산 장사가 이겼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바위이다. 고경명(高敬命, 1533~1592)과 함께 금산에서 순절한 김세근은 불암마을 학산사(鶴山祠)에 배향되었다.세동마을에서 산을 넘어 매월 사동마을(절골)로 넘어가는 곳에 가파른 고개 하나가 있다. 그런데 이 고개에는 몹시 슬프고 외설스러운 설화 하나가 전해진다. 일제강점기 초 일본인과의 상종이 싫어 집을 떠나 전국을 방랑하는 어느 마을 양반집 남매가 있었다. 이들이 어쩌다 이 고개를 넘어가는데 앞서 가는 누이의 치마가 갑자기 일어난 회오리바람에 말려 감아 오른 바람에 하체가 드러났다. 이를 본 동생은 순간 욕정을 느껴 큰 나무 밑에 숨어 신음을 하다가 인륜을 벗어난 자기 행동을 하고 심한 자책감과 수치심 때문에 그만 자결하고 말았다. 누이는 뒤쳐진 동생이 오지 않자 용변 때문이러니 하고 정상에서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동생의 기척이 없자 다시 내려가서 보니 동생이 혀를 깨물고 죽어있었다. 그것을 본 누이도 그 자리에서 같이 죽고 말았다는 슬픈 이야기가 서려 있다. 서창동사무소에서 백마산을 타고 정상을 지나 매월동 개산호수(전평호수)로 넘어가는 길의 왼쪽에 자리한 봉우리가 각시봉이다. 각시봉은 부부가 함께 오르면 부부 금술이 좋아진다고 한다. 인근에 백마제와 권안제라는 작은 못이 있다.백마산은 도심에 있는 야트막한 산이다 보니 인근 주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개산호수에서 출발했을 경우 백마정을 거쳐 백마산 전망대, 팔각정, 세동마을을 오가는 코스를 통해 서창들녘을 바라보며 느린 산행을 즐겨보는 것도 또 다른 여행의 백미라 할 수 있다.
    2018-05-25 | NO.22
  • 백마제
    서구 세하동백마산 자락 아래 보물처럼 자리 잡고 있는 백마제는 동하마을 뒤에 위치하고 있다. 백마제로 가는 길은 동하마을을 한참 지나 백마산 자락까지 가야 만날 수 있다. 백마제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마을을 돌아 나오는 실개천과 도랑도 있다. 실개천과 도랑에는 다슬기류가 살고 있고 주변에는 습지생물인 갈대와 달뿌리풀, 물억새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마을길이 끝나는 곳에 있는 논둑길에는 ‘도둑놈의 갈고리’와 ‘도깨비바늘(식물명)’ 열매가 즐비하다.이곳은 면적이 5520㎡로 1968년도에 준공되었고, 운천제와 풍암제, 마현제 등 서구지역 10개 저수지 중에서 습지 자생식물이 두 번째로 많은 곳이다. 그리고 습지 자생식물의 출현 종種 수는 38분류군으로 달뿌리풀과 애기부들, 마름 등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곳에는 애기마름이 물 위에서 자라고 있고, 가장자리에는 애기부들과 줄, 제방에는 왕버들과 버드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습지생물들의 천국이다. 또한, 이곳은 인위적인 간섭이 전혀 없고 주변의 백마산 녹지축과 연계되어 있어 생물이 다양하고 생태경관도 매우 뛰어나다. 백마제에는 백마산 자락의 도시근린공원인 전평제나 노랑꽃창포를 식재한 권안제에 비하면 최고의 숨어있는 보물이자 생태계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생태적 건전성의 평가 점수가 높기 때문이다. 생태적 건전성 평가(환경부, 2015)는 90점 이상으로 생태적 건전성이 매우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백마산 자락에 함께 위치해 있는 전평호수, 권안제는 최근 생태적 건전성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
    2018-05-25 | NO.21
  • 백석산
    서구 금호동과 마륵동 경계서구에는 백白자로 시작하는 산이 많다. 백마산이 있고, 백일지구라고 해서 붙여진 백일산이 있다. 그리고 백석산까지 있으니 서구는 유난히 ‘백’자와 인연이 깊은 곳이라 할 수 있다. 백석산은 금호동과 마륵동의 경계에 자리한 산으로 해발 79.8m로 채 100m가 안 되는 야트막한 구릉이다. 이처럼 야트막한 산에도 소소한 일상과 역사가 스며있다. 이 일대에는 운천호수와 사당인 병천사, 사찰로는 조계종 향림사, 태고종 운천사, 천태종 금광사 등이 자리하고 있다. 도심 속 산책과 등산 모두를 겸할 수 있는 공간 중의 하나다. 백석산은 마륵동과 금호동의 경계에 자리한 산이라고 설명하지만 쉽게 이해하자면 서구 금호동 코아루아파트나 푸르지오아파트 뒷산이라거나 한국불교 태고종 광주전남교구 종무원 운천사 뒷산이라고 하면 빨리 알아듣는다. 운천사는 광주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된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이 자리한 사찰이다. 운천사는 선암사 말사로 처음부터 운천사였던 것은 아니고 산 이름을 따서 백석사라 이름이었던 때도 있었다. 광복 후 태고종 종정을 지낸 해남 대흥사 주지였던 응송 박영희 스님이 이 절에서 생활하면서 운천저수지 위에 있는 절이라 해서 운천사라 부르면서 오늘에 이르렀다.산 중간 허리쯤에 해당하는 곳에 인도와 차도를 겸한 도로가 놓여 있다. 지금은 대단위 아파트와 상가 등이 밀집돼 양 지역을 왕래할 수 있는 길목으로 사용되고 있고 운천사를 끼고 돌아가면 그 길목 중간쯤에 효열부관산임씨기행비孝烈婦冠山任氏紀行碑이라는 효열문孝烈門이 하나 서 있다. 산이 잘린 부분은 인도와 차도가 지나기 때문에 작은 연육교로 연결돼 있어 등산을 끊어지지 않고 진행할 수 있다. 능선을 연결해놓아 향림사나 운천호수 방향, 그리고 상무초 방향으로 자연스레 오갈 수 있다. 산행길은 아담하다. 산행 옆으로 번갈아가며 시누대숲이 형성돼 제법 운치가 있다. 백석산 정상 일대는 마륵공원 지역으로 금호정과 백석정 등 정자가 들어서 있고, 700m에 이르는 산책로가 닦여져 있다. 이 산 정상에 오르면 서창, 풍암, 상무, 중앙공원, 대촌 일대를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2007년 백석산 벚꽃거리가 조성되었다. KBC에서 ‘좋은이웃 밝은동네’ 대상을 수상한 곳이다.일제강점기 직전 일본인들이 만든 지도를 보면 벽진나루에서 백석산 중턱고개를 넘으면 심우곡(尋牛谷)이란 동네 표지가 있고 이곳에서 북쪽길 따라 상무동 여의산 기슭 노치(老峙)마을로 가고 동쪽으로 풍암동 노인고개에 이르는 길이 그려져 있다. 전통 촌락도 엄연히 존재했으나 급격한 도시화로 지금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산 남쪽에 만호마을, 동쪽에 금부마을, 병천사秉天祠가 자리한 일대에 심곡心谷마을 등을 들 수 있다. 금호마을에 있는 저수지가 금호제로 서쪽에 상이용사 자활촌이 자리 잡았으나 지금은 주인이 모두 바뀌었다. 본디 백석산 남쪽동네 금호동은 전주 이씨들 동네로 이곳 출신이 전남도 교육감을 지낸 이양우씨이다. 이 산의 동쪽 동네가 금부로 수원 백씨들이 살았다. 충주 지씨들의 병천사가 있는 동네가 본디 심곡으로 순흥 안씨들 동네였다. 근래 심곡에서 만호로 가는 길목에 조계종 염주사가 자리 잡고 있다. 2019.7.4. 수정
    2018-05-25 | NO.20
  • 백일산
    서구 화정동‘친일 잔재’라는 이유로 논란이 됐던 ‘백일산’이 여전히 명칭 변경 없이 ‘백일산’ 으로 불리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상무대 이전 계획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지금의 화정4동에 ‘백일택지개발지구’ 도시 조성사업이 진행되면서 이 주변에 들어서는 도로, 학교, 공원 등에 백일초등학교, 백일로(학생독립로), 백일어린이공원(학생독립어린이공원) 등의 공식 명칭이 붙여졌다.‘백일’ 명칭의 시원이 된 김백일은 1951년 경기도 시흥시에 있던 육군보병학교가 광주 상무대로 이전한 후 초대 육군보병학교장이었다. 1930년대 조선독립운동가를 진압한 ‘간도특설대’ 장교 출신으로 2009년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일제강점 말기 친일반민족행위 관련자’ 704명의 명단에 등재된 친일파다. ‘백일산’은 그냥 주민들이 붙인 이름이지 공식 명칭이 아니다.
    2018-05-25 | NO.19
  • 봉학제
    서구 용두동 2334봉학제는 1943년에 축조됐고 면적은 19,194㎡이다. 서창마을로 가는 8차선 도로와 인접하고 있고 확 트인 곳이지만 접근은 쉽지 않다. 진입로를 찾아 들어가면 데크 산책로와 정자 등이 있고 제방 위로 데크 산책로가 바람길의 통로역할을 한다. 봉학제는 겨울철새들의 낙원이다. 이곳 겨울철새는 쇠오리로 약 100마리가 헤엄을 치며 날아다니고 있다. 쇠오리는 청둥오리처럼 수컷의 머리와 몸의 깃털이 화려하여 암수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수컷은 머리가 밤색이며, 눈 가장자리에서 뒷목까지는 암녹색의 선이 있고 암컷은 머리와 부리가 모두 회색빛깔을 띠고 있다. 암컷은 정수식물과 그 씨앗을 뜯어먹고 살면서 때론 혼자서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기도 한다. 주로 우리나라에서는 겨울철에 볼 수 있으며, 수컷은 수컷끼리, 암컷은 암컷끼리 물가에서 노니는 습성이 있다. 이곳 봉학제에서도 쇠오리가 암수 따로 화려한 군무를 자랑하며, 매서운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푸른 하늘을 벗 삼아 자유롭기만 하다. 봉학제는 야생동물의 종과 개체수가 증가하고 있다. 이는 높은 생산력을 갖춘 생태계로서 수많은 조류 및 야생동물에게 가장 적합한 서식환경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서식환경이 봉황산까지 이어지면서 생물다양성의 핵심 축과 야생동물들의 이동경로로써 적정한 밀도를 유지하고 있다.봉학제 주변에 봉황산이 자리 잡고 있다. 봉학제와 봉황산이 만나는 중간지점인 전이공간은 추이대(ecoton)라고도 한다. 이곳 추이대는 주로 소나무 숲과 참나무 숲, 찔레꽃 숲인 산림식생과 물억새, 갈대, 달뿌리풀, 줄, 부들, 마름 등 수변식생이 함께 자생하고 있다. 산림식생과 수변식생이 만나는 추이대는 철새인 쇠오리와 산새인 붉은머리 오목눈이가 무리지어 번식과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봉학제는 봉황산과 추이대가 존재함으로써 주변효과와 생물다양성이 높은 곳이라고 할 수 있다.
    2018-05-25 | NO.18
  • 봉황산
    서구 용두동과 남구 압촌동광주 무등산에서 서쪽으로 뻗어내린 산줄기는 수레바위산 - 소룡봉 - 분적산 - 금당산을 지나 화방산 - 송학산 - 봉황산 - 등룡산으로 이어지다가 승촌에서 영산강을 만나 끝을 맺는데 그중에 봉황산은 167.8m이다. 서창과 대촌의 중간에 있으면서 눌재로를 사이에 두고 송학산과 마주보는 산이다. 해동지도와 비변사인 방안지도에 봉황산이 그려져 있다. 남구 석정마을의 배산으로 부엉이 울음이 들린다하여 일명 ‘부엉산’이라고도 한다. 산 밑 독정이에 1864년경에 덕암 나도규(羅燾圭)가 지냈다는 남덕정(覽德亭)이 있다. 남덕은 봉황의 다른 표현이다. 봉황산에는 어느 장군이 지나가면서 손과 발자국을 남겼다는 장군바위와 덕석모양의 덕석바위가 있다. 석정마을에는 명천(鳴泉)과 칠암(七岩)이 있다.황룡강 가까이 자리잡은 봉황산에는 현와 고광선 선생이 인근의 수많은 문인들을 길러낸 봉산정사라는 강학당이 있었다. 고광선이 주로 기거하며 책을 읽었던 엄이재도 있다. 세상을 떠나자 제자들이 그를 기리기 위해 봉산사를 지었다. 봉산사는 후손들이 찾지 않아 지금은 다 무너지고 터만 남았다. 봉황산 아래에는 구룡마을과 봉학마을로 이어진다. 구룡마을에서 호남 거부인 송원그룹 고제철 회장이 배출되고 봉학마을에선 국중인물(國中人物)의 반열에 오른 김동신 전 국방부장관이 배출됐다. 또 시장 및 교육감 등 요직에 오른 인물도 많다. 풍수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렇다. 무등산으로 부터 발원해 내룡(來龍)한 용맥(산맥의 줄기)이 화순으로 통하는 너릿재를 돌아 광주에서는 무등산 다음으로 높다는 분적산을 일으켜 세우고 화산마을 가까운 제2순환도로로 낙맥한 연후에 기룡(起龍)하고 화룡(산맥이 좌우로 선회함)해 금당산을 세운 뒤 금당산 줄기가 절골 가까운 학산(鶴山)을 세운 다음 서남방으로 다시 회룡해서 하늘높이 치솟아 드디어 명산인 봉황산을 일으켰다. 그런 연후에 그 중 하나의 지맥(가지 쳐 나누 듯 산맥이 갈래 지워 나아감)이 봉학마을로 내려앉아 토성체(土星體·봉우리가 일자형의 산)로 마무리한 뒤 꿈틀꿈틀 살아움직이는 산맥이 휘돌아 안착한 곳에 평범한 주택이 동남향으로 세워져 있었으나 사람이 거주하지 않은 빈집이 있었다. 비어있는 그 주택지가 혈적(기를 담고 내려온 산맥이 그 기를 서리게 한 곳)이 틀림없구나 하는 생각과 믿음으로 그 마을에 오래 살아온 어른에게 물으니 “그 집이 바로 4성 장군과 국방부장관이 태어난 태자리다”고 확인해 줬다.
    2018-05-25 | NO.17
  • 사동제
    서구 서창동 358-9사동제는 절골마을의 뒤편, 송학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사동제는 1968년에 조성됐고 갈대와 줄 및 물억새가 자생하고 있고, 주변은 대나무 숲으로 에워싸인 특이한 자연생태경관을 보여주고 있다. 그 대나무 숲 위로는 소나무군락이 송학산 능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곳은 녹지축이 잘 연결되어 있어 야생동식물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서식처이자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임을 알 수가 있다. 사동제는 광주시 서구지역의 11개소 저수지 중에서 식물 출현종수(43분류군)가 3번째로 높은 지역이다. 주요 자생식물은 갈대와 갈퀴나물 및 고마리, 금강아지풀, 금방동사니, 달뿌리풀, 물억새 등이며, 조류 중에 가장 많이 출현한 종種은 노랑턱맷새와 직박구리, 멧비둘기, 딱새 순이다. 멸종위기종과 희귀종은 조사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사동제는 1484㎡의 조그마한 면적에 불과하지만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해서는 그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2018-05-25 | NO.16
  • 사망당고개
    서구 매월동만취당을 가는 길에 사망당고개가 있다. 광주시의 서구 서창동 관할 매월동에 있는 고개이다. 개금산蓋金山 남쪽 안산으로 이어지는 등성이를 넘는 재로 서편 회산마을과 동편 화개마을 간 길목이었다. 서낭당이 회산마을 쪽에 있어 ‘사망당’과 관계된 듯하고, ‘춤만동고개’라는 별명도 있다. 서낭당은 돌무더미로 고개를 넘어 다닌 사람들이 한 개씩 돌을 쌓아 탑이 되었고, 1920년대까지 남아 있었다. 남쪽 임암동 가산마을과 원산동 이동마을로 넘는 고개는 ‘황토고개’라고 부른다.
    2018-05-25 | NO.15
  • 사월산
    서구 벽진동서창동 관할인 벽진동에 소재한 사월산은 높이 101.5m로 아담한 산이다. 광주-송정리간 도로에서 공항 혹은 순환도로 접어들기 전 좌측에 솟아있는 산으로, 광주와 송정 간을 잇는 극락교를 비롯해 극락평야 일대가 한눈에 조망된다. 이 산의 앞 쪽으로 극락강(영산강)이 흐른다.금당산에서 북쪽 짚봉산으로 내려선 능선이 서편 백석산으로 이어진 뒤, 내려서며 광산 탁씨 시조산과 공군 탄약고 등성이를 지나 자리하고 있다. 요즘은 공군탄약고로 더 알려진 곳이며 탄약고로 들어서기 직전의 우측에 자리한 산을 말한다. 사월산을 기준으로 서창지하차도, 제2순환로, 상무대로, 풍서좌우로, 영산강과 극락교, 경전선, 다리 건너 송정도서관 인근 말미산과 하남까지가 손에 잡힐 듯 펼쳐져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벽진이 나오고 <회재집懷齋集>에 ‘1602년 광주 벽진촌에 벽진서원碧津書院을 세웠다’는 구절이 나오는 것으로, 대충 벽진동의 유래를 가늠할 수 있다. 조선 후기 김정호金正浩가 쓴 한국 지리서 대동지지에도 벽진碧津이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형세가 ‘똑뫼’로 ‘산월’山月이 ‘산’의 리을이 탈락하여 ‘사월’로 된 것으로 유추되고 있다. 그리고 고려 말에는 이곳에 벽진부곡碧津部曲이 있었다. 사월산 남쪽에는 벽진마을과 의열사義烈祠가 있다. 벽진은 옛날 바닷물이 들어왔고, 나루가 운영되던 곳이다. 의열사는 조선 중기 선조 때의 문신이자 이이의 문인인 회재 박광옥을 배향한 사우祠宇로 1604년 건립됐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 의병장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1567∼1596)을 추가 배향하고 있다. 도로에 접한 북쪽은 가파르고 높으며 남쪽으로 갈수록 산세가 완만한 생김새 때문에 옛 사람들은 사자가 머리를 하늘로 높이 쳐든 형상으로 바라봤었고 그래서 사월산이라는 이름도 사자앙천獅子仰天이라는 말에서 비롯됐다는 풀이도 존재한다. 이 산은 조선 초엽 광주시내 쪽에 살던 탁씨들의 선산이었다는 말이 전해 내려온다. 본디 탁씨들의 선산은 북구 월계동에서 현재 광주공원이 들어선 성거산으로 옮길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광주향교가 처음에는 장원봉, 다음에는 광주읍성 안의 북문 쪽에 있다가 결국 성거산(광주공원)에 이전하게 될 처지가 되자 자신들의 선산을 기꺼이 희사하고 그 대체 부지로 택한 것이 이 사월산이었다고 한다.사월산에는 의외로 많은 일화들이 숨겨져 있다. 1930년대 서석초등학교의 전신인 광주공립보통학교 교장을 지낸 야마모토 데스따로山本 哲太郞가 1933년에 펴낸 <광주군사光州郡史>를 통해 사월산에 봉화대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야마모토는 이전에 광주를 다룬 여러 기록들과 달리 당시 광주에 구전돼 오는 일화까지 꼼꼼하게 수집해 정리하고 있다. 이 책에 보면 “서창면 벽진리 사월산은 산마루에 봉화대가 있어 고려 이전에는 전쟁이 있을 때 봉화를 올려 전쟁이 일어난 것을 알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야마모토의 봉화대 기술은 신빙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 대체적 시각이다. 내륙에 속한 광주에 굳이 봉화대를 설치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월산 산마루에는 녹슨 철탑과 참호 정도만 남아있을 뿐이다. 또 사월산은 이 일대 건물 고도를 확정하는 기준으로 적용되고 있다. 국방부는 2010년 인근 공군비행장과 관련한 건물 고도 제한을 종전 100m에서 45m로 낮춘 바 있다. 사월산 높이 이상으로는 건물을 짓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이밖에도 일제가 태평양전쟁 당시 전운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상무대 비행장을 군용비행장으로 사용했는데 자살특공대인 가미카제神風 특공대特攻隊를 양성하는 기지로 삼았었다. 그 무렵 비행장 주변에는 군용 막사와 배수지, 연료고와 탄약고 등을 건설했다. 이때 탄약고가 사월산 북쪽에 자리 잡았는데 터널을 뚫어 만들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탄약고의 일부가 현재 벽진동 월암마을 쪽 벼랑에 남아 있어 공교롭게도 현재 그 위치는 조금 다르나 인근에 공군 탄약고가 위치해 있기도 하다. 1950년대에는 사월산 자락에 포로수용소가 있었다. 소설가 강용준은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 보충병으로 징집되었지만 이후 유엔군의 포로가 되어 부산 동래, 거제도 고현리, 광주 사월산 등지에서 만 3년간 수용소 생활을 하다 1953년 사월산 수용소의 철조망을 뚫고 탈출했다. 데뷔작인 <철조망>(1960)이 대표적이거니와, ≪밤으로의 긴 여로≫(1969), ≪사월산≫(1971), ≪탈주자들≫(1973), ≪유월에서 팔월 사이≫(1980) 등의 작품들이 인민군 참전과 포로 생활, 수용소 체험 등을 다룬 것들이다. 이들 작품을 통해 작가는 전쟁의 폭력성과 비참함을 고발하고 전쟁이 가져온 인간 조건의 비극적 숙명을 성찰해 왔다.사월산은 알아보기는 쉬우나 이 산을 접근하는 데는 조금 더 많은 이정표가 설치될 필요가 있다. 인터넷상에서의 통일된 정보 검색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공원인지, 야산인지 모호하기 때문이다.
    2018-05-25 | NO.14
  • 산청제
    서구 용두동산청제는 1968년에 만들어졌고 수혜면적은 13ha이고 저수량은 8천㎡이다.
    2018-05-25 | NO.13
  • 상무시민공원
    서구 상무공원로 101(치평동) 서구 치평동 상무 신도심 아파트 단지 내에 자리한 아름다운 공원이다. 1994년 11월 12일 지정되어 각종 운동시설과 아름다운 수경관 연출이 가능한 호수 및 열린광장, 조각공원 등 각종 조경, 편의시설 등을 갖춘 광주에서 최대 규모의 공원이다. 상무시민공원은 17만 384.9㎡로 인공호수 2개, 광장(39360㎡), 체육시설(종합운동장, 육상트랙, 테니스장 3, 농구장 1, 배구장 1), 여성발전센터, 환경조형작품(공룡나라외 15종)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운동시설로 3천470평의 국제규격 잔디축구장 및 6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잔디스탠드, 맨발 조깅이 가능한 4백m 우레탄 트랙 등이 설치돼 있는 종합운동장과 소운동장이 있다.조각공원은 2000년 10월 20일 개장되었다. 상무시민공원내 호숫가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각 작품마다 경관 조명시설을 설치해 야간에도 환상적이고 아름다운 작품을 감상할 수 있으며 누구나 만지고 체험하면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보는 즐거움’과 ‘체험의 즐거움’을 동시에 안겨준다. 인공암벽은 폭 14m, 높이 15m, 각도 95~140도로 3개면이 구성되어있다.휴먼파크를 주제로 조각가 18명의 작품 22점이 설치되어 있다. ‘공룡나라’는 익룡 21, 아기공룡, 티라노, 잃어버린 세계 등이 테마로 꾸며진 곳으로 티라노 미끄럼틀을 타며 뛰노는 어린이들의 모습이 눈부시다.
    2018-05-28 | NO.12
  • 상무조각공원
    서구 상무누리로 148(치평동)시민들의 주거공간인 아파트촌에서 가까이 위치해 있어 시민들이 언제든 산보를 하면서 야외에서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조각공원이다. 시민들이 이처럼 편하게 조각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은 없을 듯싶다. 상무시민공원 안에 있는 상무조각공원은 시민들에게 일상생활 속에서 조각 등 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선물같은 공간이다.2000년에 조각가 18명을 초대해 인간적인, 그러면서도 조형적인 아름다움이 가득한 야외 조각품을 설치해 상무시민공원을 중심으로 산보하는 시민들에게 즐겁고도 유익한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전시작품의 주제는 휴먼파크로 환경, 공간, 지역 정서를 고려한 조각품 22개점이 호숫가 여기저기에 설치돼 있다. 가족들이 손에 손을 잡고 찾는 공간인 점을 고려해 만지고 올라타도 부서지거나 파손의 위험이 없는 조각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편안하다. 시각적 즐거움도 크다.21세기 문화관광산업시대를 맞아 광주시가 광주비엔날레, 518기념공원 등과 연계한 관광자원으로 조성한 문화예술 공간이다. 작품은 관람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주제별로 배치돼 있다. 파아란 호수, 그리고 드문드문 배치된 나무와 어우러져 풍광도 그만이다.주말이면 주변 아파트촌에서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산책 나오는 주민들을 만날 수 있다. 해질녘 송정리 쪽으로 지는 노을을 바라보기에 딱 좋은 장소다. 해를 꿀꺽 삼키자마자 어둑어둑해질 즈음 실루엣으로 보는 조각품도 일품이다.
    2018-05-28 | NO.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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