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명덕재

명덕재(明德齋)는 광산구 임곡동에 창녕 조씨(昌寧曺氏) 송암(松庵)  조언수(曺彥壽)를 기리는 제각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옛 나주군 본량면이다.
1938년에 발간한 조선환여승람 나주(朝鮮寰輿地勝覽 羅州)편에 전하고 있어 1897~1938년 기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명덕(明德)은  대학(大學)의 첫머리 주에 “명덕은 사람이 하늘로부터 얻는 것으로, 허령불매(虛靈不昧)하여 온갖 이치를 구비하고 만사에 수응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조언수는 1876년(고종 13) 황해도 암행어사  문학.시강원 겸 사서.부응교.부교리.승지 등을 역임하고 1880년 순천부사에 재임했던 운양 김윤식金允植(1835~1922)이 쓴 창녕 조씨 삼강 유적기(昌寧曺氏三綱遺蹟記)에서 "선조 임진왜란 당시, 송암  조언수를 공은 포의로서 떨치고 일어나서 대중을 고무시켜 군사를 모집했다. 나중에 조중봉趙重峰(조헌趙憲, 1544~1592) 선생과 함께 금산(錦山) 전투에서 순국하여, 포상으로 아경(亞卿)에 추증되고 곧 맹부(盟府)에 공훈이 실렸다"고 적고 있어 조선중기 때 의병으로 활동했음을 알 수 있다.

유적기에서는 " 공의 아들 참봉(參奉) 조성복(曺成福)의 부인인 숙부인(淑夫人) 문화 유씨(文化柳氏)는 남편이 병들자 손가락을 자르고 넓적다리를 베었으며, 남편이 죽자 맹세하여 스스로 절개를 지켰다. 자식을 가르쳐서 가정을 이루게 하고, 죽은 남편의 뜻을 이루었기에 정려(旌閭)의 포상을 받기에 이르렀다. 부인의 아들 통정(通政) 순악(舜岳)은 효성을 다하여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효행에 감응하여 물고기를 얻는 이적(異蹟)이 일어날 정도였기에 고을 사람들은 아직도 그 일을 칭송한다. 순악의 아들 후건(厚建) 또한 효로 이름났다. 삼 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는데, 호랑이가 와서 지켜주었다. 어사가 포상을 내려주십사 아뢰어준 덕에 특별히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임명되었다. 이로써 조씨 집안에는 정려문이 이어져 백 년 동안이나 전해졌으며, 또한 향리의 모범이 되었다"고 적고 있다.
1897년 <광무원정> 에 조정에서 정려가 내려져 1923년에 정려(旌閭)를 세우면서 명덕재(明德齋)도 지었을 것으로 보인다.

  • 광주광역시
  • 한국학호남진흥원
  • 사이버광주읍성
  • 광주서구청
  • 광주동구청
  • 광주남구청
  • 광주북구청
  • 광주광산구청
  • 전남대학교
  • 조선대학교
  • 호남대학교
  • 광주대학교
  • 광주여자대학교
  • 남부대학교
  • 송원대학교
  • 동신대학교
  • 문화체육관광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광주문화예술회관
  • 광주비엔날레
  • 광주시립미술관
  • 광주문화재단
  • 광주국립박물관
  • 광주시립민속박물관
  • 국민권익위원회
  • 국세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