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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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운정
    창운정(昌雲亭)은 충주 지씨(忠州池氏) 재실이다. 광주광역시 남구 백운동에 있었다.1935년에 편찬한 《조선환여승람》에 전하고 있어 이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2020-04-08 | NO.7
  • 청사영당(晴沙影堂)
    남구 원산동근방 마을에 청사(晴沙) 고용후(高用厚, 1577-1648)의 영정을 모시는 청사영당(晴沙影堂)이 있었다. 1868년에 훼철되었다. 철폐 이후에 고용후의 영정은 포충사 동재로 옮겼다.고용후는 자가 선행(善行), 호는 청사(晴沙) , 본관은 장흥(제주)이니 제봉 충렬공 고경명의 여섯째 아들이다. 고조는 현감을 지낸 고자검, 증조는 기묘명현인 하천 고운, 조부는 하헌 고맹영이다. 아버지는 고경명, 어머니는 울산 김씨 부제학 백균의 딸이다.
    2020-03-18 | NO.6
  • 추모재 (박정)
    서구 사동길 118(서창동)서구 송학산 북쪽 기슭의 사동마을은 오래 전부터 절골마을로 불리었다. 회암 박지흥(1411~1488)과 자녀들이 살았던 초당 터다. 눌재 박상과 영의정을 한 사암 박순의 탯자리이다.조선시대 말까지 방하동芳荷洞에 있는 추모재追慕齋는 당시에 눌재 박상의 큰형인 하촌荷村 박정朴禎(1467~1498)의 재실이다. 1989년에 지었다.광주 서구청에서 이곳까지는 약 10km이다. 백마교차로에서 오른쪽은 서창동주민센터 방향이고 왼쪽이 절골마을이다. 입구에서 절골마을의 중심인 사동경로당까지는 약 8백미터이다. 사동경로당에서 2백여미터 쯤 더 들어가면 눌재 박상의 봉산재가 있고 50여미터를 더 들어가면 부친 박지흥의 추원재와 큰아들 박정의 추모재가 나란히 있고 위에 묘소가 있다.해발 201m의 송학산은 금당산에서 남서쪽으로 뻗은 능선은 화방산을 지나 솟아있다. 압촌과 개동마을의 배산이 되고, 북편에는 충주 박씨 집성촌인 절골[寺洞]이 있다. 임진왜란 의병장 제봉 고경명은 “송악산 골짜기가 석양처럼 붉어있네[松岳山溪夕陽紅]”로 끝나는 시를 지었다. 절골은 송학에 서북서쪽으로 내린 이문등이 좌청룡이고, 장흥고씨 재각이 있는 둔덕과 마을 어귀 바리봉[鉢山]이 북서풍을 막아준다. 북동쪽으로 뻗어 오른 팔학산은 학산사가 있는 불암마을로 내려서며 우백호를 이룬다. 사동은 분지 안 은신처 같다.
    2018-05-25 | NO.5
  • 추원각
    광주시 남구 압촌동 산14(압촌길68)고씨 제각으로 고경명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것이다. 옆에 고씨삼강문이 있다. 들어가는 문에는 ‘승훈문(承訓門)’이라는 이름이 명명돼 있다. 제봉의 뜻을 후손들이 길이 새기라는 의미일 터다.추원각 대청 위에는 ‘세독충정(世篤忠貞)’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려 있다. ‘인간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 항상 나라에 충성하고 올바른 마음을 굳게 지녀야 한다’는 뜻으로 제봉의 좌우명이었다.
    2018-10-21 | NO.4
  • 추원재 (박지흥)
    서구 사동길 118(서창동)추원재追遠齋는 절골마을에 들어온 충주박씨의 입향조 회암懷庵 박지흥朴智興(1411~1488)의 재실이다. 박지흥은 정지 장군의 손녀인 하동 정씨와 결혼 후 이곳으로 낙향했으나 2년 후 상을 당하여 개성 서씨와 재혼했다. 개성 서씨의 사이에서 세 아들이 있다. 하촌荷村 박정朴禎(1467~1498), 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 육봉六峯 박우朴祐(1476~1547)이다. 이들 3형제를 가리켜 송나라의 소순蘇詢, 소식蘇軾, 소철蘇輟 등 삼소三蘇 명문장가에 빗대어 형제삼박이라고 말한다. 또는 동국삼박이라 하여 박상과 박우, 박우의 아들 사암思菴 박순朴淳(1523~1589)을 포함한다.1500년대 조선의 문장을 풍미했던 이들이 절골마을, 즉 사동寺洞에 살았다. 박지흥의 묘와 그 아들 첫째 박정, 둘째 박상 묘가 그들의 세거지인 절골마을 뒷산에 있다. 셋째 아들 육봉의 묘는 그가 이거해 살았던 처가 마을인 나주시 왕곡면 송죽리 귀엽마을의 뒷산에 있다. 약 34km 쯤 떨어져 있다.절골마을에는 이들을 기리는 재실이 3곳 있다. 사동경로당에서 2백여미터 쯤 더 들어가면 눌재 박상의 봉산재가 있고 뒤편 길로 1백여미터 쯤 위의 산 능성에 박상의 묘소가 있다. 봉산재에서 50여미터를 더 들어가면 박지흥의 추원재와 큰아들 박정의 추모재가 나란히 있고 위에 묘소가 있다.
    2018-05-25 | NO.3
  • 학림정사 鶴林精舍
    광산구 외등길151 (등임동)   등림동 외등마을의 어등산 아래에 있다. 한말 때의 유학자 금우(錦愚) 임상희(林相熙, 1858~1931)가 수많은 후학을 가르쳤다. 임상희는 본관이 평택(平澤)이고 1858년 3월 15일 임곡(林谷) 등림마을에서 출생하였다. 불환정 주인 임덕원의 종손이다.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1칸이며, 일식기와로 팔작지붕을 올렸다. 2단의 화강석 석축 기단에 덤벙주초를 놓고 원주기둥을 세운 5량집이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툇마루를 깔았으며 창호로 분합문 띠살창을 달았다. 평택 임씨 문중에서 소유·관리하고 있다. 지금은 임상희를 배향한 제실祭室로 사용하고 있다. 학행(學行)이 취(就)하여 정사(精舍)를 향려(鄕閭) 학림동휴(學林東畦)에 지어 후학양성에 전력하였다.고종인산(高宗因山)에 참례(參禮)하고 돌아온 공은 애국정심을 참다못해 사문자정(私門自靖)하면서 오직 사문정수(斯文精修)에 일생을 보냈다.그의 나이 40대 때에 구한말 격동기와 을사늑약 등 조선의 비운을 맞아 소신을 펼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는 1902년 등림동 외등마을 옆 산록에 초가를 지었고 1919년 고종의 장례에 참례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학림정사라 이름하여 지역의 인재들을 모아 후학양성을 하며 민족혼을 일깨웠다. 그가 7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지역 문인들과 유림들이 1981년에 다시 중수한 건물로 학림정사에 제실을 마련하였다. 해마다 4월초에 지역 유림들이 이곳에 모여 제사를 올리고 그의 민족정신과 학통을 기린다.중수기에 파평 윤요중尹堯重의 걱정은 이랬다. “참으로 아름답고 성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이 집이 이 땅의 산수와 함께 영원히 지속될 것으로 알지만 여러 어진 선비들의 정성이 없이는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학림정사의 유풍과 그 흔적이 얼마나 갈 수 있을 지 걱정하는 대목이다.향당유림(鄕黨儒林) 및 門人들이 발의로 이곳 학림정사(學林精舍)에 제실(祭室)을 마련하고 每年 春節에 역채(繹菜)를 올리고 있다. 문인록에 의하면 그 數가 300명이며 <<금우유고錦愚遺稿>> 상.하권이 있다.임상희는 고창 태호정(台湖亭)에 들러 시(題鄭參奉榮源/台湖亭)를 남겼다.광주광역시 광산구 등임동 외등마을 어등산 기슭임상희(林相熙)를 제향한 제실(祭室)1919년 창건사당 : 정면 3칸, 측면 1칸, 팔작지붕(일식기와사용)향사인물 : 임상희(林相熙, 1858~1931) 본관-평택(平澤)향사일: 매년 봄 
    2020-03-16 | NO.2
  • 화개재
    남구 효덕동화개재 華蓋齋는 함안윤씨 윤지화의 광유재와 관련이 있다. 남구 노대동 노대부락 건너편 구릉지대 외딴곳에 1968에 지었다는 함양윤씨 재실 화개재(華盖齋)가 자리하고 있다. 이들 함안윤씨들이 노대.대동부락에 자작 일촌을 이루며 지금도 살고 있다.
    2020-03-19 |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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