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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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봉산재(눌재 박상)

서구 사동길 93(서창동)

봉산재鳳山齋는 충주 박씨忠州朴氏의 재실로서 소촌동의 송호영당松湖影堂과 더불어 눌재訥齋 박상朴祥(1473-1530)의 재실이다.

2019년11월 1일 새로운 재실을 중건하고 기념식을 가졌다. 재실 앞에는 박상 선생의 행장비도 새로 세웠다.

재실 안에는 박상 선생 영정과 광산 김충호金忠浩가 쓴 '봉산재중건기'와 박래호 朴來鎬가 쓴 '봉산재중건상량문'이 있다.



원래 건물은 1895년에 세운 것으로 정면 4, 측면 1칸으로 한식기와를 올린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문은 완절문完節門이라는 편액이 있는 솟을대문이었다. 재실에는 기문記文이나 재각기齋閣記는 없고고 상량문에 을미구월초육일乙未九月初六日이라 쓰여 있었다.

눌재는 조정에 있을 때 관직과 권세에 얽매이지 않고 훈구파와 왕의 인척들을 비판하고 정론을 펼쳤다.

봉산재 옆 낮은 산을 뒷메라고 불렀으며 봉황산과 한새봉 사이 골짜기 맨 위쪽을 남바우그 아래를 한생이골’, 그 윗부분 봉황산 아래쪽을 모길, 불암마을 앞에서 마을 앞 야산 사이를 작살앞이라 불렀다.

눌재의 묘소는 봉산재 옆 뒷메라 부르는 낮은 언덕에 있다. 눌재의 묘소는 정부인 진양 유씨와 함께 모셔져 있다. 이 묘의 발음發蔭으로 조카사암 박순이 출생했다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사암 박순(1523~1589)은 박상 선생이 돌아가시기 7년 전에 출생하였기 때문에 이 구전은 앞뒤가 맞지 않다. 또 사암이 눌재의 묘비를 세울 때 특별히 중국에서 백비에 가까운 돌을 구해와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재일은 매년 음력 1016일이다.


다음은 봉산재 중건기념일 문간공 문중회장의 인사말이다.


봉산재 중건 기념 인사말

안녕하십니까?

충주박씨 문간공 문중회장 박종률입니다.

결실의 계절을 맞아 눌재 봉산재 중건을 기념하는 자리를 갖게 되어 무한한 기쁨으로 생각합니다.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축하의 자리에 함께하신 천정배 국회의원님, 서대석 서구청장님, 박성수 광주전남발전연구원장님, 정인서 서구문화원장, 충주박씨 대종중, 판서공, 회덕참의공, 찬성공을 비롯한 여러 문중 어르신들, 그리고 중건기문을 써주신 고당 김충호 선생님, 상량문을 써주신 노강 박래호 선생님, 주련글을 지어주신 원파 박수섭 선생님과 주련글을 아름답게 써주신 취석 선생님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봉산재 건축을 맡아 수고하신 대목장 감양수 님과 담장과 포천 사암묘역을 조성해주신 최정기 사장님과 삼복더위에 땀흘려 봉사한 우리문중 박화조 감독님과 총무님, 마을 통장님 그리고 많은 관심과 협조를 아끼지 않은 마을 주민 여러분과 문중종원들의 협조로 아름다운 봉산재를 중건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축하의 화한을 보내주신 모든분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눌재 박상(訥齋 朴祥, 14741530)선생은 광주광역시 서구 방하동(芳荷洞)에서 태어나, 281501년 연산군 7년부터 관직에 나아가 561529년 중종 24년까지 공직자로서의 책무를 다하였습니다. 담양 부사 시절 순창 군수 충암 김정(冲庵 金淨)과 무안 현감 석헌 유옥 선생과 함께 중종반정으로 폐위된 단경왕후 신씨의 복위를 주장하는 신비복위상소를 올린 일로 남평 오림으로 유배당하셨고, 담양 부사와 충주 목사로 재임 시 청백리(淸白吏)에 두 번이나 뽑히셨습니다.

눌재 선생은 1,200여 수의 시()와 부()가 담긴 문집 눌재집(訥齋集)과 역사서 동국사략(東國史略) 등을 남겼습니다불의에 대한 과감한 지적과 비판은 이 시기 사림(士林)의 정신적 지표(指標)가 되었으며, 의리사상(義理思想)의 선도자(先導者)로 높이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후세에 사림의 부단한 요청과 군왕들의 호응으로 여러 차례 포장과 치제를 받으셨으며, 1688년 숙종 14년에 이조판서에 증직되셨고. 1729년영조 5년 문간(文簡)이라는 시호를 받았습니다. 문은 글에 밝고 견문이 넓다는 뜻이고, 간은 정직하고 거짓이 없다는 뜻입니다.

뒷산 이름이 봉황산이어서 눌재 선생을 봉산거사라 했으며 재각 이름이 봉산재이고, 퇴계 선생은 눌재 선생을 원우의 완인이라 했으며 절의를 완성했다는 뜻으로 대문을 완절문(完節門)이라 했습니다.

봉산재는 1919년 기미년에 세워진 재각으로 올해로 100년만에 중건하게 됬습니다.

재실앞 마당에 세워진 눌재 행장비는 귤정 윤구선생(1495-미상)이 눌재선생 돌아가신지 1년 후인 15314월에 두 아들 부사공 민제와 진사공 민중의 요청으로 쓴 글입니다. 눌재 선생의 그 당시 眞面目을 알아볼 수 있는 귀중한 글로 그 의미가 크다 하겠습니다.

눌재집에 면앙정 송순이 정만종에게 쓴 글에서 눌재 선생의 경의사상에 대한 가르침을 治心以敬(치심이경) 하고 處事以義(처사이의)라 했습니다.

, 매사에 마음을 경으로 다스리고 일을 의로 대처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곧게 새워 나태함을 경계하고, 일을 행할때는 방정하게하고 사욕을 경계하라는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눌재선생의 경의사상을 본받아 올바른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분들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 바랍니다.

2019111

문간공문중회장 박종률드림

2019.11.15. 수정

Tag #박순# 박상# 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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