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 제35권 / 전라도(全羅道) 광산현(光山縣) 동쪽으로 창평현(昌平縣) 경계까지 18리, 남쪽으로 화순현(和順縣) 경계까지 21리, 남평현(南平縣) 경계까지 28리, 서쪽으로 나주(羅州) 경계까지 47리, 북쪽으로 진원현(珍原縣) 경계까지 21리이며, 서울까지의 거리는 7백 25리이다. 【건치연혁】 본래 백제의
동사강목 제3상 갑술 신라 소지왕(炤智王) 16년, 고구려 문자왕(文咨王) 3년, 백제 동성왕(東城王) 16년부터, 무신 신라 진덕 여주(眞德女主) 2년, 고구려 보장왕(寶藏王) 7년, 백제 의자왕(義慈王) 8년까지 155년간 무인년 신라 소지왕 20년, 고구려 문자왕 7년, 백제 동성왕 20년(북위 효문제 태화 22, 498) 춘정월 고구려
선암仙岩마을은 송정동 영광통에서 금호타이어 광주공장을 지나 매일유업과 호남대학교 사이의 대로변 우측에 자리 잡고 있으며, 전체적인 마을 형상은 마을 뒤편은 어등산이 감싸고 어등산 남록이 마치 소쿠리 모양을 이루며 마을 앞에는 황룡강이 흐른다. 그래서 배산임수의 풍수지리적인 조건을 두루 갖춘 마을이라고 할
892년 무진주(지금의 광주)에서 거병한 후 900년 완산주(지금의 전주)에서 후백제를 건국한 견훤은 경상도 상주 가은현 출신인지, 광주 북촌 출신인지 궁금하다. 다소 뚱딴지같은 질문을 던진 것은 '삼국유사 권2', '후백제와 견훤조'에 실려 전하는 견훤의 출생 설화 때문이다."옛날 한 부자가 광주 북촌 마을에 살고 있었
예로부터 광주에는 왕조대王祖臺라 명명하던 곳이 있었지요. 왕조대는 왕이 머문 곳 또는 왕이 군진軍陣을 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왕이란 다름 아닌 고려 왕조의 건국자인 태조 왕건을 말합니다. 이 왕조대에 얽힌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1천 년 전으로 올라갑니다. 어느 해 광주천 하류의 너른 들에서 왕건과 견휜의
무진대로는 서구 농성동 광천1교에서 광산구 운수동 운수 IC까지 이어지는 9,270미터 길이의 도로다. 무진대로 구간 중 광주 시청 가까이의 무진교에서 신세계 백화점 앞 광천사거리까지는 16차선 도로로, 전국에서 가장 넓다. 무진대로변은 광주종합버스터미날이 있고 광주여대를 지나 무안 광주고속도로와 연결되고 있어
선사시대광주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출토된 유적, 유물을 통해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하다. 상무 신도심을 개발하면서 확인된 인근의 서구 치평동 구석기 유적은 12만5천년 전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삶의 흔적임이 확인되었다. 이 지역의 구석기 문화는 뗀석기로 대표된다. 이 뗀석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