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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언광-喜慶樓記(희경루기)

심언광, 漁村集 권9 / [文]


南紀之山 無等最高 邑于其下者 無慮數十 而其中最臣者 曰光 光之爲州 古也 高麗史稱全羅巨邑 李集詩 言南國雄藩 土地之廣 民物之殷 與羅 全二州相甲乙 使客之至 鋒午于此 實一道之衝也 州治之北 舊有樓 曰拱北 歲久頹圮 無觀遊之所 我文宗元年辛未 太守安公哲石 卽舊址而改搆 名曰喜慶 先是 世宗十二年 以州有頑民歐牧使 降爲茂珍郡 積二十餘年 至是 復舊號 爲光州牧 樓成而朝報至 邑人咸喜相慶 樓之得新扁以此 嘉靖辛卯秋 申侯瀚出牧于茲 政尙嚴明 越二年癸巳 樓失火 侯與鄕大夫士 謀所以新之 乃得材於康津縣之莞島 出贏餘穀布 購募而輸之 至甲午春 量力制役 區畫頗詳 匪督匪程 俾民忘勞 未數月而功告成 高數丈有奇 體勢向背 因舊制而增損之 低者高之 狹者廣之 庭而夷平之 垣而周匝之 階而峻整之 嵬然傑搆 視舊益壯 疏夷暢達 若軼埃壒 而憑空虛者 其臨觀之美 則向之伏者起 隱者顯 遠者近 山容水色 朝輝夕陰 四時之變 萬像之佳 凡一州之勝 可坐而得也 樓旣新 丹雘又施 萬目改視 千夫駭矚 吏慶于官 士頌于庠 民歌于野 皆幸其功之成 而稱侯之賢 不置口 豈但爲茲邑之復舊號而已 亦邑人之喜賢侯而胥相慶也 州自高麗太祖時 始稱光 其後陞而爲翼州 爲茂珍州 降而爲海陽縣 爲化平府 麗季 復陞爲光州 我世宗十二年 降爲茂珍郡 文宗元年 復舊 成宗二十年 邑倅中流矢 又降爲光山縣 燕山七年 復爲州 上下數百年間 一陞一降 而民休戚 俗汚隆 蓋可想矣 陞爲邑之伸 降爲邑之屈 屈而爲民之羞 伸而爲民之喜 喜未久而羞還至 羞旣久而喜復來 方喜之來也 茲樓之作 適與之會 誠足爲一邑之喜慶 喜慶之不足 則又名樓以示後 不幸而樓焚 則必改舊 以壽其喜慶之名 蓋好善惡惡之心 移風易俗之方 古今前後同一揆 而至申侯益闡其猷矣 古有欲袪懷甎之俗 先勅其邑宰 要使官乎是者 勞於撫字 拙於徵科 金如粟 馬如羊 狗不夜吠 羊無晨飮 然後有以副名樓之意 而能使民喜且慶矣 吾知申侯之名 將與喜慶幷傳 而德之在人 亦與斯樓俱新矣

侯與予 司馬同年 高靈申文忠公叔舟之後 嘗因州人鄭執義萬鍾 請記於予 予關東人 平生足跡 一不涉於湖南 江山樓亭之勝 曾無登望之雅 固不堪敍述其事 竊譬韓昌黎記滕王閣 載名其上 有榮耀焉 是爲記
嘉靖丙申仲秋上浣 資憲大夫 吏曹判書 兼知經筵春秋館事 藝文館提學 五衛都摠府都摠管沈彥光 記


남쪽의 산들 중에서 무등산이 가장 높다. 산 아래에 있는 읍이 수십이 되는데, 그 중 가장 큰 것이 광주이다. 광주가 주(州)로 된 것은 아주 옛적부터인데, 고려서(高麗史)에서 ‘전라도의 거읍’이라 하였다. 이집(李集)의 시에서는 ‘남쪽의 웅번’이라 말하였다. 토지가 넓고 사람과 물산이 성대하여 나주, 전주 두 주와 더불어 서로 첫째 둘째를 다투었다. 사객(使客)들이 빈번히 왕래하는데 실로 한 도의 요충이라 하겠다.

주치(州治)의 북쪽에 예전에 공북루(拱北樓)가 있었는데 세월이 오래되니 무너져버려 둘러보고 노닐 장소가 없어져 버렸다. 우리 문종 임금 원년 신미(辛未, 1451)에 태수 안철석(安哲石) 공이 옛 터에 새로이 고쳐 세우고 이름을 희경(喜慶)이라 하였다. 이에 앞서 세종 12년(1430)에 고을의 거칠고 사나운 한 백성이 목사를 때린 일이 있어 무진군(武珍郡)으로 강등되었다. 20여년이 지나 지금에 이르러서 옛 이름을 회복하여 다시 광주목(光州牧)이 되었다. 누(樓)가 완성될 때 조정으로부터 이와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읍인이 함께 기뻐하고 서로 축하하여 누가 이것으로 새롭게 이름을 고쳐 달았다.
가정(嘉靖) 신묘년(辛卯年, 중종 26, 1531) 가을, 신한(申瀚)이 이곳의 목사가 되어 오니 정사가 더욱 엄명하게 되었다. 2년이 지난 계사년(중종 28, 1533)에 누에 불이 나 타버렸다. 목사와 향대부사가 새로 짓기 위해 계획하였고 이에 강진현의 완도에서 목재를 구하고자 여분의 곡식과 베를 내어 이를 사서 모아 옮겨왔다. 갑오년(중종 29, 1534) 봄에 이르러 힘을 헤아려 공사를 제도하니 구획함이 매우 상세하였다. 독촉하지 않고 다그치지 않아 백성으로 하여금 수고로움을 잊게 하였으니 수개월이 되지 않아 일이 이루어졌다. 높이는 수장으로 뛰어남이 있으며 모양새와 방위는 옛 제도를 따르되 덜고 보태었다. 낮은 것은 높게 하고 좁은 것은 넓게 하고, 마당은 평평하게 하며, 담장을 두르고 계단은 잘 가다듬었다.

우뚝하게 누각을 쌓으니 예전보다 더욱 장엄하게 보였다. 시원스럽게 툭 터져 티 없이 맑게 허공에 의지하는 것 같다. 누각에 올라서 바라보면 향하는 곳에 엎드려 있던 것이 일어나고 감추어진 것은 나타나고 먼 것은 가까워지며, 산의 자태와 물빛, 아침의 반짝임과 저녁 그림자, 사시(四時)의 변천과 만상의 아름다움 등 무릇 한 고을의 뛰어난 경치를 앉아서 볼 수 있다. 누각이 일신되고 단청이 또 칠해지니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보고 놀라워한다. 아전들은 관아에서 경하드리고 선비들은 향교에서 칭송하며 백성들은 들에서 노래한다. 모두가 그 공이 이루어졌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목사의 어진 것을 칭찬하며 입을 가만두지 않으니 어찌 이 고들의 옛 이름을 회복하여서만 그랬겠는가? 읍의 백성들이 어진 수령을 만났음을 기뻐하여 서로 경하하여서이다.
고을은 고려 태조 때부터 광주라 칭하였는데, 그 후에 승격하여 익주, 무진주가 되었다가 또 강등되어 해양현, 화평부가 되었고 고려 말에 다시 광주로 승격되었다. 우리 세종 12년(1430)에는 무진군으로 강등되었다가 문종 원년(1451)에 옛 이름을 회복하였다. 성종 20년(1489)에는 목사가 화살에 맞아 또 광산현으로 강등되었다가, 연산군 7년(1501)에 다시 주가 되었다. 위 아래로 수백 년간에 한번 승격하고 한번 강등할 때마다 백성들의 평안과 힘듦, 풍속의 타락과 융성을 대개 가히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승격하면 읍이 펴게 되고, 강등되면 읍이 구부려진다. 구부리면 백성이 부끄럽게 되고, 펴면 백성이 기쁘게 된다. 기쁨이 오래지 않아 부끄러움이 돌아오고 부끄러움이 이미 오래되면 기쁨이 다시 온다. 이 때는 바야흐로 기쁨이 올 때이다.

루(樓)가 지어지는 것이 바로 때를 잘 만났으니, 참으로 일읍(一邑)의 기쁨과 경사라 하겠다. 기쁘고 기쁜 것으로도 부족해 또 루(樓)의 이름으로 하여 후세에 보이고자 하였다. 그러나 누가 불에 탄 즉 반드시 옛 것을 고쳐지어 그 희경이라는 이름을 오래 남기고자 하였다.
대개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마음이나 풍속을 좋은 방향으로 바꾸고자 하는 것은 예로부터 지금까지 선후가 한가지인데, 신후(申侯, 申瀚)에 이르러 더욱 길을 밝혔다. 옛날에 소매에 벽돌을 품고 가는 풍속이 있었는데 먼저 그 읍의 수령에게 당부하는 것은 관 백성을 어루만지는 것에 힘쓰게 하고 세금 거두는 것을 졸렬하게 하여 황금이 좁쌀만큼 많고 말이 양떼처럼 많아도 개가 밤에 짖지 않고, 양이 새벽에 먹지 않게 하라는 것이었다. 그런 뒤에 누각을 지은 뜻에 부합되어 능히 백성들에게 기쁘고 경사스럽게 할 수 있다. 나는 신후의 이름이 장차 희경이라는 이름과 함께 나란히 전해지는데 덕이 사람에게 남아있어서 이 누각과 더불어 모두 새로울 것을 안다.

신한은 나와 사마시에 함께 합격하였는데, 고령 문충공 신숙주(申叔舟, 1417~1475)의 후손이다. 일찍이 고을 사람인 집의 정만종을 통해 나에게 기를 청하였다. 나는 관동사람으로 평생에 발자취가 한 번도 호남에 온 적이 없었다. 강산과 누정의 승경을 일찍이 올라가서 그 빼어남을 본 바가 없으니 참으로 감히 그 일을 서술할 수는 없다. 다만 비유컨대 한창려(韓昌黎, 韓愈)가 등왕각을 기한 것처럼 내 이름을 그 위에 올리니 영화로울 따름이다. 이에 기록하여 둔다.

(가정 병신(嘉靖 丙申, 1536) 중추(仲秋) 상순(上旬)에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판서 겸 지경연춘추관사 예문관제학 오위도총부 도총관 심언광이 기록하다.)

-어촌집(漁村集) 권9

심언광(沈彦光, 1487-1540)의 자는 사형(士炯)이며 호는 어촌(漁村) 이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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