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총 72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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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사강목 제17하; 정지가 졸하다, 정도전이 나주로 유배가다
- 동사강목 제17하신미년 공양왕 3년(명 태조 홍무 24, 1391)동10월 원요준에게 사신을 보내어 보빙(報聘)하였다.○ 판개성부사(判開城府事) 정지(鄭地)가 졸하였다.정지는 외모가 우람하며 성품이 관후(寬厚)하였다. 어려서부터 큰 뜻이 있어 책읽기를 좋아하고 대의(大義)를 통하였으며, 집에서나 밖에서나 항상 서책을 가까이하였다. 이(彛)ㆍ초(初)의 옥사가 일어나 청주옥(淸州獄)에 갇혔을 때 고문을 해도 불복하고 말마다 하늘에 맹세하였는데 말뜻이 매우 강개하였다. 벼슬에서 물러나 광주(光州)의 별장(別莊)에서 살다가 졸하니 시호는 경렬(景烈)이다.○ 조반(趙胖)의 관작을 삭탈하고 유배하였다.성헌(省憲)에서 논핵하기를,“개성윤(開城尹) 조반은 간악하고 탐욕스러운 행위를 자행하여 공전(公田) 수십 결(結)을 임의로 빼앗았으니, 청컨대 죄를 다스리고 가산을 적몰하여 탐악(貪惡)한 무리를 징계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조반이 이ㆍ초의 옥사를 일으켰기 때문에 이ㆍ초의 무리가 헌사(憲司)를 부추겨 조반을 중상(中傷)한 것이다.○ 정도전을 나주(羅州)에 유배하였다.성헌과 형조에서 상소하여 정도전을 탄핵하기를,“정도전은 속으로는 간악한 마음을 품고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충직한 체하며 국정을 더럽히니 대죄(大罪)로 다스리소서.”하였는데, 왕이 공신이라고 하여 용서해 주고 그의 고향인 봉화현(奉化縣)으로 방축(放逐)하였다. 다시 논핵하기를,“정도전은 가풍(家風)이 부정(不正)하고 파계(派系)가 명백하지 못한데도 외람되이 중한 관직을 받아 조정을 혼란시켰으니, 고신(告身) 및 공신녹권(功臣錄券)을 거두글 그의 죄를 밝히소서.”하였으므로 드디어 나주로 이배(移配)하였는데, 김주(金湊) 등이 또 그 아들 전농정(典農正) 진(津)과 종부부령(宗簿副令) 담(澹)을 논박하자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만들었다. 밀직부사(密直副使) 남은(南誾)이 힘을 다했으나 구할 수 없자 병을 핑계하고 면직하였고, 도전은 얼마 있다가 봉화로 양이(量移)되었다.
- 2022-05-07 | NO.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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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산마을 송도박굴
-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동산마을에 있는 큰 바위는 송도에 성을 쌓기 위해 가져가려던 바위였으나 가져가지 못해서 송도바위라고 부른다고 한다. 1988년 12월 25일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성촌마을 주민 최두진에게 채록하여 1990년에 간행한 『광주의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동산마을 뒤쪽에 송도바위라는 이름의 큰 바위가 있다. 고려 때 송도[개성]에 성을 쌓으려고 각 지방에서 돌을 가져갔다. 이 바위도 송도로 가져가려고 했으나 가져가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송도바위라 부르게 되었으며, 송도바위가 있는 골짜기를 '송도박굴'이라 불렀다.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 동산마을 뒤쪽에 있는 송도바위와 송도박굴에 대한 지명전설이다. 「울산바위 전설」처럼 바위의 이동과 실패에 대한 모티프를 보여주고 있다. [참고문헌] 『광주의 전설』(광주직할시, 1990)[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2023-11-10 | NO.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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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정의 시운을 받들어 차운함- 삼봉집 제1권
- 동정의 시운을 받들어 차운함[奉次東亭詩韻] - 삼봉집 제1권 : 정도전 물은 흘러도 종당 바다로 가고 / 水流竟到海구름은 떠도 항상 산에 있다오 / 雲浮長在山이 사람은 홀로 시들어 가며 / 斯人獨憔悴나그네로 한 해 한 해 보내고 있네 / 作客度年年옛동산 아득해 얼마나 멀까 / 故園渺何許가는 길은 깊은 못에 막혀 버렸네 / 歸路阻深淵봄 농사 멀지 않아 미쳐 오는데 / 春事逝將及뉘라서 동고의 밭을 가꿀 건가 / 誰破東皐田생각은 있어도 가질 못하고 / 可思不可去창해의 사이에서 방황만 한다오 / 棲棲蒼海間빌린 집이 너무도 작고 낮아서 / 賃屋絶低小아침 저녁 더워라 밥 짓는 연기 / 朝暮熏炊煙이따금 우울증을 풀어 보자고 / 有時散紆鬱걸어서 동산 마루에 오른다 / 步上東山巓아스라이 무진성 바라보니 / 遙望茂珍城그 가운데에 한가한 고인이 있네 / 中有高人閒눈으로 나는 새를 보내나니 / 目送飛鳥去내 생각 부질없이 유유하구려 / 我思空悠然【안】 동정은 이때에 광주(光州) 무진성에 있었다.
- 2020-09-21 | NO.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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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아들이 서로 음경을 자르다 : 청장관전서 제49권 -이목구심서 2(耳目口心書二)
- 광주(光州)의 촌부(村婦)가 아들 둘을 두어, 하나는 일곱 살, 하나는 다섯 살이었는데 모두 군적(軍籍)에 편입되어 있으므로 이장[里正]이 군포(軍布)를 징수하러 오갔었다. 촌부가 밤이 새도록 물레로 무명실을 뽑는데 두 아이가 모두 잠들자, 촌부가 자애로운 마음이 일어 손으로 두 아이의 음경(陰莖)을 만지며 혼자서 스스로 말하기를,“너희들이 이것이 있어 사내 자식이 되었기 때문에 내가 수고로움을 사양치 않고 실을 뽑는 것이다.”했었는데, 두 아이가 거짓 잠든 체하여 몰래 듣고 있다가, 이튿날 함께 아무도 없는 곳에서 서로 대하여 울며 말하기를,“우리들이 음경을 지녔기 때문에 어머니가 근심하고 수고하시니, 어찌 이를 없애어 우리 어머니의 근심을 풀어드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하고, 드디어 칼을 가져다가, 형은 아우의 음경을 베고 아우는 형의 음경을 베어 묻어버리고서, 솜으로 상처를 쌌었는데, 피가 바지에 흐르므로 어머니가 놀라며 묻자, 아이들이 그 까닭을 말하니, 어머니가 붙들고 통곡하기를,“너희들이 음경 지닌 것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들이 사내 자식으로 태어난 것을 어여삐 여겨 농담한 것이었다.”하였었다. 원[太守]이 이 말을 듣고 그 집의 호역(戶役)을 면제해 주었다는데, 5~6년 전에 우리 외가 친척 박여수(朴汝秀)씨가 나를 위해 말해 주었다.병술 1월에 쓴다.이덕무(李德懋, 1741~1793)
- 2022-02-22 | NO.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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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꺼비 허물은 화수분
- 업으로 여겨지는 두꺼비의 허물을 발견하고 집안의 쌀 독에 붙여두면 가세가 늘어 부자가 된다는 이야기로 업 신앙과 관련이 있다.2018년 1월 30일 광주광역시 북구 효령동 주민 김봉희의 이야기를 채록한 것과 2018년 4월 12일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주민 정임순의 이야기를 채록한 것으로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수록되었다.두꺼비는 허물을 벗으면 바로 허물을 먹어서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없다. 그런데 운이 좋아서 잘살게 될 사람한테는 그 허물이 보인다. 그래서 그 허물을 쌀독 밑에 붙여 놓으면 쌀이 줄어들지 않는다. 쌀을 퍼도 쌀이 안 줄어든다는 것이 아니라, 손해나 나쁜 일이 안 생겨서 재물 나갈 일이 없어 살림이 늘고 부자가 된다고 뜻이다. 두꺼비는 영물이라 집에서 키우는 개도 함부로 물지 않는다. 두꺼비가 집안에 들어온 것은 그 집이 잘되려고 나타난 것이며, 두꺼비에는 재앙이 붙지 않는다.「두꺼비 허물은 화수분」의 주요 모티프는 ‘우연히 들어온 업’이다. 업은 집안의 재물을 관장하는 신격으로 대표적으로는 구렁이, 족제비, 두꺼비 등이 있다. 또는 사람이 들어온 경우도 업이라고 하는데, 이를 인업이라고 하며 흔히 ‘업동이’라고 부르는 아이를 말한다. 구렁이나 두꺼비가 우연히 집에 들어오면 업이 들어왔다고 귀히 여기며, 잘 보살피면 가세가 늘어나 집안이 부유해질 것이라고 믿는다. 이러한 설화의 모티프는 민간의 업신앙에 대한 믿음이 구체적인 설화로 형상화된 것이다. [참고문헌] 장덕순, 『구비문학개설』(일조각, 1971) 『한국민속문학사전』설화 1-2(국립민속박물관, 2012)한국구비문학대계(https://gubi.aks.ac.kr)[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 2023-11-10 | NO.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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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꺼비의 보은
- 이 설화는 보통 두꺼비가 소녀에게 입은 은혜를 갚기 위해 지네를 죽이고, 제물로 바쳐진 소녀를 구하는 내용입니다. 이 지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설화는 조금 다르게 어머니와 딸이 등장하지만 대체적으로 한 소녀와 홀아비 장님 아비가 등장하지요. 옛날 무등산 계곡 어느 조그만 마을에 어머니와 딸, 단 두 식구만이 가난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해 봄날 두 모녀가 사는 조그만 초가집에 커다란 두꺼비 한 마리가 동그란 두 눈을 굴리면서 뚜벅뚜벅 기어들어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난해 겨울 지독한 추위에 그놈이 좋아하는 벌레들이 얼어 죽어 먹을 것이 없게 되자 굶주림에 못 이겨 무턱대고 찾아든 것이 분명했지요. 그 집 딸 순이는 그 두꺼비가 몇 년 전에 죽은 남동생 순동이처럼 귀여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순이는 "두껍아 너 배고프지? 이 밥 먹어" 하고 제 몫을 떼 내어 나눠 주었어요. 이렇게 해서 순이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나는 동안 그 미아 두꺼비는 머슴방 목침만큼이나 투박하고 튼튼하게 자랐습니다. 그런데 순이가 사는 그 산촌마을에는 옛 부터 큰 근심거리가 있었어요. 몇 년째 큰 괴물 지네가 나타나 마을사람들을 괴롭히며 피해를 입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 괴물에게 여자 어린이를 제물로 바쳐 제사를 지내는 방법이었습니다. 그처럼 제사를 지내주면 10년 동안은 무사히 지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때마침 그해가 10년이 지나 제사를 지내야 하는 시점이 됐어요. 거기에 바칠 제물로 순이의 차례가 됐습니다. 직감적으로 자기의 차례를 안 순이는 두꺼비를 보살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슬픔에 빠졌지요. "이젠 너에게 밥을 먹여주고 거둬 줄 수도 없겠구나." 순이는 두꺼비를 어루만졌어요. 슬픈 것도 슬프지만 두꺼비가 무척이나 마음에 걸렸습니다. 제삿날을 맞아 제물로 바쳐질 순이는 어쩔 수 없이 괴물이 사는 굴 앞까지 걸어가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윽고 고싸움에 쓰는 용줄 만큼이나 큰 지네 한 마리가 굴속에서 나타나 쓰러진 순이 곁으로 다가왔지요. 그때 순이 뒤를 몰래 따라온 두꺼비가 지네를 향해 뿌옇게 독안개를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흠칫 놀라 한 발짝 물러선 지네도 두꺼비를 보고 독 안개를 뿜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몇 십 분이 지났을까요. 보기에도 끔찍스런 커다란 지네가 똬리를 꼰 채 죽어 있었고, 그 옆에는 두꺼비가 커다랗게 눈을 뜬 채 네발을 쭉 뻗고 잠든 듯이 누워 있었습니다. ※칠석마을 고싸움은 광주광역시 남구 칠석동 옻돌마을에서 정월 초순경부터 2월 초하루까지 하는 놀이다. 1970년 7월22일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됐다.
- 2018-05-28 | NO.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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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시한- 만오정에서
- 늙은 친구의 뜻을 늙은 친구가 아니 서중(書中)에서 의중사(意中詞 마음속의 말)를 본 것 같네.시내와 산이 이로부터 풍광이 좋으니 대지팡이로 차분히 가는 곳을 따르리라노강(魯岡) 류시한(柳是漢 1826~?)이 만오(晩悟) 윤하검(尹夏儉, 1813-1905)의 만년 휴식터 만오정을 찾아 시를 읊었다. 광주시 광산구 본덕동 출신이다.
- 2020-04-30 | NO.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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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시한- 호가정에서
- 노평산은 높고 극락강(極樂江)은 맑은데푸른나무에 누런 꾀꼬리 친구를 부르네.먼 옛날 뜻대로 달리던 말을 생각하고서로 오늘의 수심(愁心) 없애는 성(城)을 만났네.어진 친구 사귀는 곳엔 정이 마땅히 합하고큰 선비 가운데 눈이 문득 밝아지네.휜술 글단에 일 하나 남았으니높은노래 두어곡으로 기쁨을 이루네.설강 유사의 호가정에 노강(魯岡) 류시한(柳是漢 1826~?)이 찾아와 시를 읊었다. 광주시 광산구 본덕동 출신이다.
- 2020-04-30 | NO.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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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계(蔓溪)에게 답함, 을묘(1795) - 다산시문집 제19권
- 만계(蔓溪)에게 답함, 을묘(1795, 정조 19년생 34세) 11월 27일 - 다산시문집 제19권편지를 받으니 세모(歲暮)의 슬픈 생각이 위로됩니다. 용(鏞)의 병은 깊은 빌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보름께 눈 위에 비친 달빛이 희고 하늘이 맑으므로 밤에 두 손[客]과 앞 시내로 걸어나아가 시를 읊으며 산보도하고 물결을 일으키려고 돌도 던지다가 새벽 닭이 운 뒤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왼쪽 겨드랑이의 담핵(痰核)이 불어났습니다. 요사이 또 꼼짝하지 않고 집에 있으면서 조리를 하였더니 담핵이 점차 풀리고 있습니다. 광주(光州)의 일은 바로 짖어대는 무리들이라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 더구나 사주(使嗾)한 자가 분명한 이상 다만 그의 죄만이 더해질 뿐입니다. 우리는 편안한 몸으로 수고로운 저들을 기다려야 되겠기에 용은 가형(家兄)께 부탁하여 부디 난잡한 말을 서로 전하지 말고 혹시 경사(京使)가 오더라도 안부를 묻는 인사말 이외에는 모두 청담(淸談)이나 아학(雅謔 고상한 해학)만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화(子和)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어서 부지런히 채집하고 탐문하고 또 보고를 받아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니, 여러 말을 해보았자 아무 소용없고 다만 남의 마음만을 어지럽힐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온양(溫陽)의 물론도 놀라거나 괴이하게 여길 것 없습니다. 모든 훼방이란 자기로부터 선동되어 우연히 부박(浮薄)하고 불량한 무리가 비어(蜚語 근거 없는 말)를 만들어 내고서는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잊고 마는 경우가 많은 것인데, 내가 그 훼방하는 말을 듣고서 사람들에게 변명한다면 한 사람이 두 사람에게 전하고 두 사람이 백 사람 천 사람에게 전할 것이니, 어찌 어리석은 짓이 아니겠습니까.옛날에 어떤 사람이 갑자기 큰 망치 소리에 놀라 병이 되어서 조그마한 소리까지 모두 꺼렸는데, 약으로는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의원은 병자를 좌중에 앉혀 놓고 느닷없이 큰 망치 소리를 내어 병자를 다시 한번 깜짝 놀라게 하고는 연이어 백 번 천 번의 망치 소리를 내니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도 지금 다시 한번 모여 향인(鄕人)의 병을 고쳐주고자 하나, 나약하여 떨쳐 일어나 행할 수가 없으니 매우 한스럽습니다. 한술의 밥에 살이 찌고 한술의 밥에 마른다면 사람들이 천히 여기는 것인데, 하물며 사군자(士君子)가 서로 모여 강학(講學)하는데 한 미친 흉악한 자가 말을 꾸며 헐뜯었다고 하여 땅이 꺼질 듯이 한숨지으며 낙심만 한다면 어찌 진보하여 기국(器局)을 이룰 가망이 있겠습니까. 무릇 일에는 스스로 반성하여 허물을 인증할 것도 있고 뜻을 지켜 굽히지 않을 것도 있습니다. 나의 이차(離次)로써 말할지라도 찰방(察訪)의 직무는 본디 각역(各驛)을 순행하며 그 고막(苦瘼)을 살피는 것이니 소속된 역이 있는 곳이면 모두 가야 되는 것인데, 외임(外任)으로 있던 감사가 왔다 하여 그 순찰(巡察)을 폐해서야 되겠습니까. 내가 떠나온 것은 모두 충분히 생각하고서 한 일이니, 후회한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비록 철륜(鐵輪)이 이마 위를 굴러간다 해도 머리털 하나 까닥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여러 벗들이 이 일로 인하여 종전에 받았던 우리들의 훼방이 대부분 이런 유형이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니, 벗들에게 이런 마음을 알리는 것이 어찌 다행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서울의 제공(諸公)들은 바야흐로 크게 서로 축하하고 있으니 절대로 이러한 괴상한 말이 한강(漢江)을 건너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비록 집안 편지라 하더라도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주-D001] 이차(離次) : 《서경(書經)》 윤정(胤征)에 나오는 말로 머물러 있던 자리를 버린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다산이 서울에서 금정 찰방(金井察訪)으로 좌천되어 온 것을 말한다.*만계 이승훈(1756~1801) : 정약용은 이승훈에 대하여 ‘만계’(蔓溪)라는 호를 사용하거나 ‘이형(李兄)’으로만 불렀다. 이승훈은 모든 천주교 관련 사건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당시 다산과 함께 주문모 신부 실포(失捕) 사건에 연루되어 예산에 귀양 와 있었다. 이승훈의 이름을 지운 것은 1801년 그가 천주교 신앙문제로 처형당했기 때문이다. ‘서암강학기’에도 마땅히 그의 이름이 들어갔어야 하는데, 훗날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었다.
- 2020-09-14 | NO.3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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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취정(晩翠亭)2 : 東山卜築可捷遲 동산 마을에 정자 지어 이곳에 거처하며
- 김용희(金容希, 1860.5.27.~1927.7.21.) 호는 송암(松菴) 또는 만취정(晩翠亭)으로 만취정 정자에 지은 시에서 만취晩翠라는 이름은 ‘송백(松栢 소나무와 오동나무)이 늘 푸르듯이 절조가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의 뜻을 이렇게 읊었다.동산복축가첩지 東山卜築可捷遲 동산 마을에 정자 지어 이곳에 거처하며정식송청수호지 庭植松靑受護持 뜰 앞에 솔을 심어 정성껏 돌봤다네임하횡금문숙처 林下橫琴聞肅處 수풀은 거문고 옆에 끼고 노래하는 그 곳이요석두고침취면시 石頭高枕醉眠時 돌머리 베개 삼아 자우르는 그때로다.노룡굴곡운장체 老龍屈曲雲藏砌 늙은 용이 휘몰아치는 구름 섬돌 가에 숨고백학편표설만지 白鶴翩翲雪滿枝 흰 학이 나비처럼 날아 눈 쌓인 가지에 앉도다.면사아손성만달 勉使兒孫成晩達 후손에게 경계하여 늘그막에 고생 많듯이영언춘색불위이 永言春色不萎移 이를 본받아 길이 지켜 변함이 없으리라.
- 2023-07-19 | NO.3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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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수의 시집에서 고 자 운을 얻다 (매수는 판사 허기의 호)
- 매수의 시집에서 고 자 운을 얻다 (매수는 판사 허기의 호) 〔梅叟詩卷得高字 許判事耆號〕허기(許耆, 1365~1431), 저서로 《매헌시집(梅軒詩集)》형재시집 제3권 / 칠언율시 64수 (七言律詩 六十四首 )문경공의 여러 자손들 대대로 높은 관직 차지했고 / 文敬諸孫世珥貂대대로 전하는 가학을 계승한 인재가 그 몇 명인가 / 靑箱相繼幾英豪야당은 자혜로우니 사람들 모두 감동하고 / 野堂慈惠人皆感매수는 깨끗하고 절개가 절로 높네 / 梅叟淸修節自高임금께서 어진 이 구할 때 미치지 못했다 해도 / 聖主求賢如不及인재가 숨어 산들 끝까지 피하기는 어려우리 / 良才晦迹竟難逃만리를 날아가는 붕새의 여정 이제부터 시작되니 / 鵬程萬里從今始성을 맡기고 칼을 준 뜻을 알리라 / 知有任城贈佩刀‘임성(任城)’이 ‘친붕(親朋)’으로 된 곳도 있고, ‘패(佩)’가 ‘보(寶)’로 된 곳도 있다.[주-D001] 허기(許耆) : 1365~1431. 여말 선초의 문신이다. 자는 원덕(原德), 호는 매헌(梅軒) 또는 매수(梅叟)이다. 광주목사(光州牧使)를 역임하였다. *양천허씨대종회에 확인한 결과 경기도 廣州목사이다.[주-D002] 문경공(文敬公) : 허기의 선조인 허공(許珙, 1233~1291)의 시호이다. 허공은 고려 고종 때 과거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청렴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그의 자손들이 대대로 현달했기에 형재가 시에서 언급한 것이다.[주-D003] 높은 관직 : 원문의 ‘이초(珥貂)’는 담비의 꼬리를 모자에 단 것으로 고관 귀족들만 달 수 있었다.[주-D004] 대대로 전하는 가학(家學) : 원문의 ‘청상(靑箱)’은 대나무로 만든 상자인데 가문에서 대대로 이어지는 가학을 의미하는 말이다.[주-D005] 야당(野堂) : 허기의 부친 허금(許錦, 1340~1388)의 호이다. 허금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자는 재중(在中),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과거 급제 후 좌상시(左常侍), 전리 판서(典理判書)를 역임한 후 은퇴하였다. 온화한 인품으로 명망이 높았다.
- 2023-08-14 | NO.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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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월동 과부와 도깨비
- 매월동 들마을에 과부의 꾀임에 빠진 도깨비 이야기가 전해오지요, 옛날 욕심 많은 과부가 이곳 들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이 과부의 소원은 도깨비와 한번 친해 보고 싶은 것이었어요. 만일 도깨비와 친해지면 무엇이든지 소원을 들어주지만 도깨비의 비위를 거스르면 논밭의 곡식은 거꾸로 심어지고, 솥뚜껑이 솥 안에 들어가며, 밤이 되면 집안에는 모래나 돌이 날아 들어오는 등 무시무시한 변괴가 일어난다고 합니다.그러나 아무라도 쉽게 도깨비와 친해질 수는 없고 우연한 기회에 친해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에요. 그러므로 과부도 우연히 친해지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어 도깨비와 사귀면 금세 부자가 된다는 생각에 그 과부는 도깨비가 좋아하는 메밀묵을 쑤어서 부엌 벽에 드린 선반인 살강 밑에 놔두고 도깨비가 오기만을 기다렸지요. 드디어 도깨비가 밤중에 몰래 부엌에 들어와서 메밀묵을 맛있게 먹고 돌아가려 할 때 과부가 부엌문을 열고 "아니 내 메밀묵을 먹고 가버리면 나는 아침을 어떻게 하냐"고 말했습니다. 과부는 결국 도깨비를 방안으로 불러들여 한 이불 속에서 밤을 지냈어요. 이렇게 해서 며칠이 지난 뒤 과부는 도깨비에게 돈과 금, 은, 보화를 갖다 달라고 졸랐습니다. 도깨비는 과부와 함께 지내는 며칠 동안 몽땅 정이 들어 이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었어요.과부가 원하는 대로 도깨비는 돈과 귀한 보물을 많이 가져다주었지요. 이 일로 과부는 벼락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뒤 부자가 된 과부는 도깨비가 귀찮고 싫어졌어요. 과부는 도깨비에게 내색도 해봤지만 모처럼 아기자기한 생활에 재미가 붙은 도깨비는 과부의 행동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하루 밤도 거르지 않고 찾아왔습니다.과부는 도깨비를 떼어낼 궁리를 하게 됐지요. 과부는 도깨비에게 은근한 목소리로 “당신이 가장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이 뭐예요"그러자 도깨비가 "그건 왜?" 하자 과부는 "당신이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모두 치워 없앨려고요"라고 말했지요.과부가 어리광을 떨면서 대답하자 도깨비는 그저 고맙고 흐뭇해하면서 말대가리(피)가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고 실토를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과부는 그날 밤 자기 집 대문에 피가 질질 흐르는 말대가리 하나를 걸어놓고 도깨비가 이를 보고 도망가기를 소원했습니다. 밤이 되자 도깨비가 발걸음도 가볍게 과부 집을 들어가려다가 대문에 걸린 말대가리(피)를 보고 그만 질겁을 하고 달아나면서 “마을사람들아 나처럼 여자에게 속 주지 마소" 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고 합니다. ※흔히 도깨비는 나무, 돌, 빗자루, 부지깽이 등이 변해서 된 것이라고 한다. 도깨비는 사람들과 함께 살지만 주로 마을 근처의 빈집이나 음침한 굴속에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산다고 한다. 도깨비는 인간과 같은 희로애락을 느끼며 곧잘 인간의 흉내를 내기도 한다. 도깨비는 남자로도 변신하고 여자로도 변신하는 존재인데 항상 사람보다 영리한 것이 아니라 주로 사람들에 당하는 순진함이 있다. 도깨비는 대개 밤에 나타나며, 메밀묵과 팥죽을 좋아하는데 이는 붉은 색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 2018-05-28 | NO.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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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래 장사지내자 사굴(私掘)하여 옮긴 죄 - 각사등록(各司謄錄)
- 경상감영계록(慶尙監營啓錄) ○철종(哲宗) / 철종(哲宗) 14년(1863) 11월 15일 - 각사등록(各司謄錄) 상고(相考)한 일을 아룁니다. 도내 각 읍의 지난 10월 달 정배 죄인(定配罪人)들의 도배(到配)한 연월일 및 보수(保授)하는 사람의 역(役)과 성명을 모두 아래에 개좌(開坐)합니다. 이러한 일이니만큼 삼가 갖추어 계문합니다.계해년 11월 15일 <중략>곤양(昆陽)전라도 광주(光州)에서 온 유3천리 죄인 박기환(朴奇煥)은 전라 감사의 이문에, “담양부(潭陽府)에서 수추한 죄인 박기환임. ‘저는 선산(先山)과 지극히 가까운 땅에 홍시남(洪時南)이 그의 아비를 몰래 장사지냈기에, 선조를 위하는 마음에 분완(憤惋)을 견디지 못하고 법을 어기고 사굴(私掘)하여 다른 곳에 옮겨 두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스스로 저지른 죄를 돌아보건대 어찌 해당 형률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변명 없이 지만(遲晩)합니다.’라고 한 죄를 검률로 하여금 조율하게 하였더니, 검률 최석운(崔錫運)의 수본에, ‘《대명률》 발총(發塚)조에 이르기를, 「분총을 발굴하여 관곽을 드러낸 경우에는 장1백, 유3천리에 처한다.〔發掘墳塚 見棺槨者 杖一百流三千里〕」고 하였으니, 박기환은 장1백, 유3천리 사죄입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위 죄인 박기환을 위 율문에 따라 장1백을 친 뒤 유3천리로 귀도 곤양군에 정배하는 일.”이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계해년 10월 초10일 도배함. 보수하는 사람은 양인 김석홍(金錫弘).경상감영계록(慶尙監營啓錄) ○고종(高宗) / 고종(高宗) 원년(1864) 정월 14일 상고(相考)한 일을 아룁니다. 도내(道內) 각 읍에 작년 11월과 12월의 정배 죄인(定配罪人)들이 도배(到配 죄인이 유배지에 도착함)한 연월일(年月日) 및 보수(保授 유배 죄인의 숙식을 책임짐)하는 사람의 직역(職域)과 성명을 아울러 아래에 죽 기록하는 일이니만큼 삼가 갖추어 계문합니다.갑자년 정월 14일<중략>사천(泗川)전라도(全羅道) 광주(光州)에서 온 유3천리 죄인 김성숙(金成叔)은, 전라 감사의 이문에, “광주목(光州牧)의 수추 죄인 김성숙의, ‘저의 선산(先山)의 압맥(壓脈)인 곳에 이민형(李敏炯)이 그 어미를 억지로 장례를 치렀으므로 선조(先祖)를 위하는 마음에 분노를 견딜 수 없어서 법을 어기고 사사로이 파서 관(棺)을 드러나게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스스로 저지른 짓을 돌아보니 어찌 당률을 면하겠습니까? 변명 없이 지만합니다.’라고 한 죄를 검률(檢律)에게 조율하게 하니, 검률 최석운(崔錫運)의 수본에, ‘《대명률》의 발총(發塚)조에, 「무덤을 파서 관곽(棺槨)을 드러나게 한 경우에는 장1백에 유3천리이다.」라고 했으며, 사죄(私罪)입니다.’라고 하였다. 위의 죄인 김성숙은 위에서 말한 율문(律文)을 적용하여 장1백에 귀도 사천현에 유3천리로 정배한다.”라고 한 데 근거하여 계해년 11월 초6일 도배(到配)함. 보수하는 사람은 양인 김택인(金宅仁).
- 2020-10-01 | NO.3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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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등산 기우제문〔無等山祈雨祭文〕 - 동강유집 제12권
- 무등산 기우제문〔無等山祈雨祭文〕 - 동강유집 제12권 / 제문(祭文) : 동강(東江) 신익전(申翊全, 1605~1660)정해년(1647, 인조25) 5월 15일 을묘에 행(行) 광주 목사(光州牧使) 신 모는 삼가 희생과 술을 갖추어 감히 무등산(無等山) 신령께 밝게 고합니다.아, 지독합니다. 이 백성들의 고난이 어찌 이처럼 혹독하단 말입니까. 병자년과 정축년 호란 이후로 한 해도 흉년에 고통받지 않은 해가 없습니다. 또 국가에 일이 많은 탓에 때아닌 부역과 부득이한 세금이 매월 발생하는데 남쪽 지방은 또 양서(兩西 평안도와 황해도) 대신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합니다. 이어 전염병마저 돌아 열에 네다섯은 죽었으니, 장래에 피폐한 백성들을 살릴 희망은 오직 금년 농사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 5월에 절기도 망종(芒種)이 지났건만 열흘이 넘도록 해만 쨍쨍 뜨고 비가 오지 않는단 말입니까. 논밭은 메말라 갈라지고 도로엔 먼지만 날리고 있으니, 밭 갈던 자들은 쟁기를 멈추고 모내기 하던 자들은 속수무책입니다. 물줄기는 바닥을 드러내려 하고 샘물은 메말라가고 있으니, 가련한 저 백성들이 어디에서 복을 받아 죽어가는 목숨을 부지하고 허다한 세금을 낼 수 있겠습니까.이는 참으로 성상께서 편안히 있을 수 없는 일이요, 여러 신하들이 게을리할 수 없는 일이기에 날마다 여러 산천에 망제(望祭)를 올리며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처럼 보잘것없는 사람이 벼슬자리에 올라 한 고을을 다스리면서 이런 어려움을 보고서도 폐단 하나도 제거하지 못하고 은혜 하나도 베풀지 못하여 고을 백성들을 구제하기는커녕 굶주림에 허덕이게 하여 성상의 근심을 나누는 지극한 책임을 거듭 저버렸으니, 제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어찌 감히 스스로 편안히 여기면서 고을 진산의 밝으신 신령께 경건히 정성을 올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아, 나라는 백성에게 의지하고 백성은 신령을 따르는데, 신령이 의지하는 것은 또한 나라와 백성입니다. 하늘은 오로지 살리기를 좋아하고 신령도 반드시 그렇건만 이런 재앙의 징조가 보이는 것은 저와 같은 자가 그저 먹고 마시기만 할 뿐 제대로 직분을 수행하지 못한 탓이니, 저 서민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아, 이 백성들이 일정한 생업이 없어 선한 본심을 잃은 지 오래되었습니다만, 세금 내는 기한을 어기는 자들은 드뭅니다. 아침에 와서 ‘포백(布帛)을 내라’ 하면 그 명령대로 따르고, 저녁에 와서 ‘속미(粟米)를 내라’ 하면 그 명령대로 따르고, 또 다음날 ‘무슨 부역에 나오라’ 하면 또 그 명령대로 따르면서 조금도 지체하지 않으니, 이것이 어찌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겠습니까. 단지 두려워서 그런 것뿐입니다.목민관(牧民官)이 되어 폐단을 제거하고 은혜를 베풀지도 못한 처지에 백성들만 두려움에 떨게 하였습니다. 또 태형(笞刑)을 치고 구금하는 것으로 태만한 자를 감독하기만 하였을 뿐, 간악하고 교활한 자들이 권세를 믿고 수탈하는 것을 또 살피지 못하였으니, 이야말로 하늘이 노할 만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 백성들은 노할 만한 실정이 없고 오로지 불쌍히 여길 점만 있으니, 오직 하늘을 받드는 신령께서 지성으로 올리는 저의 기도를 어찌 살펴주지 않으시겠습니까.이에 한 고을 백성들의 염원을 모아 삼가 밤을 새워 목욕재계하고 제사를 올립니다. 성심으로 바라건대, 산신령께서는 살리기 좋아하는 하늘의 도를 속히 본받아 가련한 이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단비를 흡족히 내려 온 천지에 고루 스며들게 하심으로써 쟁기질 멈추었던 자들이 깊이 밭 갈고 속수무책으로 있던 자들이 수월하게 모내기하도록 해 주소서. 그렇게 된다면 풍년을 기대할 수 있고 백성들의 생업이 풍족하게 될 것이니 신령의 은혜가 클 것입니다. 제가 감히 게을리할 수 있겠습니까. 아, 흠향하소서.[주-D001] 백성들이 …… 오래되었습니다만 : 《맹자》 〈양혜왕 상(梁惠王上)〉에 “일정한 생업이 없어도 언제나 선한 본심을 견지할 수 있는 것은 선비만이 가능한 일이다. 백성의 경우엔 일정한 생업이 없으면 선한 본심을 지킬 수 없게 된다.〔無恒産而有恒心者, 惟士爲能 若民則無恒産, 因無恒心.〕”라는 말이 나온다.
- 2020-10-07 | NO.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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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등산 기우제문〔無等山祈雨祭文〕- 서하집
- 무등산 기우제문〔無等山祈雨祭文〕- 서하집 제11권 / 제문(祭文) : 이민서(李敏敍, 1633~1688). 신명과 사람의 사이 / 神人之際하나의 이치로 감통하니 / 一理感通성정의 좋아하고 싫어함이 / 性情好惡거의 차이 없습니다 / 幾無異同우리 사람을 기쁘게 하여 / 使吾人而歡欣모두 신명의 공덕에 춤을 춘다면 / 咸鼓舞於神功신명이 기쁠 뿐만 아니라 / 非惟神之悅豫상제께서도 훌륭히 여길 것입니다 / 亦上帝之所崇진실로 병들고 파리하여 탄식하거늘 / 苟病瘠而愁歎신령의 은혜 끝까지 내려 주지 않으시어 / 致神賜之不終사람들 머리 아파하며 모두 호소하는데 / 人疾首而咸籲어찌 신령께서 들어주지 않는단 말입니까 / 豈神聽之不聰하물며 산천이 사람을 비호함에 / 矧山川之庇人진실로 비와 바람 맡아 / 寔有司乎雨風마치 대소의 관리가 / 猶大小之官吏또한 모두 하늘의 일을 대신하는 것과 같으니 / 亦皆代乎天工만약 직임을 잃어 잘못하면 / 儻失職而致愆하늘에 무어라 변명하겠나이까 / 焉有辭於上穹지금 너무나 참혹한 이 가뭄이 / 今玆旱之孔慘늦봄부터 한여름까지 이어져 / 自春末而夏中사방 들판은 시들어 푸르름 없고 / 四野枯而無靑논은 쩍쩍 갈라지고 병충해도 생겼습니다 / 田坼龜而生螽샘은 원천이 마르고 산도 벌거숭인데 / 泉源涸而山滌해는 밝게 떠올라 푹푹 찌니 / 日杲杲而蘊隆이미 싹이 모두 시들었고 / 旣苗秧之皆萎모든 생물이 살아갈 이치 다했나이다 / 擧生植之理窮지난 기근 겪은 지 멀지 않은데 / 昔大侵之未遠지금 여러 해 풍년이 없으니 / 今累歲之無豐백성의 명줄이 다해 가 한탄스럽고 / 嗟民命之旣近온 나라가 텅 비어 애통합니다 / 痛大東之其空오직 이 드높은 산악은 / 惟玆嶽之峻極실로 여러 산 가운데 으뜸이니 / 實群山之長雄산경과 지리지에 오래 전부터 이름 올라 / 名久登於經志중국의 화산과 숭산에 짝합니다 / 配中國之華嵩여기부터 구름 모여든다면 / 而膚寸之自我만물에 큰 은혜 미칠 것인데 / 施及物之其洪생각하면 진산 이리도 가깝거늘 / 念鎭望之密邇어찌 제 애통함 살펴 주지 않으시나요 / 寧不察余之哀恫만약 장리가 벌 받을 만하면 / 苟長吏之可罰응당 그 몸에 재앙 내릴 것이니 / 宜致殃於其躬우리 죄 없는 백성 애처로이 여기며 / 哀吾民之無辜신명께서 공평하게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 仰神鑑之有公감히 깨끗하게 하고 정성을 올리며 / 敢潔淸而薦誠미천한 마음에 강림하시길 바라노니 / 冀降格于微衷부디 영험한 은택을 한번 내리시어 / 庶靈澤之一霈백성들과 함께 모두 입게 하소서 / 與群黎而皆蒙[주-D001] 무등산(無等山) 기우제문 : 무등산은 광주(光州)에 있는 진산(鎭山)이며, 일명 무진악(武珍嶽) 또는 서석산(瑞石山)이라고도 한다. 《승정원일기》 숙종 3년 1월 22일 기사에 이민서가 광주 목사에 제수된 일이 보이는데, 이때 지은 것으로 보인다.[주-D002] 온 나라가 …… 애통합니다 : 원문의 ‘대동(大東)’은 우리나라를 가리킨다. 《시경》 〈대동〉에 “소동(小東)과 대동에 북과 바디 모두 비었도다.[小東大東, 杼柚其空.]” 하였는데, 주희(朱熹)의 주(注)에 “소동과 대동은 동방의 크고 작은 나라이니, 주(周)나라로부터 본다면 제후국이 모두 동방에 있다.” 하였다. 《시경》의 본뜻은 제후국이 과도한 부역에 시달려 재물이 피폐한 것을 말하였는데, 여기에서는 우리나라의 재정이 궁핍함을 말한 것이다.[주-D003] 중국의 …… 짝합니다 : 화산(華山)과 숭산(嵩山)은 태산(泰山)ㆍ항산(恒山)ㆍ형산(衡山)과 더불어 중국의 오악(五嶽)으로 일컬어지니, 여기에서는 무등산이 광주의 진산(鎭山)으로 화산과 숭산에 비견하는 명산임을 말한 것이다.[주-D004] 구름 모여든다면 : 원문의 ‘부촌(膚寸)’은 비가 내리기 전 구름이 점점 모이는 것을 말하니,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희공(僖公) 31년조에 “구름 기운이 돌을 부딪치며 나와 점점 모여들어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천하에 비를 뿌리는 것은 다만 태산일 뿐이다.[觸石而出, 膚寸而合, 不崇朝而徧雨天下者, 唯泰山爾.]” 하였다.
- 2020-12-17 | NO.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