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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16건)
- 송필용 미술비평문: 역사의 굴곡과 땅과 물의 상징
- 송필용 작가는 한국의 비극적 현대사를 중심으로 민중의 삶과 역사를 탐구하며 독창적인 조형 언어를 구축해 온 예술가다. 그의 작품은 땅에서 물로 이어지는 상징적 전환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희망,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미술비평적 관점에서 그의 작업은 한국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시대적
- 이노영 李魯榮 헌종 8년(1842) 9월 24일∼헌종 9년(1843) 10월 20일
- 이노영 李魯榮 헌종 8년(1842) 9월 24일∼헌종 9년(1843) 10월 20일이노영(1781∼?)의 본관은 덕수(德⽔)이며, 자는 공무(公茂)이다. 아버지는 이정모(李正 模)로 1788년 4월부터 1789년 4월까지 나주목사로 재직했다. 1810년 식년시 생원에 합격하여 1813년 부사직, 1817년 헌릉참봉, 1819년 내섬봉사, 1820년 금부도사, 1822
- 홍양묵 洪養黙 순조 14년(1814) 6월 7일∼순조 15년(1815) 6월 1일
- 홍양묵 洪養黙 순조 14년(1814) 6월 7일∼순조 15년(1815) 6월 1일홍양묵(1764∼?)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백회(伯晦)이다. 아버지는 부사(府使) 홍술조(洪述祖)이다. 1786년 성균관 유생, 1787년 조경묘 참봉, 1788년 선공 부봉사, 11790년 상서 직장, 1794년 장흥고 주부, 양구현감, 1796년 원주판관, 1801년 금부
- 신면 申冕 인조 25년(1647) 1월 4일∼인조 25년(1647) 11월 21일
- 신면 申冕 인조 25년(1647) 1월 4일∼인조 25년(1647) 11월 21일현감 신면(1607∼1652)의 본관은 평산(平⼭)이며, 자는 시주(時周), 호는 하관(遐觀)이 다. 할아버지는 영의정 신흠(申欽)이고, 아버지는 신익성(申翊聖)이며, 어머니는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貞淑翁主)이다. 1624년 생원시에 장원급제하고, 1637년 정시 문과에
- 오준 吳竣 인조 14년(1636) 5월 4일∼*인조 15년(1637) 8월
- 오준 吳竣 인조 14년(1636) 5월 4일∼*인조 15년(1637) 8월오준(1587∼1666)의 본관은 동복(同福)이며, 자는 여완(汝完), 호는 죽남(⽵南)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 오백령(吳百齡)이다. 동생 오단(吳端)은 1636년(인조 14) 전주부윤을 역임하였다. 1612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18년 증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주서를 거
- 내암집 제12권 / 행장(行狀)- 하진보(河晉寶, 1530~1585)
- 내암집 제12권 / 행장(行狀)사간(司諫) 하공(河公) 행록〔司諫 河公 行錄〕 남을 대신하여 지었다.먼 조상 하공신(河拱辰)은 고려에 벼슬하여 좌사낭중(左司郞中)을 지냈으며 거란(契丹)에 사신으로 가서 굽히지 않고 죽어 문하시랑 동평장사(門下侍郞同平章事)에 추증되었다. 고조부 휘 기룡(起龍)은 통덕랑(通德郞)으로 통
- 贈光州使君李士深 (사심은 이후원 광주목사의 자이다)
- 鶴洲先生全集 권6 / 詩○七言律詩 一百二十首김홍욱(金弘郁, 1602~1654), 자는 문숙(文叔), 호는 학주(鶴洲), 강빈(姜嬪)의 원억(寃抑)을 말하다 옥사(獄死)하다.贈光州使君李士深 (사심은 이후원의 자이다)厚源○二首○與林學士載叔。同直玉堂。語及前日南行時。與羅牧具景輝鳳瑞,光牧李士深會話。因示唱和諸十。次韻。寄光牧
- 대동야승-난중잡록1 ; 조경남(趙慶男)
- 대동야승-난중잡록1 ; 조경남(趙慶男)임진년 상 만력 20년, 선조 25년(1592년) 5월14일. 전라 감사 이광(李洸)이 또 근왕병 도합 10여 만을 동원하여 전주(全州)에 주둔하였는데 군량을 수송하는 자가 갑절로 늘어나다.○ 군사를 징발하는 교지가 있었다. 당초에 조정이 송도(松都)에 머무르고 있을 때 호남과 영남에 교지를
- 국시소〔國是疏〕 선문대왕(宣文大王 효종) 9년(1658) 무술년 6월, 공이 고산(孤山)에 있을 때 지었다.
- 고산유고 제3권 상 / 소(疏) 삼가 아룁니다.신은 돌아갈 길은 머나먼데 질병이 바야흐로 극심하고, 떠나갈 마음은 다급한데 무더위가 바야흐로 혹독하여, 천리 길을 발섭(跋涉 산 넘고 물 건넘)할 계책을 세우지 못하고서, 아직도 체류하며 나그네 생활을 참고 있노라니, 심회(心懷)가 망연(茫然)해지면서 온갖 생각이 모
- 증 이조참판 행 사헌부장령 정공(鄭公)의 신도비명 (정이주)
- 간이집 제2권 / 신도비명(神道碑銘) 병서(幷序)공의 휘(諱)는 이주(以周)요, 자(字)는 방무(邦武)요, 별명(別名)은 유성(由盛)이요, 호는 성재(醒齋)이다.정씨는 광주(光州)에서 나와 나라의 망족(望族)이 되었는데, 시조(始祖)와 멀어지면서 파(派)가 더욱 나누어졌으니, 가령 공 같은 분도 스스로 파를 나누어 새로 족보를
- 권율의 행주 승첩(幸州勝捷) -연려실기술 제16권 / 선조조 고사본말(宣祖朝故事本末)
- 권율의 행주 승첩(幸州勝捷), 정담(鄭湛)의 웅령전사(熊嶺戰死)붙임. 권율(權慄)ㆍ황진(黃進)의 이티[梨峙]승첩 붙임. -연려실기술 제16권 / 선조조 고사본말(宣祖朝故事本末) 처음에 광주 목사(光州牧使) 권율이 용인(龍仁)에서 돌아와 고을 안의 젊은 사람들 5백여 명을 모으고 이웃 고을에 격서를 보내어 천여명을 모
- 매월동-팔아산八峨山
- 팔아산八峨山 : 광주 선도면(船道面)의 개산리(盖山里)에 있다. 현 서구 매월동이다.- 朝鮮地誌資料(1910)
- 영원정 永源亭
- 북구 일곡동 산69-1 북구 일곡지구 모룡대길의 모룡대를 지나 광주교통문화연수원이 나오는데 입구에서 옆 산길로 50m 쯤 오르다 보면 처항處項골 아미산 서록에 정자라기보다는 모정 형태로 된 춘강 노문영(1896~ ?)의 영원정이 자리하고 있다. 1971년에 세워진 영원정은 모정 형태의 것이나 이곳의 많은 정자가
- 김덕령(金德齡)
- 임란 최후 의병장이자 조선의병 총수인 김덕령(1568∼1596)의 자는 경수(景樹)로 광산이다. 양녕대군의 장인인 한로(漢老)의 12세손이며 1470년 무렵 광주 서구 금호동에서 충효마을(당시, 석저촌)로 터를 옮긴 문손(文孫)은 그의 고조부이다. 1568년 12월 29일 붕변(鵬變)과 남평 반씨 3남 3녀 중 둘째아들로 석저촌(石底村)
- 관찰사윤공웅렬선정비
- 광주광역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광주공원內)1898년이 관찰사윤공웅렬선정비(觀察使尹公雄烈善政碑)는 광주공원 비석군에 있다. 비의 양 옆면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있다.維公喬木世華 氷O淸操 哭O設府 毁尿咸O 革二O染 一省OO十里湖山 人皆自得 召棠冠栢 百世匹休 豊功盛德 書難盡辭
- 곡성 성륜사, 조방원 선생 송덕비 제막식 가져
- 남종화의 독보적인 화풍을 개척해온 아산 조방원1926~2014) 선생 송덕비 제막식이 전남 곡성 성륜사 육화당 앞에서 5월 25일 열렸다.곡성 설령산 성륜사(주지 명원스님)는 청화대종사와 일대사인연으로 대지와 육화당 등 한옥을 시주하여 성륜사 창건을 견인한 아산 조방원 선생을 오래도록 기념하기 위해 이날 송덕비를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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