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의 고공 신도비명 병서 〔參議高公神道碑銘 幷序〕 -월정집 제6권 / 비명(碑銘) :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 1537~1616)만력(萬曆) 임진년(1592, 선조25)에 왜란이 일어나 참의 고공(高公)이 목숨을 바쳐 큰 절개를 드러내었는데, 그 후 십여 년이 지나도록 아직 신도비문(神道碑文)을 맡긴 데가 없었다. 어느 날 공의
삼연 김공 창흡 의 〈소쇄원〉에 차운해서 능주 사또 조 정이에게 부치다〔次三淵金公 昌翕 蕭灑園韵 寄竹樹使君趙定而〕- 손재집 제1권 / 시(詩) : 박광일(朴光一, 1655~1723)중국 땅은 어둡고 악취가 진동해서 / 九有冥蒙腥臭鄙칠 척의 이 내 몸이 갈 수 없지만 / 七尺身無可往矣우리나라에도 산수가 있어 / 惟我箕封山
강남간사록〔江南幹事錄〕 직무 수행 기록 - 미산집 제8권 / 기(記) : 한장석(韓章錫, 1832~1894)갑술년(1874) 2월에 나라에 원자(元子) 탄생의 경사가 있어 증광시를 시행하였으므로 내가 왕명을 받고 호남좌도에 가게 되었다. 3월 상순 임자일에 대궐에 이르러 하직인사를 올리고 계판(啓板) 앞에서 별도로 분부를
영화 '박하사탕'의 기억은 오래도록 남아 있다. 5.18민주화운동을 전후하여 벌어진 한 인간의 생명의 메시지를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오페라로 새롭게 탄생하여 유튜브로 온라인 공연이 펼쳐진다.광주시립오페라단은 5.18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을 기념한 콘서트 오페라 '박하사탕'을 10월 31일(토) 오후 7시30분 광주문화예
척금당기〔滌襟堂記〕 - 동강유집 제10권 : 동강(東江) 신익전(申翊全, 1605~1660)광주(光州) 치소 북쪽으로 5리 정도 되는 가까운 곳에 경양(景陽)이라는 역(驛)이 있다. 노령의 큰 길에 있어 북쪽으로는 진원(珍原)과 경계를 맞대고 있는데 서울로 길이 나 있다. 서쪽으로는 영암과 나주를 이웃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병영(
화순 현감 홍 사군 (명하) 의 시에 차운하다, 4수 〔次和順洪使君, 命夏○四首〕: 동강(東江) 신익전(申翊全, 1605~1660)몇 번이나 어가 모시고 궁중에 입직하였나 / 幾度鳴鑾直禁廬수령이 되어 실컷 신선 생활을 누리는구나 / 一麾贏得臥仙居머나먼 유람은 다시 시상을 제공할 것이니 / 遠游聊復供詩思오만한 관리가 어찌 문
호남(湖南) 의병 -연려실기술 제17권의병장 고경명은 이미 죽었고, 김천일은 경기 좌의병(左義兵) 진중으로 갔다. 사자(士子)들이 흩어진 군사 8백 명을 모으고, 전 부사 화순(和順) 사람 최경회(崔慶會)를 추대하여 맹주로 삼았다. 7월 26일에 깃발과 북을 광주(光州)에 세우고 골(鶻)자로 신표를 삼았다. 전라우도에서 군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5권 / 전라도(全羅道) 광산현(光山縣) 동쪽으로 창평현(昌平縣) 경계까지 18리, 남쪽으로 화순현(和順縣) 경계까지 21리, 남평현(南平縣) 경계까지 28리, 서쪽으로 나주(羅州) 경계까지 47리, 북쪽으로 진원현(珍原縣) 경계까지 21리이며, 서울까지의 거리는 7백 25리이다. 【건치연혁】 본래 백제의
光州의 3·1運動 광주지방에는 개화기 때부터 예수교가 들어와 있었고, 1903(光武 7)년에는 금동(錦洞)교회가 설립되었으며, 1908(隆熙 2)년에는 숭일학교가 개교되었다. 뒤이어 수피아여학교와 제중(濟衆)의원 등 교회사회기관의 설립으로, 사회발전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신문화의 영향으로 3·1운동이 일어날 무렵에
김문옥의 자는 성옥聖玉, 호는 효당曉堂,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김기추(金箕錘)의 아들이며 합천 출신이다. 정기(鄭琦)의 문하에서 수업하였다. 효당문집은 서문과 발문이 없어 저자의 생애 및 편찬경위를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저자가 죽은 뒤 그가 강학(講學)하던 전남 화순군 남면 절산리에서 1962년경 후
멀고도 가까운 광주와 대구, 달구벌과 빛고을의 이름을 따 '달빛동맹'까지 내건 대구와 광주의 연계협력권을 함께 묶어 장기적인 종합발전계획이 마련된다.광주광역시는 9일 시청 중회의실에서 국토교통부와 대구시, 전남도, 경북도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대구·광주 연계협력권 발전종합계획 수립 용역착
정의림鄭義林의 자는 계방季方, 호는 일신재日新齋이며 본관은 광산으로, 綾州 大德에서 鄭濟玄과 珍原朴氏 致聖의 딸 사이에서 1845년(憲宗 11) 11월 출생했다. 그의 선조들은 조선시대 때 纘 이후 나주에 줄곧 거주하였으나, 그의 증조 埰가 영암으로 이주하고 조부 加錫이 다시 능주에 이주하였으며, 정의림의 조부
동구 월남동 녹동마을 당산제조사일시 : 1993. 9. 2조 사 자 : 정 기 진조사방법 : 현지면담조사 (과거시행)제 보 자 : 허남곤 (67)녹동마을은 광주에서 화순으로 가는 도로 우측에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분적산의 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김해김씨, 나주임씨 등 70여호가 살며 요즈음은 대파 농사로 높은 소득을
광산구 삼도동 도림마을 지어재(志於齋)는 조선 영조때 광산에 살던 동강처사 오대하吳大夏(1677∼1743)가 강학터로 지어 지냈던 곳이다. 지어(志於)는 논어 술이(述而)편에 “도에 뜻을 두고, 덕을 굳게 지키며, 인에 의지하고, 예의 세계에서 노닐어야 한다.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游於藝”는 공자 말의 의미를 담고 있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