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全羅道) - 세종실록 지리지 / 전라도 본래 백제의 땅이다. 의자왕(義慈王) 19년 경신에 【당나라 고종(高宗) 현경(顯慶) 5년.】 신라 태종왕(太宗王)이 당나라 장수 소정방(蘇定方)과 더불어 백제를 멸하고 드디어 그 땅을 합쳤는데, 경덕왕(景德王)이 전주(全州)ㆍ무주(武州) 두 도독부(都督府)로 나누었다. 진
《손재집》 발문〔遜齋集跋〕 [이민보(李敏輔)] 호남(湖南)의 학문은 하서(河西)와 고봉(高峯)에게서 말미암아 백여 년이 되었는데, 고(故) 징사(徵士) 손재(遜齋) 박공(朴公, 박광일朴光一 : ?~?)이 일어났다. 공은 우헌공(寓軒公)의 아들로 나이 겨우 약관의 나이에 우암(尤菴 송시열(宋時烈)의 호(號)) 노선생을 사사(師
손재 박공 묘갈〔遜齋朴公墓碣〕 - 손재집 묘갈 우암(尤菴) 문정 선생(文正先生)이 돌아가신 뒤, 그의 문인들 대부분이 호서와 호남에 흩어져 살았다. 배우는 자들이 날마다 도의(道義)를 강구하고 연마하였는데, 남방에서는 손재(遜齋) 박공 광일(朴公光一)이 그들의 선망이었다.공은 본관이 평양(平陽)으로, 대제학(大提學
화양동 어록〔華陽洞語錄〕 -손재집 제9권 / 어록(語錄) : 박광일(朴光一, 1655~1723)○ 을축년(1685, 숙종11) 2월에 화양정사(華陽精舍)에 가서 선생을 뵈었다. 선생께서 “해를 이어 방문하니 극히 다행이네만, 이번에는 또 무슨 까닭에 궁벽한 산속 적막한 곳을 찾아왔는가?”라고 하고, 이어 부모 모시고 지내기 편한지 물
선고 우헌 부군 광지〔先考寓軒府君壙誌〕 -손재집 제8권 / 묘지(墓誌) : 박광일(朴光一, 1655~1723)선부군의 휘는 상현(尙玄)이고, 자는 경초(景初)이며, 성은 박씨(朴氏)이고, 본관은 평양(平陽)이다. 본래 고려 시대 순천부원군(順天府院君) 휘 난봉(蘭鳳)의 후손이며, 우리 왕조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 시호 문숙공(
액호를 청하는 상소의 사연을 시행하지 않는 건 예조(禮曹)에서 상고(相考)하는 일. “광주(光州)의 생원(生員) 박상진(朴尙眞) 등이 올린 정문(呈文)에,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선생과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선생은 도덕과 학문이 온 세상의 종사(宗師)가 되는 만큼, 그분의 영향이 미친 곳에서는 모두가 그
박상(朴祥)ㆍ박순(朴淳)ㆍ기대승(奇大升)을 합향(合享)하는 것을 점이(粘移)하는 건- 현종(顯宗) 12년(1671) : 서원등록(書院謄錄)예조(禮曹)에서 상고(相考)하는 일. 이전에 접수한 본도(本道)의 관문(關文)에 점련(粘連)한 광주 목사(光州牧使)의 첩문(牒文)에, “본주(本州)에는 예로부터 눌재(訥齋)와 사암(思庵) 두 선생
박상(朴祥)과 박순(朴淳)을 위하여 광주(光州)에 있는 사우(祠宇)에 사액(賜額)을 청하는 호남(湖南) 선비들의 상소 사연을 방계(防啓)하는 건 - 서원등록(書院謄錄) : 현종(顯宗) 4년(1663) 생원(生員) 송해(宋垓) 등의 상소에 근거하여 예조(禮曹)에서 올린 계목(啓目)에, “계하(啓下) 문건은 점련(粘連)하였습니다. 이 상
정인서(60) 광주 서구문화원장이 지난 2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국문화원연합회 주관 '2020 지방문화원의 날' 행사에서 지방문화원 활성화 및 지역문화 진흥 등에 기여한 공로로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유공자 표창을 받았다.정 원장은 2014년 서구문화원장에 취임한 후 광주시민연극제, 광주알로하뮤직페스티벌,
기우용문현 에게 답함 신축년(1841, 헌종7) 2월〔答奇羽用 文鉉○辛丑二月〕 - 매산집 제16권 / 서(書) : 매산(梅山) 홍직필(洪直弼, 1776~1852)학궁(學宮)은 수선(首善)하는 곳이므로 사양함을 예(禮)로 여기는데, 사양함은 나이가 많은 이를 높이는 것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연향(宴享)할 때에
박상현(朴尙玄, 1629~1693) 묘갈명 병서 - 한수재선생문집 제28권 : 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 1641~1721) 남쪽 지방에 명망이 유림(儒林)에 막중하고 학문이 정미(精微)한 경지에 도달한 자가 있으니, 우헌 처사(寓軒處士) 박공(朴公)으로 휘는 상현(尙玄)이요 자는 경초(景初)인데, 숭정 기사년(1629, 인조7) 5월 9일에
신증동국여지승람 제35권 / 전라도(全羅道) 광산현(光山縣) 동쪽으로 창평현(昌平縣) 경계까지 18리, 남쪽으로 화순현(和順縣) 경계까지 21리, 남평현(南平縣) 경계까지 28리, 서쪽으로 나주(羅州) 경계까지 47리, 북쪽으로 진원현(珍原縣) 경계까지 21리이며, 서울까지의 거리는 7백 25리이다. 【건치연혁】 본래 백제의
박군(朴君) 상현(尙玄) 에게 답함 - 명재유고 제17권 윤증(尹拯)미발설(未發說)에 대해서는 주자와 율곡이 논한 바가 있어 아래에다 수록해 놓았으니, 이 두 조목을 자세히 음미해 본다면 기형(奇兄)과 그대가 한 말의 득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대체로 남헌(南軒)은 “중인(衆人)에게는 미발(未發)의 중(中)이 없다.
기자량(奇子亮) 정익(挺翼) 에게 답함 갑인년(1674, 현종15) 5월 16일 명재유고 제17권 윤증(尹拯)어깨를 나란히 한 것처럼 서로 바라보면서도 다른 세상을 사는 것처럼 서로 막혀서 살아왔으니, 어찌 그대의 편지가 멀리서 날아와 혼자 외롭게 살아가는 나를 크게 위로해 주리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송강 정철의 넷째아들 기암 정홍명의 <기옹만필畸翁漫筆> 鄭弘溟著 ●율곡 선생이 화담(花潭.서경덕)의 학문에 대해 말할 때에는, “기(氣)를 이(理)로 아는 병폐가 좀 있다.” 하고, 《대학》소주(小註) 중 진북계(陳北溪.송나라 학자)의 설명에 대해 반박하여 말하기를,“이(理)와 기(氣)는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