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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217건)

갈처사가 쓴 풍영정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풍영정의 유래에 관한 이야기.광주광역시 광산구 신창동에 있는 풍영정(風詠亭) 이름의 유래와 현판 글씨에 대한 이야기이다. 풍영정 현판의 글씨체가 다른 이유와 임진왜란 때 불에 탈 뻔하였으나 현판 글씨가 오리로 변해서 화재를 막았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198
청소년 복합시설 '광주 서구청소년꿈누리센터' 개관
청소년들이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는 공간이자 청소년을 위한 휴식·문화·교육 복합시설인 광주 서구청소년꿈누리센터(서구 상무오월로 23)가 지난 3일 개관했다.서구청소년꿈누리센터는 지하1층~지상4층(연면적 2002.65㎡) 규모로 댄스실, 밴드실, 북카페, 자치활동실, 요리실, 집단상담및심리검사실 등이 갖춰져 있으며
내가 살고 있는 동네나 마을 이름은 어디에서 왔지?
내가 살고 있는 동네나 마을 이름은 어디에서 왔지?11월 서구문화원 문화유산아카데미 조강봉 전 동강대 교수 초청 특강“옛날의 문화를 모르는 사람은 절대로 지명을 알 수 없습니다. 지명에는 그곳에 살아온 사람들의 생활이 묻어나오기 때문이죠.”광주 서구문화원이 2022년 문화유산아카데미의 대미를 장식한 특강은 28일
백벌남의 처가 올린 격쟁 원정을 징계하라
정조 11년 정미(1787)2월 6일(갑진)  형조가 격쟁(擊錚)한 사람들의 원정(原情)으로 아뢰었다. “광주(光州)의 고 조이(高召史)의 격쟁 원정에, ‘남편 백벌남(白伐男)이 지난해 9월에 고질적인 폐단 및 경주인(京主人) 김광택(金光澤)이 중간에서 폐단을 일으키는 죄를 대략 진달하였다가 멀리 유배되고 말았습니다. 특
동문선 제116권 / 뇌(誄); 채순희
동문선 제116권 / 뇌(誄)중서시랑 평장사 태자 소사 채공 뇌사(中書侍郞平章事太子少師蔡公誄詞)이규보(李奎報)대장부로 세상에 태어나서 벼슬이 재상에 이르고, 70이 되어서는 벼슬을 내놓고, 정신을 깨끗이하며, 천성을 수양하여 능히 타고난 수명을 다 누리며 일생을 착하게 살아간 이는 고금에서 구한다 하더라도, 많이
동계집 제4권 / 묘갈(墓碣); 임훈
갈천(葛川) 임 선생(林先生) 갈명(碣銘)생의 휘는 훈(薰)이요 자는 중성(仲成)이다. 그 선대는 은진현(恩津縣) 사람이다. 자이당(自怡堂)이라고 자호하였는데, 사람들은 갈천선생(葛川先生)이라고 불렀다. 고사옹(枯査翁)은 최후에 스스로 고친 호이다.고려조 태상박사(太常博士) 휘 성근(成槿)의 후예로, 우리 국조(國朝)에
농암집 제28권 / 신도비명(神道碑銘) ; 오두인
형조 판서 증 영의정 시호 충정공(忠貞公) 오공(吳公)의 신도비명 병서금상 15년 기사년(1689)에 중궁이 손위(遜位)하자 판서 양곡(陽谷) 오공 두인(吳公斗寅)이 참판 이공 세화(李公世華), 응교 박공 태보(朴公泰輔) 등 80여 인과 함께 대궐에 나아가 글을 올려 극간(極諫)을 하였는데, 오공이 실로 소두(疏頭)였다. 이에
대동야승- 난중잡록4 ; 권율이 병으로 죽었다
기해년 만력 27년, 선조 32년(1599년)○ 도원수 권율(權慄)이 병으로 죽었다. 그 뒤에 휘하의 여러 장병들이 행주산성에 비석을 세우고 이름을 〈행주대첩비(幸州大捷碑)〉라 하였는데 그 비문은 다음과 같다.“공이 세상을 떠나 이미 초빈(草殯)했을 적에 그의 친척으로 종군하던 사람이 나를 보고 울면서 말하기를, ‘공
대동야승-난중잡록2; 고종후 통문 보내다
10월 18일. 세 개의 해가 함께 나왔다. 국가가 함몰되고 임금이 파천하였으니, 변괴가 나오는 것이 괴이할 것도 없다.○ 전라 감사 권율이 수원 독성에 있으면서 행조(行朝)에 장계하니 임금이 찼던 칼을 풀어 전하여 보내 주며 말하기를, “모든 장수 중에 명령을 받지 않는 자가 있거든 이 칼로 처치하라.” 하다. 이때
기축록 속(己丑錄續) 성명 미상(1700년대)
기축록 속(己丑錄續) 성명 미상(1700년대)《기축록》에 이어 효종 8년 정유(丁酉 1657)로부터 숙종 28년(1702)까지 45년간에 일어났던 정개청(鄭介淸)의 서원 철훼를 두고 동서(東西) 양파간의 싸움을 기록한 일기이다.이 일기를 쓴 사람은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1700년대 전후에 생존하였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 외의 사
《고운집(孤雲集)》 해제(解題)
최치원의 저술과 고뇌, 그리고 역사 탐구 -1. 최치원의 생애와 저술신라 말의 격동기에 살았던 최치원은 여러 저술을 남겼다. 그의 저술은 재당 시절과 귀국한 뒤 관리로 재직하던 시절, 그리고 관직에서 물러난 뒤 해인사에 은거하던 시절 등 세 시기로 구분된다.1_ 가계와 출생최치원은 헌안왕(憲安王) 1년(857) 신라의 서
《고산유고(孤山遺稿)》 해제(解題)
1. 머리말이 책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의 시문집 《고산유고(孤山遺稿)》를 번역한 것이다.고산은 주지하듯이 일찍부터 국문학계의 주목을 받아 왔다. 특히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를 비롯한 일군의 시조(時調) 작품에서 보여 준 뛰어난 문학적 성취는, 그를 송강(松江) 정철(鄭澈,
국시소〔國是疏〕 선문대왕(宣文大王 효종) 9년(1658) 무술년 6월, 공이 고산(孤山)에 있을 때 지었다.
고산유고 제3권 상 / 소(疏) 삼가 아룁니다.신은 돌아갈 길은 머나먼데 질병이 바야흐로 극심하고, 떠나갈 마음은 다급한데 무더위가 바야흐로 혹독하여, 천리 길을 발섭(跋涉 산 넘고 물 건넘)할 계책을 세우지 못하고서, 아직도 체류하며 나그네 생활을 참고 있노라니, 심회(心懷)가 망연(茫然)해지면서 온갖 생각이 모
월봉서원(月峯書院) 묘정비명(廟庭碑銘) 병서 - 고봉전서(高峯全書) 보유 최근덕(崔根德)
월봉서원(月峯書院) 묘정비명(廟庭碑銘) 병서 - 고봉전서(高峯全書)  보유   최근덕(崔根德)조선조 명종ㆍ선조 연간에 문운(文運)이 빈빈(彬彬)하고 사류(士類)가 성(盛)하게 일어났다. 그러나 전대(前代)에 겪은 사화(士禍)의 남은 불씨가 아직도 척신(戚臣)과 간인(奸人) 사이에 남아 있어서 은밀히 선비를
《고봉집(高峯集)》 해제(解題) 2- 생애와 학문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논(論)을 씀1. 머리말이 책은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1527~1572)의 문집과 저술을 우리말로 번역하여 4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고봉집(高峯集)》은 1989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국역하여 펴낸 바 있다. 1970년에 간행된 석인본을 대본으로 한 기왕의 국역서
고봉 기대승 시장- 고봉집 부록 제1권
이식(李植) 택당(澤堂)공의 휘는 대승(大升), 자는 명언(明彦)이니 세상에서 고봉(高峯) 선생이라 칭하기도 하고 혹은 존재(存齋)라고도 칭한다. 기씨(奇氏)는 관향이 행주(幸州)인데, 행주는 지금 경기도 고양군(高陽郡)에 예속되어 있다. 선대는 고려 때에 현달하여 장상(將相)과 훈척(勳戚)을 배출한 문벌의 융성함이 국
고봉 기대승 행장- 고봉집 부록 제1권
정홍명(鄭弘溟) 기암(畸菴)선생의 휘는 대승(大升), 자는 명언(明彦), 성은 기씨(奇氏), 관향은 행주(幸州)이다. 행주에 고봉 속현(高峯屬縣)이 있어서 이 때문에 자호를 고봉(高峯)이라 하였다.기씨는 고려조에 무예(武藝)로 입신하여 장상(將相)을 지낸 이가 퍽 많았다. 조선조에 들어와 휘 면(勉)이 공조 전서(工曹典書)
고봉 기대승 선생 연보(高峯先生年譜) 〔목판본〕
세종(世宗) 가정(嘉靖) 6년 중종대왕(中宗大王) 22년○ 정해(1527) 11월 18일 임진 갑진시(甲辰時)에 선생은 광주(光州) 소고룡리(召古龍里) 송현동(松峴洞) 집에서 태어났다. -선생의 본관은 행주(幸州)이니, 지금의 고양군(高陽郡)이다. 대대로 서울에 살았다. 물재(勿齋) 선생 기진(奇進)이 아우 준(遵)과 함께 유학(遊學)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 우부승지(承政院右副承旨) 증(贈) 자헌대부(資憲大夫) 이조 판서(吏曹判書) 성공(成公) 묘지명
갈암집 제25권 / 묘지명(墓誌銘)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 1627~1704)성안의(1561~1629) 광주목사, 1611년(광해군 3)에 광주목사(光州牧使)가 되었으나, 소송 처리를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이에 영천(榮川)으로 돌아가 13년 동안을 한거하면서 일사(逸士)와 교유하였다.공은 휘가 안의(安義)이고 자는
대사헌 김공(金公)의 신도비명
간이집 제2권 / 신도비명(神道碑銘) 병서(幷序)국가가, 아조(我朝) 선조(先祖)의 계보(系譜)가 무함을 받은 채로 중국 조정의 전책(典冊)에 실려 있는 것과 관련하여, 이를 해명하면서 고치려고 노력해 온 것이 무려 2백 년이나 되었다. 그리하여 황제의 윤허를 이미 받기는 하였으나 이를 개정하여 다시 간행하는 일은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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