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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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현승 시비-눈물
    광주시 북구 무등산 원효사 계곡 도로변1977년다형(茶兄) 김현승 시비는 시비건립 추진위원회(위원장 범대순)에 의하여 1977년 6월26일 원효사 계곡 도로변에 세워졌으며 설계는 박춘상이 하고 비문의 글씨는 장전 하남호가 썼다.김현승은 1913년 4월 4일 평양에서 기독교 장로교 목사인 김창국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일곱살때인 1919년에 광주로 이사하여 생애의 대부분을 광주에서 보냈다. 광주 숭일중학교를 거쳐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두 모교에서 교사와 교수로 재직했으며 조선대에서도 부교수로 재직했다.  1934년 3월 25일 재학중인 숭실전문학교의 양주동 교수가 그의 처녀작품인 '쓸쓸한 겨울저녁이 올 때 당신들은', '아름다운 새벽은 우리들을 찾아옵니다'라는 시를 동아일보에 추천, 문단에 나오게 되었다. 1975년 재직중인 숭전대학교 채플시간에 기도하던중 지병인 고혈압으로 타계했다.눈물                             김현승더러는옥토(沃土)에 떨어지는 작은 생명이고저……흠도 티도,금가지 않은나의 전체(全體)는 오직 이뿐!더욱 값진 것으로드리라 하올 제,나의 가장 나아종 지닌 것도 오직 이뿐!아름다운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열매를 맺게 하신 당신은나의 웃음을 만드신 후에새로이 나의 눈물을 지어 주시다.
    2018-07-03 | NO.38
  • 김현승- 절대고독
    광주시 남구 양림동 225-13 2013년다형 김현승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시비가 2013년 남구 양림동 사직도서관 건너편 길에 세워졌다.시비는 '절대고독'이라는 시를 담았다.
    2018-12-05 | NO.37
  • 난고 김병연시비
    광주시 북구 청풍동 208(청풍쉼터 내)1978년김삿갓 시비는 석곡 저수지 옆에 조성된 청풍 쉼터에 삿갓을 상단에 조각하여 조성된 난고 김병연 蘭皐 金炳淵의 시비 표석이 있고 옆면의 시비에는 한시 ‘金剛山’과 건립위원과 협찬위원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전면: 蘭皐 金炳淵詩碑측면: 서기 1978년 10월22일 /蘭皐 金炳淵 시비 건립위원회 / 글 :陽川 許演 글씨 : 隸書大字 金忠顯, 경기도 양주에서 서기 1807년 3월 13일 金安根 公의 차남으로 명문 安東金氏 집안에서 태어났다. 자는 性深 號는 蘭皐 김삿갓 (金笠)은 그의 속칭이다. 서기 1811년 11월 홍경래 역란逆亂 당시 선생의 조부 김익순金益淳 公은 선천방어사宣川防禦使로 있었는데, 불의에 달려든 난군亂軍에게 항복降服한 탓으로 이듬해 3월 9일 복주伏誅를 당하고 그 일가는 조정으로부터 폐족廢族의 명이 내려졌다. 이때가 선생의 나이 6세 되던 해였는데 종복從僕 김성수金聖秀를 따라 형 병하炳河와 더불어 황해도 곡산으로 피신하였고 그곳에서 자라나며 수학하였다. 그 뒤 복주伏誅는 조부에게만 한하고 자손에는 미치지 않기로 명이 내려 선생은 부친 김안근金安根 公곁으로 돌아가 22세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나 폐족廢族의 자손임를 부끄러이 여기어 인간의 영달을 버리고 팔도 유랑의 길을 떠났다.  조부를 대신하여 속죄하는 뜻으로 머리에, 커다란 삿갓을 쓰고 短杖을 벗 삼아 오늘은 석양에 비끼는 산 그림자를 詠嘆하고 내일은 주막집에서 세상을 비웃으며 行雲流水와 같이 일생을 방랑 울분을 토로한 句句節節이 곧 파격적인 시요 해학문학의 걸작이었아. 이처럼 주옥같은 작품들이 口傳되고 애송되기에 김삿갓을 모르는 이가 없다. 끝내 불우한 시인으로 방방곡곡을 전전타가 서기 1863년 3월 29일 57세로 무등산록 同福에서 한 많은 세상을 한 점 구름처럼 떠났다. 이제 선생의 고혼孤魂을 위로하고 불후不朽의 금자탑을 기리기 위하여 듯 있는 이들이 정성을 모아 여기 시비를 세운다.許演 짓고 金忠顯 ․金哲根 쓰다* 난고 선생의 시비가 이곳 청풍 쉼터에 세워진 것은 말년에 선생의 본관인 아동(장동) 김씨 문중의 연고를 살펴서 세웠다고 한다. 금강산(金剛山, 김병연)松松栢栢巖巖廻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가 바위와 바위를 돌고 돌아水水山山處處奇 물과 물 산과 산이 곳곳마다 절경이네 아래 두 구절은 시비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이다..手長一尺可摩天 손이 한 자만 길었더라면 하늘을 만질 것이요 石轉千年難到地 돌은 천년을 굴러가도 평지에 가기 어렵겠네 위원: 김동규 김상진 김대진 김기한 송지영 심상우(중략) 김인규 박전성 등 72명碑陰: 건립위원회 - 명예위원장 고건高建, 위원장 박철朴澈협찬위원(申込順): 이환의, 노희원…설계감리: 신정채 / 시공: 한재근
    2018-10-22 | NO.36
  • 만귀정시사창립기념비
    일제강점기에 결성된 시회, 만귀정시사 당시 만귀정에서는 멋스러움을 한시로 읊으며 세상을 논하는 시회가 결성되었다. 1939년 송광세(宋光世)가 지은 <만귀정시사창립기념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 비문의 내용을 통해 1939년경 '만귀정시사(晩歸亭詩社)'라는 시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만귀정은 현재 광주광역시 문화재 자료 5호로 지정되어 있다. 당시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인해 당시 시인 묵객들이 찾아와 시를 짓고 서로의 흥취를 돋았던 장소였던 것이다. 다음은 비문에 새겨진 내용의 일부이다. "서석 서쪽에 만귀정이란 정자가 있다. 산과 물이 맑고 고우며 숲과 골짜기가 깊고 그윽한 곳으로 옛날 효우당(孝友堂) 장공(張公)이 노닐던 곳이다. 이 옛터에 정자(亭子)를 다시 일으킨 후손이 있으니 상열, 대섭, 안섭, 김정섭, 창섭 등이다. 지난해 가을에 박창환이 이 정자로부터 돌아와 나에게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설명하면서 결사(結社)의 뜻을 비치었다. 당시 시를 좋아 하던 선비로 박장주(朴璋柱), 이회춘(李會春), 김병권(金炳權), 박하형(朴夏炯), 조병희(趙秉熙), 이석휴(李奭休) 등이 있었다. 원근의 제현들과 상의하여 봄철에 한번 정도 시를 읊고 노니는 계획을 마련하니 이 시사의 조건일 뿐이다. 진나라의 난정(蘭亭)과 당나라의 향산(香山)을 방불케 하니, 그 사이 장씨의 제현들이 특별히 누정 앞에 비를 세워 기록하여, 이 시회의 전말을 후인들로 하여금 알게 하고자 한다."(중략) 위의 내용을 통해서 일제강점기인 1939년경에 시사가 어떤 취지로 결성되었는지, 또 구성원이 누구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적어도 일제강점기에 결성되어 활동한 시사임은 확실한 셈인데, 과연 당시 모임의 분위기가 어떠했을지 궁금해진다. 시기적으로 검열과 감시가 삼엄했을 것인데, 누가, 얼마나 그 울분을 한시로 자유롭게 표출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처한 신분에 따라 자신들의 여유로움만을 즐기고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암흑과 같던 일제강점기 시기를 오히려 즐겼던 부류도 없진 않았을 것이기에 많은 상상이 요구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또한 특수한 상황에 해당하는 하나의 문학 활동의 한 현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도 없진 않아 을 것이다.이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만귀정 시사에 참여한 여러 인물과 작품들을 검토해보는 일이 계속해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당시의 다른 지역의 시사와는 달리 별도로 편찬한 시집이 없어 많은 다양한 작품을 살펴볼 수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 후손에 의해 광주지역의 지방지와 개인문집 등에 흩어져 있는 몇몇 작품들을 모아 놓은 것이 있어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으나, 더 많은 작품이 있을 것으로 보여 계속적인 발굴 작업이 요구된다. 서성우 호남지방문헌연구소 연구원은 만귀정시사와 같이 20세기 호남지역 곳곳에서 결성된 시사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했다. 이 시사들에 대한 연구들이 당시의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다양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수집된 작품 중 몇 작품을 소개했다. 만귀정원운 晩歸亭原韻 - 장안섭(張安燮) 아둔하고 어리석어 현명치 못한 이내 몸 鈍質癡心體不明두어 서까래 초가집에 한 평생 늙어가리 數椽茅屋老生平찬 강 비 오는데 어부의 피리소리 들리고 一區漁笛寒江雨산 중턱 초동의 노래 예스런 달빛 맑구나 半嶺樵歌古月晴산을 본래 좋아할 뿐 속세 피한 게 아닌데 性本愛山非避世들만 애써 가는 중에 공명심도 벗어났구려 力能耕野可逃名이 땅 거닐어 보니 왜 그리 뒤늦게 왔는지 盤桓此地歸何晩자식 교육에 순탄한 집안이 내 심정이라네 敎子齊家是我情 봄은 늙지 않아 春不老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사방 녹음이 눈앞에 비끼는데 四面綠陰眼界斜두어 집 짙은 향기 기운도 좋구나 濃薰佳氣數三家나물 캐는 소녀여 이 봄 꽃 비녀에 여전하고 菜女花簪春不老목동의 풀피리라 그 소리 끝 간 데 없구나 牧兒萊笛渺無涯때마침 제비 소리 높은 들보에 싱그러운데 梁高時適新燕語울창한 숲 깃들 줄 아는꾀꼬리 노래까지 樹密止知黃鳥歌고개를 돌려 다시 봐도 모두 다 좋으니 回首更看盡相好섬돌 앞 방초도 짜 놓은 비단만 같구나 階前芳草織如紗
    2019-04-30 | NO.35
  • 문도채 -동반자
    광주시 동구 선교동 71, 너릿재공원 유아숲체험장
    2018-11-22 | NO.34
  • 문병란 - 호수
    광주시 동구 선교동 71, 너릿재공원 유아숲체험장
    2018-11-22 | NO.33
  • 박(태용)의관국재공자필시비
    광주시 남구 노대동 5271996년의관 국재 박태용의 자필시비가 병자년(1996)에 세워졌다. 박공의 자 박동주가 찬하고 한산 이전규가 글씨를 썼다.
    2018-06-10 | NO.32
  • 박노경 - 산난
    광주시 동구 선교동 71, 너릿재공원 유아숲체험장
    2018-11-22 | NO.31
  • 박봉우 '조선의 창호지'
    남구 양림동 108-101994년사직공원 내 광주 출신 박봉우(1934∼1970)의 ‘조선의 창호지’ 시비이다. 관리소에서 약 100미터 아래 배드민턴장 옆 절개진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조선의 창호지에눈물을 그릴 수 있다면.하늘만큼 한 사연을...눈물 흘리지 말고웃으며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하늘만큼 한 밤을...조선의 창호지에눈물을 그릴 수 있다면.이 시비는 1994년 2월 당시 광주시에서 건립했다.  조각은 정윤태, 글씨는 이돈흥이 맡았다.
    2018-06-21 | NO.30
  • 박상 시비- 깊은 산에 묻혀(山居詩)
    남구 사직길 49(사직공원)눌재 박상의 시비는 1994년 광주시에서 사직공원에 건립했다. 호남 시단의 시조로 숭배되는 눌재 박상의 시비에 조각된 시는 신숙주의 증손자인 조선시대 청백리였던 영천자靈川子 신잠申潛(1491~1554)의 시에 화답한 칠언절구 백수 중에서 하나이다. 신잠이 기묘사화로 파직되고, 1521년 신사무옥으로 장흥에 유배됐을 때의 일이다.揮淚佳花落滿庭 휘루가화낙만정 낙화는 뜰에 가득 눈물겹구나夜來風雨知多少 야래풍우지다소 밤사이 비바람이 얼마나 휘몰아쳤는지有時天變亦關情 유시천변역관정 천기 변할 때는 가슴이 조일래라 雖遁深山晦姓名 수둔심산회성명 깊은 산에 묻혀 이름 없이 산다 한들‘깊은 산에 묻혀[山居詩]’ 시비는 장전 하남호 선생이 글을 쓰고 조각가 김철수가 조각했다. 이 시는 기묘사화에 참사를 당한 사림들을 애통해 하며 쓴 시다.
    2018-05-25 | NO.29
  • 박형구 - 동구민의 노래
    광주시 동구 선교동 71, 너릿재공원 유아숲체험장
    2018-11-22 | NO.28
  • 박홍원 - 시민의 노래
    광주시 동구 선교동 71, 너릿재공원 유아숲체험장
    2018-11-22 | NO.27
  • 박홍원의 '아! 무등'
    광주시 북구 청풍동 209-5 청품쉼터 박홍원의 '아, 무등' 시비는 무등산 청풍쉼터에 있다.경산(鯨山) 박홍원(朴烘元, 1933~2000)은 전남 신안군 도초면 발매리 출신으로 1952년 목포사범학교 재학중 문학에 뜻을 두고 당시 조선대 문학과 교수였던 김현승 시인을 만나 본격적인 문학 수업을 하게 된다.  문학 잡지인 '현대문학'에 1959년 6월 시 '고행' 과 '밤'으로 초회 추천. 1960년 8월 시 '수난 이후' 로 2회 추천, 그리고 1962년 9월 시 '종언을 보며' 로 완료 추천을 받았다.그는 이후에 '구두'(현대문학, 1963.3), '술과 나와 오늘'(현대문학, 1963.11), '선인장의 역설'(현대문학, 1965.1) 등의 수작을 꾸준히 발표하여 시단에서의 위치를 굳혀 갔다. 문단에 얼굴을 내민 지 10년만인 1969년 9월 그는 첫 시집 "설원"(예문관)을 내놓았다. 이 시집에는 10년간의 노작 33편이 수록되어 있다.  1973년에 제17회 '전라남도 문화상(문화부문)'을 받았고, 1998년에 '신안군민의 상(교육 문화 부문)'을 받았다.  전남문인협회 회장,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문인협회이사, 한국현대시협회 중앙위원 등을 지내면서 한국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원탁시' 창립동인이며, '표현문학' 동인이다. 광주광역시의 '시민의 노래', '아! 무등'의 작사를 비롯하여 도초중·고교등 여러 학교의 교가 와 응원가 등을 작사했다.  영광 원자력 발전소 준공 기념탑, 광주·전남 경우회 충혼탑, 여천 돌산의 현충탑 등에 새긴 시문 등을 지었다.  또한 무등산 자락 제2수원지의 청풍 쉼터에 "아! 무등"의 노래시비와 지원동 화순터널의 시민공원에 '시민의 노래' 시비가 있다.  
    2018-10-22 | NO.26
  • 범대순 시비-무등산송
    광주시 동구 증심사길 71(운림동) 무등산 세계지질공원 탐방지원센터 옆2018년범대순 (1930∼2014) 시인은 생전에 무등산 1,100회, 서석대 160회를 오르 내렸다고 한다. 그의 산행이 단순한 횟수가 아닌 이야기이다. 그는 4계절을 끊임없이 무등산의 역사를 그 흔적으로 남겼다.그의 광주에 대해 사랑과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의문, 세계의 근원에 대한 깊은 사유는 고행의 산행에서 시작되었다. 무등산을 노래한 시만도 100여 편을 넘을 만큼 그의 무등산 사랑은 지극했다.자연석으로 세워진 비에는 우석 박신근의 글씨로 대표작인 ‘무등산 송'과 그의 모습을 암각형으로 새겼다. 범대순 ‘무등산송’ 우리가 무등산이 좋은 것은눈을 감아도 그 동서남북서서 바라보는 자리가 화순인 듯 담양인 듯광주 어디 서서 보아도 크고 넉넉함이며우리가 무등산이 좋은 것은춘하추동 계절 없이 넘어선언제나 붉은빛이 푸른빛이고옛날이나 지금이나 다만 자색이 꿈우리가 무등산이 좋은 것은알맞게 높고 알맞게 가난하고그 안에 수많은 장단과 고저역사가 바위가 되고 흙이 된 긴 이야기평생 한 번만이라도 원노니낮에도 별들이 내려와 노는너덜겅같이 밤에도 태양이 뜨는침묵이 바로 함성인 큰사람 같이
    2018-11-16 | NO.25
  • 서원웅- 무등산억새꽃
    광주시 동구 선교동 71, 너릿재공원 유아숲체험장
    2018-11-22 | NO.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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