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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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헌최공명구덕의추사비
    광주시 북구 생룡동 125-1(우치공원 주차장 맞은편)1964년이 죽헌최공명구덕의추사비(竹軒崔公命龜德義追思碑)는 최명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광주군 지산면 죽헌농계원 일동이 세웠다.
    2018-11-13 | NO.38
  • 죽헌최공명구영세추사비
    광주시 북구 생룡동 125-1(우치공원 주차장 맞은편)1964년이 죽헌최공명구영세추사비(竹軒崔公命龜永世追思碑)는 최명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화순군 동면 죽헌농계원 일동이 세웠다.
    2018-11-13 | NO.37
  • 지응현-붕남 지공응현 덕의기념비
    광주시 동구 서석로7번길 12-14 (수녕경로당)
    2018-12-17 | NO.36
  • 찰방김공붕래구폐영세불망비
    광주시 북구 우산동 514-21854년이는 찰방김공붕래구폐영세불망비(察訪金公朋來捄弊永世不忘碑)이다.  구 호전 인근 향토문화로와 독립로가 만나는 지점의 소공원에 김붕래영세불망비(金朋來永世不忘碑), 송택훈권학청덕거사비(宋宅薰勸學淸德去思碑) 2기가 함께 있다. 김붕래는 1813년(순조 13) 생으로 자는 익보(益甫)이며 본관은 풍산(豊山)이다.철종(哲宗) 3년(1852) 임자(壬子)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24위(34/39)였다. 찰방은 과거 공문서와 관수물자 등을 운송하던 교통·통신시설인 역(驛)의 총책임자를 말하며, 찰방비는 이들의 선정을 기록했다.광주 북구 우산동 주민자치위원회는 2003년 12일 옛 경양역터인 우산동 514-2번지 일대에 경양역 찰방비(察訪碑) 복원을 마무리했다. 이 사업은 북구 향토문화의 거리 입구 120㎡에 지난 57년 광주공원으로 옮겨진 찰방비 6기 가운데 2기(김붕래 불망비, 송택훈 거사비)와 말방 4개, 물확 1개를 설치한 것으로, 조경수를 함께 심어 소공원으로 꾸몄다.김붕래 불망비(不忘碑)는 1854년, 송택훈 거사비(去思碑)는 1860년에 세워진 호패형 석비로 각각 높이 127~148㎝, 너비 53~44㎝에 그들의 행적과 선정 등이 기록돼 있다.주민자치위는 지난 7월 찰방비 복원추진위를 구성, 주민들과 함께 사업비를 마련하고 찰방비 주인의 후손을 찾는 한편, 북구 아름다운마을만들기회에 맡겨 현지조사와 탁본·명문해설·역사고증 등을 거쳤다.
    2018-10-19 | NO.35
  • 찰방박공종형청덕선정비
    광주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광주공원內)1876년찰방박공종형청덕선정비(察訪朴公鍾瀅淸德善政碑)는 광주공원 비석군에 있다.찰방(察訪) 박종형(朴鍾瀅)의 선정비로 병자년(丙子年, 1876)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찰방은 조선시대 각 도의 역참(驛站)을 관리하던 종6품의 외관직으로 역리(驛吏)를 포함한 역민(驛民)의 관리, 역마 보급, 사신 접대 등을 총괄하는 직책이다. 비의 앞면에는 역참(驛站)을 은혜로 다스린 것에 대한 송축하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公治幷恩 郵安畜番 戶蠲結布 廩損休畓 莅三課績  蔽一無寃 石壽金秤 追歌銘言
    2018-06-11 | NO.34
  • 찰방송공규식애인선정비
    광주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광주공원內)찰방송공규식애인선정비(察訪宋公奎植愛人善政碑)는 북구 서방시장 상가에 있다가 광주공원 비석군으로 옮겼다.
    2018-07-03 | NO.33
  • 찰방송공택훈권학청덕거사비
    광주시 북구 우산동 514-21864년이 찰방 송공택훈 권학청덕거사비(察訪宋公宅薰勸學淸德去思碑)는 북구 서방시장 상가 부근에 있다가 광주시 북구 향토문화의 거리 입구 소공원으로 옮겼다.여산 송택훈은 1837년(헌종 3) 출생으로 안주(安州)에 거주했다. 부친은 송식언(宋植彦) , 조부는 송국렴(宋國濂) 이다. 1855년(철종 6) 6월 식년 병과에 8등으로 급제하여 1858년 2월 경양역 찰방으로 부임하여 주민들에게 선정을 베푼 찰방 송택훈을 기리는 공덕비이다. 그는 경양역 찰방으로 1860년 7월 6품으로 승진되었고  1864년 1월 예조정랑이 되고 1865년 6월 어천도찰방으로 제수되었다.1866년 12월 사헌부 장령, 1878년 12월 교서관 판교, 1881년에 병조 참의에 올랐다.북구 우산동 383번지(옛 동광 주조장) 일대에 경양역이 있었다. 전라도에 3곳밖에 없는 찰방 주재 역이 서방에 있었다. 경양역이 있던 서방은 간뎃골, 모롱골, 시낙골, 괴약골, 병문안, 잿모실, 한거리, 진고샅, 풍동 등 9골(谷)을 둔 광주읍성의 위성도시였으며 정보화 마을이었다.
    2018-07-03 | NO.32
  • 찰방은공성호영세불망비
    광주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광주공원內)경양 찰방은공성호영세불망비(察訪殷公成浩永世不忘碑)는 은성호를 기리는 비석으로 광주공원 비석군에 있다.비석 앞면에는 그를 기리는 싯구가 있다.氷糵其操 邸債首擧儒雅之治 黎首便宜捐俸捄弊 匪徒載石七郵普施 豊口是鐫후면  甲子 四月 日 『승정원일기』 고종 1년(1864년, 淸 穆宗 同治 3年, 日本 元治 1年) 1월 16일 기사에 보면 '이조, 포폄에서 성적이 나쁜 수령들을 파출하도록 아룀 " 제목으로 이종순(李鍾淳)이 … (중략) … 또 이조의 말로 아뢰기를,“(상략)경양 찰방(景陽察訪) 은성호(殷成浩)에 대해서는 ‘조사한 것이 혹 규례에 어긋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모두 ‘하고(下考)’에 두어야 마땅한데도 ‘중고(中考)’에 두었는 바, 엄명하게 고과한다는 뜻이 전혀 없습니다. 여섯 도의 감사를 모두 추고하여 경책(警責)시키고, 위에서 말한 여섯 고을의 수령과 한 역(驛)의 찰방은 모두 파출시키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한다고 전교하였다.
    2018-07-03 | NO.31
  • 찰방이공원기청덕선정비
    광주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광주공원內)1854년찰방 이원기 청덕선정비(察訪李元基淸德善政碑)는 광주공원 비석군에 있다.후면 갑인(1854년)철종 5년
    2018-06-13 | NO.30
  • 참봉제주양공기적비
    광주시 북구 문흥동 995-4(느티나무공원 내)1967년이 장사랑건원릉참봉제주양공기적비(壯仕郞健元陵參奉濟州梁公紀蹟碑)는 呂昌鉉 짓고 梁守根 쓰다.
    2018-11-13 | NO.29
  • 참봉최공찬문기사자혜산홍섭송덕비
    광주시 북구 거진길 48-4(용두동)1924년이 대자선가참봉최공찬문기사자혜산홍섭송덕비(大慈善家參奉崔公贊文其嗣子惠山弘燮頌德碑)는 용두동 거진마을에 있다. 최찬문과 최홍섭의 자선 행적을 의친왕 李堈 짓고 李明翊 쓰다.
    2018-11-13 | NO.28
  • 청신녀 금봉화조순임 공덕비
    광주시 북구 금곡동 846(원효사 아래 부도 및 비석군)1992년이 청신녀 금봉화조순임 공덕비(淸信女史錦奉華趙順任功德碑)는 금봉회원 일동 건립하다.
    2018-11-13 | NO.27
  • 청신녀이선근화공덕비
    광주시 동구 운림길 57-15(운림동) 세심정사2018년이 청신녀이선근화공덕비(청신녀이선근화공덕비)는 세심정사 내에 있다.
    2018-12-01 | NO.26
  • 청은김공창규공적비
    광주시 북구 청풍동 2801985년이 청은김공창규공적비(淸隱金公昌奎功績碑)는 鄭德采 짓고 쓰다.전면글씨 鄭炳璿
    2018-11-13 | NO.25
  • 최석규-은사 야은 최공석규 공적비
    서구 유촌동 374 인근은사야은최공석규공적비恩師野隱崔公錫圭功績碑는 최석규의 제자들이 글을 짓고 李容九이용구가 글씨를 썼다. 최석규(1902~?)의 본관은 탐진이며 일제강점기 때 한글이 폐지되고 삼엄한 경계 속에서도 서당을 건립하여 서창 지역은 물론 인근 지역의 문맹 퇴치와 지역문화 발전에 선봉장이 되었다.서창 지역의 마지막 훈장으로 일컫는 최석규의 제자들이 늦게나마 그 은혜에 보답하고 선생의 學導之功을 잊지 않기 위해 1977년(丁巳)에 이 공적비를 세웠다고 적고 있다. 서구 원마륵2길 11 원마륵마을 입구의 마륵동노인회관 건너편에 있다. 지금은 대형 빌딩을 신축 공사 중이어서 따로 보관되어 있지만 공사가 끝나면 새로운 자리에 세운다고 한다. 비문 뒤에는 그를 기리는 시가 있는 데 마륵마을에서 야은처사가 서당을 세우고 책을 통해 성인의 은덕을 가르쳤으나 일찍 돌아가셔 천추의 한이 남아 스승의 가르침이 오래도록 거울처럼 귀감이 되어 여러 문하생들이 달을 보듯 우러르는 마음을 갖겠다는 내용이다.
    2018-05-25 | NO.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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