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유산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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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이정
    서구 세하동 (세동마을) 영이정咏而亭은 겸와謙窩 김재호金在護의 정자로 자신이 지은 영이정기와 원운시가 전하고 있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광주읍지』(1924)와 광주향교의 『광주읍지』(1925)에는 서쪽 20리에 있다고 했다. 100여년 전에 지어진 정자였을 것으로 보인다.영이咏而는 논어 선진先進에 나오는데 처사들이 자연을 벗 삼아 인간사의 찌들게 하는 욕구를 욕기浴沂에서 벗어난다는 의미로 “늦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기수沂水에서 목욕하고[浴乎沂] 무우舞雩에서 바람 쐰 뒤에 노래하며 돌아오겠다[詠而歸]”는 증점曾點의 말에서 정한 것으로 보인다.그는 시문에 능했으며 화순 동면東面 사평리沙坪里 상사마을 사평천변에 있는 임대정원림臨對亭園林에서 열린 임대정시회臨對亭詩會에 참여해 남긴 시가 전하고 있다. 임대정臨對亭은 좌승지를 지낸 사애 민주현이 관직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1862년에 지은 전통적 정원형식의 별서 정자다. 청○서도○렴구 淸○徐到○簾鉤 맑은 바람 불어오니 발이 흔들리네좌간서산상기부 坐看西山爽氣浮 서산을 바라보니 밝은 기운 떴구려자석오생소한일 自惜吾生少閒日 우리 인생 한가한 날 적음이 아쉬운데우의객지사량추 尤宜客至巳凉秋 때마침 손님 이르니 가을이 서늘하구나야형운창화등안 野形雲漲禾登岸 구름 거둔 들판에 벼가 익어가는데오영천함로백주 午影天涵鷺白洲 낮이 가까운 하늘에 백로가 나는구나전진다감남공사 前塵多感南公事 풍진을 겪었던 남공南公 일이 생각나는데차지하년기비루 此地何年起比樓 어느 해 이곳에다 이 누정을 일으켰던고
    2018-05-23 | NO.12
  • 오로정
    서구 덕흥동 오로정五老亭은 조선환여승람(1938)에 노헌老軒 최성장崔性璋, 노암老菴 정재진鄭在鎭, 노와老窩 정인석程寅錫, 노재老齋 조정섭曺正燮, 노당老堂 유동석劉東錫 5인들의 소요처였다. 언제 지어진 것인지는 모르나 『조선환여승람』(1935)에 전하고 있다. 다섯 사람 호의 앞 글자를 다서 오로정이라 했다.오로정이 있었던 곳은 덕흥마을 곁을 흐르는 맑고 깊은 강물이 서구에서 아름다운 경치라는 의미로 덕흥홍등德興弘澄이라 하여 예전에는 서구5경西區五景 중 제1경으로 꼽았었다. 이런 경치를 보고 이들이 운을 맞춰 시 한 수씩을 읊었다.  노헌老軒 최성장崔性璋의 시는 강상고봉봉말정 江上孤峯峯末亭 오제노차총망형 吾儕老此摠㤀形 담농희청지시우 談農喜聽知時雨 기수동간비지성 祈壽同看比地星 초색청사인영도 草色晴沙人影渡 화음량석주흔성 花陰凉石酒痕醒 상산풍미유첨일 商山風味猶添一  각소요진타자청 却笑要津拖紫靑  노암老菴 정재진鄭在鎭의 시는강고야활전오정 岡高野闊寘吾亭 백리연운미엄형 百里煙雲未掩形 군국홍진미약해 郡國紅塵迷若海 왕인백장취경성 王人白髮聚經星 일장기국간승패 日長棋局看勝敗 화저곤상임취성 花底壼觴任醉醒 상망칠옹풍영처 相望柒翁風咏處 연강사백초청청 緣江沙白草靑靑 노와老窩 정인석程寅錫의 시는오가여력합위정 五家餘力合爲亭 휴수등임혼망형 携手登臨渾㤀形 기국수회소하일 棋局輸回消夏日 락전서리재신성 樂田鋤理載晨星 향산사업시성중 香山事業詩聲重 상락인연속기성 商雒因緣俗氣醒 승지우유인적호 勝地優遊人跡好 불착채팔간편청 不着採八簡編靑 노재老齋 조정섭曺正燮의 시는격강상대칠옹정 隔江相對柒翁亭 방초명사색색형 芳草明沙色色形 연영편동위필수 聯影騙同爲筆峀 조심병작취규성 照心倂作聚逵星 석두일탄조관장 石頭日綻朝觀壯 호선연명우수성 湖線烟鳴牛睡醒 기판오인어차로 器辦吾人於此老 세간무원안상청 世間無怨眼常靑 노당老堂 유동석劉東錫의 시는남국초생오로정 南國初生五老亭 연운초수화난형 烟雲草樹畵難形 장강여대귀황해 長江如帶歸黃海 서석당첨납서성 瑞石當簷納曙星 좌상일진난애착 座上一塵難礙着 세간숙양기소성 世間宿恙己蘇醒 고편불엄오인촉 孤扁不掩吾人躅 가여청산만절청 可與靑山萬劫靑
    2018-05-23 | NO.11
  • 오월루
    서구 내방로 152(쌍촌동)   광주에는 5월과 관련된 장소가 꽤나 많다. 그중 아파트 밀집지역이면서 관공서가 가득 들어찬 상무지구 안에는 5·18민주공원, 5·18자유공원, 5·18기념공원 등 공원 이름만 붙은 곳도 3곳이나 된다. 이중 5·18기념공원은 자그마한 언덕에 이런저런 기념조형물과 잔디밭이 넓게 자리하고 있다. 약 20만㎡에 이르는 이 언덕을 가리켜 누군가 여의산如意山이라 했다. 운천저수지를 건너 상무지구로 들어서면 바로 오른편에 무각사無覺寺라는 절이 있다. 그 절을 안고 있는 산이 바로 여의산이다. 산이라 하기엔 너무 낮으면서도 재미있는 산책 코스가 있다. 이 산의 정상 부근에는 500평의 소공원에 연면적 85평, 3층으로 된 오월루五月樓라는 8각 누각이 하나 있다. 지난 2000년에 만들어졌다.누각 입구에는 “5·18 민중항쟁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5·18기념공원 정상에 세운 전망대”라는 안내 입석이 “오월루에 올라 80년 5월 그 역사의 현장에서 산화하신 영령들을 기리고”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사업비는 8억원 넘게 들었다.오월루 입석 옆에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가 팻말로 남아있다.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 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오월루는 5월 영령들이 하늘로 돌아가는 누각인 듯하다. 3층 누각에서는 ‘무등의 푸른 날개 아래 민주의 도시 빛고을이 한 눈에 모여드는’ 것처럼 눈 아래에 펼쳐진다. 멀리 무등산이 어머니의 품처럼 자리한다. 뒤돌아보니 광주시청이 빌딩들 사이로 힐끗 보인다. 이처럼 산인 듯 아닌 듯 하는 여의산의 오월루에 오르니 광주를 즐길 수 있는 재미가 있다.
    2018-05-23 | NO.10
  • 운암정
    서구 유덕동광주시 서구 치평동과 쌍촌동 사이의 영산강 구간을 일컫는 극락강변은 오래전부터 주변 초등학생 소풍지역으로 유명하고, 도시민들의 주말 휴식처로서 이용되고 특히 낚시터를 찾는 외지인들이 늘고 있다.강변에 낚시터가 유명했으며 광주향교의 『광주지』(1964)에 따르면 운암雲岩 정평태丁平泰가 생전에 유유자적하며 계묘癸卯년(1903)에 세운 정자 운암정雲岩亭이 유덕동에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으나 사람들 사이에 이야기는 남아 있다.
    2018-05-23 | NO.9
  • 월호정
    서구 극락강변월호정月湖亭은 광주향교의 『광주지』(1964)에 따르면 서쪽 극락강변에 월호처사 최학崔㶅이 지냈던 곳으로 현와 고광선이 찬기를 남겼다. 그러나 지금은 그 위치를 가늠할 길이 없다.
    2018-05-23 | NO.8
  • 일신당
    서구 금화로 23(금호동)『광주읍지』(1924)에는 주의 서쪽 20리 거리에 일신당日新堂이 있다. 뒤로는 얕은 산이 둘러싼 고즈넉한 만호마을이었다. 개촌 때는 만호곡晩湖谷이라 불렀고 정자는 상당히 오래전에 지어졌다. 1827년 이 마을에 살던 당시의 의식있는 지식인 3성씨인 음성박씨 일산日山 박호언朴浩彦, 순천박씨 후조後造 박유현朴柔鉉, 전주이씨 심곡재心谷齋 이현문李顯文 등 3옹이 일신계日新契를 조직하고 후진을 가르친 서당이다. 이곳은 문도강학問道講學하는 유가이념을 구현하기 위하며 일대의 적지 않은 향촌의 규율과 생활질서를 담당한 향약의 장소이다. 6.25 민족상잔의 아픔을 겪으면서 많은 시련을 맞았다.제일 앞에 돈의당이란 무실 정자가 있다. 앞면 2칸 옆면 1칸의 작은 정자였으나 퇴락해 무너지기 직전이다. 그 뒤에 일신당이 있으나 모두 옛 영화를 잃은 채 존폐의 기로에 서 있었다. 일신당은 앞면 4칸 옆면 3칸에 내실이 있고 쪽마루에 팔작지붕으로 구성되었다. 현재는 무척 퇴락해 지금은 흉물로 방치되고 있는 상태다. 지금은 심곡재心谷齋라고 부르고 전주이씨 재각으로 사용하고 있다.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의 일신당기와 현와 고광선의 중수기가 비석으로 새겨져 있다. 위암猬菴 박성우朴性愚의 제액도 있었다. 1999년에 일신당보존위원회장 이달우李達宇를 중심으로 일신당육영공적비를 세우고 일신당지를 발간하였다.2017년 초까지 황폐화되어 무너지기 직전이었으나 2017년 중반 이후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2018-05-23 | NO.7
  • 주곡정
    서구 벽진동광주향교의 『광주지』(1964)에는 주곡정舟谷亭은 서구 벽진동에 진사 박치화朴致和가 늘그막에 유유자적하며 지낸 곳이다. 후손 박하선朴夏善이 중건하고 원운을 남겼다.
    2018-05-23 | NO.6
  • 주은정
    서구 벽진동옛 서창면 주곡리 벽진마을 산기슭에 정자 주은정舟隱亭이 있었다. 처사 김해 김만성金滿姓의 시음 공간으로 지어졌으나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원운과 사우들의 시가 전한다고 있다. 다만 정자 이름에서 배[舟]자를 사용했다는 것은 극락강의 오가는 배를 상징한 것으로 보여 강가에 위치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할 뿐 다른 정보를 알 수 없다.
    2018-05-23 | NO.5
  • 청심당 淸心堂
    광주읍지(1879, 1924)에는 주의 서남쪽 30리에 있는 데 집의 청심당 이조원(1433~1510)이 건립했다. 현재의 광주시 남구 구만산길 34, 광산이씨 상서공파의 여재각 옆에 있었다고 한다. 필문 이선제의 셋째아들이다. 아버지의 시묘를 마친 후 그 옆에 다시 이 당을 지어 그의 생활공간으로 활용한 건물이다. 이 당이 이처럼 유명하게 된 이유는 그의 규모가 웅장하여 세인의 이목을 놀랍게 해서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공명을 마다하고 오직 학문 연구와 자연관상에 몰두한 이조원의 독특한 행적이 있기 때문이다.  평소 은일자정의 산림처사로 자처한 그가 비록 성종조의 간곡한 소명에 의해 집의, 어사 등의 관직에 취임한 사실이 있었으나 얼마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그의 종적을 숨기었다. 이에 제봉 고경명은 청심당 옛터를 지나며 당시의 일을 회상하며[過淸心堂遺墟懷古]라는 시로 그를 기리기도 했다.필문 이선제의 손자인 이달선은 청심당기淸心堂記에서 “당의 이름을 청심이라 한 것은 이 ‘당’이 사람의 마음을 맑게 해주기 때문이 아니라 원래 맑은 마음을 가진 맑은 사람이 이 집을 지었기 때문에 이 집이 따라서 맑게 된 것이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맑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지은 집이기 때문에 그의 명칭을 ‘청심’이라 하였고 이 집의 당호일 뿐만아니라 이조원의 아호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의식있는 재야인사들이 들려 청심당 운을 따라[題淸心堂次韻] 시를 남기며 그의 행적을 따랐다. 영사정 최형한(1446∼1504)은 이렇게 읊었다.堂號淸心誰作主 집 이름은 청심인데 그 주인은 누구인고主人淸槪似氷槃 이 집 주인 곧은 기개 빙반처럼 맑았도다紅塵不到醉鄕闊 붉은 홍진 아니오니 술기운이 광활하고白氣自生虛室寒 참 기운이 돋아나니 빈 방이 시원하네天上月來邀李白 하늘 위에 달이 뜨니 이백을 맞이하고庭前雪壓臥袁安 빈 달 위에 눈 쌓이니 원안 遠安처럼 누웠도다霜臺憶得少年事 어사하던 소시때를 어렴풋이 생각하며時向囊中拂豸冠 주머니 속의 마패 치관 때때로 만져보네 청심당이선생유허비淸心堂李先生遺墟碑가 1957년 남구 원산동 대촌사거리와 포충사 사이 도로변에 세워졌다. 서흥 고당 김규태(1902~1966)가 비문을 지었다.
    2018-10-21 | NO.4
  • 청우당
    주의 서쪽 10리청우당淸友堂은 『광주읍지』(1924)에 주의 서쪽 10리 거리에 송병효宋炳孝가 건립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송병효는 이에 대한 많은 문적을 남겼고 월성月城 최영조崔永祚(1859~1927)의 기문과 김문제金文濟의 제액이 있다고 했다.
    2018-05-23 | NO.3
  • 풍암정
    서구 풍암신흥로50번길 48 (풍암동)해발 302m의 금당산金堂山은 남구 효덕동 관할 진월동과 서구 풍암동 경계에 있는 산이다. 금당산 서쪽 끝 서구 풍암동에 해당하는 곳에는 금당산의 주 물길이 흘렀다. 금당산 오르는 초입에 풍암저수지를 바라보는 곳에 풍암정楓巖亭이 자리하고 있다. 정자 아래에 약수터가 있어 이곳에서도 물길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자는 최근에 지어졌지만 오래전에도 지어졌을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금당산신사金堂山神祠가 현 남쪽 10리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금당金堂은 불교에서 본존불을 모신 집을 말한다. 산 바로 동남쪽 밑으로 광주에서 남평가는 길이 있었고, 옥천사玉泉寺가 위치한다. 금당산은 옥녀봉과 함께 풍수지리설에서 여성을 지칭하며, 음기가 드세다고 전한다. 옥천사는 이런 음기를 누르기 위해 지었다는 얘기가 있다.기대승, 고경명, 박순, 이이, 노사신, 박순 등과 교유했고, 임진왜란 당시 고경명, 김천일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키고 군대의 장비와 양식을 조달하는 의병으로 활동했던 회재 박광옥의 호를 딴 도로명인 회재로懷齋路가 풍암정 앞으로 이어지고 있고 서구 송풍로 42(풍암동)에는 그의 사당 운리사雲裏祠가 있다. 운리사는 2018년 6월 벽진서원으로 바뀐다.풍암동 운리마을은 마을 전체가 산으로 둘러싸여 마치 구름 속에 있는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박광옥의 선인인 음성박씨가 처음 들어와 터를 잡았다고 전해진다. 이 지역은 1991년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어 개발되어 1999년 대규모 아파트 밀집지역이 준공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2018-05-23 | NO.2
  • 호심정
    서구 운천로 165(쌍촌동)광주 운천호수를 서호西湖로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2011년 ‘서호’로 명명하고 기념식을 가졌으나 아직 공식적인 명칭은 운천저수지 또는 운천호수이다. 서호는 광주 서구에 있는 호수란 뜻에서 강원구 탁인석 등 서호를 아끼는 사람들이 모여 부른 것이다. 호수 안에 있는 정자의 현판이 없어 2015년 4월 은행나무로 만든 ‘西湖 湖心亭’이란 현판식을 가졌다. 이어 이들은 이곳을 서호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위해 2016년에는 서호西湖라는 비석을 건립하였다. 西湖라는 이름은 유명하여 중국에 36개나 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월남에도 서호를 본 따 만든 호수가 있다. 서호로 가장 유명한 곳은 중국 항주杭州의 서호이며, 우리나라는 수원에 있으며, 안산에서도 서호를 만들자고 한다.중국의 항주는 외국인이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선정되었으며, 남송南宋시대의 수도였다. 함평 출신 김철 선생이 이끌었던 임시정부가 있었고, 대각국사 의천이 세운 고려사高麗寺가 있다.항주의 서쪽으로 펼쳐진 서호는 천연 호수에 인공을 가미하였으며, 송나라시대 소동파가 만든 둑인 소제蘇堤와 당나라시대 백락천이 만든 백제白堤가 있다. 서호는 백락천이나 소동파로도 유명하지만, 특히 송나라 시인 임포林逋에 의해서 더욱 유명하다.송강 정철도 '관동별곡'에 "금강대 맨 윗층에 선학仙鶴이 새끼 치니, 춘풍 옥적성玉笛聲에 첫잠을 깨었던지, 호의현상縞衣玄裳이 반공半空에 솟아 뜨니, 서호 옛 주인을 반겨서 넘노닌 듯"이라는 시구에도 서호를 언급한다. 이처럼 서호는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 일본, 월남 등 한자문화권에서 널리 알려진 이름이다.강원구 한중문화교류회 중앙회장은 “서호를 주변을 조금 더 확대하고 매일 밤 보게 되는 분수 쇼는 더 아름답게 만들면 많은 시민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 중에 중국인들이 좋아 할 것이며, 서호를 문학공원으로 만들고 탁광무선생의 경렴정을 만들면 광주의 명소가 될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2018-05-23 |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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