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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귀락와 歸樂窩

광산구


귀락와는 18세기를 살다간 귀락와歸樂窩 유광천柳匡天(1732~1799)의 서재 겸 학문을 연구하는 공간이었다. 1732년에 광주 오호리梧湖里에서 부친 사복시정司僕寺正 양기공兩棄公 유휘소柳輝韶와 모친 함평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증조부는 나옹懶翁 유익서柳益瑞, 조부는 생원 유지채柳之采에 광산에 살았고, 외조부는 진사 이숙빈李淑馪이다.

유광천의 손자는 조선 영조 때의 문장가인 유진한柳振漢(1711~1791)으로 자는 중백重伯. 호는 만화당晩華堂이다. 1753년에 호남 지방을 유람하면서 보고 들은 판소리를 한시 <춘향가>로 옮기는 등 시로 이름이 높았으나 벼슬길에는 오르지 않았다. 저서에 만화집晩華集≫이 있다.

7세에 이미 글을 읽기 시작하였고, 8세 때에 벌써 시문을 지을 줄 알아 눈이 내리는 광경을 보고 백설이 광야를 뒤덮으니, 뭇 새들 무얼 먹고 사나?’[白雪蔽廣野, 衆鳥何食生]라고 하니 많은 어르신들이 덕이 있는 말이다.”라고 칭찬해 마지않았다.

22세에 부친상을 치른 2년 후 순창 백방산栢芳山 아래의 사촌社村으로 옮겨 살게 된다. 이는 살아생전 부친의 뜻을 따른 것으로 양기당은 일찍이 이르기를 사촌의 골짜기는 산이 험하고 들에 면해 있어서 임천이 그윽하니 이원李愿의 반곡盤谷에 견줄만하다. 내가 마땅히 복거하여 여생을 보내리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25세 때 광산구 월봉서원에서 공부하였는데, 이때 많은 친구들과 교유했다. 28세 때에 별시 갑과에 급제하는데, 이때 교리 심이지沈履之가 동료들에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호남의 재자才子13세에 벌써 문장을 지을 줄 알았다.”라고 하니, 그 후 이름이 서울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장령掌令을 거쳐 경성 판관鏡城判官에 제수되었고, 헌납獻納.사간司諫에 이어 1796(정조 20) 승지承旨를 역임했다.

그 후 59세 때에 귀락와라는 거실을 지어 보내다 서울로 상경하여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치다가 179968세를 일기를 생을 마감한다. 묘지는 장성 군북郡北 오동촌梧桐村 뒤 언덕에 있다. 묘갈명墓碣銘은 이조판서 이조원李肇源이 짓고, 행장行狀은 정기鄭琦가 지었다.

저서는 1935년에 간행된 시문집 <귀락와집歸樂窩集> 168책의 석판본이 있다. 유광천의 5세손 유영희(柳永禧)가 연보를 작성하고, 6세손인 유병구(柳秉九)와 유병희(柳秉熙)가 편집·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유병구와 유병희의 발문이 있다.

존재存齋 위백규魏伯珪의 문집인 <존재집存齋集>2412책인데 권21에 존재 위백규의 귀락와 서문이 있다. 택호인 歸樂의 의미를 나가버린 마음’[放心]추스려 되돌아오게 하는 것’[收而反之]에서 얻어지는 즐거움이라는 의미이다. 어떤 것보다도 큰 즐거움이라는 의미를 지닌다고 풀이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살인사건 등 특수한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지역의 사또가 가장 먼저 현장에 달려가야 했다. 그러므로 평산부사이자 초검관인 유광천은 사건 접수를 받자마자 곧바로 사체가있는 장옹암 마을로 달려갔다. 유광천의 검시보고서에는 당시의 상황이 자세하게 적혀있다.

시체는 이춘대의 방에서 동으로는 벽까지 48, 서쪽으로는 45, 남쪽으로는 2, 북쪽으로는 55촌이다. 방 안이 좁아 시체를 마음대로 조사하기 어려우므로 마당으로 끌어내 판자 위에 놓고 차례로 옷을 벗겼다. (중략) 알몸을 자세히 살펴보니 대략 23~24세의 중간 몸집의 남자로 키는 주척으로 79촌이고 두발은 흐트러졌는데 25촌이었다. 두 눈을 감고 입은 약간 벌리고 코에서 피가 흘러 나왔는데 전신의 살빛이 누런색이고 배는 팽창하지 않았고 구타 등의 상처도 없었으므로 약물사고로 추측되었다. 독을 먹었는지 의심스러워 은비녀를항문에 집어넣었더니 금방 검은색으로 변하였다. 변을 채취하여 가열했더니 흰색의 소금 결정 등이 나타났다. 간수를 마신 것이 틀림없었다. 증거 확보를 위해 양성한 집의 곳간을 뒤졌더니 두부를 만들려고 만들어 둔 간수병이 발견되었다. 그 옆에 간수를 담아 마셨는지 사발 하나가 놓여 있었다. 사망 원인은 간수를 마시고 죽은 복로치사服鹵致死가 분명하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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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Ⅰ 인물과 문헌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Ⅱ 문화유적 광주남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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