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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 (213건)

포로수용소 탈출작전
포로수용소하면 먼저 거제도를 떠올립니다. 대명사처럼 거제도가 언급되지만 사실 광주에도 포로수용소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시민도 많지 않습니다. 6.25한국전쟁 중에는 광주에 포로수용소를 두 군데 두었지요. 동구 학동의 전남대병원 뒤편에 있었던 중앙포로수용소와 상무대 일원에 있었던 상무대포로수용소가 그곳입
주역각시
서구 매월동 회산懷山마을 출생으로 선조가 ‘호남의 충의신’이라 극찬했던 임진왜란 때의 공신 회재懷齋 박광옥朴光玉(1526~1592) 선생에게는 영특한 따님이 있었어요. 어려서부터 사서삼경四書三經을 통달하고 동물 소리까지 알아듣는, 총명한 재주를 지녔지요. 그 따님의 나이 과년(여자 나이 15.16세 때를 이름)이 되어
어느 청백리 이야기
청백리淸白吏 이야기는 역사상 청빈한 관리로부터 비롯되곤 하지요. 전라도사全羅道事로 새로 부임해온 조공趙公의 이야기입니다. 조공은 청백리와 무척 연관이 돼 있습니다. 눌재 박상의 후임으로 부임한 조공은 나이에 비해 성품이 칼날같이 예리하고 엄격해 일체의 부조리와 결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눌재와 닮
지응현
지응현池應鉉(1869~1959)은 농업만이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믿고 농업학교 건립, 농업 투자 등 근대 전라도 농업의 좌표를 세운 인물이다.본관은 충주이며 자는 형숙亨淑, 호는 붕남鵬南이다. 기우만奇宇萬(1846~1916)의 항일의거 때 군량을 조달하였고, 병천사를 세웠다. 1934년 응세농도학원을 설립하여 교육에
서창나루
서구 서창동 603-2 일대서창나루는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에 있었다. 현재 서창교라는 교량이 있었던 일대이다. 조선시대의 기록에 극락진이라 했던 나루가 바로 서창나루를 말한다.극락진은 현재 광주~송정리를 잇는 도로인 광송도로가 지나는‘극락교’라는 다리 때문에 극락교 자리에 극락진이 있었을 것이란 혼동을 일으
덕흥나루
덕흥나루는 광주광역시 서구 유덕동 덕흥마을에 있었다. 덕흥마을이 들어선 언덕은 전형적인 도상구릉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주변 지역의 암석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대부분 풍화침식으로 들이 되었음에도 이곳만은 그것을 견뎌내고 여전히 언덕 형태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영락없이 산처럼 보이기에 사람들이
현재 서구의 다리
다리가 놓여 지기 위해서는 천川이나 강을 건너는 길이 있어야 한다. 서구에는 영산강과 광주천, 서창천이 있고, 전평호수에서 발원하여 서창천과 합류하는 내도 있다. 따라서 영산강과 광주천, 서창천을 건너는 길에는 크고 작은 많은 다리가 놓여 있다. 다리는 새로운 길이 나면서 놓여 지기도 하지만, 하천이 복개되거나
백마제
서구 세하동백마산 자락 아래 보물처럼 자리 잡고 있는 백마제는 동하마을 뒤에 위치하고 있다. 백마제로 가는 길은 동하마을을 한참 지나 백마산 자락까지 가야 만날 수 있다. 백마제에서 자연스럽게 흘러 마을을 돌아 나오는 실개천과 도랑도 있다. 실개천과 도랑에는 다슬기류가 살고 있고 주변에는 습지생물인 갈대와
백일산
서구 화정동‘친일 잔재’라는 이유로 논란이 됐던 ‘백일산’이 여전히 명칭 변경 없이 ‘백일산’ 으로 불리고 있다. 1990년대 초반 상무대 이전 계획이 수립되는 과정에서 지금의 화정4동에 ‘백일택지개발지구’ 도시 조성사업이 진행되면서 이 주변에 들어서는 도로, 학교, 공원 등에 백일초등학교, 백일로(학생독립로), 백일어
눌재집 목판각/유형문화재 제16호(1990.11.15.)
북구 용봉동 1004-4 광주시립민속박물관 보관 중눌재訥齋 박상朴祥(1474∼1530) 선생의 시문집의 목판각이다. 원래는 박상의 출생지인 서구 서창동 절골마을의 송호영당에 영정과 함께 보관되어 있었으나 송호영당을 1728년에 광산구 소촌동으로 이전 건립하면서 옮겼다가 현재는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눌재집訥齋集』은
개산송당
서구 매월동 회산마을43세 때 개산 남쪽의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기 위해 방죽을 막았다. 방죽 위에 수월당水月堂을 짓고 이 정자에서 고봉 기대승과 같이 성리학을 논했다. 그는 당대를 함께 산 광주 출신의 고봉 기대승(1527~1572)과는 소년 시절부터 절친이었다. 고봉은 1년 아래였지만 젊은 시절부터 도의지교道義之交
광주를 이끌어온 광주의 중심
서구의 이름과 연혁 1973년 7월 1일 대통령령으로 구제區制 실시에 따라 남부·서부·지산출장소를 통합하여 45개 동으로 구성된 전라남도 광주시 서구가 신설되었다. 남부출장소의 사·구·양·월산·농성·백운 등 14개 동, 서부출장소의 유·누문·북·임·상무 등 15개 동, 지산출장소의 본촌·우치·삼소 등 16개 동을 합해 광
선사시대부터 21세기의 광주까지
선사시대광주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출토된 유적, 유물을 통해 어느 정도 추정이 가능하다. 상무 신도심을 개발하면서 확인된 인근의 서구 치평동 구석기 유적은 12만5천년 전까지 올라갈 수 있는 삶의 흔적임이 확인되었다. 이 지역의 구석기 문화는 뗀석기로 대표된다. 이 뗀석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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