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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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느 청백리 이야기

청백리淸白吏 이야기는 역사상 청빈한 관리로부터 비롯되곤 하지요. 전라도사全羅道事로 새로 부임해온 조공趙公의 이야기입니다. 조공은 청백리와 무척 연관이 돼 있습니다. 눌재 박상의 후임으로 부임한 조공은 나이에 비해 성품이 칼날같이 예리하고 엄격해 일체의 부조리와 결코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눌재와 닮았다 할 수 있겠지요.

조공이 부임했을 무렵 광주 고을은 흉흉한 소문이 돌았어요. "오늘은 동헌 뜰 은행나무 가지에 공방工房 아전의 목 하나가 걸렸고, 내일은 뉘 목이 대롱거릴까." 이렇다 보니 관아 안은 말할 것도 없고, 민가에까지 밤중에 불이 꺼진 것처럼 으스스한 찬 기운만이 감돌았지요..

이처럼 부조리를 걷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그에게는 이 지방 유일의 지기知己이자 말동무인 한의사 정소죽鄭小竹, 그리고 이런 저런 심부름과 뒷바라지를 해주는 계집종 연옥蓮玉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조공은 늦어지는 정소죽을 기다리면서 계집종 연옥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조공은 연옥에게 "서울로 가고 싶지 않냐"고 묻습니다. 물어보는 저의를 알아채지 못한 연옥은 조공의 물음에 간단하게 "" 하고 대답했지요. 조공은 "음 그럴 테지" 하며 섭섭한 여운을 남기며 조용히 가라앉은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옳아 가고 싶을 게다. 교활하고 간사한 수전노들만 우굴거리는 이곳 관아官衙, 도둑과 거러지를 합쳐서 둘로 나눈 것 같은 그런 놈만 있는 내 주위에서 하루가 급하다 떠나고 싶을 거야."

조공은 독백처럼 이렇게 내뱉고 침통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습니다. 연옥 또한 그 말에 대한 대답은 안했지만 그런 자(탐관오리)들에 사정없이 철퇴를 내리고 있는 사또 마님이 그지없이 좋고 자랑스러웠어요.

조공이 이처럼 정소죽을 기다리는 데는 보이는 것, 들리는 것이 모두 언짢고 거슬리는 것 뿐인데 정소죽 단 한 사람만 예외로 소통이 됐기 때문이지요.

조공이 "왜 이렇게 늦어?"라고 묻자 정소죽은 "용무가 별로 긴치 않은 것 같아서요. 의사는 환자가 더 중하지 원님의 말상대 같은 건 그 다음 일이 아닙니까?" 하며 웃지도 않고 스스럼없는 말대꾸를 늘어놓습니다.

곧 조촐한 주안상이 나오고 연옥의 시중으로 단 두 사람만의 술자리가 벌어졌지요. "이건 함평에서만 나는 백어白魚인데 이 귀한 것을 어떻게 구하셨지요? 이러한 진선珍膳을 늘 상미嘗味하신다니과연 원님벼슬이 좋긴 좋군요. 이것도 남도에 오신 덕분 아닙니까?"

정소죽은 충청도 태생으로 극도의 이 지방 혐오증에 걸린 듯 싶은 조 도사를 어르는 말투로 말했어요. "하긴 이런 싱싱한 백어는 임금님도 잘 못 잡수는 귀한 생선이지!. 생선만은 이곳 것도 좋거든"

"어찌 생선뿐인가요. 인걸人傑은 또 어떻구요? 이 고장 출신 박눌재(눌재 박상) 박사암(사암 박순) 기고봉(고봉 기대승) 어디 더 세어볼까요? 밑천이 딸린가?"

"허허!, 이 사람 또 향토 자랑이 시작되는구먼. 의술은 변변치 못하면서 보학譜學만은 제법이거든 핫"

이렇게 해서 거리낌 없는 정담이 오가는 가운데 정소죽은 요즘 수하 이속吏屬에 대한 추죄追罪가 너무 가엄苛嚴하다는 항간의 소문을 있는 그대로 간언諫言을 했지요. 조 사또의 노여움과 꾸지람까지를 각오한 마음으로 부터의 충언이었습니다.

그러나 조공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두 눈을 지그시 감고 한동안 말이 없었지요. 조공이 서울에서 착임하던 날, 그러니까 석 달 전의 일이었어요. 선례에 따라 많은 관속官屬들이 장성 경계까지 마중을 나갔었습니다.

가을철 좀 차가운 날씨에 검은 무명배 고의적삼에 관복을 걸친 신관 사또의 너무나 검소한 옷차림에 마중 나온 이속吏屬들은 대경실색을 했지요. 값진 비단으로 감싼 자기네들의 사치스런 복색이 너무도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라 했습니다. 가마에서 내린 조 사또는 앞에 늘어선 수하 이속들에게 즉석 훈시를 했어요.

"이처럼 먼 곳까지 마중을 나와 주어서 고맙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 그런데 한 가지 미리 일러둘 것은 빙공영사憑公營私로 사복私腹을 채우거나 무고한 백성을 괴롭히는 일이 있으면 나는 결단코 용서치 않는다. 이 지방의 아전들은 대개 치부가 대단하다고 들었는데이렇게까지 사치스럽게 잘 입고 지내는 줄은 미처 몰랐다. 어쩐지 오늘부터 내 자신이 무슨 광대기생오라비의 우두머리라도 된 것 같구나."

훈시라기보다는 지독한 야유와 통갈(으름짱)이 곁든 일종의 폭탄선언이었지요. 조공은 신임 초부터 기강을 세우기 위한 대수술을 거침없이 단행했습니다. 그것은 비단 수하 아전들에게만 그치지 않고 지방세도가나 양반들에게까지 미치는 아주 엄정하고도 철저한 것이었어요. 조금이라도 법을 어기고 비리, 부정을 저지른 자가 있으면 지위 고하나 반상班常을 가리지 안고 가차 없이 엄벌로 다스려 나갔지요.

그는 조상 대대로 높은 벼슬을 지낸, 손꼽히는 양반이었지만 놀고먹는 양반이라는 자들을 몹시 혐오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무위도식으로 애잔한 백성들의 등이나 쳐서 호의호식하는 지방토호들을 오장이 뒤틀리도록 미웠했지요. 도임 후 3개월 동안 수하 이속을 포함해 그런 자들을 잡아 족치고 물고를 냈습니다. 그동안 죽어서 효수梟首(목을 베어 나무 같은 데에 매닮)된 자의 수효만 해도 열 명을 넘겼던 것입니다.

그 중에는 시정 무뢰배들과 어울려 투전판(도박판)이나 벌리고 부녀자를 희롱, 강간하는 행패를 일삼던 전직 고관의 자제가 두 사람이나 끼어 있었구요.

정소죽을 상대로 밤늦도록 술잔을 나눈 조공은 아무리 마셔도 취기는 돌지 않고 얼굴은 더욱 창백해져만 갔지요. 조공은 "소죽 자네 눌재 박상 선생이 이곳 도사都事로 계실 때 나주 사는 우부리를 쳐 죽인 그 일화를 잘 알지?"라고 물었습니다.

정소죽이 "알구 말구요, 그런데요?"라고 대답했지요.

사실 조공은 눌재 선생을 구했다고 하는 그 고양이를 낮에 잠깐 조는 사이에 꿈속에 보게 됩니다. 그것도 장성 갈재에서요. 근데 그 고양이는 조공을 보자 바로 산위로 달아나버렸습니다.

조공은 그 오묘한 꿈 이야기를 한 뒤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습니다. 한동안 침묵하다가 "술맛이 쓰게 느껴지는 건 어쩔 때 그런 걸까? 의사인 자넨 그 이유를 알고 있지 않는가?"라고 묻자 정 소죽은 "술은 본래가 쓴 게 아닙니까, 그게 정상이죠, 반대로 달게 느낄 때는 미각기관에 이상이 있는 거구요, 우리 그리 되기 전에 그만 납배拉杯를 하시지요"라고 제안했지요.

조공은 "자네씨와 마지막 별배別杯(이별의 순간에 나누는 술잔)가 이렇게좀 미련이 남지만 그만두지"라고 말했습니다.

손에 든 술잔을 비우고 섭섭한 눈빛으로 천장을 쳐다봤다 지그시 감은 조공의 눈에 배인 눈물이 양 볼을 적시고 방바닥에 굴러 떨어졌습니다.

소죽은 그 같은 조공의 거동에서 중대하고 불길한 뭔가를 직감했지요. 굳세고 담대한 그에게 여간해서는 그 같은 거동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그 까닭을 물을 처지도 아니었어요.

한참 후 조공은 결연한 말투로 "내일 서울에서 귀한 손님 한분이 날 찾아 내려오시네. 아마도 약사발을 들고 말일세. 내가 그동안 너무 많이 사람을 죽였거든" 하고 호탕하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정색을 하며 "정공, 내 저승에 가서도 자네씨와의 깊은 정리만은 두고두고 잊지 않겠어! 그런데 한 가지 연옥이 그 아이를 곡 자네씨 힘으로 무사히 서울로 보내주시게. 이것만이 나의 간절한 부탁일세"라고 말했지요.

순간 정소죽은 두 손을 모아 방바닥에 엎드리고, 옆방에서는 계집종 연옥이의 처절한 오열이 터져 나왔습니다.


청백리淸白吏는 관리 가운데 최고로 청렴한 관리를 말한다. 오직 백성과 나라를 위해 일할 뿐 사리사욕을 챙기거나 부정부패와는 담쌓고 사는 깨끗한 관리를 지칭한다. 하지만 청백리의 사표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간신배들로부터 모함을 당해 단죄에 처해진 청백리들이 있었다는 것은 그 시대가 얼마만큼 부패했고, 부조리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청백리의 실천은 모든 시대의 숙제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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