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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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야승- 남중잡록3 ; 김덕령이 옥에서 죽다

병신년 만력 24년, 선조 29년(1596년)당학(唐瘧)이 전국에 전염되어 사람마다 앓지 않는 이가 없었다.

7월 충청도 홍산(鴻山)에 사는 역적 이몽학(李夢鶴)의 군사가 일어났다. 이몽학은 본시 흉하고 교활한 무리로서 처음에 편비(褊裨)가 되어 종군하였다가 국사가 어렵고 위태한 것을 알고 감히 하늘을 쏠 꾀를 내어 동료 한현(韓玄) 등과 가만히 반역을 도모하여 도당을 모았다. 이때에 백성들이 난리와 온갖 침노에 곤궁해졌다가 한 번 풍문을 듣자 따르는 자가 바람에 풀 쓰러지듯 하여 수일이 못 되어 군사가 만여 명이 되었다. 6일에 나아가 임천(林川)과 홍산을 함락시키고, 그 길로 청양(靑陽)ㆍ정산(定山) 등 여섯 고을을 함락시켰다. 임천 군수 박진국(朴振國)이 아전들과 함께 포로가 되어 늘 적중에 머물렀다. 이때 이시언(李時言)이 본도 병사(兵使)로서 군사를 발하여 잡으려 하다가 관군이 두 번이나 무너졌다. 이에 원수에게 위급함을 보고하니 권율이 전주에 있다가 곧 전라 감사로 하여금 군사를 전주에 모이게 하였다.
○ 이몽학이 홍주(洪州)를 포위하니 목사 홍가신(洪可臣)이 굳게 지켜 막아 싸우니, 이몽학이 수일 동안 성을 공격하다가 들어가지 못하고 물러나면서 말하기를, “만약 한현이 오면 목사의 머리를 기 끝에 달 것이다.” 하였다. 덕산(德山)길로 향하면서 도처에 거짓말로 꾀기를, “읍내나 촌에 사는 백성들은 편안히 있고 동하지 말라. 이번 거사는 남아 있는 백성을 수화(水火) 가운데서 구제하려는 것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장군 김덕령(金德齡)과 영천 군수 홍계남(洪季男) 등은 다 우리와 공모되었으니, 마땅히 군사를 거느리고 와서 함께 서울로 향하리라.” 하였다. 이름 드러난 사람들을 거짓 끌어대는 것은 저희들 군사가 믿을 데가 있다는 것을 보이려 함이니, 음흉하고 교활한 꾀가 불측하다.
12일 도원수 권율이 전라 감사 박홍로(朴弘老)와 모든 장수와 군사를 거느리고 여산(礪山)을 거쳐 이산(尼山)으로 향하였다. 권율이 길에서 적세가 매우 치성함을 듣고 충용장군(忠勇將軍) 김덕령에게 명령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오게 하고, 또 군관을 영남 여러 진(鎭)에 나누어 보내어 항복한 왜병을 수합하여 거느리고 오게 하였다. 이때에 남원 판관 김유(金騮)는 이미 갈리고 이덕회(李德恢)가 대신하였는데, 이에 이르러 군사를 거느리고 따라와 토벌하였다.
○ 적병이 서울로 간다고 큰소리를 치니 서울이 술렁거리고 두려워하고, 진위(振威)ㆍ수원(水原) 땅에서는 사람들이 모두 짐을 꾸려 가지고 있었다. 이때에 반군이 지나는 곳마다 밭을 매던 자는 호미를 들고, 행상(行商)하던 자는 지팡이를 들고 분주히 즐겨 따르지 않는 자가 없었다. 아! 이것이 어찌 그 본심일까?
○ 임천 군수가 적중에서 나와서 원수에게 고하기를, “서산 군수 이충길(李忠吉)이 그의 동생 3명을 거느리고 몰래 역당에게 붙어서 왕래하면서 서로 돕는다.” 하므로, 권율이 본도 감사로 하여금 비밀리에 이충길을 잡아서 공주에 가두었다.
○ 권율이 호남 군사로 하여금 나아가 석성(石城)에 주둔하도록 하였는데, 전주 판관 □□이 척후장(斥候將)으로서 먼저 들어가 적을 정탐하였다. 판관의 아병(牙兵) 윤계(尹誡)가 장사 10여 명을 모집하여 밤에 적의 진중에 들어가서 총통을 연달아 쏘며 큰소리로 외치니, 적도들이 크게 놀라 떠들었다. 윤계가 외치기를, “도원수와 전라 감사와 충용장군이 각기 군사와 말 수만을 거느리고 이미 이 땅에 도착하였으니 내일은 마땅히 소굴을 무찔러 죽여 남김이 없게 할 것이다. 너희 적들 가운데는 아마 협박에 어쩔 수 없이 따른 자가 많을 것이니, 만약 적장을 베어 가지고 와서 항복하면 몰사하는 화를 면할 수 있으리라.” 하였더니, 적의 무리들이 들어 알고는 다투어 칼을 가지고 장막 가운데 돌입하여 이몽학을 누운 자리에서 베어 죽이고 일시에 무너져 흩어졌다. 한현이 군사 수천 명을 거느리고 홍주 땅에 주둔하였는데, 이시언이 본주의 목사 홍가신과 진군하여 치니 적병이 패하여 달아나고, 한현은 생포되어 군중(軍中)에서 베었다. 충청도가 다 평정되었다. 그 뒤 33년 을사년에 홍가신 등 4인을 정난공신(靖亂功臣)으로 녹(錄)하였다.
○ 충용장군 김덕령을 잡아다가 국문하였다. 처음에 역적 이몽학이 잡혀 죽은 뒤에 문서를 수색하여 보니, 김ㆍ최ㆍ홍 삼성(三姓)이 있었다. 한현이 생포를 당하자 원수가 물으니, 공술하기를, “김덕령ㆍ최담령ㆍ홍계남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곽재우(郭再佑)ㆍ고언백(高彦伯)도 다 우리의 심복이다.” 하였으므로, 권율이 곧 갖추어 아뢰고, 군관을 나누어 보내어 김덕령 등을 체포하게 하였다. 이때에 김덕령이 역적을 토벌하라는 원수의 명령을 받고 진주로부터 운봉(雲峯)에 도착하였다. 충청도가 평정되었다는 것을 듣고는 원수에게 휴가를 청하여 광주(光州)에 갔다 오려 하였으나 권율이 허락하지 않으므로, 김덕령이 본진으로 돌아왔다가 곧 진주 옥에 잡혀 갇히었다. 임금이 원수의 계를 보고 조정의 신하에게 의논하게 하니, 어떤 이는 말하기를, “김덕령은 용기와 힘이 뛰어나 소홀히 할 수 없으니, 사람을 체찰부에 보내어 일이 있다고 핑계하여 덕령을 불러와서 그 자리에서 사로잡는 것이 편리하겠습니다.” 하고, 어떤 이는, “그것은 불가합니다. 김덕령은 일개 미친 자이니 염려할 것이 못됩니다. 하물며 간사한 꾀를 써서야 어찌 아랫사람을 통제하겠습니까? 법대로 선전관과 금부도사를 보내어 잡아옴이 마땅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선전관은 무인이라 위임하여 보낼 수 없으니, 근신(近臣)을 보내라.” 하고, 승지(承旨) 서성(徐渻) 등을 보내어 선전관과 도사를 거느리고 가서 김덕령을 잡게 하였더니, 당도한즉 덕령이 옥에 갇힌 지 며칠이 된 상태였다. 27일에 서성 등이 김덕령을 잡아서 남원을 경유하여 서울에 이르러 옥에 가두고 국문하였다. 곽재우 등도 또한 잡혀서 서울에 왔다가 얼마 안 되어 석방되어 진으로 돌아갔다.

8월 24일 충용익호장군(忠勇翼虎將軍) 김덕령이 옥에서 죽었다. 김덕령이 전에는 비록 죄가 있었으나 이번에는 죄가 아니었으므로 잡히는 날에 원통하게 여기는 이가 많았으나, 당국자들이 모두 시기하여 하나도 구(救)하는 이가 없어서, 어떤 이는 모함하기를, “김덕령이 사람 죽이기를 삼[麻] 베듯 하였으니 죄를 용서할 수 없고, 또 반역할 골상(骨相)이니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이다.” 하고, 또 몰래 옥리(獄吏)를 사주하여 속히 죽이도록 하였다. 옥중에 있은 지 무릇 20여 일에 형벌로 문초하기 여섯 번에 다리뼈가 이미 부러졌으나 그래도 능히 무릎으로 걸었고, 볼기에 곤장을 때렸으나 목숨은 오히려 붙어 있어 동정이 평상시와 같았다. 조용히 스스로 변명하기를, “신이 만약 다른 뜻을 품었다면 어찌 당초에 원수의 명령을 받고 운봉까지 도착하였으며, 또 명령을 받고는 군사를 거느리고 진으로 돌아갔겠습니까? 다만 신이 만번 죽어 용서받지 못할 죄가 있는 것은 계사년에 자모(慈母)가 죽었는데, 3년상의 애통을 잊고 원수를 갚으려고 분발하여 상복을 벗고 칼을 들고 일어나서 여러 해 종군하여도 조그마한 공도 세우지 못하여 충성도 펴지 못하고 효도에도 어기었으니, 죄가 이에 이르니 만번 죽어도 용서받기 어렵습니다. 구구한 속마음은 천지가 굽어 보시나이다. 신은 지금 목숨이 다 되어 가니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마는 다만 원하옵건대 죄 없는 최담령(崔聃齡)은 죽이지 마옵소서.”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김덕령이 형장(刑杖)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니, 참으로 적(賊)이로다.” 하고, 옥중에서 문초받기 위하여 대궐 뜰에 출입할 적에 그가 힘을 부릴까 의심하여 큰 나무에다 묶어서 옹위하여 다니게 하더니 이에 이르러 죽었다. 김덕령이 군사를 일으킨 지 3년에 이름이 중국과 오랑캐 지역에 가득 찼었다. 전에 영남에 있을 때에 손으로 범 두 마리를 때려 잡아서 왜인에게 자랑하여 팔았다. 온 나라 사람들이 그를 의지하여 안심하였고, 왜놈도 또한 겁내어 항상 스스로 계엄하여 경계를 지키고 감히 침범하지 못하였는데, 국운이 불행하여 죄가 아닌데 죽였도다. 하늘이 그에게 수년의 수명을 더 주었더라면 정유년의 적이 어찌 전라ㆍ충청도에 쳐들어 올 수 있었으랴. 당시에 뜻 있는 이는 개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 뒤에 뒤떨어졌던 왜적이 듣고는 그 진위(眞僞)를 알고자 하여 원수에게 통지하여 충용장군을 보기를 요청하니, 원수는, “집에 돌아가 상(喪)을 마친다.”고 답하였다. 그가 죽은 것을 자세히 알고는 모든 적추(賊酋)들이 술을 마시며 서로 축하하고 날뛰며, 기운을 내기를, “전라ㆍ충청도에는 걱정이 없다.” 하였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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