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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서정기(石犀亭記) - 목은문고 제5권

석서정기(石犀亭記) - 목은문고 제5권 : 목은(牧隱) 이색(李穡, 1328~1396)

광주(光州)의 지세(地勢)를 보면, 삼면이 모두 큰 산으로 둘러싸인 가운데 오직 북쪽만이 평탄하게 멀리 터져 있다. 그리고 남산(南山)의 계곡에서 두 개의 물줄기가 흘러나오는데, 그 물의 근원이 또 멀기만 하다. 따라서 이 두 개의 물줄기가 합류하면 그 형세가 더욱 커질 것 또한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리하여 매년 한여름철이 되어 일단 장마가 들기만 하면 그 급류가 미친 듯이 질주하며 맹렬하게 쏟아져 내리는 바람에 가옥을 무너뜨리고 전답을 할퀴는 등 백성에게 피해를 끼치는 점이 적지 않았다. 그러니 이 고을을 다스리는 자가 어찌 이 점을 크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남산 아래에 예전부터 분수원(分水院)이 있어 왔는데, 이는 옛사람들이 물의 형세를 완화시킬 목적으로 설치해 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끝내 물의 흐름을 양분(兩分)하는 효과를 보지 못하였으므로, 두 개의 물이 세차게 흘러 내려와 마주치는 지점에다 돌을 쌓아 성을 만들고는 물의 흐름을 조금 서쪽으로 돌렸다가 북쪽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였다. 그러자 물이 자연히 지세를 따라 북쪽의 평탄한 지역으로 천천히 흘러가게 되면서 백성이 피해를 받는 일도 없어지게 되었다.

이에 예전에 물이 흐르던 길목에 정자를 세우고 그 중앙을 거점으로 하여 보(洑)의 물을 양분해서 끌어들이니, 물이 정자의 사면을 에워싼 것이 흡사 벽수(辟水 벽옹(辟雍))의 체제처럼 되었다. 이와 함께 정자의 앞뒤에다 흙을 쌓아서 자그마한 섬을 조성한 뒤에, 그 두 곳에 나무와 꽃을 심어 놓고는 부교(浮橋)를 설치하여 드나들도록 하였다.

그래서 그 안에 들어앉아서 노래라도 읊조리노라면 마치 바다에 배를 타고 나가서 운무(雲霧) 자욱한 파도 속에 뭇 섬들이 출몰하는 것을 보는 것과 같았으니, 그 즐거움이 참으로 어떠하였겠는가.

회홀(回鶻)의 설천용(偰天用)이 남쪽을 유람할 적에 그 정자 위에까지 올라갔다가 서울로 돌아와서는 목사(牧使)인 김후(金侯)의 글을 보여 주며 정자의 이름과 기문을 부탁하기에, 내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위대한 우(禹) 임금이 치수(治水)를 했던 자취가 《서경(書經)》 우공(禹貢) 한 편(篇)에 수록되어 있는데, 요컨대 물의 형세를 따라서 물길을 인도한 것이라고 하겠다. 그 뒤에 진(秦)나라 효문왕(孝文王)이 이빙(李氷)을 촉(蜀) 땅의 태수(太守)로 임명하자, 이빙이 석서(石犀 돌로 조각한 물소)를 만들어서 수재(水災)를 진정시킨 일이 있었다.

그런데 후위(後魏)의 역도원(酈道元)이 지은 《수경주(水經注)》를 보면, “석서가 이미 이빙의 옛것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후대에 물의 이해(利害)를 말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빙을 일컫고 있다.”고 하였으니, 이를 통해서 이빙과 같은 사람을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하겠다.

이 때문에 두 공부(杜工部 두보(杜甫))가 이에 대한 노래를 지어 부르기를 “원기가 항상 조화되게 만들 수만 있다면, 홍수가 멋대로 병들게 하는 일을 절로 면할 수 있으리라. 어떡하면 장사에게 하늘의 벼리를 잡게 하여 수토를 다시 평정하고 물소를 사라지게 할까.[但見元氣常調和 自免洪濤恣凋瘵 安得壯士提天綱 再平水土犀奔茫]”라고 하였던 것이다.

대개 원기(元氣)를 조화시키고 수토(水土)를 평정하는 일은 이제 삼왕(二帝三王)과 같은 분들의 사업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이제 삼왕의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정사를 행하려고 하는 노력은 후세에도 원래 있었던 바로서 잠시라도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이 시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또 이치에 닿지도 않는 황당한 설을 찾아서 경국제민(經國濟民)의 원대한 계책으로 삼으려 한다고 했고 보면, 두 공부의 마음이 어떠했는지를 또한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비록 그렇긴 하지만, 공자(孔子)는 일찍이 이르기를 “작은 기예(技藝)라 하더라도 반드시 볼 만한 점이 있게 마련이다.[雖小道 必有可觀]”고 하였다. 돌을 가지고 물을 막아 낼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어리석은 남자나 여자라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거니와, 거기에다 물소의 형상을 새겨 넣는 것은 필시 나름대로의 이치가 들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포박자(抱朴子)》라는 책에 “물소뿔에다 고기 모양을 새겨서 입에 물고 물속에 들어가면 물길이 석 자쯤 열린다.”고 했고 보면, 물소라는 물건으로 수재(水災)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 또한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하겠다.

그러니 또 더군다나 산의 뼈라고 할 암석에다 물을 물리치는 물소의 모양을 새겨 놓는다면, 물이 이를 피해 갈 것은 필연적인 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물이 이미 피할 줄을 알고 있는 데다가 다시 그 물을 아래로 유도한다면, 조금도 막힘없이 시원스럽게 쏟아져 내리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날마다 텅 빈 광활한 지역으로 흘러 내려가 넘실거리면서 바다에 이른 뒤에야 그치게 한다면, 다시 또 물 걱정을 할 것이 뭐가 있겠으며 주민들이 안정을 찾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춘추(春秋)》에서 이 정자에 대해 한 마디로 평하더라도 당연히 폄례(貶例)를 따르지는 않으리라고 여겨진다.

내가 그래서 이 정자의 이름을 석서(石犀)로 정한 다음에 두 공부(杜工部)의 ‘석서행(石犀行)’을 취하여 그 근본적인 의미를 밝혔고, 다시 《포박자》의 설을 가져다가 증거로 삼은 뒤에 《춘추》의 필법으로 단안(斷案)을 내렸다. 그리하여 이 정자를 지은 목적이 수재를 예방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려는 데에 있지 한갓 노닐면서 관람하는 장소를 제공하려는 데에 있지 않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려고 하였다.

그러니 이 정자에 오른 사람이 정자의 이름을 고찰하고 그 의미를 생각한다면, 김후(金侯)에 대한 존경심이 반드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김후의 이름은 상(賞)이다. 재부(宰府)의 지인(知印)과 헌사(憲司)의 장령(掌令)을 지냈으며, 정사를 행함에 있어 청렴하고 유능하다는 이름을 얻었다.


[주-D001] 진(秦)나라 …… 있었다 : 

《사기(史記)》 권29 하거서(河渠書)에 “촉(蜀) 땅의 태수 이빙(李氷)이 이퇴(離堆)를 굴착하여 말수(沫水)의 피해를 제거했다.”는 기록이 있고, 진(晉)나라 상거(常璩)가 지은 《화양국지(華陽國志)》 촉지(蜀志)에 “진(秦) 효문왕(孝文王)이 이빙을 촉 땅의 태수로 임명하자, 이빙이 석서(石犀) 다섯 마리를 만들어서 물귀신을 제압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주-D002] 원기가 …… 할까 : 
《두소릉시집(杜少陵詩集)》 권10 〈석서행(石犀行)〉 끝 부분에 나오는 내용이다.
[주-D003] 사람들이 …… 했고 보면 : 
위에 인용한 시의 바로 앞부분에 “선왕께서 만드신 법도야말로 모두 바른길인 걸, 이치에 닿지도 않는 황당한 설을 어찌 꾀할 수 있으리오. 아 너 다섯 마리 물소 따위는 경국제민의 길이 못 되니, 깨어져 단지 저 강물에 떠내려가도 좋으리라.[先王作法皆正道 詭怪何得參人謀 嗟爾五犀不經濟 缺訛只與長川逝]”라는 내용이 나온다.
[주-D004] 작은 …… 마련이다 : 
《논어(論語)》 자장(子張)에 나오는 공자의 제자 자하(子夏)의 말인데, 목은이 공자의 말로 착간한 듯하다.
[주-D005] 물소뿔에다 …… 열린다 : 
《연감유함(淵鑑類函)》 권430 서(犀)에 “물소뿔 한 자 이상짜리를 구해서 거기에 물고기 모양을 새긴 다음 입에다 물고 물속에 들어가면, 항상 사방 석 자 정도로 물길이 트이기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있다.[得其角一尺以上 刻爲魚 而銜以入水 水上爲開方三尺 可得息氣]”는 《포박자》의 글이 인용되어 있다.
[주-D006] 그러고 보면 …… 여겨진다 : 
일자포폄(一字褒貶)의 춘추필법(春秋筆法)으로 논한다 하더라도, 토목공사 일반에 대해서 부정적인 평[貶例]을 가한 것과는 달리, 이 정자를 세운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褒例]를 내릴 것이라는 말이다.

*<동문선>에 실린 내용과 같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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