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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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석서정기 - 동문선 제75권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석서정은 고적(古跡)으로 소개되고 있다. ‘고을의 남쪽 2리에 있었다’고 설명하며, 고려후기 문인 이색(李穡, 1328~1396)이 남긴 ‘석서정기(石犀亭記)’를 실었다. 14세기에 지어진 이 글을 보면, 설천용(偰天用)이라는 위구르 사신이 우리나라 남쪽을 여행하다 광주에도 왔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 때 석서정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후 이색에게 정자의 이름과 기문을 청하자, 이색은 ‘이 정자를 지은 것이 수재를 막기 위함이지 놀고 관람함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며, ‘석서(石犀)’라는 이름을 지은 경위를 밝히고 있다.

과거 이렇게 명성이 높았던 석서정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제작된 1530년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석서정의 존립 기간은 채 200년이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이색의 석서정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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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서정기 - 동문선 제75권 : 이색
광주(光州) 읍됨이 동, 남, 서 3방면은 모두 큰 산으로 되어 있되, 유독 북면만이 평탄히 멀리 트여 있으며, 남산의 계곡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둘이 있는데 물의 근원이 또한 멀다. 이러한 까닭에 합류하게 되면 그 형세가 더 클 것은 가히 알 수 있는 일이다. 매년 한 여름에 장마가 들게 되면 세차게 흐르는 급류가 사납게 쏟아져 나와 가옥을 파괴하고 전답을 깎아 가는 등 백성들의 피해됨이 적지 않았으니, 고을의 장(長)이 된 자가 어찌 크게 우려하지 않으리오.

남산 아래에 분수원(分水院)을 둔 것은 옛 사람이 그 물의 형세를 감쇄(減殺)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마침내 나누지 못했던 것이다. 이리하여 두 개의 물이 부딪치는 곳에 돌을 쌓아 성을 만들어, 물결로 하여금 방향을 조금 서쪽으로 돌려 북으로 흐르게 하니, 지세(地勢)가 북으로 내려간지라 물이 천천히 흘러 백성의 피해가 이제야 끊기게 된 것이다.

이에 옛 물길 위에 정자를 짓고 그 한 중간을 거점으로 봇물을 양쪽으로 흐르게 하니, 사면으로 정자를 두른 것이 마치 벽수(璧水)와 같은 체제가 되었다. 정자의 전후에 흙을 모아 작은 섬을 만들어 꽃나무를 심고, 두 군데에 부교(浮橋)를 놓아 출입하게 하고는 그 가운데 앉아 휘파람을 불며 시도 읊으니, 마치 뗏목을 타고 바닷속에 앉아 많은 섬들이 안개와 파도 사이로 출몰하는 것을 보는 것 같으니,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회홀(回鶻, 위구르) 설천용(偰天用)이 남방을 유람할 적에 그 정자 위에 노닌 바 있었는데 서울로 돌아와서 목사(牧使) 김후(金侯)의 서신으로써 정자의 이름과 기문을 청해 왔다. 나는 말하기를, “우(禹)가 치수(治水)한 것이 우공(禹貢. ‘서경(書經)’의 편명) 한 편에 나타나 있으나, 대개 물의 형세를 따라 인도했고 진(秦) 나라의 효문황(孝文王)이 이빙(李冰)을 임용하여 촉(蜀) 땅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이빙이 돌로 물소를 만들어 물의 재해를 진압한 바 있다.

역도원(酈道元)이 ‘수경(水經)’을 편찬함에 있어서는 그 돌물소가 이미 이빙이 만든 옛것이 아니었으나, 뒤에 물의 이해(利害)를 말하는 자는 반드시 이빙을 칭송한다 하니, 이것으로 이빙의 마음쓴 것을 구하여 보면 가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두공부(杜工部 두보를 두공부라 한다) 가행(歌行)을 지었으니 이르기를,

但見元氣常調和 원기만 항상 조화됨을 볼 수 있다면
自免坡濤恣調瘵 자연히 파도의 피해는 면하리라
安得壯士堤天堈 어찌하면 장사를 얻어 천강을 끌어다가
再平水土犀奔茫 다시 수토를 다스려 돌물소를 없앨꼬

한 것이다. 대개 원기를 조화시키고 수토를 다스리는 것은 이제(二帝 요·순)와 삼황(三王 우·탕·문왕 )의 일이었고, 이제 삼황의 마음의 정치는 후세에 고유(固有)한 바로 일찍이 잠시라도 없지 못할 일이다. 그러나 반드시 괴상하고 정도에 벗어나는 말을 구하여 경제의 요원한 시책으로 삼는다면 두공부의 마음도 또한 엿볼 수 있다 하겠다.

비록 그러하나 공자(孔子)는 일찍이 말하기를, “비록 조그마한 도(道)라 해도 반드시 볼 만한 것이 있다” 하였거니와, 돌이 물을 진압하는 사실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들이라도 다 같이 아는 바이요, 물소의 형상을 만든 것도 반드시 그 이치가 있을 것이다. ‘포박자(抱朴子)’의 글에 이르기를, “물소를 조각하여 어함(魚銜)을 만들어 물에 넣으니 물이 석 자(尺)나 갈라졌다”는 것을 보면, 물소란 것이 가히 수재(水災)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다. 하물며 돌은 산의 뼈가 되고 물소는 또 물을 물리치는 것이니, 물을 이것으로 피할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물도 이미 피할 줄 알고 또 아래로 인도하니, 지체 없이 흘러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날로 비고 넓은 땅으로 향하여 도도히 흘러 바다에 이른 뒤에야 말 것이니, 물의 환란이 어디로 좇아 다시 일며 읍의 주민들이 무엇으로 인하여 불안을 느끼리오. 이 정자를 지은 것을 쓰는 것은 마땅히 폄(貶)하는 예(例)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돌물소로써 그 정자를 이름하고, 두공부의 돌물소의 행위를 취하여 근본으로 삼으며, 또 ‘포박자’를 증거로 삼아 ‘춘추(春秋)’의 법으로 단정하여 뒷사람으로 하여금 이 정자를 지음이 수재를 막기 위함이며, 백성의 삶을 편안하게 하기 위함이요, 한갓 놀고 관람함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게 하노라.

이 정자에 오르는 자는 그 이름을 고증하고 뜻을 생각하면, 반드시 수령에게 경의가 일어날 것이다. 수령의 이름은 상(賞)이며, 재부(宰府)의 지인(知印)과 헌사(憲司)의 장령을 역임한 바 있으며, 지방 행정에 있어 청령하고 능력 있는 행정가로 이름이 있다.

光之州理 三方皆大山 獨北面平遠 而南山之谷 出水者二 水之來又遠 是以 合流則其勢之益大也可知矣 每年盛夏 雨霖旣作 狂奔猛射 破屋宅 齧田壟 爲民害不小 爲之長者 寧不重爲之慮乎 南山之下 置分水院 古人所以殺水勢也 而卒莫之分 於是 二水走衝之地 積石爲城 使水小西而北流 地勢北下 水順其性 民之害斯絶矣 迺作亭於水之故道 正據其中 分引洑流 繞亭四面 如辟水之制 亭之前後 累土爲嶼 樹花木凡二所 浮橋以出入 坐嘯其中 如乘桴于海 而群島之出沒於煙濤雲浪之間 信乎其可樂也 回鶻偰天用之南游也 得至其上 旣還京 以牧使金侯之書 求名與記 予曰 大禹理水 見於禹貢一篇 大抵順其勢而導之耳。秦孝文王用李氷守蜀 氷作石犀壓水災 及酈道元撰水經 石犀已非永舊 然後之言水利害者 必稱氷云 因以求氷之心 可見已 是以 杜工部作歌行 乃曰 但見元氣常調和 自免波濤恣彫瘵 安得壯士提天綱 再平水土犀奔茫 蓋調元氣 平水土 二帝三王之事 而二帝三王之心之政 後世之所固有 而未嘗頃刻之亡也 然必求詭怪不經之說 以爲經濟久遠之策 則工部之心 又可見已 雖然 孔子嘗曰 雖小道 必有可觀 石之鎭水 愚夫愚婦之所共知也 象之以犀 必有其理 抱朴子之書 言曰 刻犀爲魚銜入水 水開三尺 則犀之爲物 可以避水災彰彰明矣 又況石爲山骨 犀又郤水 水於是避之必矣 水旣知避 又導之下 霈然無少齟齬 日趨於空曠之地 滔滔汨汨 至于海而後已 水患何從而復作 邑居何從而不寧 書作斯亭 當不在貶例矣 故以石犀名其亭 而取工部石犀行爲之本 又以抱朴子爲之證 而斷之以春秋之法 俾後之人知亭之作 禦水災也 奠民居也 非徒爲游觀設也 登是亭者 考名思義 其必起敬於金侯矣 侯名賞 知印宰府 掌令憲司 爲政有廉能名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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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Ⅱ 문화유적 광주남구문화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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