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공간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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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눌재로
    눌재로는 남구 압촌동에서 서구 서창동과 벽진동에 걸쳐 있는 도로다. 눌재로는 남구 압촌동 지석제 부근의 회재로와 맞닿는 부근에서 시작하여, 벽진동의 벽진고가교까지 6,224m의 도로로, ‘우부리 격살 사건’, ‘신비복위소’ 등으로 의로움을 몸소 실천한 눌재 박상(1474~1530)을 기린 도로다. 눌재로를 통해 서구에서 선정한 서구 팔경인 용두동지석묘와 만귀정(晩歸亭)을 둘러볼 수 있다. 또한 근처 서창둑길은 영산강을 따라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눌재로는 영산강이 흐르고 봉황산, 송학산, 백마산이 있으며, 지석제와 봉황제 등 저수지가 있어 한적한 시골 풍경이지만, 멋진 경관을 자아낸다. 서구 8경 중 ‘서창 들녘의 낙조’와 송학산 기슭의 ‘용두동 고인돌’ 세하동 동하마을의 ‘만귀정’도 눌재로에 있다. 따라서 2차선의 좁고 구불구불한 길이 대부분이지만, 눌재로는 서구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다. 눌재로가 시작하는 지석제를 지나면 좌.우측 가까이에 봉황산(168m)과 송학산(212m)이 보이고, 서창교 근처에서는 영산강과 만난다. 서창교를 지나면 오른쪽에 백마산과 산자락에 위치한 송학초등학교, 서창동 주민센터, 한옥문화관이 있다.눌재로의 ‘눌재(訥齋)’는 조선 중기 문인이었던 박상(朴祥)의 호다. 박상은 1474년(성종5년)에 광주에서 태어났다.박상의 아버지 박지흥(朴智興)은 세조가 계유정란(1453)을 일으켜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포기하고 처가인 지금의 서창동으로 내려왔다.박상은 28세 되던 해 식년시(조선시대 식년(式年)에 시행된 과거시험-정기적으로 3년에 한 번씩 열렸다)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교서관정자(校書館正字), 승문원교검(承文院校檢), 병조좌랑(兵曹佐郞) 등을 거쳐 전라도 도사(都事)를 지냈다.박상이 전라도 도사를 지낼 때에 나주에 남의 논밭을 빼앗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등 몹쓸 짓을 서슴지 않는 우부리(牛夫里)라는 자가 있었다. 우부리의 딸은 연산군이 예뻐하는 후궁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우부리에게 뭐라 하지 못하고 속만 태울 수밖에 없었다. 명색이 왕의 장인이기 때문이었다.하지만 박상은 우부리를 잡아 장살(杖殺. 죄지은 자를 때려죽이는 사형방법)시켰다. 이를 안 연산군은 자신의 장인을 사형시킨 박상을 체포할 것을 명한다.박상은 화를 피하지 못할 것을 예상하고 스스로 상경한다. 하지만 박상을 체포하기 위해 내려오던 금부도사(禁府都事)와 길이 엇갈렸고, 그 사이 중종반정(1506)이 일어나 화를 면할 수 있었다.박상은 바른 소리를 직언할 줄 아는 신하였다. 그는 담양부사로 부임할 적에 순창군수였던 김정(金淨)과 함께 중종반정 때 폐위된 단경왕후(端敬王后) 신씨(愼氏)의 복위를 간청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중종의 노여움을 사 나주로 유배되기도 했다.일부 학자들은 박상이 자신의 목숨이 날아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우부리를 사형시키거나, 단경왕후 복위를 간청하는 등 불의를 참지 않았기 때문에 그로부터 ‘의향(義鄕)’의 전통이 시작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이처럼 광주 출신의 훌륭한 위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잘 모르는 편이다. 또한 눌재로 구간의 대부분이 인도 없이 차도만 있어 걸어 다니기엔 굉장히 위험한 실정이다.서창동주민센터 바로 옆에 있는 서창향토문화마을을 지나, 서구 팔경 중 하나인 만귀정도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눌재로 끝 벽진교에 다다를 때까지 눌재 박상과 관련된 표지판이나 그밖에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다.광주시가 광주 출신으로서 업적을 남긴 선조들을 알리고 이를 통해 광주만의 새로운 문화를 재생산하기 위한 노력들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2020년 2월 20일 수정
    2018-05-28 | NO.10
  • 대남대로
    대남대로는 1968년 대만 타이난(台南)시와 광주시가 최초로 자매결연을 맺은 것을 기념하기 위해 명명됐다. 대만 타이난시에도 광저우 루(光州路)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서로 도로명을 주고받은 것으로 보인다.대남대로는 남광주역 부근에서 1번지를 시작해 푸른길과 나란히 달리다가 백운광장 고가를 넘어 농성광장까지 이어진 4.61km의 도로다. 대남로로 불리다가 2009년 7월 27일자로 대남대로가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길에 주광주중국총영사관이 있다.타이난시는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가장 먼저 개발된 도시로 인구 185만명의 남부에 위치한 도시다. 네덜란드가 대만을 지배하던 시절 이미 상당한 규모로 개발이 되었다. 네덜란드인들은 여기에 자기들 근거지인 질란디아 요새를 두기도 했다. 명나라의 부활을 외쳤던 정성공의 근거지이기도 했고, 청나라가 대만을 지배할 때에는 수도 역할을 했다.타이난시는 17세기부터 200여년 동안 대만의 수도 역할을 해와 도시 곳곳에 많은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다. 주요 명승고적으로는 네덜란드인이 세운 질란디아 요새, 정성공 사원, 공자묘 등이 있다.이러한 유래를 가진 대남대로는 광주의 부도심을 고리 모양으로 잇고 있는 제1순환도로의 일부 구간이기도 하다. 제1순환도로는 4개 도로(필문대로, 서암대로, 죽봉대로, 대남대로)의 총칭이다.제1순환도로는 광주가 대단위 택지개발로 인해 첨단, 일곡, 수완지구 등으로 넓이가 커지기 전까지 주요 교통로였다. 지금은 제2순환도로가 이 기능을 담당하고 있지만 이전까지는 제1순환도로가 가장 넓고 빠른 교통로였다.남광주역 4거리에서 학동방향을 바라보고 서면 좌로는 필문대로, 앞쪽으로는 남문로, 우로는 대남대로라고 적힌 안내판을 볼 수 있다. 바로 여기서 대남대로는 시작한다. 그 시작점에는 1930년 문을 열었다가 2000년 폐역이 되어버린 옛 남광주역의 숨결과 남광주시장의 새벽을 깨우는 외침이 함께 흐른다.이곳에서부터 잘 정돈된 푸른길과 나란히 달리는 대남대로는 남광교를 사이에 두고 천변좌・우로와 만났다가 헤어진다. 이어 방림길과 양림길을 좌우로 두고 지난다. 이곳에서 양림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연안송’을 작곡한 정율성 거리와 생가를 볼 수 있다.대남대로는 다시 좌로는 봉선시장, 우로는 기독병원으로 가는 4거리에 이른다. 여기서 기독병원 방향으로 들어가면 양림교회, 어비슨 기념관, 오기원 기념각, 이장우 가옥, 우월순선교사사택, 수피아홀 등 광주 근대 역사 문화에 취해 볼 수 있다.대남대로는 백운광장에 이르러 봉선로 1번지인 남구청을 왼편에 두고 백운고가도로를 타고 넘는다. 백운고가 오른쪽 도로는 독립로다.백운고가를 넘은 대남대로는 1970년대 광주 아파트의 상징이었던 신우아파트(대남대로 294번길 7)를 지나 화정동 수박밭에서 수박을 등에 지고 가다가 쉬어갔다는 유래를 담고 있는 수박등에서 이름을 따온 수박등로, 월드컵경기장으로 가는 금화로, 경열로와 이어지는 화정로와 만난다.또 이 길에서는 2007년 3월 23일 광주 최초 외국 공관인 주(駐)광주중국총영사관(대남대로 413번지), 시민들의 건강검진을 주로 담당하고 있는 광주건강관리협회(대남대로 432번지), 1936년 12월 조선상공회의소령에 의해 설립되어 현재는 지역 기업인들이 활동하고 있는 광주상공회의소(대남대로 465번지) 건물 등도 만날 수 있다.회재로에 비해 비교적 짧은 이 대남대로는 농성광장 앞에서 상무대로와 만나면서 4,610m의 8차선 도로의 이름을 내려놓는다.
    2020-02-20 | NO.9
  • 무진대로
    무진대로는 서구 농성동 광천1교에서 광산구 운수동 운수 IC까지 이어지는 9,270미터 길이의 도로다. 무진대로 구간 중 광주 시청 가까이의 무진교에서 신세계 백화점 앞 광천사거리까지는 16차선 도로로, 전국에서 가장 넓다. 무진대로변은 광주종합버스터미날이 있고 광주여대를 지나 무안 광주고속도로와 연결되고 있어 교통의 요충지이다.도로명 ‘무진’은 광주광역시의 옛 이름 ‘무진주’에서 취해 붙인 이름이다. 백제시대 처음 광주는 무진주로 불리었고, 이후 신라시대에는 무주라 불렸다. 오늘의 이름인 광주는 고려 태조 23년(940)에 처음으로 불리게 된다. 광주가 백제 시대 무진주로 불렸음을 알려주는 것이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 「백제본기)」 동성왕조의 “(二十年)八月王以耽羅不修貢賦親征至武珍州耽羅聞之遣使乞罪乃止”라는 구절이다. “동성왕 28년(498) 탐라(국)이 공납을 바치지 않자, 왕(동성왕)이 친히 정벌하여 무진주武珍州에 이르렀다. 탐라가 이를 듣고 사신을 파견하여 죄를 비니 이내 멈추었다”는 내용이다.무등산을 무진악武珍岳이라고 불렀거나, 광주의 한 청각장애인 학교에서 벌어졌던 성폭력 사건을 다룬 공지영 작가의 소설 ‘도가니’에서 무진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도 광주의 옛 명칭 무진에서 따온 것이다. 무진주의 ‘무’는 물둑의 의미이고, ‘진’은 들/벌판의 의미를 가진다. 한자어의 뜻 보다는 우리말의 발음과 뜻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무진의 원래 발음은 ‘물들’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들은 ‘물이 많은 들판’을 뜻하기 때문에 광주천 주변 일대가 늪지대였을 가능성이 높다. 무진대로를 따라가 보자. 광주천변의 광천1교에서 출발하여 광천사거리에 이르면서 무진로는 대로가 된다. 그리고 신세계 백화점, U스퀘어 광주버스터미널, 기아자동차 공장 등을 차례로 만난다. 기아 자동차 공장을 지나면 주공2단지 아파트 등을 지나게 되고 버들교와 광주천을 통과하면 드넓은 평야가 전개된다. 유덕 IC를 지나면 곧바로 극락강을 가로지르는 어등대교가 나오는데, 여기서부터가 광산구다. 유니버시아드 수영장이 있었던 광주여대를 지나 무안 광주고속도로와 연결되면서 무진대로는 끝이 난다.무진대로의 최대 인기 장소는 무진대로 940번지에 위치한 U스퀘어 광주버스터미널이다. 영화관, 서점, 갤러리, 레스토랑, 카페 등이 밀집해 있어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도 적격이다. 또한 터미널 앞 광장에서는 공연도 자주 열려 문화놀이 공간의 역할도 하고 있다.16차선이나 되는 무진대로, 그러나 출퇴근 시간의 러시아워는 피할 순 없다. 최근까지 우미아파트에서 기아자동차 방면 3개 차로를 막고 저지대 상습 침수지역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공사가 진행되어 교통대란이 발생하기도 했다.광주의 도로명 중 광주의 옛 이름인 ‘무진대로’와 현재 이름인 광주의 애칭 ‘빛고을’을 사용한 ‘빛고을대로’는 어떤 도로명보다 광주의 정체성을 담고 있는 도로가 아닐 수 없다.
    2018-05-28 | NO.8
  • 상무대로
    상무대로는 북구와 서구의 경계선부터 광산구까지 이어지는 12.8km의 도로다. 북구 임동 오거리부터 시작해서 서구 양동교를 지나 광산구 송정1교 삼거리까지 쭉 이어지는 길이다. 상무대로에 위치한 양동교를 지나면 벚꽃이 만발한 봄이 되면 노점상과 차량으로 가득 차는 상록회관 거리가 나온다. 상록회관 일대는 광주시민들이 벚꽃 구경을 하기 위해 가깝게 찾는 곳이기도 하다. 광주시립미술관 상록전시관이 이곳에 위치해 서구에서 오래된 갤러리로써 유일하게 볼만할 전시회가 열리는 장소기도 하다. 상록도서관도 있다.상무대로의 지하로는 지하철 1호선이 다닌다. 농성역부터 시작해 화정역, 쌍촌역, 운천역, 상무역, 김대중컨벤션역(마륵역), 공항역, 송정공원역, 송정역, 도산역까지 길을 함께 한다. 상록회관을 따라 화정역으로 향하는 길에는 서부시장, 불고기 거리가 있다. 화정역을 지나 쌍촌역, 운천역에 다다르면 광주의 주요 중심지, 상권인 상무지구 입구가 나온다. 상무대로라는 명칭은 육군의 최대 군사교육 시설인 상무대가 있었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다. 상무대는 이승만 대통령이 ‘무(武)를 숭상하는 배움의 터전’이라는 뜻으로 1952년 설립됐다.상무대는 지난 1994년 장성으로 옮겨졌다. 상무대는 장성으로 옮겨짐에 따라 도시개발로 아파트와 상업시설이 생기고, 시청까지 옮겨지게 되면서 광주의 중심 시가지인 상무지구가 형성됐다. 상무지구에 위치한 5.18자유공원을 찾는다면 80년대 옛 상무대 모습을 그대로 복원해 놓은 전시관과 건물을 살펴볼 수 있고, 5.18민주화운동 당시의 참담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상무대로를 지나는 길목에 운천역을 지나 상무역을 가기 전에 상무대 옛터 사적비를 볼 수 있다. 실제로 상무대가 위치했던 곳은 사적비가 세워진 위치보다 차로 이동해야 할 정도로 훨씬 떨어져 있어 도대체 왜 이곳에 세웠나 의문이 들었다. 다시 사적비와 5.18자유공원을 뒤로한 채 상무대로로 운전대를 잡았다.상무역을 지나면 김대중컨벤션센터역이 있으며, 이곳을 지나면 광산구 지역이 나온다. 광산구에는 광주공항과 최근 약 1시간 30~40분대로 빨라진 호남선 KTX가 정차하는 광주송정역이 있다. 광주공항과 광주송정역은 모두 상무대로에 위치해있다.광주송정역을 지나 상무대로는 도산까지 이어져 황룡강이 흐르는 송정1교 삼거리에서 끝난다.
    2018-05-28 | NO.7
  • 월드컵 4강로
    월드컵 4강로는 무진대로와 맞닿는 기아자동차 공장 서문에서 시작, 염주종합체육관 앞까지 2.9킬로미터의 도로다. 대한민국이 동아시아에 당당하게 존재하고 있는 나라, 올림픽까지도 유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나라임을 보여 준 사건은 서울에서 개최된 ‘88올림픽’이었다. 식전 행사가 시작되고 굴렁쇠를 굴리는 초등학생에 이어 등장한 것은 남도인들의 기개를 한껏 뽐낸 남구 칠석동 고싸움이었다. 전 세계인들의 찬사를 받았던 칠석동 고싸움은 광주만이 아닌 대한민국의 힘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 88올림픽이 한국의 존재를 전 세계에 과시한 사건이었다면, 2002년 한.일 월드컵은 한국이 여러 분야에서 세계 4강의 강국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 세계인에게 보여준 놀라운 사건이었다. 2002년 6월 22일, 광주 월드컵 경기장에서 유럽의 전통 강호인 스페인과 8강전이 치러졌다. 연장 30분을 포함하여 120분의 혈투를 벌였지만, 양팀은 득점 없이 끝나고, 승부차기가 이어졌다. 한국은 황선홍, 박지성, 설기현, 안정환, 홍명보가 키커로 나섰고, 이운재 골키퍼가 골문을 지켰다. 스페인의 4번 키커의 공을 이운재 골기퍼가 막아내자, 월드컵 경기장은 엄청난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전 세계 축구팬들이 주시하는 가운데 한국의 마지막 키커인 홍명보의 발을 떠난 공이 골망을 흔들었다. 한국이 스페인을 누르고 4강 신화를 이룬 극적인 순간이었다. 4강행이 확정된 순간 대한민국은 한동안 엄청난 함성에 파 묻혔다. 그 극적인 순간을 만들어 낸 곳이 바로 광주 월드컵 경기장이었다. 월드컵 4강로는 이를 기념하고 기리기 위해 이름 붙인 도로명이다. 히딩크 대표팀 감독과 태극 전사들이 묵었던 히딩크 호텔 입구에는 출전 선수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2002 한.일 월드컵 4강 기념비’도 세워진다.월드컵 4강로를 따라가 보자. 기아자동차공장 서문을 지나면 광주 지하철도 1호선이 지나는 쌍촌역이다. 쌍촌역을 지나면 가파른 언덕을 넘어야 하는데, 오른쪽이 광주 카톨릭대교구청이다. 고개를 넘자마자 염주동 성당을 만나는데, 건너편이 화정초등학교와 최근 이전해 온 광주여고다. 쌍학로, 화정로와 만나는 사거리를 지나 염화로와 만나는 염주사거리를 지나면 염주 주공아파트와 현대아파트가 나오고, 금화로와 만나면서 끝이 난다. 금화로 주변에 염주종합체육관과 광주월드컵 경기장이 위치하고 있다.월드컵 4강로에서 염주사거리는 가장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장소 중 하나다. 한때 염주사거리 뒤 먹자골목은 밤새 불이 커질 줄 모를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다.월드컵 4강로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오 필승 코리아’가 귓전을 때리면서 어깨를 들썩이게 하고, 새로운 4강의 꿈을 꾸게 하는 도로이다.
    2018-05-28 | NO.6
  • 죽봉대로
    죽봉대로는 대남로와 만나는 농성광장에서 시작하여 광천 4거리, 광천 제2교를 지나 동운고가도로까지 1,950m의 대로로, 한말 어등산에서 순국한 의병장 죽봉 김태원(1870~1908)을 기리는 도로명이다.죽봉로를 따라가 보자. 죽봉대로가 시작되는 농성역을 조금 지나면 왼쪽에 현대자동차 서광주정비소가 있고, 오른쪽에는 라페스타 예식장, 기아자동자 서비스센터가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사거리에는 교원공제회관, 공무원 연금공단이 있고, 사거리 왼편으로 쇼핑센터인 금호월드가 있다.신세계 백화점이 있는 사거리는 광주 교통의 요충지다. 가까이에 광주종합버스터미널이 위치하고 있어 광주를 들고 나는 사람들로 늘 붐비는 광주의 관문이기 때문이다. 이곳 사거리를 끼고 신세계백화점이 있고, 맞은편 3곳에는 각종 병원들이 밀집되어 있다. 특히 라식(근시, 원시, 난시 등의 시력 장애를 치료하는 굴절 수술 )과 라섹(굴절 교정 각막 절제술)을 잘한다는 병원이 모두 이곳에 몰려 있다. 그러나 어느 곳을 둘러봐도 도로의 주인공 죽봉 김태원의 호나 이름을 딴 상가는 한 군데도 없다.광천 제2교를 지나면 만나는 운암고가도로에서 끝이 난다. 운암고가도로 가까이에 기아 타이거즈 경기장인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도 있다. 그리고 이곳을 넘어가면 운암동이 나오고 광주시립미술관, 광주비엔날레,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박물관 등 문화지구와 만나게 된다.죽봉로가 시작되는 농성광장에는 두 눈 부릅뜬 도로명의 주인공 김태원 의병장의 동상이 그가 순국한 어등산을 바라보며 서 있다.나주 시민공원에는 김태원 의병장이 죽기 두 달 전인 1908년 2월, 아우 김율에게 써 준 시가 새겨진 시비가 있다. “국가 안위가 경각에 달렸거늘 의기남아가 어찌 앉아 죽기를 기다리겠는가? 온 힘을 쏟아 충성을 다하는 것이 의에 마땅한 일이니 백성을 건지려는 뜻일 뿐 명예를 위하는 것은 아니라네. 전쟁은 죽으려는 것, 기꺼이 웃음을 머금고 지하에 가는 것이 옳으리라. 무신(1908)년 2월 19일 형 준이 쓰다.”
    2018-05-28 | NO.5
  • 탁영로
    탁영로는 조선시대 사림파(士林派)의 대표적 인물인 탁영 김일손의 호를 따서 명명된 도로다. 길이는 424m에 불과한 짧은 도로로 2009년 11월 광주광역시 북구청장이 고시했다.탁영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계운(季雲), 호는 탁영(濯纓) 또는 소미산인(少微山人)이라 불린다. 탁영의 할아버지는 김극일(金克一)이고, 아버지는 집의(執義) 김맹(金孟)이며, 어머니는 이 씨이다. 대대로 경상북도 청도에서 살았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토평리에 가면 탁영종택이 있는데 경상북도의 기념물 제161호로 지정되어 있다.탁영로 이름은 생뚱맞다. 이유는 탁영(濯纓) 김일손(金馹孫)과 이 지역과의 연관성을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도로명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탁영이 광주 출신도 아닌데다가 여기서 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탁영 김일손은 1486년(성종 17) 생원에 수석으로 합격하면서 관직에 나갔다. 처음 승문원에 들어가 권지부정자(權知副正字)로, 곧 정자(正字)로서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겸했다. 이후 진주의 교수(敎授)로 나갔다가 곧 사직하고, 고향에 돌아가 운계정사(雲溪精舍)를 열고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 시기에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에 들어가 평생 사사하였으며, 정여창(鄭汝昌)·강혼(姜渾) 등과 깊이 교유하였다.탁영은 1498년(연산군 4) 유자광(柳子光)·이극돈(李克墩) 등 훈구파가 일으킨 무오사화에서 조의제문(弔義帝文)의 사초화(史草化) 및 소릉 복위 상소 등으로 인해 처형을 당했다.조의제문(弔義帝文)의 사초화(史草化)는 세조의 즉위 사실 자체와 그로 인해 배출된 공신의 존재 명분을 간접적으로 부정한 것으로써, 당시로서는 극히 모험적인 일이었다. 이 같은 일련의 일들이 사림파의 잠정적인 세력을 잃게 한 표면적인 원인으로 작동하기도 했다.그 뒤 중종반정으로 복관되고, 중종 때 직제학(直提學), 현종 때 도승지, 순조 때 이조판서로 각각 추증되었다.저서로는 『탁영집(濯纓集)』이 있으며, 「회로당기(會老堂記)」, 「속두류록(續頭流錄」 등 26편이 『속동문선(續東文選)』에 수록되어 있다. 자계서원(紫溪書院)과 도동서원(道東書院), 두암사(斗巖祠) 등에 제향되었다.두암동에 있는 장열사(壯烈祠) 옆에 두암사(斗巖祠)란 사우가 있다. 이곳에 김해김씨 후손인 김목경(金牧卿), 김일손(金馹孫), 김광립(金光立)의 삼위가 모셔져 있다. 탁영로 이름을 정할 때는 이 중 김일손의 호를 따 명명한 것으로 보인다.
    2020-04-04 | NO.4
  • 필문대로
    필문대로(蓽門大路)는 필문 이선제를 기리기 위한 도로명이다. 1988년 광주광역시에 의해 지정되었다. 총 길이는 6349m,. 2009년 7월 27일, 광주광역시장이 고시했다.북구 풍향동 서방사거리와 동구 학동 남광주 교차로를 잇는 광주광역시의 도로이다. 이 도로와 죽봉대로, 서암대로, 대남대로 4개 도로를 합쳐 제1순환로라 지칭한다. 필문대로 시작점 가까이에는 광주교육대학교가 있다. 교육대 안에는 2014년 3월에 개관한 풍향문화관이 있다. 좀 더 걸어가면 무등산 옛길을 오를 수 있는 산수오거리가 나온다.이를 지나서 500여m 더 가면 법원과 농장다리로 갈 수 있는 지산사거리가 나온다. 농장다리는 1908년 전남여고 옆 동계천 건너편에 ‘광주감옥’이 들어서면서 그 별칭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광주감옥의 죄수들은 1970년대 이전까지 교도소에서 운영하는 채소농장에서 노역하며 농장과 교도소를 오갔다고 한다. 그때부터 이곳은 농장과 연결되는 다리라는 의미에서 농장다리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이다. 이 길은 다시 오지호 화백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지호로 입구와 만나며 지호로를 따라 올라가면 보물 제110호인 광주지산동오층석탑(光州芝山洞五層石塔)을 볼 수 있다. 석탑에서 도보로 2분 거리에는 광주지방·고등검찰청과 광주지방·고등법원이 있다. 필문대로는 조선대학교 후문과 정문을 지나고. 조선대 정문은 학생들 사이에서 ‘드라군’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드라군’이라는 유닛과 닮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달려온 필문대로는 남광주역에서 끝이 난다. 남광주역 인근엔 널리 알려진 남광주시장을 비롯해 전남대학교 병원, 병무청 등도 만날 수 있다.*수정 2023.11.21.
    2020-03-31 | NO.3
  • 화운로
    화운로는 화정동 짚봉터널 앞 미래로21병원의 금화로에서 시작, 광주지하철 1호선 역인 화정역과 광주천을 가로지는 광암교를 지나 북문대로와 만나는 운암 사거리까지 4.2킬로미터의 도로다. 도로명 ‘화운’은 화정동의 첫 글자인 ‘화’와 운암동의 첫 글자인 ‘운’를 따 붙인 도로명이다.화운로를 따라가 보자. 도로 오른쪽에서 바로 만나는 고층 아파트가 유니버시아드 힐스테이트 3단지이고, 바로 옆이 주월초등학교, 건너편은 화정중학교다. 그리고 그 안쪽에 광덕중.고등학교가 있다. 화정2동 주민센터를 낀 사거리를 지나면 교육청이 있는 왼쪽이 힐스테이트 2단지이고, 오른쪽이 1단지다. 유니버시아드 힐스테이트 1,2,3단지의 고층 아파트 단지는 이전 화정 주공 아파트 단지가 있었던 장소로, 화정동 주민들의 보금자리였다.힐스테이트 1단지 건너편에 광주 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광주광역시 교육청과 정보원이 있고, 건너편이 서석중.고등학교다. 화운로 일대에는 광주서초등학교도 있어 교육의 중심지라 불려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조금 더 가면 광주지하철 1호선에 위치한 화정역이 나오고 북구와 서구, 광산구를 잇는 상무대로가 나온다. 화정역 인근 화운로 골목길 중에 서구 불고기 거리가 있는데, 이 거리가 서부 시장이다. 서부시장은 1980년대 제법 붐비는 전통시장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침체되어 아주 규모가 작은 시장이다. 화정역에서 서부 소방서 방면으로 가는 길은 원래 광화로였다. 광천동과 화정동을 잇는 도로라는 뜻으로 광천동과 화정동의 앞 글자인 ‘광’과 ‘화’를 따 붙인 도로명이었다. 광주광역시 교육청 방면의 도로인 화랑로와 합쳐지면서 화운로로 통합되었다고 한다.광주서초등학교와 서부소방서를 지나면 왼쪽에 기아자동차 공장이, 오른쪽은 U스퀘어 광주버스터미널이 나온다. 터미널 앞 무진대로는 16차선으로 매우 넓기 때문에 신호 두 번에 거쳐 지나가거나, 지하도를 통해 넘어가는 수 밖에 없다.무진대로를 건너면 오른쪽은 광천 e편한 세상아파트가 들어서 있지만, 왼쪽은 여전히 광주 대표기업인 기아자동차 제 1공장 건물이다. 이곳 제1공장에서는 쏘울, 카렌스, 스포티지를 생산하는데, 정문에서 바라보면 쏘울 한 대가 비스듬히 세워져 기둥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보이는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광주천을 가로지르는 광암교를 지나면 북구 관할의 행정구역이다. 하남대로와 광주선 철도를 지나면 벽산 블루밍 메가시티 아파트 단지와 만나게 되고, 북문대로와 만나는 운암사거리에서 끝이 난다. 화운로가 끝나는 지점인 운암사거리도 북문대로와 만날 뿐 아니라 하서로로 이어지면서 호남고속도로로 연결되고 있어 교통의 요충지다.
    2018-05-28 | NO.2
  • 회재로
    회재로는 전남 나주시 남평읍에서 지석천을 건너 서창방면 좌측 도로에서 바로 시작해 광주광역시 남구 독립로까지 이어진 15.534km 연장의 꽤 긴 도로다. 또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또 하나의 통로이기도 하다.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옛 광이리에서 1번지를 시작하는 회재로를 따라 달리다 보면 먼저 하얗게 무리지어 늘어선 비닐하우스 군락이 눈에 들어온다. 이어 이 길은 충렬공 고경명(忠烈公 高敬命)을 모시고 있는 포충사로 가는 포충길과 고싸움놀이테마파크, 부용정칠석동은행나무로 갈 수 있는 다른 길들과 만난다.광주 시내에서의 회재로는 바로 이 칠석동에서부터 프라도호텔 위 사거리까지 연결되는 12.98km다.한적한 국도의 풍경을 담고 있는 이 길을 따라 조금 더 가다보면 용두동 지석묘로 가는 길이 나오고, 연산군이 예뻐했던 후궁의 아버지 우부리를 잡아 장살(杖殺. 죄지은 자를 때려죽이는 사형방법)시킨 조선 중기 문인이며 의인이었던 박상의 호를 따 붙인 눌재로도 나온다.정감있는 시골풍경은 회재 박광옥이 직접 만들었다는 개산제까지 이어진다. 개산제는 원래 450여년전 회재가 1568년 그의 나이 43세 때 당시 광주 선도면 개산(蓋山), 현재 매월동 회산(懷山)에서 살면서 매월과 벽진마을 주민들의 물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개산 남쪽의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기 위해 방죽을 막아 개산방죽(介山防築)이라 이름한데서 유래하고 있다.그런데 1943년 일제강점기 때 보완공사를 하면서 아무런 영문없이 갑자기 전평제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오늘날 쓰이는 전명제 또는 전평호수의 이름을 개산제 또는 개산호수로 바꾸어야 할 듯 싶다.회재는 이 방죽에 인공섬을 만들어 수월당을 짓고 기대승(奇大升)·박순(朴淳)·이이(李珥)·노사신(盧思愼) 등과 교유했다. 회재로는 바로 이 조선 중기의 문신인 회재 박광옥을 기리기 위해 그의 호를 따서 지난 2009년 행정안전부 장관이 고시했다.회재는 1526년(중종 21)에 광주에서 태어나 1593년(선조 26)에 광주에서 생을 마감한 문신이다. 본관은 충청북도 음성(陰城)이다. 1546년(명종 1)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광주 선도면(船道面)에 집을 지어 개산송당(蓋山松堂)이라 이름하고 문하생들과 함께 성리학을 연구하고 향약을 실천했다.1568년(선조 1) 학행으로 천거되어 내시교관(內侍敎官)에 임명되었다. 1574년 별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해 종부시주부가 되었다. 1578년 전라도·충청도의 도사를 거쳐 1579년 예조정랑, 1580년 지평이 되었다.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신병으로 관직에서 물러나 있으면서 고경명(高敬命)·김천일(金千鎰) 등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고향의 의병도청(義兵都廳)에서 군대의 장비와 양식을 조달했다. 당시 전라감사 이광(李洸)의 무능을 탄핵했으며, 새로 감사에 부임한 권율(權慄)을 도와 많은 공을 세웠다. 의병 활동의 공로로 다시 관직에 올라 나주목사로 재임하다 운명했다.1602년(선조 35) 서창 벽진동(碧津洞)에 세워진 의열사(義烈祠)에 제향되었으며, 뒤에 벽진서원으로 고쳐졌다. 운봉(雲峰)의 용암서원(龍巖書院)에도 제향되었다.개산제에서 회재로는 다시 서부농수산물도매시장, 시청자미디어센터, 서구 신흥개발지역인 풍암1지구, 풍암저수지, 풍암생활체육공원, 풍암2지구 등을 옆에 끼고 지나면서 서우로, 풍금로, 월드컵 서로, 월드컵 동로 등과 만난다.회재로가 끼고 있는 이들 풍암저수지와 풍암생활체육공원은 이 지역 주민들의 휴식공간으로서 기능을 톡톡히 하고 있다.원광대 한방병원을 조금 더 지나면 2015년 광주하계U대회 양궁경기가 펼쳐지는 신축 국제양궁장이 나오고, 이 길은 회서로, 군분로와 만나고 헤어지면서 백운광장 고가도로가 시작하는 대남대로를 지나 프라도호텔 위 사거리에서 독립로를 만나면서 끝이 난다.*수정 2023.11.12. '나주 선도면'을 '광주 선도면'으로
    2020-02-20 | NO.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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