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3
게시물 검색 폼
  • 가야금병창 이영애/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8호(2014. 1. 19.)
    무형문화재 가야금병창 이영애는 스승 박귀희 선생을 사사했다. 스승으로부터 가야금병창과 판소리를 익혔다. 그가 국악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10살 때 국악을 좋아했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가야금을 배우게 된 것이 시작이었다. 그가 무형문화재로 인정받은 가야금 병창은 민요나 단가短歌, 판소리 일부 대목을 가야금으로 연주하면서 그 반주에 맞춰 부르는 음악이다. 19세기 후반 남도에서 가야금 산조가 발생할 무렵 함께 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 명창인 신만엽申萬葉과 김제철金濟哲이 민요나 단가, 판소리의 한 대목을 가야금의 기악 특성에 실어 가야금 병창제를 창안했다. 이후 김창조, 오수관 등 초기의 가야금 산조 명인들에 의해 다듬어지고 심상건, 강태홍, 오태석, 정남희, 박귀희 등 명인들에 의해 크게 발전했다.이영애 예능보유자는 10살 때 1년 이상 가야금을 익혀 눈을 뜨자 아버지에 의해 동네 어르신들을 관객으로 연주 겸 연습을 하면서 실력을 뽐내곤 했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가야금산조에 빠져 지냈다. 이때 기초를 다잡을 수 있는 기회로 활용했다고 한다. 3년간 피나는 연습을 한 셈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77년KBS 민속백일장에 광주. 전남 대표로 출전, 10월 첫째 주에 도전한데 이어 연말에 가야금산조로 대상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를 계기로 향사 박귀희 및 안숙선과 함께 방송에 출연, 선후배로 연주하는 행운까지 잡을 수 있었다.이후 박귀희의 제자가 돼 일주일에 1∼2회씩 서울로 가야금병창을 배우기 위해 분주하게 오갔다. 하지만 이영애는 1년 정도 가야금을 멀리하는 일이 생긴다. 정신적 지주이자 영원한 지원자 역할을 자처했던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면서 시련이 찾아왔고, 이는 깊은 슬럼프로 연결됐다. 이 일로 인해 그는 자신의 운명과도 같았던 가야금을 1년 정도 멀리했다. 1년여를 보낸 뒤 어렵게 한 귀퉁이에 두었던 가야금을 꺼내 조율하고 어루만지면서 다시 예전의 자신으로 되돌아갔다. 20대 성년이 되어서는 광주시립국악원의 가야금 강사 활동을 시작했고, 그 후 1986년 전남도립국악단이 창단되자 창단멤버로 5년 동안 활동했다. 이어 광주시립국극단 단원으로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전주대사습에 7전8기 도전 끝에 장원을 일궈냈다. 그의 도전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전주대사습 장원의 기운을 이어 4년 만에 우륵전국가야금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다. 그는 화순에 (사)한.얼가야금병창보존회를 설립, ‘제1회 향사 가야금병창대회’를 열어 화제를 모았다. 2008년 5월 순천시가 낙안읍성에서 열린 축제에서 가야금병창대회를 열어줄 것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돼 (사)낙안읍성가야금병창보존회를 설립했다. (사)낙안읍성가야금병창보존회 이사장을 맡아 다양한 활동을 펼쳐왔고, 가야금병창의 최고봉인 전남 낙안 출신 오태석 명인(1895∼1953)의 현창사업을 위해 힘을 쏟아왔다. 임방울국악진흥회와 광주민속박물관회 이사를 역임했다.이영애 예능보유자는 제자 양성에도 많은 관심을 표명해 우수한 인재들을 배출해왔다. 그 터전이 된 광주송원초등학교는 지난 2006년 남구로 옮겨갔으나 그 이전에는 서구 광천동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가 25년간 꾸준한 애정을 갖고 인재를 배출해낸 곳이다. 2019.6.14. 수정
    2018-05-24 | NO.3
  • 강산제 심청가 이임례/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14호(1998. 2. 21.)
    무형문화재 강산제岡山制 예능보유자 이임례는 이병규(판소리)와 춘향가 김상용(춘향가), 생전 목포시립국악원에서 강산제 소리를 했던 김흥남을 사사했다. 전형적으로 강산제 소리를 이어받은 이임례 예능보유자는 소리의 고장으로 불리는 1941년 전남 진도 출생으로 국악 집안에서 태어나 자연스럽게 소리를 접할 수 있었다. 일찍부터 음악적인 재능을 키울 수 있었던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조선 헌종. 철종. 고종 때의 판소리 명창 박유전朴裕全(1835~1906)으로부터 비롯된 강산제 소리를 전승한 그는 이병규에게 처음 판소리를 배운 뒤 김상용에게 춘향가를, 목포시립국악원에서 강산제 소리를 하는 김흥남에게 흥보가와 심청가를 각각 배웠다. 박유전-정재근-정응민-성창순으로 이어지는 판소리 강산제(심청가)를 보다 체계적으로 연마한 것이다. 그가 물려받은 성창순 창본 심청가는 대단히 정교한 기교가 요구되는 소리로 알려져 있다. 판소리 강산제는 전남 보성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한 판소리의 유파로, 서편제에 속하지만 그 기교가 뛰어나고 부침새가 정교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계면조 창법에 있어 남자가 흐느껴 우는 듯한 처절하고 숙연한 ‘그늘진 목소리’로 판소리 주인공들의 소리마디 마디에 심력을 다해 갖가지 한을 표현, 고통 받는 서민들을 대신해 희로애락을 드러내는 민중 예술로 인식되고 있다.판소리는 소리하는 사람(창唱.노래) 한 명과 북치는 사람 한 명, 그리고 판을 이루는 구경꾼으로 이뤄지는 무대예술을 말한다. 소리하는 사람은 소리와 대사(아니리.백白.말), 몸짓(발림)을 하며, 북을 치는 사람은 소리하는 사람의 가락에 따라 북을 쳐서 장단을 맞추며 신명난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 판소리는 지역적 특성과 전승 계보에 따라 전라도 동북지역의 동편제東便制를 비롯해 전라도 서남 지역의 서편제西便制, 그리고 경기도와 충청도의 중고제中高制로 나뉜다. 이중 강산제는 서편제의 명창 박유전의 소리를 이어받은 것으로, 서편제의 일종을 말한다.판소리는 원래 열두 마당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거의 사라졌고, 춘향가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의 다섯 마당만 현재 남아있다. 심청가는 판소리 다섯마당 가운데 하나로 심봉사의 딸 심청이 공양미에 몸이 팔려 인당수에 빠졌으나 옥황상제의 도움으로 환생해 황후가 되고,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 효도한다는 내용이다. 심청가는 부르는 사람마다 짜임새가 다르나 보통은 초앞, 심청탄생, 심청어미 출상, 동냥을 다니는데 장승상댁, 공양미 삼백석, 범피중류, 인당수, 용궁, 심황후 자탄가, 뺑덕어미, 황성길, 부녀상봉, 뒤풀이의 순서로 짜여진다. 이임례 예능보유자는 그 소리를 제대로 물려받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4년 제10회 전주대사습놀이 일반부 장원을 차지한 뒤 1993년에는 제19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명창부에서 장원(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1989년 심청가 완창발표회를 가졌으며, 1990년 성옥문화상 예술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1994년 이임례 원작소설 ‘휘모리’를 발간했으며, 이임례 심청가 ‘만가’ CD음반을 제작, 발표했다. 1990년 광주시립국극단 단무장을 역임했고, 1994년 전라남도립국악단 수석을 맡아 활동을 펼쳤다. 1993년 6월 그는 전주대사습 판소리 장원을 수상할 당시 서구 관할이었던 방림2동에 주소를 두고 있었다. 아쟁연주자 이태백 씨가 그의 장남이다.
    2018-05-24 | NO.2
  • 광주 영산재/광주광역시 무형문화재 제23호(2014. 7. 28.)
    광주광역시 서구 화개1로 53 광주전통불교영산회불교 전통 천도의식으로 불교문화의 정수로 꼽히고 있다. 영산재는 사람이 죽은 지 49일이 되는 날 영가를 극락으로 천도하는 의식으로 이해하면 된다. 불교의 윤회사상에 따른 죄업을 소멸하게 하는 불교의식인 영산재는 부처님이 영취산에서 중생들에게 법화경을 설법할 때의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부터 유래됐다. 광주 영산재靈山齋는 사단법인 광주전통불교영산회 주최로 서구 금호동 소재 태고종 법륜사 경내에서 주로 열려 왔다. 광주전통불교영산회는 1992년 창립된 이후 2018년 현재 태고종 광주 법륜사 주지 월인 스님이 회장직을 맡고 있다. 우리의 귀중한 전통 문화유산인 영산재 의식을 가꾸고 보존하기 위해 젊은 후학 발굴과 육성은 물론, 음과 무의 종합예술인 영산재를 보존하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전수관 건립 등에 힘쓰고 있다. 영산회는 그동안 5.18민주항쟁 희생자 위령대재를 비롯해 종교음악제, 노무현 대통령 서거 위령제, 백제불교 최초도래지 수륙대재 등을 봉행해 왔다. 특히 영산재 전승과 보전에 힘쓰는 한편, 후진 양성을 위한 교육과 전수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매년 일반 시민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영산작법 시연 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시연행사는 범음범패와 바라춤, 그리고 작법 분야의 전문 스님이 각각 시연자로 나와 시련, 상단권공, 관음시식, 대령관욕, 중단퇴공, 봉송 등 주요 영산재 의식을 선보였다.대령관욕은 목탁을 치는 스님을 선두로 소라, 북, 좌발, 호적으로 구성된 취타대에 맞춰 연輦에 모신 영가를 도량으로 인도하는 시련과 부처님의 위신력과 감로의 법으로 깨끗이 씻는 의식의 하나이고, 중단퇴공은 신중단 기도를 위한 것이다. 시연회의 백미로 꼽히는 관음시식은 불법을 옹호하는 신중을 청해 모시는 의식이다. 고문헌에 따르면 본래 3일 동안 열리지만, 시연회는 3시간으로 간소화됐다. 이중 범음범패 분야의 혜령 스님과 바라춤 분야의 호산 스님, 그리고 작법분야의 월인 스님이 문화재 기능보유자로 각각 지정됐다. 영산재는 1973년 11월 5일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문화재) 제50호로 등록됐고, 2009년 9월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다만 문화재청 누리집에 내용이 등록되지 않아 전국에서 관심 있는 사람들의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조치가 시급하게 요구되고 있다. 광주영산재를 이끌며 보급 활동을 펼치는 월인 스님(광주 법륜사 주지, 광주전통불교영산회 회장)이 전승관 건립을 위해 광주 서구 벽진동 일대에 2000평의 대지를 구입하고, 지하 1층, 지상 2층 건물의 전수관 건립을 추진 중이다.
    2018-05-24 | NO.1
  • 광주광역시
  • 한국학호남진흥원
  • 사이버광주읍성
  • 광주서구청
  • 광주동구청
  • 광주남구청
  • 광주북구청
  • 광주광산구청
  • 전남대학교
  • 조선대학교
  • 호남대학교
  • 광주대학교
  • 광주여자대학교
  • 남부대학교
  • 송원대학교
  • 동신대학교
  • 문화체육관광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광주문화예술회관
  • 광주비엔날레
  • 광주시립미술관
  • 광주문화재단
  • 광주국립박물관
  • 광주시립민속박물관
  • 국민권익위원회
  • 국세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