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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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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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참판 이연손의 처자에게 외방의 역사를 면제시키다 - 성종 1년
    죽은 참판 이연손의 딸 이희의 처 이씨에게 외방의 역사를 면제시키다 - 성종 1년 경인(1470) 2월 13일(임술)호조에 전지하기를,“죽은 참판(參判) 이연손(李延孫)의 처 윤씨(尹氏)에게는 전라도(全羅道)의 김제(金堤)ㆍ전주(全州) 전장(田庄), 윤씨의 딸(?) 이희(李喜)와 처 이씨(李氏)에게는 광주(光州) 전장(田庄)의 역사를 특별히 면제하라.”하였다.윤씨는 바로 대왕 대비(大王大妃)의 언니[姊]로서, 《대전(大典)》에는 의친(議親)으로서 외방에 사는 자는 복호(復戶)하라 하였는데, 지금 윤씨 모자가 서울에 살고 있으니, 법에 복호할 수 없었으나, 그 상서한 것으로 인하여 특별히 허락한 것이었다.【원전】 8 집 465 면【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사급(賜給) / 농업-전제(田制) / 재정-역(役)
    2021-02-07 | NO.92
  • 도둑들의 이동 상황과 그 대비책에 관한 허종의 치계 - 예종 1년
    도둑들의 이동 상황과 그 대비책에 관한 전라도 절도사 허종의 치계 - 예종 1년 기축(1469) 11월 10일(경인)       전라도 절도사(全羅道節度使) 허종(許琮)이 치계하기를,“적당들은 군사를 일으켜 도둑을 체포한다는 말을 듣고 경상도(慶尙道)로 도망하였으므로, 신이 경상우도 절도사(慶尙右道節度使)에게 이문(移文)하였고, 또 경상도의 접경인 구례(求禮)ㆍ남원(南原)ㆍ운봉(雲峰)ㆍ광양(光陽) 등의 고을에 군사를 모아서 체포하게 하였고, 또 도둑들이 본도로 항하여 돌아올까 염려하여 요로(要路)마다 복병(伏兵)시켜 대비하였습니다. 10월 17일에 창평현(昌平縣)에서 보고하기를, ‘어젯밤에 도둑 남녀 합하여 1백여 인이 옥과(玉果)로부터 와서, 방호소(防護所)의 갑사(甲士) 이진산(李進山) 등 5인을 죽이고, 정이하(鄭以下) 등 6인을 쏘아 맞히고, 곧 광주(光州)의 무등산(無等山)으로 향하였다.’ 하므로, 신이 선전관(宣傳官) 유오(柳塢)와 더불어 궁추(窮追)하여 적당을 덮쳐서 나주(羅州) 출신인 김대(金大) 등 6인을 잡았는데, 김대가 공초(供招)에 이르기를, ‘적당은 무안(務安) 사람 장영기(張永己) 등 25인이며, 처(妻)와 자녀(子女)를 합하여 총 42인인데, 이제 관군의 궁추로 형세가 절박하여 처자들을 버리고 도망하여 흩어졌다.’ 하므로, 신이 적들의 용모와 나이를 본도의 여러 고을과 타도(他道)에 이문하여 체포하게 하였으며, 또 적당이 배를 탈취하여 물을 건너서 해도(海島)로 도망하여 숨을까 염려하여 수군 절도사(水軍節度使)와 만호(萬戶)로 하여금 공선(公船)과 사선(私船)을 모아 바다에 띄워 대비하게 하였습니다. 신이 생각건대, 이들 적당은 사납고 무리를 이루어서 비단 사람을 많이 죽였을 뿐만 아니라 관군에 항거하였으니, 다른 강도에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청컨대, 적당을 안전하게 보호한 자와 정상을 알면서도 자수시키지 않은 자는 함께 강도의 와주(窩主)의 예(例)에 의하여 논죄하고, 관에 고하여 적당을 체포하게 하는 자는 강도를 체포한 사람의 상보다 등수를 높이어서 상을 주소서.”하였다. 승정원(承政院)에 내리어 의논하게 하니, 승지(承旨) 등이 아뢰기를,“도둑이 관군에게 맞서서 대적하는 것은 곧 반역(反逆)과 같으니, 연좌(緣坐)한 사람들도, 청컨대 율문(律文)에 의하여 구처(區處)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곧 전라도 관찰사와 절도사에게 치서하기를,“강도들이 관군에게 맞선 것은 곧 반역과 같으니, 그에 호응한 자와 연좌한 자를 함께 가두라.”하였다. 허종이 또 아뢰기를,“구례 현감(求禮縣監) 박겸인(朴謙仁)이 군사를 일으켜 도둑을 체포하기 위하여 진주(晉州)의 화개현(花開縣)에 이르렀을 때, 도둑이 박겸인의 군사 5인을 쏘아 맞히고 2인을 베어 죽였는데, 박겸인이 두려워서 퇴군하고는 이 사실을 숨기고 보고를 하지 않았으니, 청컨대 박겸인을 파직시키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원전】 8 집 429 면【분류】 인사-임면(任免) / 사법-치안(治安)
    2021-02-07 | NO.91
  • 전라도에 횡행하는 도적의 횡포에 대해 상소하다 - 예종 1년
    성숙ㆍ성준ㆍ성건이 전라도에 횡행하는 도적의 횡포에 대해 상소하다 - 예종 1년 기축(1469) 5월 2일(을유)       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 성숙(成俶)이 그 아우인 시강원 필선(侍講院弼善) 성준(成俊)ㆍ성균전적(成均典籍) 성건(成健)과 더불어 상서(上書)하기를,“신(臣)의 아비 성순조(成順祖)는 지금 전라도(全羅道)의 광주 목사(光州牧使)가 되었는데, 나주(羅州)에 차견(差遣)되어 가서 적당(賊黨)을 자못 엄하게 국문(鞫問)하니, 적도(賊徒)들이 신의 아비를 미워하여 해치려고 모여 꾀하기를, ‘광주 목사가 우리 무리들을 궁신(窮訊)하니, 형세가 장차 면하지 못할 것이다. 우리들이 만약 먼저 일을 도모하지 않으면 위험한 처지에 당할 것이니, 어두운 밤을 틈타 저격하자.’ 하니, 신의 아비가 듣고 장차 수포(搜捕)하려 하였는데, 이때에 적(賊)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 형세가 장차 다시 올 것 같아 신의 아비가 앞서 나주(羅州)에 이르니, 고을[州] 사람인 환자(宦者) 김윤생(金潤生)이 도둑의 근각(根脚)을 가만히 말해 주었는데, 적도(賊徒)가 이 소식을 듣고 해산하였습니다. 이는 반드시 적도가 신(臣)의 아비의 좌우에 있어서 누설하였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 적이 밤에 김윤생의 집에 들어가 여사(廬舍)를 분탕(焚蕩)하고 김윤생을 박살 내어 죽였으니, 그것이 누설되었음이 분명하여 신 등이 이를 듣고 경악(驚愕)하였습니다. 본 도둑은 월출산(月出山)ㆍ무등산(無等山) 두 산의 깊숙이 숨을 만한 곳에 무리를 지어 왕래하고 서로 응하며, 낮에는 모이고 밤에는 흩어져서 여리(閭里)에 횡행(橫行)하니, 백성의 피해가 매우 심합니다. 국가에서 이미 경차관(敬差官)을 보내어 수포(搜捕)하게 했는데도 오히려 또한 이와 같은 것은 경차관이 품질(品秩)이 낮고 인망이 가벼워 능히 섭복(攝服)하지 못하므로, 비록 수령과 더불어 협력하여 날마다 방략(方略)을 의논하여도 전에 사령(使令)한 자들이 적도(賊徒)와 더불어 서로 표리(表裏)가 되어, 기밀(機密)을 재빨리 통해서 즉시 도망해 흩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전라도 한 도(道)는 본래 백제(百濟)의 옛 땅으로 인심이 박악(薄惡)하기가 다른 도의 배나 되니, 만약 엄하게 다스리지 않는다면 금제(禁制)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신(臣) 등은 엎드려 원하건대, 한 대신(大臣)을 보내어 관찰사(觀察使)ㆍ절도사(節度使)와 더불어 함께 의논하여 조치(措置)하게 하고, 사람들에게 적정(敵情)을 밀고(密告)하도록 허락하며, 포획(捕獲)할 때에는 마땅히 그 고을의 이졸(吏卒)을 사용치 말고 별도로 다른 고을의 군사(軍士)를 뽑아, 혹은 여리(閭里)나 산곡(山谷)의 굴혈(窟穴)을 샅샅이 뒤져서 다 잡도록 힘쓴다면, 비록 다 잡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저들은 장차 두려워하여 발붙일 곳이 없을 것입니다.”하니, 임금이 글을 본 뒤, 곧 전라도의 관찰사와 절도사에게 유시(諭示)하기를,“영암(靈巖)ㆍ광주(光州)의 경계(境界)에 적도(賊徒)가 떼를 지어 거리낌 없이 횡행하므로, 백성들의 화를 입음이 적지 않다. 일전에 숙혐(宿嫌)으로 나주 환자(羅州宦者) 김윤생(金潤生)의 집을 분탕하고, 김윤생을 살해하면서 혀를 짜르고 배를 갈랐는데, 그때 즉시 추포(追捕)해서 아뢰지 아니하였으니, 매우 위임(委任)한 뜻에 어긋난다. 지금 성숙(成俶) 등의 상서(上書)에 보니 수재(守宰)를 살해할 뜻을 품기에 이르렀으니, 국가에 대한 체면이 어떻게 되겠는가? 지금 성숙의 글을 봉(封)하여 보내니, 경(卿) 등은 보고 모름지기 경차관(敬差官) 유문통(柳文通)과 더불어 포치(布置)할 것을 비밀히 의논하여 군사를 발(發)하여 수포(搜捕)하되, 굴혈(窟穴)을 모조리 수색하기를 기(期)하라. 만약에 혹시라도 능히 추포(追捕)하지 못한다면 내가 용서치 않겠다.”하였다. 성숙 등이 인하여 귀근(歸覲)하기를 청하므로, 명하여 역마(驛馬)를 타고 가게 하였다.【원전】 8 집 365 면【분류】 사법-치안(治安)[주-D001] 숙혐(宿嫌) : 오래된 혐의.[주-D002] 귀근(歸覲) : 귀성(歸省).
    2021-02-07 | NO.90
  • 허형손이 역당과 내통한 것 같다고 아뢰다 - 예종 즉위년
    김선과 오자담이 후원에 돌입하여 허형손을 역당과 내통한 것 같다고 아뢰다 - 예종 즉위년 무자(1468) 11월 28일(갑신)       전라도(全羅道) 순창(淳昌)의 정병(正兵) 김선(金善)ㆍ오자담(吳子淡) 등이 후원에 돌입(突入)하니, 승정원(承政院)에 명하여 이들을 잡아서 국문(鞫問)하게 하였다. 대답하기를,“본도 절도사(本道節度使) 허형손(許亨孫)이 10월 18일 호랑이를 잡는다고 성언(聲言)하고, 아홉 고을의 군사를 순창(淳昌)에 징발하여 모으고, 또 광주(光州)에 25일 동안 모았다가 군사를 파(罷)하였습니다. 생각건대 반드시 강순(康純)ㆍ남이(南怡)와 더불어 음모(陰謀)를 내통하고 군사를 모았으나, 강순ㆍ남이 등이 복주(伏誅)되었다는 말을 듣고 파하였을까 합니다.”하니, 임금이 명하여, 김선ㆍ오자담 등을 의금부(義禁府)에 가두고 장차 허형손(許亨孫)을 국문하려 하였으나, 병정(兵政)에 ‘매년 2월 10일에 여러 도의 절도사(節度使)가 도내(道內)의 군사를 징발하여, 혹은 10일치의 양식을 싸가지거나 혹은 20일치의 양식을 싸가지고, 좌도(左道)ㆍ우도(右道)가 서로 바꾸어 습진(習陣)한다.’는 말이 있었으므로, 드디어 묻지 않았다.【원전】 8 집 309 면【분류】 군사-군정(軍政) / 군사-병법(兵法) / 변란(變亂)
    2021-02-07 | NO.89
  • 절도사 이형이 병든 아들을 볼 것을 청하다 - 세조 14년
    경상좌도 절도사 이형이 병든 아들을 볼 것을 청했으나 허락하지 않다 - 세조 14년 무자(1468) 3월 7일(정묘)        경상좌도 절도사(慶尙左道節度使) 이형(李衡)이 승정원(承政院)에 봉서(奉書)하여 아뢰기를,“전라도의 광주(光州)에 가서 아들의 병을 보려고 합니다.”하니, 명하여 회서(回書)하게 하기를,“이제 명(明)나라 사신이 올 때를 당하여 여러 고을이 소요(騷擾)한데, 경계(境界)를 넘어서 내왕함은 심히 폐단이 있으니, 경(卿)은 가보지 말라.”하였다.【원전】 8 집 168 면【분류】 외교-명(明) / 인사-관리(管理)진남군 이종생이 아들 이형이 아들의 병을 구료하러 가게 할 것을 청하니 윤허하다 - 세조 14년 무자(1468) 3월 14일(갑술)        진남군(鎭南君) 이종생(李終生)이 상언(上言)하기를,“아들 진례군(進禮君) 이형(李衡)은 경상좌도 절도사(慶尙左道節度使)가 되었는데, 그 아들 이여의(李如意)가 어미를 따라 전라도 광주(光州)에 있으면서 병을 얻었으므로, 이형(李衡)이 가서 구료(救療)하려 하니, 청컨대 허락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원전】 8 집 169 면【분류】 인사-관리(管理) / 왕실-종친(宗親)
    2021-02-05 | NO.88
  • 성순조를 행 광주 목사로 삼았다 - 세조 12년
    성순조를 행 광주 목사로 삼았다 - 세조 12년 병술(1466) 8월 17일(병진)       조지당(趙之唐)을 행 충주 목사(行忠州牧使)로 삼고, 성순조(成順祖)를 행 광주 목사(行光州牧使)로 삼았다.【원전】 8 집 36 면【분류】 인사-임면(任免)
    2021-02-05 | NO.87
  • 공ㆍ사천 문적과 감고 정이효 등을 서울로 보내도록 하다 - 세조 12년
    광주의 공ㆍ사천 문적과 감고 정이효 등을 서울로 보내도록 하다 - 세조 12년 병술(1466) 8월 7일(병오)        승정원에서 교지(敎旨)를 받들어 전라도 관찰사에게 치서(馳書)하기를,“나주 도회(羅州都會)의 호패(號牌)는, 어사(御史) 이조원(李調元)과 경차관(敬差官) 박수지(朴遂智) 등에게 호패(號牌)를 줄 때 광주(光州) 공천(公賤)ㆍ사천(私賤)의 문적(文籍)을 빠짐 없이 서울로 올려 보내게 하고, 그 감고(監考)로서 광주(光州)에 거주하는 정이효(鄭以孝), 서원(書員) 김흥순(金興順)ㆍ김여동(金與同)과 나주(羅州)의 기관(記官) 진호(陳浩)를 모두 형틀[械]에 매어 보내게 하라.”하였다.【원전】 8 집 35 면【분류】 호구-호적(戶籍)
    2021-02-05 | NO.86
  • 광주 목사 김수가 복식과 도적 처벌 등에 관하여 상서하다 - 세조 11년
    광주 목사 김수가 복식과 도적 처벌 등에 관하여 상서하다 - 세조 11년 을유(1465) 7월 4일(기유) 광주 목사(光州牧使) 김수(金脩)가 상서(上書)하기를,“신(臣)이 듣건대, 회포가 있으면 반드시 진술함이 신자(臣子)의 직분이라 하였으니, 망령된 뜻으로써 감히 우러러 천총(天聰)을 범합니다. 국조(國朝)의 제작(制作)은 중국의 제도를 고루 받았는데, 유독 부녀(婦女)의 머리 장식[首飾]과 복색은 오히려 옛습관을 따르고 있습니다.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집찬 비자(執饌婢子)로 입조(入朝)하였다 돌아온 자가 아직 있고, 그 의복은 모두 상의원(尙衣院)에 있으니, 신은 원컨대 앞으로 오는 집찬비(執饌婢)와 통사(通事)는 의녀(醫女)와 기녀(妓女)를 가려 정하여, 우선 수식(首飾)과 복식(服飾)을 교습(敎習)하되, 나누어 가르치게 하소서.1. 도적을 잡는 방법은 지극히 자상하고 지극히 세밀합니다. 그런데도 절도(竊盜)는 단지 고신(栲訊)ㆍ결장(決杖)만 하여 죄는 가볍고 이익은 중한 까닭으로 방자하게 행동하여 꺼림이 없습니다.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발을 자르는 것[刖足]은 힘줄을 끊는것[斷筋]과 서로 멀지 않으니, 신은 원컨대 이제부터는 절도를 범한 자도 그 한쪽 발을 자른다면 그 생명도 온전할 것이며, 위로는 성상(聖上)의 흠휼(欽恤)하는 어진 마음에 부응하고 아래로는 거민(居民)의 좌생(坐生)하는 소망에 위로가 될 것입니다.”하니, 명하여 해조(該曹)에 내려 의논하게 하였다.【원전】 7 집 692 면【분류】 정론(政論) / 의생활(衣生活) / 사법-치안(治安)[주-D001] 집찬 비자(執饌婢子) : 궁중에서 음식과 반찬을 만들던 일을 맡아 보던 계집종. 곧 요리사(料理師)를 말함.
    2021-02-05 | NO.85
  • 전라도 광주(光州)에서 선상(選上)한 종[奴]이었다 - 세조 11년
    전라도 광주(光州)에서 선상(選上)한 종[奴]이었다 - 세조 11년 을유(1465) 6월 28일(갑진) 화위당(華韡堂)에 나아가 활쏘기를 구경하는데, 어떤 사람이 백악산(白岳山)기슭에 올라가 종이를 나무 끝에 맨 것을 휘두르고 있으므로, 임금이 사람을 보내어 불러다 물으니, 전라도 광주(光州)에서 선상(選上)한 종[奴]이었다. 옷이 몸을 덮지 못하고 얼굴에는 굶주려서 누르스름한 빛을 띠고 있으며, 스스로 말하기를,“걸식(乞食)하며 조석(朝夕)을 지내고, 또 주인(主人)의 침책(侵責)을 입어 상언(上言)하려고 생각했으나 득달(得達)할 길이 없는 까닭으로 휘둘렀습니다.”하니, 임금이 불쌍히 여기어 사옹(司甕)으로 하여금 음식을 먹이게 하고, 또 면포(綿布)로 만든 철릭[帖裏] 1령(領)을 내려 주며, 양식을 주어 돌려 보냈다. 형조(刑曹)에 명하여 안동하여 온 사람과 주인(主人)이 침책(侵責)한 정유(情由)를 묻게 하고, 승전 환관(承傳宦官) 이득수(李得守)ㆍ안중경(安仲敬)을 의금부(義禁府)에 내리니, 하성위(河城尉) 정현조(鄭顯祖)를 파직(罷職)하자고 아뢴 위의 일을 계완(稽緩)한 때문이었다.【원전】 7 집 692 면【분류】 신분(身分) / 왕실(王室) / 사법(司法) / 인사-임면(任免)[주-D001] 선상(選上) : 중앙에서 필요로 하는 노자(奴子)를 각 지방에서 뽑아서 서울로 올려 보내던 일.
    2021-02-05 | NO.84
  • 지진이 일어나 해괴제를 지내다 - 세조 10년
    지진이 일어나 해괴제를 지내다 - 세조 10년 갑신(1464) 8월 23일(갑진)        전라도(全羅道) 광주(光州)와 경상도(慶尙道) 김해(金海)에 지진(地震)이 일어나니, 향(香)과 축문(祝文)을 내려 주어 해괴제(解怪祭)를 지냈다.【원전】 7 집 647 면【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과학-지학(地學)
    2021-02-05 | NO.83
  • 환관 임용을 광주에 보내어 정종의 아내를 데리고 오게 하다 - 세조 7년
    환관 임용을 광주에 보내어 정종의 아내를 데리고 오게 하다 - 세조 7년 신사(1461) 10월 23일(기축) 환관(宦官) 임용(林用)을 광주(光州)에 보내어 정종(鄭悰)의 아내를 데리고 오게 하였다.【원전】 7 집 494 면【분류】 사법-탄핵(彈劾) / 변란-정변(政變)
    2021-02-04 | NO.82
  • 전라도 도관찰사 함우치가 정종에 대해 치계하다 - 세조 7년
    전라도 도관찰사 함우치가 정종에 대해 치계하다 - 세조 7년 신사(1461) 7월 26일(갑자) 전라도 도관찰사(全羅道都觀察使) 함우치(咸禹治)가 치계(馳啓)하기를,“광주(光州)에 안치(安置)한 정종(鄭悰)이 본월 19일에 수직(守直)하는 사람을 불러 말하기를, ‘내가 삼칠일(三七日)을 먹지 아니하고 앉아 참선하여 지금 이미 성불(成佛)하였고, 사리(舍利)가 분신(分身)하여 향기로운 냄새가 방에 가득하고 상서로운 기운이 하늘에 연하였으니, 만약 계달(啓達)을 늦추면 이 고을 사람들을 특히 다 죽이겠다.’ 하면서, 몸을 떨쳐 뛰어오르고 발로 문짝과 담장을 차며 망령되게 미친 말을 발하였는데, 수직(守直)하는 사람들이 주위를 살펴보니 바깥 문 위에 사람의 자취가 있으므로, 곧 찾아서 중[僧] 성탄(性坦)이란 자를 잡아서 단단히 가두고, 아울러 수직하는 사람과 일에 간여한 자를 가두었습니다. 정종이 가지고 있던 경문(經文) 한 종이를 올려 보냅니다. 정종이 외인(外人)과 교통(交通)하여 담을 넘어 불러들인 형상을 보면 잡인(雜人)과 서로 통한 것은 하루아침의 일이 아닌 것이 명백하니, 죄악이 깊고 무겁습니다. 목사(牧使) 유곡(柳轂)은 조금도 금방(禁防)하지 아니하였으니, 청컨대 아울러 유사(攸司)로 하여금 가두어 국문(鞫問)하게 하소서.”하니, 의금부 진무(義禁府鎭撫) 이번(李蕃)에게 명하여 정종ㆍ유곡 및 성탄과 일에 간여한 사람들을 잡아 오게 하였다.【원전】 7 집 476 면【분류】 사상-불교(佛敎) / 사법-행형(行刑) / 사법-재판(裁判)[주-D001] 삼칠일(三七日) : 21일.
    2021-02-04 | NO.81
  • 전라도 관찰사에게 중국인을 보내니 잘 돌보도록 치서하다 - 세조 7년
    전라도 관찰사에게 중국인을 보내니 잘 돌보도록 치서하다 - 세조 7년 신사(1461) 6월 3일(임신) 승정원(承政院)에서 임금의 전지(傳旨)를 받들어 전라도 관찰사(全羅道觀察使)에게 치서(馳書)하기를,“이제 중국 사람[唐人]을 보내니, 왕인(王仁)은 광주(光州)로, 제자(除刺)는 전주(全州)로, 양인(梁寅)은 순창(淳昌)으로, 동주보(童周保) 및 처자(妻子)는 남원(南原)으로 보내어 부호(富戶)에게 보수(保授)하게 하고 놀리는 밭을 주어 경작(耕作)하되, 5년을 한하여 관가에서 의복을 주고, 아내가 없는 자는 부호의 〈딸을〉 골라서 장가들여 주고, 급복(給復)하는 것과 같이 살게 하여 처소(處所)를 잃는데 이르지 말게 하고, 절계(節季)마다 이름을 기록하여 아뢰라.”하였다.【원전】 7 집 467 면【분류】 외교-명(明) / 농업-전제(田制) / 군사-군역(軍役)[주-D001] 급복(給復) : 조세(租稅)를 면제하던 복호(復戶)의 특전을 주던 것. 《경국대전(經國大典)》 병전(兵典) 복호조(復戶條)에 보면 “향화인(向化人)은 10년 동안 복호한다.” 하였음.[주-D002] 절계(節季) : 세말(歲末). 곧 한 해의 마지막 때.
    2021-02-04 | NO.80
  • 병조에서 여러 진에 인을 주조하여 줄 것을 아뢰다 - 세조 5년
    병조에서 여러 진에 인을 주조하여 줄 것을 아뢰다 - 세조 5년 기묘(1459) 7월 11일(경인) 병조(兵曹)에서 경상도 절제사(慶尙道節制使)의 계본(啓本)에 의거하여 아뢰기를,“안동부(安東府)가 비록 거진(巨鎭)이 되지마는 다른 동래(東萊)ㆍ연일(延日) 등 군사가 있는 여러 진(鎭)의 예(例)는 아니니 군관(軍官)을 둘 필요는 없습니다. 만약 군정(軍情)의 공사(公事)를 맡아 볼 때는 모름지기 진인(鎭印)을 사용해야 되니, 청컨대 안동진(安東鎭)이란 세 글자를 새긴 인(印)을 주조(鑄造)하여 보내게 하고, 그 밖에 전라도(全羅道)의 나주(羅州)ㆍ장흥(長興)ㆍ광주(光州)ㆍ남원(南原)ㆍ전주(全州)와, 경상도(慶尙道)의 울산(蔚山) <중략>  등과 같은 여러 진(鎭)에도 또한 안동진(安東鎭)의 예(例)에 의거하여 인(印)을 주조(鑄造)하여 주도록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원전】 7 집 337 면【분류】 군사-지방군(地方軍) / 군사-군정(軍政)[주-D001] 군정(軍情) : 군대의 정상(情狀).
    2021-02-04 | NO.79
  • 광주에 안치된 정종과 그 아내에게 3절기 의복을 내리다 - 세조 5년
    광주에 안치된 정종과 그 아내에게 3절기 의복을 내리다 - 세조 5년 기묘(1459) 5월 29일(경술)       금산(錦山)에 안치된 이영(李瓔)과 그 아내, 광주(光州)에 안치(安置)된 정종(鄭悰)과 그 아내에게 3절기의 의복을 내려 주었다.【원전】 7 집 330 면【분류】 사법-행형(行刑) / 변란-정변(政變) / 왕실-사급(賜給)[주-D001] 이영(李瓔) : 화의군(和義君). 세종의 제1 서자(庶子).
    2021-02-04 | NO.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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