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술(柳述, 1582~1652)의 자는
효숙(孝叔). 호는 애죽헌(愛竹軒)이다. 종부시소윤
한생(宗簿寺少尹 漢生)의 8대손, 예조좌랑 육유당 사경(禮馴佐郞 六有堂 恩敬)의 둘째로 선조(宣祖) 15년 壬午에 광주에서 태어났다. 일찌기 외조(外祖) 회재 박광옥(懷齋 朴光玉)에게 학문을 익혀 문장과 행의로 그 명성이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산96 나옹선사(1320~1376)는 1340년 허망하게 요절한 친구의 죽음에 무상함을 느끼고 그길로 공덕산 묘적암에서 요연선사에게 출가한다. 1344년에는 회암사에서 큰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원나라에 가서 연경의 법원사에 머물며 4년여를 지공에게 수학하였다구월산ㆍ용문산ㆍ원적산ㆍ금강산 등
광주, 담양 등지에서 일제군경과 친일파를 응징한 김동수(1879∼1910)는 본관은 김해로 광주목 경양면景陽 병문리屛門 , 현 북구 우산동 283번지에서 태어났다. 처가는 중흥동 84-3번지이다.(후손 김홍두 증언) 그는 포목상과 농업에 종사하였다. 한말의 망국과정을 지켜보면서 의분을 품고 살다가 결국 의병을 주도한 전남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452(광곡길 133)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조선 전기 기대승을 추모하기 위해 1578년 창건한 서원. 교육시설로 호남정신문화의 산실로 일컫고 있다. 기대승(奇大升), 박상(朴祥), 박순(朴淳), 김장생(金長生), 김집(金集)등 조선 명신들을 배향하고 있다.1578년(선조 11)에 김계휘(金繼輝)를 중심
치평동(주) [동] 본래 광주군 군분면의 지역인데.'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계수리, 노치리 일부와 내정면의 하촌리, 평촌리의 각 일부와 덕산면과 서작리 일부와 우산면의 동작리 일부와 당부면의 마륵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노치와 평촌의 이름을 따서 치평리라 하여 극락면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 광주시에 편입
고경명은 당시 광주목사이던 임훈 일행과 함께 1574년 4월 20일부터 24일까지 5일 동안 산사에서 유숙하며 무등산 권역을 유람했다. 널리 알려진 고경명의 유서석록은 그 시절 등산 관행과 산행 경로를 엿볼 수 있다. 다음은 ‘유서석록’이다. 산행 경로 : 증심사 → 사인암(舍人巖) → 증각사(證覺寺) →죽정(竹亭)&n
유촌동(柳村洞) 【동】 본래 광주군 내정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신촌리 일부와 군분면의 쌍촌리 일부와 황제면의 죽림리, 동배리 일부, 덕산면의 서작리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버드나무가 많았으므로 유촌리라 해서 극락면에 편입하였다가 1955년 광주시에 편입되고, 1957년 동제 실시에 의하여 유덕
덕흥동(德興洞)【동】본래 광주군 덕산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동작리, 서작리 의 각 일부와 황계면의 동배리 일부와 내정면의 신촌리, 평촌리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덕산 밑이 되므로 덕흥리라 하여 극락면에 편입되었다가, 1955년 광주시에 편입되고, 1957년 동제 실시에 따라 유덕동회의 관할
광주시 북구 복룡길 54(신용동) 복룡마을이 목사신후석유영세불망비(牧使 申候 錫游永世不忘碑)는 신석유(申錫游, 1842∼1886) 를 기리는 비이다.신석유는 1870년 부임했다. 1871년 봄 지금의 북구 신용동 복룡마을 주민들이 영산강 솔무대기 숲 주변에서 잡은 물고기를 마을로 가져와 솥에 끓이다 불이 나 마을이 전소된 일
예로부터 광주에는 왕조대王祖臺라 명명하던 곳이 있었지요. 왕조대는 왕이 머문 곳 또는 왕이 군진軍陣을 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왕이란 다름 아닌 고려 왕조의 건국자인 태조 왕건을 말합니다. 이 왕조대에 얽힌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1천 년 전으로 올라갑니다. 어느 해 광주천 하류의 너른 들에서 왕건과 견휜의
덕흥나루는 광주광역시 서구 유덕동 덕흥마을에 있었다. 덕흥마을이 들어선 언덕은 전형적인 도상구릉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주변 지역의 암석이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대부분 풍화침식으로 들이 되었음에도 이곳만은 그것을 견뎌내고 여전히 언덕 형태로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영락없이 산처럼 보이기에 사람들이
서구 덕흥동유덕동의 덕산은 야트막한 산이다. 예전에 동네 사람들은 똥뫼라 불렀다. 해발 30여m에 불과하여 산처럼 보이진 않지만 주변으로 넓고 평탄한 들녘이 펼쳐져 있어 멀리서도 금방 눈에 띈다. 덕산이라는 이름에는 ‘큰 산’이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예전에는 드넓은 들판에 우뚝 솟아있어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었
서구 유덕동 (덕흥마을)유덕동 마을의 원래 명칭은 덕산이었다. 1914년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덕흥으로 부르게 됐다. 마을의 역사는 500여년이 된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원래 한씨 성촌이었다고 전해지나 현재 나주 오씨와 남평 문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이 마을 야트막한 덕산德山(해발 35m) 정상에 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