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현(高在鉉, 1885~1967) 1책, 필사본. 고재현은 초명이 재봉(在鳳)이며, 자는 치구(致球)이고, 호는 지산(志山)이다. 1885년 12월 24일 무안읍 용월리 토동 집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에 입학하였는데, 서당 선생이 그의 재능을 시험해 보고자 매일 통사 5백 행을 과제로 내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모두 외우고서 한 글자도
근세 초 기의 한학자 고재현(高在鉉, 1885 ~ 1967)이 지어 학문을 강구하며 후학을 가르치는 강학터로 사용했다.그는 고재현은 초명이 재봉(在鳳)이며, 자는 치구(致球)이고, 호는 지산(志山)이다. 무안읍 용월리 토동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고경명(高敬命)의 후손으로 민재(敏齋) 박임상에게 나아가 공부하였
송강 정철의 넷째아들 기암 정홍명의 <기옹만필畸翁漫筆> 鄭弘溟著 ●율곡 선생이 화담(花潭.서경덕)의 학문에 대해 말할 때에는, “기(氣)를 이(理)로 아는 병폐가 좀 있다.” 하고, 《대학》소주(小註) 중 진북계(陳北溪.송나라 학자)의 설명에 대해 반박하여 말하기를,“이(理)와 기(氣)는 원래 서로 떨어지지 않은 것
광주광역시는 <도은선생집>과 운암서원 소장 <해광집목판>을 시 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했다.광주광역시 문화재위원회는 관계학자·전문가 조사, 30일 이상 문화재 지정예고 등의 결과를 검토해 도은선생집을 제30호, 광주 운암서원 해광집목판을 제31호 시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하기로 최근 결정했다.도은선생
벽진서원(원장 윤장현) 2020유교아카데미 개강식이 7월 2일 광주시 서구 풍암동 벽진서원에서 수강생 30여명과 내빈 등 1백여명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벽진서원은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유교지원국고보조사업’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이날부터 ‘유교아카데미’와 ‘청소년 인성교육’ 등 두 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이번 사업
민속테마 박물관에 광주 근대역사전시 보강광주광역시립민속박물관이 광주의 근대역사 전시를 보강한 ‘광주역사민속박물관’으로 27일 새롭게 선보인다.시립민속박물관은 지난 1987년부터 남도의 다채롭고 풍부한 문화와 생활상을 소개하며 지역의 전통문화를 널리 알리고 계승하는데 앞장서왔다. 지난 3년간 ‘박물관
제2회 광주광역시 창작희곡공모전에서 대상에 ‘남겨질, 떨어진 잎’, 우수상에 ‘그 길에 묻다’가 선정됐다.광주서구문화원(원장 정인서)은 20일 오는 11월중 제6회 광주시민연극제 공연 작품으로 공모한 창작희곡 가운데 춘설차 이전의 무등산 차밭을 배경으로 한 손윤필과 김희선의 공동작인 ‘남겨질, 떨어진 잎’을 대상작품
역사는 늘 반복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역사를 배우는 일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고 미래를 좋은 방향으로 일구기 위해서이다.광주 서구문화원은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지난 16일 ‘40주년, 오월 서구로(路)’라는 주제로 서구에 있는 5.18사적지를 중심으로 역사문화탐방을 진행했다.이번 역사문화탐방은 광주
광주광역시
광산구 동호동 32-2에 있는 조선 중기의 문신 송천(松川) 양응정(梁應鼎)의 묘. 1978년
9월 22일 광주광역시기념물 제8호로 지정되었다.
양응정(1519~1581)의
자는 공섭(公燮), 호가 송천(松川)으로 본관이 濟州이며, 홍문 관 교리를 역임한 학포 양팽손(學圃 梁彭孫)의 아들이다.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명덕재(明德齋)는 광산구 임곡동에 창녕 조씨(昌寧曺氏) 송암(松庵) 조언수(曺彥壽)를 기리는 제각으로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옛 나주군 본량면이다.1938년에 발간한 조선환여승람 나주(朝鮮寰輿地勝覽 羅州)편에 전하고 있어 1897~1938년 기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명덕(明德)은 대학(大學)의 첫머리
조언수曺彥壽의 본관은 창녕, 자는 일여, 호는 송암松庵이다. 시조는 신라 창성부원군 조계룡을 시조로 증조는 조대진으로 조선왕조 변융 문과 중시에 합격하여 예조 참의를 지냈으며 할아버지 조경덕은 예조좌랑을 지냈다. 아버지 조세랑은 상주영장을 지냈으며 외할아버지는 전주 이학림으로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류희달柳希達의 본관은 문화文化이고 호는 농포弄圃이다.임진왜란 당시 의병을 규합하여 활약하였다. 1594년(선조27) 무과에 합격하여 선전관으로 재직하였으며 1599년(선조32)에 죽산부사를 거쳐 동지중추부사를 지냈다. 1600년(선조33) 의인왕후懿仁王后 국상 때 산릉을 만드는 역군役軍을 늦게 보낸 일로 파직된 후
양산축梁山軸의 본관은 제주濟州이며 자는 유석維石이다. 1571년 박뫼마을에서 송천 양응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1세에 부친상을 당하였으며 예의범절이 어른들과 다름없었으며 두 형 양산룡梁山龍과 양산숙梁山璹을 본받아 차분한 마음으로 글을 외우고 읽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도량이 넓어 아버지 유언에 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