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광산구 선암동 350번지1920년 건립, 1984년 재건립옛 선암역촌 어귀에는 가뭄 때 소작료를 면해주었다는 선암역 찰방이었던 박경주 송덕비가 있다. 송정동에서 호남대 방향으로 가다가 오른쪽 선암마을 쪽으로 100여미터 들어가면 왼쪽에 있다. 지주이면서 덕을 베풀었다고 한다.박경주
유혜비는 지주이
광주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광주공원內)1669년목사한후성우애민선정비(牧使韓侯聖佑哀愍善政碑)는 광주목사(光州牧使)를 역임한 한성우(韓聖佑, 1633~1710)의 선정비(善政碑)이다. 한성우는 1689년 기사환국으로 노론이 몰락하고 송시열도 제주도로 귀양 갔다가 사사되자 그 역시 벼슬을 버리고 낙향했다. 1694년
광주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 (광주공원內)행주산성 전투로 잘 알려진 권율 장군의 도원수충장권공창의비(都元帥忠莊權公倡義碑)는 사적비군 입구 은행나무 정중앙 앞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가장 갚진 비다. 권율 장군은 팔도 총사령관이었으며 광주목사와 도원수를 지내며 이순신 장군과 함께 육지는 권율, 바다는
서구 용두동 봉학마을에는 읍궁암泣弓巖이 있어요. 엄이재掩耳齎 뒤편에 있는 푸른 이끼가 낀 바위를 말합니다. 이 엄이재는 한말 유학자이자 깨어있는 지식인으로 평가받는 현와弦窩 고광선高光善(1855∼1934) 선생이 1905년 을사늑약이 강제로 체결되자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봉황산鳳凰山에 들어가 은거하면서 후학을 양성
서구 화운로156번길 17-8(화정동)화담사花潭祠는 하동 정씨 사당이다. 문절공 정수충鄭守忠(1401∼1469)에 대한 집을 지어 영정을 모시라는 왕의 교시가 내려졌고, 1478년 보성군수를 지낸 정화鄭和(1434∼1505)가 군분으로 이사, 영정을 봉안하는 영당을 만들면서 출발한다. 화담사를 중심으로 하동 정씨 집성촌이
서구 금호운천길 31(금호동) 병천사秉天祠는 지방 세력가로 알려진 지응현池應鉉(1868∼1957)이 일제강점기에 지은 사당으로 충주 지씨들의 사우이다. 고려 말의 충신인 정몽주(1337∼1392)를 비롯해 전라도도원수를 지냈던 지용기(1330∼1392), 고려 명장 정지의 9대손인 정충신(1576∼1636), 서흥부사를 지냈던 지계최(?∼1636)
서구 화운로156번길 17-8(화정동)광주지하철 화정역 4번 출구로 나와 하동정씨 추선회관 쪽으로 내려오다 왼쪽 골목으로 꺾어 조금 걸어 들어가면 도심과는 낯선 풍경 하나가 펼쳐진다. 사당이 있기 때문이다. 주택과 아파트를 담벼락과 병풍 삼아 자리하고 있는 화담사花潭祠가 그곳으로, 하동 정씨 사당이다. 1776년(영조5
서구 금호운천길 31(금호동) 병천사秉天祠는 지방 세력가로 알려진 지응현池應鉉(1868∼1957)이 일제강점기에 지은 사당으로 충주 지씨들의 사우이다. 고려 말의 충신인 정몽주(1337∼1392)를 비롯해 전라도도원수를 지냈던 지용기(1330∼1392), 고려 명장 정지의 9대손인 정충신(1576∼1636), 서흥부사를 지냈던 지계최(?∼16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