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첩고(報牒攷) -光州牧使○ 영조(英祖) 42년(1766) 3월 16일 영주인(營主人) 및 향대동청(鄕大同廳), 전관청(傳關廳)에서 징수하지 못한 환자(還上)를 변통할 것을 순영(巡營)에 보고하다첩보(牒報)하는 일. 목사(牧使)가 부임한 뒤에 환곡(還穀)의 포흠(逋欠)이 발각되는 대로 조사하여 대략 수습하였습니다만 그 가운
보첩고(報牒攷) -光州牧使○ 영조(英祖) 42년(1766) 2월 초1일 조윤관(曺允寬)ㆍ이필제(李必齊) 등이 제소한 양천(良賤) 변별의 송사에 관한 입안(立案)결급(決給)에 관한 일. 본주(本州)의 하리(下吏) 조윤관의 정장(呈狀)에, “제가 이필제ㆍ이한적(李漢迪)ㆍ이한복(李漢復) 등과 더불어 서로 송사를 벌인 것은 이미 전
보첩고(報牒攷) -光州牧使○영조(英祖) 41년(1765) 11월 20일 능주(綾州) 이순성(李舜星)과 본주(本州) 이춘성(李春星) 등의 전답(田畓) 송사에 관한 입안(立案)결급(決給)에 관한 일. 능주에 거주하는 유학(幼學 사족(士族)으로 아직 벼슬하지 아니한 사람) 이순성의 정장(呈狀)에, “관하 천곡면(泉谷面) 완동리(莞洞里
보첩고(報牒攷) -光州牧使○ 영조(英祖) 42년(1766) 정월 초6일 방죽과 보를 수축(修築)하는 일에 관해 순영(巡營)에 보고하다첩보(牒報)하는 일. 작년의 홍수는 근년에 없던 것으로 방죽과 보를 막론하고 도처마다 붕괴되고 훼손되었으므로 봄철에 수축하는 것을 조금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또 지엄한 관문(關
보첩고(報牒攷) - 光州牧使○ 영조(英祖) 41년(1765) 9월 25일 분등 장계(分等狀啓)를 봉하여 발송함신이 8월 18일에 전답(田畓)의 작황을 살펴보기 위해 출발하였는데, 먼저 좌도(左道)의 협곡과 들판을 경유해 우도(右道)의 연해안을 향해 가면서 재해를 입은 고을을 두루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신의 발과 눈이 미치
보첩고(報牒攷) - 光州牧使○ 영조(英祖) 41년(1765) 9월 12일 순영(巡營)에 돈을 청구하는 보장(報狀)첩보(牒報)하는 일. 본주(本州)가 특히 심하게 피폐해진 상황에 대해서는 사또(使道)께서 이미 통촉하고 계실 것입니다. 백 가지 중에 하나도 제대로 모양이 갖추어진 것이 없는데, 그중에 공해(公廨 공무(公務)를 집
보첩고(報牒攷) - 光州牧使○ 영조(英祖) 41년(1765) 9월 23일 창평현(昌平縣) 삼지천(三支川) 마을에 사망한 사람 정몽표(鄭夢杓)의 복검장(覆檢狀)첩보(牒報)하는 일. 각 사람들의 공초(供招)를 받았습니다. 살옥(殺獄)의 핵심은 사망의 원인이 명백해져야만 산 사람이든 죽은 사람이든 간에 억울한 바가 없을 것입니
보첩고(報牒攷) - 光州牧使○영조(英祖) / 영조(英祖) 39년(1763) 9월 13일 각 방(坊)에 전령(傳令)하다거행할 사안을 통지하는 일. 지난 분기 때 보민청(補民廳)에서 대용(貸用)한 군작미(軍作米) 2백 95석을 상환하지 않아 기부(記付)에다 기록해 놓기까지 하였다. 보민청은 본래 민고(民庫)이므로 그 원입(原入)의 용
보첩고(報牒攷) 光州牧使○ 영조(英祖) 39년(1763)8월 초5일 금법(禁法)을 어기고 술을 빚은 자들에 대해 새로 반포한 영(令)에 따라 발각되는 대로 감처(勘處)한 일을 순영(巡營)에 보고하다첩보(牒報)하는 일. 술 빚는 것을 금지하는 일에 대해 잇따라 엄하게 신칙하여 기찰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런데 본부(本府) 남면(南面
호남계록(湖南啓錄)○고종(高宗) / 고종(高宗) 23년(1886)정월 13일 승정원 개탁매년 봄 맹월(孟月 1월)에 동반(東班 문반(文班)) 3품 이상 서반(西班 무반(武班)) 2품 이상은 각각 수령과 변장에 합당한 사람을 천거하되 모두 세 사람을 넘을 수 없다고 법전에 실려 있습니다. 신이 천거하는 수령과 변장의 천거 단자 각 1건
호남계록(湖南啓錄)○고종(高宗) / 고종(高宗) 22년(1885)12월 초7일전라도 관찰사 겸 순찰사 신 윤(尹)은 삼가 상고(相考)의 일을 아룁니다. 을유년(乙酉年, 1885, 고종22) 연분(年分) 재실(災實 재해를 입은 것과 곡식이 충실한 것)을 전례대로 마련하여 성책(成冊)하고 수정하여 2건을 호조(戶曹)에 올려 보냅니다. 본도(
호남계록(湖南啓錄)○고종(高宗) / 고종(高宗) 22년(1885)12월 10일 승정원 개탁이번에 도착한 형조(刑曹)의 계하 관문(啓下關文)에, “이번에 계하한 본조(本曹)의 계목(啓目)에, ‘올해 3월 15일 동가(動駕)하실 때 위외(衛外)에서 격쟁(擊錚)한 사람의 원정(原情)은 정식에 따라 후록(後錄)하였습니다. 그 원정을 가져다 살
전주 판관(全州判官) 민영숙(閔泳肅)나주 목사(羅州牧使) 박규동(朴奎東)광주 목사(光州牧使) 김윤현(金胤鉉) 아직 부임하지 않았음. *4월 14일에 제수되었음./ 능주 목사(綾州牧使) 홍우경(洪祐慶)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음.남원 도호부사(南原都護府使) 홍면주(洪冕周)장흥 도호부사(長興都護府使) 유치희(兪
참판(參判) 한공(韓公) 성우(聖佑) 의 신도비명 병서수암(遂庵) 권상하(權尙夏)의 《한수재집(寒水齋集)》 제25권 / 신도비(神道碑)근세에 사계ㆍ우암 두 선생이 도학을 전승하여 온 세상의 사종(師宗)이 되었는데, 한공 여윤(韓公汝尹)은 사계의 외손자로 우암의 문하에 출입하면서 젊어서부터 모든 것을 보고 듣
점필재집 시집 제4권 / [시(詩)]오월 이십팔일에 충청도 유지경차관이 되어 이사성ㆍ성시좌와 함께 서울을 출발하여 용인에서 자고, 다음 날 금령의 갈림길에 이르러 나는 양성으로 향해 가면서 짓다. 이 때 사성은 경상도로 향하였는데 그의 어버이가 진주에 있었고, 시좌는 전라도로 향하였는데 그의 부친이 광주목사로 있
김 감사(金監司) (우굉 宇宏) 에 대한 만사(挽詞)- 김우굉(1524~1590)《우복집(愚伏集)》 별집 제1권 / 시(詩)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2)총각 시절부터 이미 노성한 이 같았거니 / 丱角凝然已老成문장 솜씨 뛰어나서 그 명성이 우뚝했네 / 更將詞藻擅華聲원기부는 사람들이 앞다투어 외웠었고 - 공은 어린 나
승지 증(贈) 이조 판서 나은(懶隱) 이공(李公) 시장(諡狀)- 이동표(李東標, 1644~1700)-사신(詞臣) 을 대신하여 지은 것이다.연암집 제9권 별집 / 고반당비장(考槃堂秘藏)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1805)금상(今上) 8년 갑진년(1784)에 영남 유생 아무개 등 몇 사람이 대궐 문 앞에 엎드려 소장을 올려 다음과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