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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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야승-난중잡록2; 고종후 통문 보내다

임진년 하 만력 20년, 선조 25년(1592년)

8월 22일. 전라 좌우 의병장이 무주(茂朱)로부터 군사를 이끌고 남원에 와서 진을 치다. 최(崔)는 객사 서헌(西軒)에 거처하고 임(任)은 광한루(廣寒樓)에 머물렀다. 이유의(李由義)를 경상 좌수사로 삼다. 이보다 먼저 유의가 천병계원사(天兵繼援使)로 서울에 달려가 직산(稷山)에 이르렀는데, 죽산(竹山)에서 군사가 패하고 남양(南陽)에 옮겨 주둔하여 그대로 강화를 향하였다. 이때에 이르러 명령을 받고 그 군사를 광주 판관(光州判官) 등에게 맡겨서 강화로 들여보내고, 자신은 단기(單騎)로 도로 호남으로 내려와서 이어 영남으로 향하다.

10월 18일. 세 개의 해가 함께 나왔다. 국가가 함몰되고 임금이 파천하였으니, 변괴가 나오는 것이 괴이할 것도 없다.
○ 함경 감사 유영립(柳永立)의 온 가족이 포로가 되었으므로 윤탁연(尹卓然)으로 대신하였더니, 그 뒤에 영립은 도망해 왔는데 그 어머니는 아직 왜적의 수중에 있었다. 영립이 충성과 효도에 다 어긋났다 하여 매[鷹]를 왜적에게 바치고 어머니를 돌려주기를 빌었더니 적이 허락하였다 하다.
○ 전라 감사 권율이 수원 독성에 있으면서 행조(行朝)에 장계하니 임금이 찼던 칼을 풀어 전하여 보내 주며 말하기를, “모든 장수 중에 명령을 받지 않는 자가 있거든 이 칼로 처치하라.” 하다. 이때에 경성의 적이 호남 군사가 또 수원에 이르렀다는 말을 듣고 군사 수만 명을 내어 길을 나누어서 침범하였다. 권율이 성을 굳게 지키고 움직이지 않으니 적은 오산(烏山) 등지에 세 군데 병영을 만들고 날마다 도전하였으나, 권율이 또한 응하지 않고 때때로 기병(奇兵)을 내어 매복시켰다가 쏘고 베니 적이 밤에 병영을 불태우고 도로 경성으로 들어가다. 바야흐로 적이 침범할 때에 권율이 날마다 체찰사에게 보고하여 본도에 응원병을 처하니, 정철이 전라 도사에게 급히 글을 보내기를, “흉한 적이 수원 땅에 가득하여 청회(靑回) 오산의 들판에 적진이 퍼져 있고, 독성 밑에는 날마다 싸우지 않을 때가 없다. 한 도의 주장이 바야흐로 적병의 포위 속에 있는데 사방을 돌아보아도 응원이 없으므로 날마다 3번씩이나 급히 보고하니, 본도의 관군과 의병을 성화(星火)같이 발송하여 수원성의 군사를 구하라.” 하다. 도사 최철견(崔鐵堅)과 변사정(邊士貞)ㆍ임희진 등 의병이 달려가 응원하다.
11월. 경기 조방장 첨지 홍계남(洪季男)이 복수할 일로 격문을 전하니, 다음과 같다.
하늘이 돌보지 않아 난이 이와 같이 심하여 승여가 서쪽으로 파천하니, 만백성이 의탁할 데가 없도다. 눈을 들어 강산을 보매 그 누가 간장이 찢어지지 아니하랴. 이 땅에서 먹고 살고 혈기를 가진 자들은 모두 마땅히 창을 베개 삼고 모든 간고(艱苦)를 참으며 임금과 아버지를 위하여 복수해야 할 것인데, 내가 불행히 이 참혹한 처지를 당하여 흉한 칼날 아래 아버지와 형이 모두 목숨을 잃었으니, 어찌 구차스럽게 살기를 원하여 이 적들과 한 하늘을 같이 이고 있겠는가. 인하여 생각건대, 원근의 선비와 백성들이 나와 같이 참혹하고 비통한 일을 당한 이가 반드시 백이나 천으로 헤아리는 정도에만 그치지 아니할 것이므로 이에 여러 장사들을 모집하여 한 군대를 만들어 복수하는 군사[復讐之軍]라고 이름 하여 부형의 깊은 원수를 갚으려 하는데, 제군들은 어떻다 하겠는지 모르겠다. 그대의 아버지ㆍ형ㆍ아내ㆍ자식이 참살당하여 해골이 들판에 드러나서 원흔이 의탁할 데 없이 황천이 아득한데, 우리가 홀로 편안히 물러나서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원수를 갚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황천에 혼령이 있건대 감히 내가 아들이 있고 아우가 있다 하겠는가. 생각이 이에 미치니 털끝이 쭈뼛하다. 제군들이 만약 이 말을 옳다고 한다면, 부형과 처자의 원수가 있는 이들은 마땅히 각기 징발하고 모집하여 무기를 준비하여 날짜를 약속하고 발정(發程)하여 종천(終天)의 원통함을 조금 풀어서 《춘추》의 의를 저버리지 아니함이 어떠하겠는가. 이상을 8도에 통문함.
○ 통문은 다음과 같다.
때를 불행히 만나서 가화(家禍)가 망극한데 불초한 고자(孤子 아버지가 죽은 상주의 자칭)는 초토(草土 상중에 있다는 뜻)에 병들어 아직도 이 적과 한 하늘을 이고 있었더니, 이제 첨지 홍계남(洪季男)이 먼저 대의로 주창하여 여러 도에 전해 타일러서 원통함을 참고 있는 사람들과 더불어 같이 적을 쳐서 원수 갚을 일을 도모하니, 사람의 마음은 같은 바이거늘 누가 흥기하지 아니하리오. 조완도(趙完堵) 군은 아사(亞使) 조헌(趙憲)의 아들이라 반드시 장차 아버지의 군사를 수습하여 호서에서 깃발을 들 것이다. 고자는 비록 못났으나 친상(親喪)이 이미 땅 속에 들어갔으니 이 몸은 죽어도 또한 유감이 없으므로 애통함을 무릅쓰고 병든 몸을 붙들고 본도의 동지 제군들과 군사와 기계를 모집하여 북으로 가서 적에게 죽을 계책을 하려 하노니, 엎드려 생각하건대, 여러분도 역시 즐겨 들을 바일 것이다. 슬프다! 구차히 살아 이에 이르매 윤기(倫紀)가 멸하였다. 다만 인품이 미천하고 힘이 약하여 일을 선창하지 못함이 한이더니, 홍공(洪公)이 이미 선창하였는데 고자 등이 또 손을 소매 속에 넣고서 따라 일어나지 않고 늙어서 방구석에서 죽는다면 장차 어찌 선인(先人)을 지하에서 뵈오리오. 홍공은 명성과 위엄이 이미 드러나서 그를 빌려 일할 만하고, 태인(泰仁)ㆍ진원(珍原)ㆍ장성(長城)의 3사군(使君 지방의 수령)이 또한 종천(終天)의 원통함을 품어서 이 적과 함께 살지 않기를 맹세하였으며, 도체찰상공(都體察相公)이 군사를 합쳐 원수 갚을 것을 허락하여 법규로써 구속하지 않기로 하였고, 군량과 무기도 뒷날의 걱정이 없으니, 다만 제공이 호응하느냐의 여하에 달려 있다. 아! 호남 사람이라야만 일을 같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생각하건대 서울에서 남장으로 적을 피해온 사람인들 어찌 부자 형제의 원수가 없겠는가! 비록 적의 칼날에는 요행히 면하였으나 풍상을 겪어 고생으로 부모를 잃은 이도 또한 이 적을 잊지 못하리라. 부모의 원수와는 한 하늘 밑에 살지 않으며, 형제의 원수와는 나라를 같이하지 않으며, 벗의 원수는 칼을 돌리지 않는다는 의리를 거듭 생각하라. 망친(亡親)께서 추성(秋城)에서 의병을 일으킬 때에 남방의 제공이 국사에 같이 죽기로 기약하여 향을 태우고 하늘에 맹세하여 대장으로 추대하였을 때에는 진실로 형제의 의가 있었으니, 불행히 공업(功業)을 마치지 못하였으나 제공이 어찌 차마 길가는 사람을 보는 것같이 하겠는가. 당일에 부하로 있던 무사들은 다 이미 의병으로 달려갔을 것이나 혹시 일로써 집에 있거나 혹시 진터에 나누어 수자리하는 자들은, 원컨대 고자를 불초하다고 하지 말고 추성에서 피를 마시며 맹세하던 것을 생각하여 큰일을 같이 성취시킴이 어떠하오. 제공들이 만약 가하다고 생각하거든, 엎드려 비노니 일제히 광주(光州)에 모여서 면대하여 맹세와 약속을 맺고 출병할 기일을 정하기를 지극히 비나이다. 월일에 전 임피 현감(臨陂縣監) 고종후(高從厚).
후록(後錄) 1. 비록 원수 갚는 데 뜻이 있어도 병들고 약하여 능히 종사하지 못할 자는 무기로 서로 부조하든지 혹은 건장한 종을 대신 보내든지 혹은 쌀과 베를 내든지 혹은 전마(戰馬)나 짐 싣는 말을 내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할 것이니, 하천(下賤)ㆍ빈궁(貧窮)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비록 한 되의 쌀 한 치의 쇠라도 모두 서로 부조함이 가하다. 아! 정위(精衛)가 바다를 메우고 한 삼태기로 산을 만드나니, 다만 그 정성에 있지 많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1. 한갓 피난하여 온 사람으로서 앞장서서 맨손으로 서로 도울 만한 것이 없는 이는 혹은 자신이 군중에 따르든지 혹은 군량을 모집하되, 수수방관하지 말고 한 팔의 힘이라도 같이 들어줌이 어떠하오.
○ 전라 좌의병장 임계영이 거창으로부터 합천 해인사로 진을 옮겨서 영남 의병장 정인홍과 협력하여 성주의 적을 쳤다. 자세한 것은 계사년 5월 조에 나타나 있다. 최경회는 그대로 거창에 머물러서 김면과 개령에서 같이 일하다.
○ 심유경(沈惟敬)이 중국 조정에 갔다 와서 다시 평양의 적진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가 가지고 간 병부의 칙서에 중국 군사가 와서 구원한다는 말이 있다.
○ 복수 의병장 전 현령 고종후가 한 것은 다음과 같다.
제주(濟州)ㆍ정의(旌義)ㆍ대정(大靜) 3고을, 고성(高姓)ㆍ양성(梁姓)ㆍ문성(文姓) 3가 문호의 모든 어른에게 고하나이다. 옛적 태고 때에 인물이 생기기 전인 시초에 하늘이 세 신을 한라산 밑에 내려 보내시건대 고씨ㆍ양씨ㆍ부(夫)씨요, 또 아름다운 여인과 망아지ㆍ송아지의 종자를 함께 주어 한 지방에 터를 여는 조상이 되었으니, 이제에 이르러 인구의 번성함과 말을 많이 길러냄이 대개 세 신인의 덕택이 아님이 없습니다. 그 후세에 자손이 혹은 바다에 떠서 이리저리 옮겨 여러 곳에 흩어져 사니, 세상에서 이른바 제주 고씨, 제주 양씨는 모두 그 후손입니다. 고자의 선대도 고려 말기에 장흥(長興)의 고씨가 되었고, 부성(夫姓)의 후예는 지금에 문씨가 되어 처음의 부씨는 세상에 알려진 이가 없습니다. 지금 비록 분파(分派)가 되고 세계(世系)가 멀어서 경사와 조문에 통하지 않으나, 최초에 세 신인이 탄생한 상서와 형제의 의리는 지금까지도 사람들의 이목을 비추어 세상에서 말하는 사람들이 모두 아름답게 칭도하는데, 하물며 그 자손이 된 자들이야 어찌 차마 그 옛날을 생각지 아니하고 원수 갚는 사람을 대번에 길가는 사람처럼 보겠습니까. 근일에 망친이 적이 경성을 범하고 7도가 붕괴된 초기에 먼저 의병을 선창하였는데, 몸이 흉한 칼날에 죽어 하루에 부자(父子)가 국사에 함께 죽었습니다. 조정에서는 슬퍼하고 애석히 여겨 표장과 증직을 더하고 길 가던 사람도 듣고는 절로 눈물이 흐르거늘, 하물며 우리 한 뿌리에서 나온 사람이야 어찌 깊이 마음에 감동되지 않겠습니까. 불초한 고자는 비록 지혜와 재주가 얕고 짧아서 족히 망부(亡父)의 일을 이을 만하지는 못하나, 종천의 원통함을 씻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감히 사노(寺奴)의 군사를 거느리고 복수의 싸움을 하려 하나 본도에는 공사(公私)간에 파멸되어 군기와 전마(戰馬)를 마련할 도리가 없습니다. 생각건대 귀주(貴州) 3고을에는 물력(物力)이 홀로 완전합니다. 이에 격문을 가지고 사노와 대소 신민에 타이르는 동시에, 다시 생각한즉 동성(同姓)의 친함은 만세에 잊지 못할 의가 있으며 양성ㆍ문성 두 집도 또한 그 처음에 함께 생겼으니 한마디 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간담을 헤쳐 고하니, 소문을 듣고 의를 사모하기 바랍니다. 바라건대 3성(姓) 여러 어른들은 개연히 탄식하고 함께 불쌍히 여기시어 그 재력에 따라서 혹은 전마를 내고 혹은 힘을 합해 서로 부조하여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하여서, 위로는 하늘에 오르내리는 선조의 뜻을 맞추고 아래로는 고자 한 집의 죽은 이와 산 이가 바라는 바를 위로해 주심이 어떠하오. 정은 넘치고 말은 움츠러져 여쭐 바를 모르겠나이다. 《정기록(正氣錄)》에서 나옴.
○ 사노 의병장(寺奴義兵將) 전 현령 고종후가 운운한 것은 다음과 같다.
삼가 여러 고을 의병청 제공과 고을 안의 여러 군자에게 고하나이다. 고자는 저의 힘을 헤아리지 아니하고 바야흐로 첨지 홍계남, 조아사의 아들 완도와 더불어 함께 복수할 계책을 도모하던 차에 도체찰 상공께서 또 사노장(寺奴將)으로 임명하셨습니다. 고자가 비록 지혜와 재주가 얕고 짧아서 망부의 뜻을 계승할 수는 없으나 종천의 원통함을 한번 씻지 아니할 수 없으므로 감히 금혁(金革)의 변례(變禮)를 좇아 이 적과는 한 하늘을 이고 살지 않기로 맹서하니 여러 군자께서도 들으시면 또한 반드시 마음에 슬프게 여기실 것입니다. 생각건대 사노의 수효는 비록 명부는 만들었으나 늙고 약한 자를 추려내는 것을 오로지 아전들의 손에 맡기고 보니, 속이고 협잡하는 폐단이 없지 않습니다. 고자가 일을 일으키는 공효(功效)는 이것을 중하게 믿었는데 만약 징발한 것이 실지와 다르면 군사의 모양이 될 수 없습니다. 삼가 바라건대 제공께서 살피고 관리해 주시어 아전들로 하여금 농간을 하지 못하게 해 주시면, 건당한 자가 뇌물을 써서 빠질 수 없을 것이니 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고자는 비록 사사 원수를 갚는 것이지만 실로 나라의 적을 치는 것이니, 여러 군자께서 그 수고를 꺼리지 않으시고 저의 뜻을 이루어 주시면 어찌 다만 고자 한 집의 죽은 이와 산 이가 감사할 뿐이겠습니까. 다시 바라건대, 조금이나마 불쌍히 여겨 주시면 천만 다행이겠습니다.
후록. 오늘날 나라 안이 임금의 땅 아님이 없고 사해(四海)의 안이 모두 형제이니, 고자의 일을 사정(私情)으로나 공의(公義)로 헤아려 보건대 모두 예사로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각 고을 제공 중에 의병을 모집하는 이가 있으면 반드시 본래부터 친밀한 사이라야만 힘을 다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생각건대 널리 통문을 보내니 일정하게 지정한 데가 없으면 서로 미루고 사양할 염려가 있고 또 평소에 서로 아는 사이에는 한마디 간청이 없을 수 없으므로, 감히 의병청 제공 외에 또 따로 제공의 성명을 기록하면서 혹 비록 평소에 안면이 없이 명성만 서로 들은 분 또한 감히 외람되이 성명을 쓰니 협력해 함께 싸우기를 바라나이다. 《정기록》에 나오지 아니하였으니 상세히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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