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만계(蔓溪)에게 답함, 을묘(1795) - 다산시문집 제19권

만계(蔓溪)에게 답함, 을묘(1795, 정조 19년생 34세)  11월 27일 - 다산시문집 제19권


편지를 받으니 세모(歲暮)의 슬픈 생각이 위로됩니다. 용(鏞)의 병은 깊은 빌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난 보름께 눈 위에 비친 달빛이 희고 하늘이 맑으므로 밤에 두 손[客]과 앞 시내로 걸어나아가 시를 읊으며 산보도하고 물결을 일으키려고 돌도 던지다가 새벽 닭이 운 뒤에 돌아왔는데, 갑자기 왼쪽 겨드랑이의 담핵(痰核)이 불어났습니다. 요사이 또 꼼짝하지 않고 집에 있으면서 조리를 하였더니 담핵이 점차 풀리고 있습니다.
광주(光州)의 일은 바로 짖어대는 무리들이라 말할 가치도 없습니다. 더구나 사주(使嗾)한 자가 분명한 이상 다만 그의 죄만이 더해질 뿐입니다. 우리는 편안한 몸으로 수고로운 저들을 기다려야 되겠기에 용은 가형(家兄)께 부탁하여 부디 난잡한 말을 서로 전하지 말고 혹시 경사(京使)가 오더라도 안부를 묻는 인사말 이외에는 모두 청담(淸談)이나 아학(雅謔 고상한 해학)만을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화(子和)는 매우 성실한 사람이어서 부지런히 채집하고 탐문하고 또 보고를 받아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니, 여러 말을 해보았자 아무 소용없고 다만 남의 마음만을 어지럽힐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온양(溫陽)의 물론도 놀라거나 괴이하게 여길 것 없습니다. 모든 훼방이란 자기로부터 선동되어 우연히 부박(浮薄)하고 불량한 무리가 비어(蜚語 근거 없는 말)를 만들어 내고서는 얼마 되지 않아 바로 잊고 마는 경우가 많은 것인데, 내가 그 훼방하는 말을 듣고서 사람들에게 변명한다면 한 사람이 두 사람에게 전하고 두 사람이 백 사람 천 사람에게 전할 것이니, 어찌 어리석은 짓이 아니겠습니까.


옛날에 어떤 사람이 갑자기 큰 망치 소리에 놀라 병이 되어서 조그마한 소리까지 모두 꺼렸는데, 약으로는 고칠 수가 없었습니다. 의원은 병자를 좌중에 앉혀 놓고 느닷없이 큰 망치 소리를 내어 병자를 다시 한번 깜짝 놀라게 하고는 연이어 백 번 천 번의 망치 소리를 내니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나도 지금 다시 한번 모여 향인(鄕人)의 병을 고쳐주고자 하나, 나약하여 떨쳐 일어나 행할 수가 없으니 매우 한스럽습니다. 한술의 밥에 살이 찌고 한술의 밥에 마른다면 사람들이 천히 여기는 것인데, 하물며 사군자(士君子)가 서로 모여 강학(講學)하는데 한 미친 흉악한 자가 말을 꾸며 헐뜯었다고 하여 땅이 꺼질 듯이 한숨지으며 낙심만 한다면 어찌 진보하여 기국(器局)을 이룰 가망이 있겠습니까. 무릇 일에는 스스로 반성하여 허물을 인증할 것도 있고 뜻을 지켜 굽히지 않을 것도 있습니다.
나의 이차(離次)로써 말할지라도 찰방(察訪)의 직무는 본디 각역(各驛)을 순행하며 그 고막(苦瘼)을 살피는 것이니 소속된 역이 있는 곳이면 모두 가야 되는 것인데, 외임(外任)으로 있던 감사가 왔다 하여 그 순찰(巡察)을 폐해서야 되겠습니까. 내가 떠나온 것은 모두 충분히 생각하고서 한 일이니, 후회한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비록 철륜(鐵輪)이 이마 위를 굴러간다 해도 머리털 하나 까닥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여러 벗들이 이 일로 인하여 종전에 받았던 우리들의 훼방이 대부분 이런 유형이란 것을 알게 될 것이니, 벗들에게 이런 마음을 알리는 것이 어찌 다행스럽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서울의 제공(諸公)들은 바야흐로 크게 서로 축하하고 있으니 절대로 이러한 괴상한 말이 한강(漢江)을 건너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비록 집안 편지라 하더라도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D001] 이차(離次) : 
《서경(書經)》 윤정(胤征)에 나오는 말로 머물러 있던 자리를 버린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다산이 서울에서 금정 찰방(金井察訪)으로 좌천되어 온 것을 말한다.

*만계 이승훈(1756~1801) : 정약용은 이승훈에 대하여 ‘만계’(蔓溪)라는 호를 사용하거나  ‘이형(李兄)’으로만 불렀다. 이승훈은 모든 천주교 관련 사건의 출발점이었다. 그는 당시 다산과 함께 주문모 신부 실포(失捕) 사건에 연루되어 예산에 귀양 와 있었다. 이승훈의 이름을 지운 것은 1801년 그가 천주교 신앙문제로 처형당했기 때문이다. ‘서암강학기’에도 마땅히 그의 이름이 들어갔어야 하는데, 훗날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었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광주·전남향토사연구협의회(2003) 광주 향토사 연구 (사)광주·전남향토사연구협의회
광주광역시 동구청(2021) 동구의 인물2 광주광역시 동구청
광주시남구역사문화인물간행위원회(2015) 역사를 배우며 문화에 노닐다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Ⅰ 인물과 문헌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Ⅱ 문화유적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14) 광주 남구 민속지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21) 양림 인물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동구문화원(2014) 광주광역시 동구 마을문화총서 Ⅰ 광주동구문화원
광주문화관광탐험대(2011~16) 문화관광탐험대의 광주견문록Ⅰ~Ⅵ 누리집(2023.2
광주문화원연합회(2004) 광주의 다리 광주문화원연합회
광주문화원연합회(2020) 광주학 문헌과 현장이야기 광주문화원연합회
광주문화재단(2021) 근현대 광주 사람들 광주문화재단
광주북구문화원(2004) 북구의 문화유산 광주북구문화원
광주서구문화원(2014) 서구 마을이야기 광주서구문화원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옛 지도로 본 광주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시립민속박물관(2004) 국역 光州邑誌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시립민속박물관(2013) 영산강의 나루터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시립민속박물관(2018) 경양방죽과 태봉산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역사민속박물관(2020) 1896광주여행기 광주역사민속박물관
광주역사민속박물관(2021) 광주천 광주역사민속박물관
김경수(2005) 광주의 땅 이야기 향지사
김대현.정인서(2018) 광주금석문, 아름다운 이야기 광주문화원연합회
김정호(2014) 광주산책(상,하) 광주문화재단
김정호(2017) 100년 전 광주 향토지명 광주문화원연합회
김학휘(2013) 황룡강, 어등의맥 16집. 광산문화원
김학휘(2014) 광산의 노거수, 어등의맥 17집. 광산문화원
김학휘(2015) 광산나들이, 어등의맥 18집. 광산문화원
김학휘(2016) 설화와 전설, 어등골문화 21호. 광산문화원
김학휘(2018) 광산인물사, 어등의맥 21집. 광산문화원
김학휘(2019) 마을사이야기, 어등골문화. 광산문화원
남성숙(2017) 전라도 천년의 얼굴 광주매일신문
노성태(2016) 광주의 기억을 걷다 도서출판 살림터
노성테.신봉수(2014) 사진과 인물로 보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광주문화원연합회
박규상(2009) 광주연극사 문학들
박선홍(2015) 광주 1백년 광주문화재단
정인서(2016) 산 좋고 물 맑으니-광주의 정자 광주문화원연합회
정인서 외(2015) 광주의 옛길과 새길 시민의 소리
정인서(2011) 양림동 근대문화유산의 표정 대동문화재단
정인서(2011) 광주문화재이야기 대동문화재단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2016) 광주 역사문화 자원 100(上,下)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천득염(2006) 광주건축100년 전남대학교출판부
한국학호남진흥원(2022) 광주향약 1,2,3. 한국학호남진흥원
  • 광주광역시
  • 한국학호남진흥원
  • 사이버광주읍성
  • 광주서구청
  • 광주동구청
  • 광주남구청
  • 광주북구청
  • 광주광산구청
  • 전남대학교
  • 조선대학교
  • 호남대학교
  • 광주대학교
  • 광주여자대학교
  • 남부대학교
  • 송원대학교
  • 동신대학교
  • 문화체육관광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광주문화예술회관
  • 광주비엔날레
  • 광주시립미술관
  • 광주문화재단
  • 광주국립박물관
  • 광주시립민속박물관
  • 국민권익위원회
  • 국세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