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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매당기(三梅堂記) - 계곡선생집 제8권

*계곡(谿谷) 장유(張維 1587~1638)의 시문집 <계곡집> 제8권 / 기(記)

광주(光州)는 호남 지방의 이름난 고을로써 서석산(瑞石山)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계산(溪山)과 임천(林泉)의 승경(勝景)이 있을 뿐만 아니라 토지가 비옥하여 백성의 생활이 넉넉한 편이다. 그런 가운데 대사(臺榭)와 원유(園囿)가 또한 많아 서로들 그 높고 화려함을 뽐내고 있다.
정(丁)모씨는 유자(儒者)의 조행(操行)을 대대로 지녀 온 집안의 후예로서 평소부터 향리(鄕里)의 추중(推重)을 받아 왔다. 바로 그가 자신이 은거하고 있는 곳에다 몇 칸짜리 초옥(草屋)을 마련하고서 방 안에 도서(圖書)를 빙 둘러 놓은 다음 대나무와 화약(花藥, 작약(芍藥)의 별칭임) 등을 섞어서 심어 앞뒤로 그 집을 감싸게 하였다.
그런데 그의 화원(花園)에 오래 된 매화나무 세 그루가 처마 위로 높이 솟아 있었다. 그 가지가 기이하게 뻗어 내려 창문을 가리며 드리워져 있었으므로 마침내 이를 취하여 그의 집 이름을 삼매당(三梅堂)이라고 내걸었다.
그러자 어떤 이가 이 말을 언뜻 듣고는 의아해 하며 말하기를,

“모씨의 화원에는 온갖 꽃들이 다 갖추어져 있다. 붉은색 자주색에 짙은 빛 옅은 빛의 꽃들이 사계절 내내 끊이지 않고 핀다. 그 선명함이나 화려함의 정도를 따져 본다면 세 그루 매화보다 필시 몇 배는 나을 것이다. 그런데 자기 집의 편액(扁額)을 내걸면서 그런 꽃들은 그만두고 매화를 취하였다. 생각건대 모씨는 이 점과 관련하여 호오(好惡)의 감정면에서 자연스럽지 못한 점이 있는 것 같다.”

하였는데, 모씨가 이 말을 듣고는 웃으며 말하기를,

“사람들이 나를 이해하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도 천박하단 말인가. 군자가 외물(外物)을 취함에 있어 눈요기만으로 만족하려 한다면야 어느 것인들 안 될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려고 할진대 어찌 아무것이나 구차하게 택해서야 되겠는가.
내 화원에 있는 꽃들로 말하면 상당히 많다고 할 만하다. 따스한 봄철에서부터 낙엽지는 가을까지 꽃들이 연이어 피고, 요위(姚魏)와 같은 진품(珍品)으로부터 요염한 자태를 보이다가 말 없이 스러지는 이름없는 꽃들에 이르기까지 하고많은데, 이 중 어느 것 하나라도 나의 완상용(玩賞用)으로 제공되지 않는 것은 없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남보다 뒤질세라 아리따운 색깔을 다투어 내면서 우로(雨露)의 자양분을 자기 위주로만 받아먹는 꽃들에 불과하다. 대체로 볼 때 색깔을 좋아하는 것은 덕을 애호하는 이가 취할 것이 못 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가령 뭇 화초류와 선두를 다투지 않고 기후의 변동에 자기 지조를 바꾸지 않은 채 맑은 향기를 내뿜어 높은 품격(品格)을 보여 주면서 곧장 고인(高人) 운사(韻士)와 서로 어울릴 그런 꽃을 찾는다면, 우리 매형(梅兄)을 놔두고 어디에서 따로 구하겠는가.

시험삼아 세한(歲寒) 무렵에 관찰해 보기로 하자. 된서리가 내리고 눈발이 흩날려 모든 꽃들이 시들어 버리는 그때, 비록 절조(節操)를 보여 주는 소나무나 대나무라 할지라도 내 동산으로 하여금 향기를 내뿜게는 하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이 매화나무 세 그루가 그야말로 비로소 준수한 자태를 선보이며 화원에 우뚝 서서 그 정채(精彩)를 발산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그 남다른 향기와 차고도 고운 영상이 내 방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어와 나의 금서(琴書)에 반사(反射)되어 비치면서 곧장 사람의 마음을 한 점의 티도 없이 맑고도 시원스럽게 해 주곤 한다. 그러고 보면 이 매화야말로 나에게 세 가지 유익함을 제공해 주는 친구가 된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그러고 나서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모씨가 기암자(畸庵子 정홍명(鄭弘溟)임)를 통해 나의 기문(記文)을 청해 왔다. 그런데 나로 말하면 모씨와 하루도 같이 있어 본 적이 없고, 또 이 집으로 말하면 천 리 밖이나 떨어진 호남의 산중에 있어 꿈에도 가 보지 못한 곳이라서 이런 이유로 못하겠다고 사양을 하였다. 그럼에도 기암자가 계속 억지를 부리면서 당호(堂號)에 대한 모씨 자신의 해설을 나에게 이야기해 주고, 또 덧붙여 말하기를,

“모씨는 풍아(風雅)가 이처럼 고상한 데다 또 나와는 절친한 관계이다. 이 정도면 그대의 글을 얻기에 부끄러움이 없는 인물이라고 하겠다.”

하였다. 이에 내가 그 대략적인 내용을 기록하고, 이와 관련하여 모씨를 권면하기를,

“예로부터 매화에 관심을 쏟은 이들이 많다. 그러나 수조(水曹)가 읊은 것은 시흥(詩興)을 일으키는 자료를 제공한 데에 불과하고, 광평(廣平)의 매화부(梅花賦)는 한갓 물색(物色)을 나열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을 따름이다. 그중에서 그야말로 높은 품격과 뛰어난 운치를 보여 주며 주객(主客)이 서로 어우러지게 함으로써 영원토록 찬사를 받을 만한 작품이 있다고 한다면 오직 화정처사(和靖處士)의 그것만이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모씨로 말하면 그 아취(雅趣)를 몸에 간직하여 초복(初服 벼슬하기 이전에 입던 청결한 옷으로 재야 생활을 말함)에 아무 흠집도 없게 하였고, 또 기암자(畸庵子)와 같은 인물을 벗으로 삼게까지 되었으니, 이 집이 비록 해외(海外 중국 밖의 지역이라는 뜻임)에 있다 하더라도 어찌 고산(孤山)에 비교해서 그렇게까지 크게 손색이 난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고 보면 나의 글이 이 집을 중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집 때문에 내 글이 중하게 되는 셈이라고나 해야 할 것이다. 모씨는 더욱 힘쓰도록 하라.”

하였다.


[주-D001] 요위(姚魏) : 요황위자(姚黃魏紫)의 준말로 모란(牡丹)의 이름이다. 옛날 낙양(洛陽)의 요씨와 위씨 집에서 각각 황색과 자주색의 진귀한 모란이 피어났다고 한다. 《歐陽脩 洛陽牡丹記 花釋名》
[주-D002] 매형(梅兄) : 수선(水仙)에 대해서 매화를 꽃의 형이라는 의미로 매형이라고 한다.
[주-D003] 수조(水曹) : 수조(水曹)는 수부(水部)로서, 수부랑(水部郞)을 지낸 당(唐) 나라의 문장가 원결(元結)을 가리킨다.
[주-D004] 광평(廣平) : 광평은 광평군공(廣平郡公)의 봉호(封號)를 받은 당 나라 문장가 송경(宋璟)을 말하는데, 매화를 읊은 그의 광평부(廣平賦)는 당시에 청편염려(淸便艷麗)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주-D005] 화정처사(和靖處士) : 송(宋) 나라의 은자(隱者) 임포(林逋)를 말한다.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초막을 짓고 20년 동안 출입하지 않은 채 매화를 가꾸고 학을 기르면서 독신으로 살았으므로 당시에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자식으로 삼았다.[梅妻鶴子]’라고 말하기까지 하였다. 일명 고산처사(孤山處士)라고도 한다.
* 이 글에서 정모씨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훈련원판관(訓鍊院判官)과 가선대부(嘉義大夫)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냈던 본관이 영성(靈城)인 정일(鎰, 1583~?)을 말한다. 매화를 특히 사랑하여 손수 뜰에 매화나무 세 그루를 심고 당호를 삼매당이라 했다. 
당시에 정철의 아들 기암자(畸庵子) 정홍명(鄭弘溟)이 담양 지실마을 계정에서 은거하고 있을 때 부탁으로 기를 썼으며 조선 중기 때 정자임을 증명되고 있으나 위치를 정확하지 않다. 기암의 서석산부(瑞石山賦)의 후기도 그가 써 근친했음을 알 수 있다.
정일은 정홍명()·조희일()·강항()·신경진() 등과 절친했다. 죽음(竹陰) 조희일(趙希逸 1575 선조8∼1638 인조16)이 1924년(인조2)과는 광주목사(使)에 이어 1627년(인조5) 담양부사(潭陽府使)에 있을 때 교류했으며 특히 이정태와는 같이 의병을 일키면서 정일()과  상당히 근친했던것으로 여겨진다.

문집으로 <삼매당유고(三梅堂遺稿)>는 불분권 1책. 목활자본. 1847년(헌종 13) 6세손 언길() 등이 편집, 간행하였다. 권두에 서유소()의 서문과 문인 김단술()의 장()이 있고, 권말에 백주진()의 발문이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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