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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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현(成俔)-光州客舍東軒記 허백당문집 제3권

광주 객사 동헌기光州客舍東軒記〕 - 허백당문집 제3권

一道之重莫如州一邑之居莫如館舍州者邑之大者而館舍所以待衆賓庇群旅也然而館有東西軒東乃貴者所寓而觀察使聽訟之所則牙節建焉案牘委焉人民萃焉必壯其廉陛使人儼然瞻望而畏之也使華賓客讌飮之地則張歌管羅樽罍上可以容揖讓周旋下可以容進退步武必廣其堂宇然后允合其宜也是故善莅政者修擧廢墜而人忘其勞其不善者畏首畏尾不能改一瓦易一榱而州邑曰以耗矣今薜公順祖以僉嫗出爲州牧而崔君榮爲之佐政平訟理時和歲穰物之疲癘者得煦嫗人之凋瘵者得蘇息百廢俱興而四野已無虞遂相與謀曰光之於都爲大邑冠蓋之絡繹人物之殷富與羅全二州相甲乙然東軒規模狹隘且將歲久傾圮盍更構而重新之於是不謀而同不日而成剞劂極其巧制作極其大雖炎蒸困溽之時客至忘沈鬱之苦雖賓旅叢劇之際人各得其所寓而不失規度然後於斯邑爲稱也崔君於余友也飛書請記於余余則出於州金氏之後於光烏得無情每欲覽山川之勝追想厥祖根本之地而足跡一不涉湖南迨今日侍經帷卯酉講論之無暇而髮已種種雖欲把一盃酒陪兩使君揖讓酬酢於軒中然後退與父老頌龔黃之德欨歈歌咏而長言之不可得矣則不可不操毫敍事以寓余南望之意

한 도(道)에서 중요한 곳은 주(州)와 같은 곳이 없고, 한 고을(邑)에서 긴요한 거주지는 관사(館舍)만한 것이 없으니, 주는 고을이 큰 것이고, 관사는 손님들을 대접하고 여행자를 보호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사에는 동서에 헌(軒)이 있는데, 동헌(東軒)에는 귀인들이 와서 머물고 관찰사가 재판하기 위하여 송사를 듣는 곳이니, 아기(牙旗)와 절월(節鉞)이 세워지고 문안(文案)과 간독(簡牘)이 놓여져, 백성들이 모이면 반드시 그 구조와 뜰을 장엄하게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위엄을 느껴 바라보고 두려워하게 한다. 그리고 사화(使華)와 빈객들이 연회하는 곳이니, 가무가 베풀어지고 술잔들이 널려져, 위로는 읍양(揖讓)과 주선(周旋)하는 것이 용납되어야 하고, 아래로는 진퇴(進退)와 보무(步武)가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반드시 마루와 집이 넓어야 합당하다. 그러므로 정치를 잘하는 이가 퇴폐되고 쓰러진 것을 수리하고 세울 때에는 백성들이 그 수고로움을 잊으며, 정치를 잘 못하는 자는 처음도 두렵고 끝도 두려워 기와 한 장, 서까래 한 개를 바꾸지 못하는데도 그 고을은 날로 쇠폐해 간다.
지금 설순조(薛順祖)는 첨추(僉樞)로서 지방에 나와 주목(州牧)이 되고 최영(崔榮)은 그의 보좌가 되어, 정치가 화평하고 송사가 잘 다스려지며, 시절이 태평하고 농사가 풍년 들어서, 재해를 만난 만물들이 따뜻한 어머니를 만난 듯, 시들고 병든 백성들이 소생하여 숨 쉬게 되어서 모든 퇴폐했던 것이 다시 일어나고, 사방에는 근심이 없어졌다. 드디어 사람들이 서로 꾀하여 말하기를, ‘광산(光山)은 도회지 중에서 큰 읍내가 되었으므로 사신의 행렬이 연락부절하고, 인물의 풍부함이 나주나 전주와 맞먹는다. 그런데 동헌의 규모가 협소하고 또 앞으로 세월이 오래되면 허물어질 염려가 있으니, 어찌 다시 고쳐 짓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이에 별로 꾀함도 없이 동의하여 며칠 안 되어 준공하였는데, 새기고 깎고 한 것이 지극히 교묘하고, 짓고 만든 것이 지극히 커서, 비록 찌는 듯 한 더위나 진저리나는 장마 때에도 손님이 와서 침울한 괴로움을 잊게 되었고, 비록 손님들이 모여들어 붐비게 되어도 각기 거처할 곳을 얻어 법도를 잃지 않게 되었다. 이런 뒤에야 이 고을과 걸맞게 되었다.
최군은 내 친구이다. 편지를 보내어 나에게 기(記)를 청했고, 나는 광산 김씨에게서 태어났으니, 광산에 대하여 어찌 무정할 수가 있겠는가. 항상 광산 산천의 아름다움을 구경하고자 하였고 그 옛날 조상들의 근본이 되는 땅임을 추상하면서도, 호남지방에는 한 번도 발을 내디뎌 보지 못하고 지금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경연(經筵)에서 모시고 아침 저녁 강론하기에도 여가가 없고, 백발마저 드문드문하니, 비록 한 잔의 술을 가지고 두 사군(使君)을 모시고 동헌(東軒)에서 읍양(揖讓)하고 수작(酬酌)하고, 그 뒤에 물러나 부로(父老)들과 더불어 공황(龔黃) 공수(龔遂) 황패(黃霸)의 덕을 칭송하며 즐거이 노래 부르며 이야기하고자 하나 불가능하다. 이에 부득불 붓을 잡고 사실을 적어, 내 남쪽으로 가기를 바라는 뜻을 붙인다” 하였다.

-광주읍지(허백당집)

성현(成俔, 1439-1504)의 자는 경숙(磬叔)이며 호는 용재(慵齋), 부휴자(浮休子), 허백당(虛白堂), 국오(菊塢) 등이다.

[주-D001] 광주 객사 동헌기(光州客舍東軒記) : 
광주의 객사인 광산관(光山館)에 써 붙인 기문이다. 객사는 다른 말로 객관(客館)이라고도 하는데 중앙인 정당(正堂)과 동서의 익헌(翼軒)이 연접한 구조로 되어 있다. 대개 객사는 그 고을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이기 마련인데, 정당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셔 놓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수령 이하 모든 관리가 이곳에 모여 배례(拜禮)를 하였으며 그 지방으로 출장 온 사신도 배례를 올려야 했다. 본문에서 사신 접대나 송사 판결, 숙소 등 객사의 여러 용도에 대해 언급한 것은 자료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보인다. 이 기문은 《신증동국여지승람》 권35 〈광산현(光山縣) 궁실(宮室)〉에도 실려 있는데, 1530년(중종25)에 간행되어 시기적으로 가장 앞서는 자료인 데다 본 번역본의 대본이나 규장각본에 비해 오자가 적어 문맥이 잘 통할 뿐만 아니라 앞 대목이 더 있는 점으로 보아 원작에 더 가까운 것이 아닐까 추정한다. 《광주읍지(光州邑誌)》(규장각 도서번호 10787) 공해조(公廨條)에 수록된 중수기(重修記)는 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대략 4종의 광주읍지 중에서 이 읍지는 읍선생조(邑先生條)의 마지막에 저록된 김경규(金敬圭)의 부임 연도가 을미(乙未)로 되어 있어 고종 32년(1895)에 해당하므로 최소한 그 이후에 편찬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수록된 내용이 풍부하고 교정이 세밀한 것으로 평가되므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기문의 신빙성을 더욱 뒷받침해 준다. 따라서 본 번역은 대본의 체재를 존중하되 글자의 교감과 문맥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의 내용을 적극 반영하였다.
[주-D002] 주군(州郡)에 :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앞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더 있다. “한 도 안에서 주보다 비중이 높은 고을은 없으며 한 고을 안에서 관사보다 더 나은 거처는 없다. 주는 고을 중에 큰 고을을 말하는데 …… 〔一道之重, 莫如州, 一邑之居, 莫如館舍. 州者邑之大者而 …… 〕”
[주-D003] 아절(牙節) : 
주장(主將)을 상징하는 아기(牙旗)와 부절(符節)을 말한다. 한국문집총간 277집에 수록된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외집 권53 〈당제고(唐制考) 아절(牙節)〉에 “아절은 당나라 때 절도사가 그 행차의 앞에 세우는 아기와 짚고 있는 하사받은 부절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제도에는 관찰사가 순시를 할 때 영기(令旗)와 절월(節鉞)로 앞에서 인도한다.”라고 아절의 의미와 용도를 설명하고 있다.
[주-D004] 그 월대와 계단을 : 
대본에는 ‘簾陛’로 되어 있는데, 규장각본과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근거하여 ‘簾’을 ‘廉’으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주-D005] 고을의 …… 자는 : 
대본에는 ‘莅政者’로 되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근거하여 ‘莅’ 앞에 ‘善’ 1자를 보충하여 번역하였다.
[주-D006] 시종일관 …… 나머지 : 
원문의 ‘외수외미(畏首畏尾)’는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문공(文公) 17년 조의 “머리도 두려워하고 꼬리도 두려워한다면 몸 가운데 두려워하지 않는 부분이 얼마나 되겠는가.〔畏首畏尾, 身其餘幾.〕”라는 대목에 나오는 말이다. 《회남자(淮南子)》에도 이 말이 나오는데 주석을 낸 고유(高誘)는 외수외미를 ‘항상 두려워한다’는 의미로 풀이하였다.
[주-D007] 설공 순조(薛公順祖) : 
대본에는 ‘薛公循祖’로 되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수록된 본 기문과 《광주읍지(光州邑誌)》 읍선생조(邑先生條)에는 ‘薛順祖’로 되어 있고 《성종실록(成宗實錄)》 등에도 ‘薛順祖’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대본의 ‘循’은 ‘順’의 오자로 판단된다. 《성종실록》 24년(1493)에, 김해 부사(金海府使) 설순조를 사간원에서 탄핵하는 기사가 보이는데 “지난 경자년에 광주 목사로 나가 고과에서 하등을 맞았다.〔往在庚子間, 出牧光州, 貶居下等.〕”라고 하였고 임금의 전교 가운데 설순조의 당시 나이를 67세라고 하였으므로, 이를 바탕으로 계산해 보면 설순조는 1480년 54세의 나이로 광주 목사에 부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주-D008] 최군 영(崔君榮) : 
자세한 인적 사항은 미상이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최군은 나와 친구이다.〔崔君於余友也.〕”라고 한 것이나 《점필재집(佔畢齋集)》 권7 〈삼월 삼일에 …… 계사를 위해 술을 마시다〔三月三日 …… 爲禊飮〕〉라는 시의 제목에 계사(禊事) 참여자의 명단이 나오는데 진주 판관(晉州判官) 최영(崔榮)이 가장 앞에 기술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최영이란 인물은 성현과 김종직(金宗直) 모두와 교유한 어느 정도 비중 있는 인물로 보인다.
[주-D009] 나로 …… 후예 : 
성현의 조모는 광산 김씨(光山金氏)로, 광산군(光山君) 김약항(金若恒, ?~1397)의 딸이다. 《대동야승(大東野乘)》 〈용재총화(慵齋叢話)〉에 김약항이 명나라에 사신 간 이야기와 자신의 조모가 광산군의 딸이라는 내용을 언급해 놓았다.
[주-D010] 공수(龔遂)나 황패(黃覇) : 
둘 다 《한서(漢書)》 권89 〈순리전(循吏傳)〉에 수록된 인물로, 선정을 베푼 지방 수령을 칭송할 때 즐겨 언급된다. 공수는 선제(宣帝) 때 발해 태수(渤海太守)로 있으면서 도둑을 없애고 백성에게 농상(農桑)을 전하여 발해가 크게 다스려지게 하였다. 황패는 무제(武帝) 때에는 하남 태수승(河南太守丞)으로, 선제 때에는 영천 태수(穎川太守)로 있으면서 옥사(獄事)를 관대하게 처리하고 백성을 잘 보살폈다고 한다.
[주-D011] 붓을 잡고 : 
대본에는 ‘標毫’로 되어 있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근거하여 ‘標’를 ‘操’로 바로잡아 번역하였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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