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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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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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대승-규봉암에 이르러(到圭峯)
    朗廓無塵境  티끌없이 청정한 도량이여淸高不住天  청고하게 막힘없는 하늘이로세幽花欹石罅  깊숙히 핀 꽃은 돌틈에 스러지고古木倚巖邊  고목은 바위를 의지하여 서 있네日轉南溟活  해가 오르니 남쪽 바다가 넘실대고雲移北斗懸  구름이 비키니 북두칠성 완연하다來遊窮勝賞  선경에 빠져들어 거닐다보니渾覺挾飛仙  홀연히 신선도 나와 함께 있더라-고봉집 제1권
    2018-08-01 | NO.239
  • 기언관- 存齋庭下有餘種
    存齋庭下有餘種 존재의 뜰아래 남겨둔 국화 있어黃白花開九月霜 황백색 국화 구월 서리 속에 피고 精舍依然留舊馥 서재에 여전히 옛 향기 머무는데 淵源何以繼前光 뿌리를 어찌 찾아 조상의 얼 따르리秋風可愛坤裳正 가을 바람에 어울리는 황국 사랑스러우니 老圃當看晩節香 묵은 텃밭에서 말년에 향기 맡으리라人臣若守此花性 신하가 만약 이 국화 같은 성품 지킨다면 爲國何難蹈劍鋩 나라 위해 어찌 날선 검 앞에 뛰어들기 어려우랴! 고봉 기대승의 6대손인 기언관奇彦觀(1706~1784)이 국천재(菊泉齋)에서 읊은 시다. 국천재는 기언관이 1750년에 지은 정자로 광산구 광산동 광곡마을에 그 터와 동백나무가 지금도 남아 있다. 고봉 기대승의 다른 호로 존재存齋가 있다. 이 시에서 존재는 선조인 기대승을 의미한다. 곤상坤裳은 누런 치마라는 뜻으로 황국을 의미한다. 《周易》坤卦의 <黃裳元吉文在中也>에서 나온 말이다.  
    2020-04-22 | NO.238
  • 기언관- 雨中春興 再淸凉庵
    草木蒼蒼降雨澤  비 내린 덕에 초목은 푸르고 푸르러 靑山相對暫怡顔  청산을 대하니 잠시 안색이 펴진다. 雲生澗底騰巖上  구름은 계곡 아래서 일렁거려 바위로 올라타고水活林端走谷間  활수는 콸콸 숲 끝에서 계곡 사이를 달린다.細草垂生穿土易  막 돋아난 새싹은 쉽게 흙 뚫고 뿌리 내리거늘 微禽帶濕度空艱  작은 새는 젖은 날개로 버겁게 공중을 날아간다.春和潤物非專美  화창한 봄날 윤택한 만물만 아름답지 않고 聖德與天本一般  임금의 덕 하늘같아 본래 한가지라네. 기언관(奇彦觀, 1706~1784)은 고봉 기대승의 6대손으로  형조·호조참의를 역임하다 낙향해 거처였던 귀전암(歸全菴)을 1723년에 중건하고 그  아래 광산동 428번에 1750년에 국천재(菊泉齋) 정자를 짓고 자연을 벗 삼아 학문에 강했다.
    2020-04-13 | NO.237
  • 기언관-七梅處士讀周易
    七梅處士讀周易 칠매처사 주역을 읽으니五柳先生餐菊英 오류선생 국화 꽃잎으로 안주 삼네.  二子高風皆灑落 두 분의 고상한 풍취 이제 쇄락하니作詩我欲傳其名 시라도 지어 나는 그 이름 전하고자 한다오.   /兩世遺稿 菊泉齋集국천재(菊泉齋) 기언관(奇彦觀 1706~1784)은 형조·호조참의를 역임한 고봉 기대승의 6대손으로 칠매당에 들려 시를 남긴다.이 시에서 오류선생(五柳先生)은 도연명(陶淵明, 365~427)의 자호로  ‘이슬에 젖은 꽃잎을 따 시름 잊게 하는 술에 띄워 마시니... 裛露掇基英汎此忘憂物’ 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칠매처사가 도연명의 생활처럼 살았다는 것을 이르고 있다.
    2020-04-03 | NO.236
  • 기언관-送使行過光州拱北樓
    使行遠入垂楊路 사행이 멀리 수양길에 접어드니風景湖南擅勝州 풍경은 호남의 명승을 독점했네節似埋輪張也按 부절은 매륜한 장강 태수와 같지만時非懷土仲宣樓 때는 고향 그리던 중선의 누각 아닐세山高瑞石巖巖立 서석산은 높이 우뚝우뚝 솟아 있고蓮滿陽池灔灔流 연꽃 가득한 양지는 졸졸 흐르네宸極彤雲瞻望地 북궐의 붉은 구름 우러러 보는 곳不妨星使暫登遊 사신으로 잠시 올라 노님도 무방하리 -국천재유고(菊泉齋遺稿)기언관(奇彦觀, 1706-1784)의 자는 백첨(伯瞻)이며 호는 국천재(菊泉齋)이다.
    2018-07-17 | NO.235
  • 기우만- 哭安景雲 龍煥 三絶
    哭安景雲 龍煥 三絶 天資淳謹罕如君。去後尙留席上芬。夢裏堂顔珍重意。翩翩濁世不同羣。竆道論心有幾人。多君叔季任天眞。奪吾一友今何速。瞻望南雲淚滿巾。悠悠萬事總傷心。坐送情朋獨苦吟。幸有承家君不死。肯堂應不負淸深。
    2020-04-08 | NO.234
  • 기우만- 죽취정에서
    腥氛不到一區亭 竹翠山光獨秀靑 勤向衛詩磋琢地 認君志氣確然醒 范善中以竹翠亭詩示余 拈首尾韻和之 松沙先生文集卷之一又覽揆重辰此日至 善家餘慶正悠悠 崖翁氣節能嗣述 悔老文章幾講修爵秩耀門新降渥 綺詞溢軸舊交遊 滿庭鸞鵠無疆祝 鳧藻龜蓮永可求송사(松沙) 기우만(奇宇萬, 1846∼1916)이 죽취정에서 시주로 즐기며 시를 남긴다.
    2020-04-25 | NO.233
  • 기정진-무등산
    偉然體德一方宗  위대하게 덕스런 모습 한 지방 종주 되니 友敢云乎師則隆  벗이라고 말할까, 스승이라면 너무 높도다山若可名還可字  산을 이름 짓고서 자를 지을 수만 있다면開門喚作丈人公  문을 열고서 어르신(丈人公)이라 부르겠네-노사집 제2권.
    2018-08-01 | NO.232
  • 김 감사(金監司) (우굉 宇宏) 에 대한 만사(挽詞) 우복집 별집 제1권 / 시(詩)
    김 감사(金監司) (우굉 宇宏) 에 대한 만사(挽詞)- 김우굉(1524~1590)《우복집(愚伏集)》 별집 제1권 / 시(詩)우복(愚伏) 정경세(鄭經世 1563~1632)총각 시절부터 이미 노성한 이 같았거니 / 丱角凝然已老成문장 솜씨 뛰어나서 그 명성이 우뚝했네 / 更將詞藻擅華聲원기부는 사람들이 앞다투어 외웠었고 - 공은 어린 나이에 〈중니원기부(仲尼元氣賦)〉를 지었다. - / 賦成元氣人傳誦요승 보우 논한 상소 귀신조차 놀래었네 - 영남(嶺南)의 사림(士林)들이 상소를 올려 보우(普雨)에 대해 논할 적에 공이 소두(疏頭)가 되었다. - / 疏詆妖髡鬼砉驚안탑에 이름 쓴 건 강사하는 날이었고 - 공은 43세에 과거에 급제하였다. - / 雁塔名題强仕日붕새가 바람 치고 몇 천 리나 날았다네 / 鵬溟風擊幾千程주정에선 푸른 소 탄 노자(老子) 얻음 기뻐했고 - 공은 사관(史官)으로 있었다. - / 周庭喜得靑牛老한제께선 강직했던 백마생을 용납했네 - 공은 간관(諫官)의 직임을 맡았었다. - / 漢帝能容白馬生단리는 문성에서 명망 본디 깊었고 - 공은 승정원(承政院)에 있었다. - / 短李素深門省望소소는 옥당의 성대함에 합당했네 - 공은 경연관(經筵官)으로 있었다. - / 小蘇端合玉堂盛임금 은혜 태산처럼 무거운 걸 알겠거니 / 天恩便覺丘山重벼슬길서 훌쩍 하니 물러나기 어려웠네 / 仕路難敎去就輕공직함에 내직 외직 구분한 적 없었나니 / 供職未曾殊內外정성 다해 밝은 정사 돕기만을 원하였네 / 竭誠惟願贊淸明휘장 걷자 기 땅 경내 탐오한 자 사라졌고 - 공은 호서 관찰사(湖西觀察使)로 있었다. - / 搴帷冀境貪汚屛병주 맡자 노약자들 앞다투어 환영했네 - 공은 광주목사(光州牧使, 1587~1589)로 있었다. - / 分竹幷州稚弱迎태평시절 공명 이룸 기대할 수 있었는데 / 平世功名方有待나이 늙어 노쇠해져 병이 들고 말았다네 / 暮年衰病却相嬰강호에서 임금 그려 눈물 줄줄 흘리었고 / 江湖不盡思君淚영남에선 동생 그려 마음 고생하였다네 / 嶺塞兼勞憶弟情참새가 홀연 술병 입구 막은 깁을 뚫더니만 / 神雀忽穿甁口縠갈매기가 끝내 물가 맹서한 이 잃었구나 - 공은 낙동강 가에 정자를 짓고서 바야흐로 소요하며 노닐 계획을 하였었다. - / 信鷗終失渚頭盟눈앞의 자손에게 남은 경사 남겨졌고 / 眼前蘭玉留餘慶죽은 뒤에 문장은 아름다운 이름 있네 / 身後文章帶令名못난 나는 요행히도 후한 대우 받았거니 / 苽葛幸嘗叨厚分선산에서 어찌 차마 무덤 향해 절하리요 / 松楸那忍拜荒塋울음 참는 통곡 속에 오도 위해 상심하며 / 呑聲一慟傷吾道한 글자를 쓸 적마다 한 줄기의 눈물 쏟네 / 一字題詩一涕橫[주-D001] 김 감사(金監司) :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김우굉(金宇宏, 1524~1590)을 가리킨다. 김우굉은 자가 경부(敬夫)이고 호가 개암(開巖)이며,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이황(李滉)의 문인이며, 상주의 속수서원(涑水書院)에 봉향(奉享)되었다. 저서로는 《개암집(開巖集)》이 있다.[주-D002] 보우(普雨) : 명종(明宗) 때의 중으로, 명종의 모후(母后)인 문정왕후(文定王后)가 섭정(攝政)할 때 문정왕후의 총애를 받아 승과(僧科)를 부흥하고 도첩(度牒)을 주어 불교를 부흥시켰다. 문정왕후가 죽은 뒤 유신(儒臣)들에 의해 귀양 갔다가 피살되었다.[주-D003] 안탑(雁塔)에 …… 날이었고 : 40세에 과거에 급제하였다는 뜻이다. 안탑은 서안(西安)의 자은사(慈恩寺)에 있는 7층 탑인데, 당(唐)나라 때 과거에 입격하여 진사(進士)가 된 사람들이 곡강(曲江)에서 잔치를 한 뒤에 이 탑에 제명(題名)하였으므로, 과거에 입격하였다는 뜻으로 쓰인다. 강사일(强仕日)은 《예기(禮記)》에서 ‘마흔 살에 처음으로 벼슬길에 나간다.〔四十曰强而仕〕’ 한 데서 온 말로, 40세를 가리킨다.[주-D004] 붕새가 …… 날았다네 : 벼슬길에 나아갔다는 뜻이다. 《장자(莊子)》 〈소요유(逍遙遊)〉에, “붕새가 남쪽 바다로 옮겨 갈 때에는 물을 3000리를 치고 힘차게 날아 9만 리를 올라간다.” 하였다.[주-D005] 주정(周庭)에선 …… 기뻐했고 : 조정에서는 훌륭한 사관(史官)을 얻어 좋아했다는 뜻이다. 노자는 주(周)나라의 태사(太史)로 있었으며, 《도덕경(道德經)》을 지은 뒤에 서쪽으로 가면서 푸른 소를 타고 갔다.[주-D006] 한제(漢帝)께선 …… 용납했네 : 선조(宣祖)가 강직하게 올리는 간언을 받아들여 주었다는 뜻이다. 한제는 한나라 광무제(光武帝)를 가리키고, 백마생(白馬生)은 장담(張湛)을 가리킨다. 광무제 때 장담이 간관(諫官)으로 있으면서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그때마다 간하였는데, 장담이 항상 흰 말을 타고 다녔으므로, 광무제가 장담을 볼 적마다 말하기를, “백마생이 또다시 간하러 오는가?” 하였다. 《後漢書 卷27 張湛列傳》[주-D007] 단리(短李)는 …… 깊었고 : 김우굉이 동부승지로 있을 때 명망이 높았다는 뜻이다. 단리는 당나라 때의 시인인 이신(李紳)을 가리키고, 문성(門省)은 중서성(中書省)을 가리킨다.[주-D008] 소소(小蘇)는 …… 합당했네 : 소소는 송나라 소식(蘇軾)의 동생인 소철(蘇轍)을 가리키고, 옥당(玉堂)은 홍문관(弘文館)의 별칭이다. 김우굉은 홍문관 부제학을 지냈다.[주-D009] 휘장 …… 사라졌고 : 김우굉이 전라도 관찰사가 되어 백성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청렴한 정사를 폈다는 뜻이다. 후한 때에는 자사(刺史)가 부임하면서 수레에 휘장을 쳐 얼굴을 가리고 가는 것이 전례였는데, 가종(賈琮)이 기주 자사(冀州刺史)가 되어 부임하면서는 ‘자사는 멀리 보고 널리 들어서 좋고 나쁨을 규찰하여야 마땅한데, 어찌 휘장을 드리워 앞을 가려서야 되겠는가.’ 하고는 휘장을 걷게 하였다. 그러자 그 소문을 듣고는 온 경내가 금세 두려워서 벌벌 떨었다고 한다. 《後漢書 卷31 賈琮列傳》[주-D010] 병주(幷州) …… 환영했네 : 지방관의 치적(治績)이 탁월하여 백성들이 환영하였다는 뜻이다. 후한 때 곽급(郭伋)이 병주에 있으면서 은혜로운 정사를 폈는데, 순시하다가 서하(西河)의 미직(美稷)에 도착하자, 노약자들이 모두 길가에서 절을 하면서 맞이하였다고 한다. 《後漢書 卷31 郭伋列傳》[주-D011] 영남에선 …… 고생하였다네 : 김우굉이 성주(星州)로 낙향해 있던 선조 때에 동생인 김우옹(金宇顒)이 정여립(鄭汝立)의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회령(會寧)으로 귀양 가게 되자, 김우굉이 영천(永川)으로 달려가 시 한 수를 지어 주며 이별하였다.[주-D012] 참새가 …… 뚫더니만 : 사람의 몸이 죽어서 혼백(魂魄)이 이미 떠나간 것을 말한다. 《법구경(法句經)》에, “정신이 형신 안에 거처하는 것은 참새가 병 속에 들어 있는 것과 같다. 병이 깨져 버리면 참새는 날아가 버린다.” 하였으며, 《대지도론(大智度論)》에는, “새가 날아와서 병 속으로 들어가매, 깁 가지고 병 주둥이를 막았네. 깁이 뚫어져 새가 날아가 버리자, 신명도 그에 따라 달아나누나.〔鳥來入甁中 羅縠掩甁口 縠穿鳥飛去 神明隨業去〕” 하였다.[주-D013] 갈매기가 …… 잃었구나 : 전원에서 한가로이 살던 김우굉이 죽었다는 뜻이다. 《열자(列子)》 〈황제(黃帝)〉에, “바닷가에 사는 어떤 사람이 갈매기를 몹시 좋아하여 매일 아침마다 바닷가에서 갈매기와 놀았는데, 날아와서 노는 갈매기가 100마리도 넘었다. 그의 아버지가 ‘내가 들으니 갈매기들이 모두 너와 함께 논다고 하는데, 너는 그 갈매기를 잡아오라. 내가 갈매기를 좋아한다.’ 하였다. 그다음 날 바닷가로 나가니 갈매기들이 위에서 날면서 아래로 내려오지 않았다.” 하였는데, 이로 인해서 후대에는 마음을 툭 터놓고 상대를 대하거나, 세상을 피하여 은둔한다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2023-08-09 | NO.231
  • 김광욱-次光州極樂院谿谷韻
    次光州極樂院谿谷韻暫卸征鞍駐 登臨感慨長 詩魂已漠漠 山色尙蒼蒼古壁留殘墨 遺珠落遠疆 悲吟續淸響 無復襲蘭香竹所集 卷之二죽소竹所 김광욱金光煜(1580∼1656)은 우부승지를 지내다 1638년 나주목사로 부임 받고 “好在金支使 김 지사 그동안 잘 있었는지 / 春來得寄聲 봄철 들어서야 소식 전할 수 있게 됐소”하며 서로 시를 주고받으며 친했던 계곡 장유의 시가 극락원에 있어 반가운 나머지 차운하여 읊는다.
    2018-07-17 | NO.230
  • 김기홍- 그 어느때 하얀 학(鶴)이 둥지찾아 돌아올고
    그 어느때 하얀 학(鶴)이 둥지찾아 돌아올고푸른 밭을 좋아하여 숲속들을 멀리하네.하늘 땅의 비장(秘藏)이치 어느 누가 깨달을고연남송회(烟嵐松檜) 푸른 빛이 서로 함께 사귀었도다.동포(東圃) 김기홍(金基洪)
    2020-04-25 | NO.229
  • 김기홍-우봉낙조 牛峰落照
    뚜렸하는 서쪽산에 늙은 소가 누웠는데(牛峰)삼간(三竿) 길이 붉은 날이 서루(書樓)위에 비쳤도다.티끌 세상 뜬 인생이 나도 몰래 다 늙어서모자 벗은 머리위에 하얀 백발 가득하네동포(東圃) 김기홍(金基洪)이 청품마을 균산정에서 읊은 8경 중 7경 우봉의 낙조이다.
    2020-04-25 | NO.228
  • 김대현 -무등산 한시 111편
    무등산한시선무등산에 대한 한시를 옛 문헌 속에서 찾아내어, 시대 순으로 편집하고 번역한 책이다. 우리나라 스물 두 번 째 국립공원인 무등산은 남쪽 지방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예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탐방하고 있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의 시문집에서부터 현대 의재 허백련의 시문집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옛 문헌 속에 무등산은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들 가운데 백여 수를 모아서 번역한 것이다.무등산을 올라가면 만나는 입석대나 서석대, 규봉암 등 무등산 정상 부근의 대표적인 절경들이 고스란히 한시 속으로 들어와 있다. '산 빛은 아침저녁으로 안개 자욱하고, 깎아지른 산세는 만고의 으뜸이라'는 퇴계 이황의 시구에서나, '많은 이들 우러르는 서석산, 꼭대기에는 태곳적 눈이 남아 있구나'라고 읊었던 다산 정약용의 시구에서처럼 우리나라 대표적인 문인들의 무등산 예찬을 만날 수 있다.서석산 규봉사에 시를 남기다/ 留題瑞石山圭峯寺/ 대각국사 의천 12규봉사 첫째 수/ 圭峯寺 1/ 김극기 14규봉사 둘째 수/ 圭峯寺 2/ 김극기 16증심사/ 證心寺/ 김극기 18무등산 석실/ 石室無等山/ 나옹선사 20광주 무등산 첫째 수/ 光州無等山 1/ 김종직 22광주 무등산 둘째 수/ 光州無等山 2/ 김종직 24무등산에 올라/ 登無等山/ 김시습 26규봉난야/ 圭峯蘭若/ 김시습 28서석을 유람하며/ 遊瑞石/ 정지반 30서석산을 유람한 시/ 遊瑞石山韻/ 박 상 32무등산에 올라 첫째 수/ 登無等山 1/ 송 순 34무등산에 올라 둘째 수/ 登無等山 2/ 송 순 36서석산의 한가한 구름/ 瑞石閒雲/ 송 순 38서석산의 한가한 구름/ 瑞石閑雲/ 임억령 40서석산의 맑은 구름/ 瑞石晴雲/ 임억령 42서석산의 맑은 안개/ 瑞石晴嵐 / 임억령 44서석산의 맑은 구름/ 瑞石晴雲/ 이 황 46양계명에게 주다/ 贈梁生季明/ 김인후 48서석산의 맑은 안개/ 瑞石晴嵐/ 김인후 50증심사 조선스님에게 드리다/ 證心寺贈祖禪/ 노수신 52광주 무등산/ 光州無等山韻/ 오수영 54서석산의 맑은 안개/ 瑞石晴嵐/ 박 순 56무등산 첫째 수/ 無等山 1/ 박대붕 58무등산 둘째 수/ 無等山 2/ 박대붕 60증심사에서 유시보에게 써 보이다/ 證心寺示劉施普/ 김성원 62규봉사의 주석에 쓰다/ 題圭峯寺柱石/ 김성원 64서석산의 한가로운 구름/ 瑞石閑雲/ 김성원 66서석산의 맑은 구름/ 瑞石晴雲/ 박광옥 68증심사 조선/ 證心寺祖禪詩/ 박광옥 70규봉에 이르러/ 到圭峯/ 기대승 72규봉에서 비를 만나/ 圭峯遇雨/ 기대승 74원효사/ 元曉寺/ 기대승 76서석산에 오르다/ 登瑞石山/ 김부륜 78규암에서 노닐며/ 遊圭庵/ 김부륜 80원효암/ 元曉庵/ 김부륜 82입석대를 오르다/ 登立石臺/ 구사맹 84규봉사에 이르러/ 到圭峯寺/ 고경명 86소은굴에서 우연히 읊다/ 小隱窟偶吟/ 고경명 88서석산의 맑은 안개/ 瑞石晴嵐/ 고경명 90서석산/ 瑞石山/ 이순인 92창랑정을 짓고서/ 滄浪亭原韻/ 정암수 94눈/ 雪/ 송익필 96서석산/ 瑞石山/ 유희경 98무등산 스님의 시에 차운하다/ 次題無等山僧軸/ 임 제 100무등산을 유람하여/ 游無等山/ 조팽년 102증심사 죽루에서 옛 운에 차운하다/ 證心竹樓次舊韻/ 고경리 104무등산에서 비를 만나다/ 無等山逢雨/ 최희량 106무등산을 유람하며 첫째 수/ 遊無等山 1/ 최희량 108무등산을 유람하며 둘째 수/ 遊無等山 2/ 최희량 110서석산 규봉에서 염불사에 이르다/ 自瑞石圭峯至念佛寺/ 진경문 112서석산을 유람하며 첫째 수/ 遊瑞石山 1/ 정운희 114서석산을 유람하며 둘째 수/ 遊瑞石山 2/ 정운희 116어떤 이가 ‘무등산노래’로 화답시를 구하다/ 有人示無等山歌求和/ 강 항 118무등산을 유람하다/ 遊無等山/ 이안눌 120서석산을 유람하다/ 遊瑞石山/ 조찬한 122서석산 첫째 수/ 瑞石山 1/ 고부민 124서석산 둘째 수/ 瑞石山 2/ 고부민 126서석산/ 瑞石山/ 신 즙 128무등산/ 無等山/ 장 유 130병들어 서석에 살면서 작은 감실 벽에 쓰다/ 病棲瑞石小龕題壁/ 정홍명 132서석산/ 瑞石/ 정지준 134서석산에 오르며/ 登瑞石山/ 이명한 136원효사/ 元曉寺/ 이시성 138증심사/ 證心寺/ 신익전 140함경이 대이에게 준 시에 화답하여/ 和咸卿寄大而韻/ 유 계 142창평 조사군 자방이 임지로 떠남에 이별하며 주다/ 贈別昌平趙使君子芳之任/ 신 최 144장마 중에 무등산을 기쁘게 보다/ 久雨喜見無等山/ 김만영 146서석산 원효암의 노승 영한이 찾아오다/ 瑞石山元曉菴老僧永閒委來相訪/ 김수항 148우연히 읊다/ 偶吟/ 이민서 150서석산 입석/ 瑞石山立石/ 신 완 152서석상봉/ 瑞石上峰/ 김창흡 154화음굴/ 華陰窟/ 김창흡 156광석대/ 廣石臺/ 김창흡 158서석산에 올라 저물녘에 증심사에서 자다/ 將登瑞石山暮投澄心寺/ 이해조 160증심사에서 묵다/ 留宿澄心寺/ 이해조 162서석산 입석대/ 瑞石山立石臺/ 이해조 164서석에 올라 첫째 수/ 登瑞石 1/ 양경지 166서석에 올라 둘째 수/ 登瑞石 2/ 양경지 168무등산/ 無等山/ 신익황 170말 위에서 서석산을 바라보며/ 馬上望瑞石山/ 이하곤 172서석산 지공너덜/ 瑞石山指空礫/ 임상덕 174입석을 바라보고/ 觀立石/ 임상덕 176서석산을 오르며 증심사에서 잠을 자다/ 將踏瑞石山宿證心寺/ 임상덕 178무등산/ 無等山/ 김도수 180서석산 원효사에서 자면서/ 宿瑞石山元曉寺/ 김도수 182서석산을 유람하며/ 遊瑞石山/ 위백규 184서석산에 올라/ 登瑞石山/ 정약용 186광주 무등산에 올라/ 登光州無等山/ 조인영 188갑인년 초여름 서석산을 유람하다/ 甲寅初夏遊瑞石山/ 송달수 190무등산/ 無等山/ 나도규 192서석을 구경하고 돌아와서/ 觀瑞石而歸/ 나도규 194광주 무등산 천황봉/ 光州無等山天皇峯/ 김윤식 196서석산/ 瑞石山/ 송병선 198서석산에 올라/ 登瑞石山/ 배현규 200서석산의 맑은 구름/ 瑞石晴雲/ 박노술 202증심사/ 澄心寺/ 나윤후 204광석대/ 廣石臺/ 이정회 206천황봉에 오르다/ 登天皇峰/ 이정회 208증심사 벽 위에 쓰다/ 題澄心寺壁上/ 금명보정 210서석산에 오르다/ 伴?瑞石山/ 송 홍 212규봉암에서 자다/ 宿圭峰庵/ 송 홍 214무등산 규봉암에서 자며 차운하다/ 宿無等山圭峯庵次韻/ 김희수 216서석상봉에 올라/ 登瑞石上峰/ 김희수 218무등산/ 無等山/ 허백련 220서석산을 유람하다/ 瑞石遊覽/ 정일섭 222
    2022-02-04 | NO.227
  • 김만식-宿光山府
    角罷人初定  화각 소리 그치고 인적이 고요한데 砧繁夜更遲旅懷無與共 惟有一燈知- 난실유고(蘭室遺稿) 권1김만식(金晩植, 1845-1922)의 자는 사성(司晟)이며 호는 난실(蘭室)이다.
    2018-07-27 | NO.226
  • 김만식-暮向梨峴
    幽尋弊屟趂凉霄  해진 나막신으로 그윽한 곳 찾으려 서늘한 하늘에 나아가暝入孤邨酒氣消  저물녘에야 외로운 마을에 드니 술기운이 사라지네.小雨纔晴殘水呴  가랑비 잠깐 개니 남은 물 뿜어대고 密雲初散遠峰孤  짙은 구름 막 흩어지니 먼 봉우리 외로워라老去賸逢連日醉  늙어 가며 넉넉한 만남에 날마다 취하고 歸來又見故人招  돌아오는 길에 다시 만난 벗들 손짓을 한다네䕺篁隱映松明細  떨기 대 은은히 비추니 소나무 밝고 분명한데 爛漫題詩夜覺遙  난만히 시 지으니 밤 아득해짐을 느끼겠구나-충장공 김덕령의 후손으로 김만식(金晩植:1845~1922)이 충효동에서 해질녘에 충장사가 있는  고개 배재(暮向梨峴)를 넘다 읊은 시다.
    2018-07-30 | NO.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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