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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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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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성후-東軒酒席
    十載干戈後 10년의 전란을 거친 후에湖南有此筵 호남(湖南)에서 이 자리를 펼쳤네琴歌是別恨 거문고와 노래는 이별의 한尊酒卽江天  단지 술로 강천(江天)을 마주하네世道今新態 세도의 모습은 새로 바뀌었지만朋情莫更遷 친구간의 정(情)은 바뀌지 마세나光山一夜會 광산(광주)에서의 하룻밤 모임에서休說我狂顚 나의 흥이 과하다 이르지 말게 조선 중기의 문신 죽촌(竹村) 고성후(高成厚 1549∼1602)가  임진왜란이  끝난 어느날 광주 동헌 술자리에서 읊은 시다.
    2018-07-06 | NO.269
  • 고씨 출신 중범이 의거에 나아감을 보내며〔送高出身仲範赴義〕 - 노사집 제2권
    고씨 출신 중범이 의거에 나아감을 보내며〔送高出身仲範赴義〕 - 노사집 제2권 :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9) 신경을 어찌 봉천과 같은 때라 할까마는 / 神京豈曰奉天時근기에서 어쩌다 출새시 듣게 되었나 / 近甸那聞出塞詩칼 짚고 그대 감에 늙은 간담 격동시키니 / 杖劒君行激老膽제봉에게 후손 있음을 믿을 수가 있네 / 霽峯方信有孫枝[주-D001] 신경(神京)을 …… 할까마는 : 신경은 임금이 계시는 서울을 뜻한다. 봉천(奉天)은 당나라의 덕종이 주자(朱泚)라는 자의 반역 사건으로 인하여 서울에서 나와 피란을 갔던 곳이다. 당시 상황이 임금이 피란을 갈 정도로 화급한 때가 아님을 말하였다.[주-D002] 출새시(出塞詩) : 출새는 변방을 뜻하니, 곧 싸움과 관련된 시를 말한다.[주-D003] 제봉(霽峯) : 고경명(高敬命, 1533~1592)으로, 본관은 장흥(長興), 자는 이순(而順), 호는 제봉이다. 광주(光州)에서 태어났다. 1552년(명종7)에 진사가 되었으며, 1552년 식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공조 좌랑을 시작으로 전적(典籍)ㆍ정언(正言)을 거쳐 사가독서(賜暇讀書)하였다. 이량(李樑)의 전횡 사건에 연루되어 울산 군수로 좌천된 후 파면되기도 하였으나 다시 기용되어 종계변무주청사(宗系辨誣奏請使)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적도 있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 되어 금산(錦山)에서 곽영(郭嶸)의 관군과 함께 왜군에 맞서 싸우다가 작은 아들 고인후(高因厚)와 함께 전사하였다. 문집으로는 《제봉집(霽峯集)》이 있으며, 무등산 유람을 기록한 《유서석록(遊瑞石錄)》이 있다.
    2020-10-04 | NO.268
  • 고용후-海陽城聞琴(해양성에서 거문고를 듣다)
    骨靑年少眼如刀 기골이 푸른 젊은이 날카로운 눈빛으로三峽流泉指下挑 삼협에 흐르는 샘을 손끝으로 연주한다 風露滿空人寂寂 바람과 이슬 허공에 가득하고 인적은 드문데壯元峰上月輪高 장원봉 위에 둥근 달만 높이 떴네-청사집(晴沙集)고용후(高用厚, 1577~1652)의 본관은 장흥, 자는 선행(善行)이며 호는 청사(晴沙)이다. 고경명 장군의 여섯째 막내아들로 의병장이었다. 1605년(선조 38)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1606년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예조좌랑이 되었다. 그뒤 병조좌랑·병조정랑을 거쳐 1616년(광해군 8) 남원부사가 되었으며, 1624년(인조 2) 고성군수를 역임하였다.1631년 동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판결사(判決事)를 마지막으로 관직에서 은퇴하였다. 저서로는 《청사집》, 《정기록正氣錄》 등이 있다.《청사집》은 1680년 고부선이 저자의 유문을 수집하여 간행했고, 1759에 2권1책 목판본으로 간행했다.2019.1.18. 수정
    2018-07-10 | NO.267
  • 고의후- 영국(詠菊)
    국화를 읊다有花無酒可堪嗟(유화무주가감차) 술이 없는 꽃이야 어찌 탄식을 참아내며有酒無人亦奈何(유쥬뮤인역내하) 사람 없는 술이야 또한 이내 어찌하리오. 世事悠悠不須問(세상유유뷸수문) 세상 일일랑 멀고 아득하여 모름지기 묻지 않고看花對酒一長歌(간화대주일장가) 활짝 핀 꽃을 보며 잔을 들고 길게 노래하리라.-고의후(高依厚, 1569~?)
    2020-04-01 | NO.266
  • 고제림-到元曉寺
    十里山行境復佳  십 리 산행(山行)에 경계는 다시 아름다워 雨中元曉夕陽崖  빗속의 원효사(元曉寺) 석양 끝에 이르렀네白雪守壑如相護  흰 눈은 골짝 지켜 서로를 보호하는 듯/瑞石齊天此可階  상서로운 바위 하늘에 가지런히 섬돌 될 만하네遠客靑藜三日是  먼 손님의 푸른 지팡이 삼 일 동안 바르고祗園紅樹四時皆  사찰의 붉은 나무 사계절 동안 같네坐來恰受淸閑意  앉아서 흡족히 맑고 한가로운 뜻 받으니 塵夢幾年野外齊  속세의 몇 년 꿈 들 밖과 나란하네/회운유고(晦雲遺稿)권3고제림(高濟琳 1817~1884)이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무등산에 있는 원효사(元曉寺)에 들리고(到元曉寺) 읊은 시다. 자는 백범(伯範), 호는 회운(晦雲),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고경명(高敬命)의 후손으로 담양 창평에서 출생하였다. 초반에는 과거 공부에 몰두하다가 후에 성리학을 연구하였으며, 특히 조문경(趙文敬)에게 사사하였다. 조병덕의 문하에서 경학과 예학 등 공부하였으며, 기정진에게 서신을 주고받는 등 근친했다. 문집으로는 회운유고(晦雲遺稿)가 있다. 고제림이 무등산을 등반했다. 담양창평 방향에서 먼저 만날 수 있는 원효당(元曉堂), 원효암(元曉庵)이라고도 불리고 있는 원효사에 머물며 힐링하는 시간을 갖는다.
    2018-07-06 | NO.265
  • 고태필- 객사 광산관
    光鎭無等山  광산의 진산(鎭山)인 무등산(無等山)은 巍然擅海東  우뚝하여 해동에서 이름을 날리네昔年曾佐幕  옛날에는 좌막(佐幕)을 지냈는데今日又觀風  오늘날 또다시 풍화(風化)를 살피도다夜冷蟲喧座  밤이 차니 벌레가 자리에서 시끄럽고雲收月滿空  구름이 걷히니 달빛 하늘에 가득하구나客窓愁不寐  객창에 근심으로 잠 못 이루니離恨更重重  이별의 한이 더욱 겹치고 겹치누나- 광주읍지고태필(高台弼)은 문종-성종 무렵의 문신이다. 본관은 제주(濟州). 고득종(高得宗)의 아들. 세조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에 책록되었으며 <예종실록(睿宗實錄)>의 수찬에 참여했다. 과거에 올라 조선 초기에 사간원 우헌납(司諫院右獻納, 1451), 청주 목사, 이조 참판, 전라도 관찰사, 황해도 관찰사, 개성 유수(開城留守) 등을 지냈다.
    2018-07-27 | NO.264
  • 광산으로 가는 이양원을 전송하며〔送李養源赴光山〕 - 지봉집
    광산으로 가는 이양원을 전송하며〔送李養源赴光山〕 - 지봉집 제4권 / 시(詩)○칠언율시(七言律詩) : 이수광(李睟光, 1563~1628)호남의 큰 번진에 격문 내리니 무진이라 / 湖徼雄藩是茂珍목민 재능 겸비한 인재 제일로 뽑기 어렵지 / 才兼牧御最難人남양에서 소두와 명성을 나란히 한 날이요 / 齊聲召杜南陽日조정에 기룡이 줄지어 나오는 봄이로세 / 接武夔龍北掖春전후로 수령 제수하는 성은을 거듭 입고 / 前後聖恩銅虎重형제가 색동옷 입고 봉양하니 새롭구나 / 弟兄榮養彩衣新수령 되어 멀리 떠나는 것 한스럽지 않으니 / 一麾遠別吾休恨지방관 되어 부모 봉양하기에 외려 기쁘다오 / 猶喜專城得近親공이 일찍이 남양(南陽)을 다스려 은혜를 끼쳤으며, 승지로 있다가 이 직임을 제수받았다. 게다가 공의 계씨(季氏)가 당시 고산(高山)에 수령이 되어 부모님을 모시고 갔기 때문에 언급한 것이다. [주-D001] 이양원(李養源) : 이경함(李慶涵, 1553~1627)으로, 본관은 한산(韓山), 자는 양원, 호는 만사(晩沙)이다. 1585년(선조18)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간, 필선, 호조 참판, 병조 참판 등을 역임하였으며, 외직으로 남양 부사(南陽府使), 광주 목사(廣州牧使), 경주 부윤(慶州府尹), 황해 감사(黃海監使) 등을 지냈다. 또한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조회를 가기도 하였으며, 폐모론(廢母論)에 반대하다가 탄핵을 받아 사판(仕版)에서 삭거(削去)되기도 하였다. 《약천집(藥泉集)》 권18에 신도비명이, 《죽천집(竹泉集)》 권33에 묘지명이 실려 있다.[주-D002] 호남(湖南)의 …… 무진(茂珍)이라 : ‘무진’은 광주(光州)의 이칭이다. 곧 이경함을 광주 목사에 제수하는 격문이 내렸다는 것이다.[주-D003] 남양(南陽)에서 …… 날이요 : ‘소두(召杜)’는 소신신(召信臣)과 두시(杜詩)로, 모두 한나라 때 전후로 남양 태수(南陽太守)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당시 백성들은 이들을 칭송하여 “전에는 소부(召父)가 있었는데 뒤에는 두모(杜母)가 있었다.” 하였다. 《漢書 卷89 循吏傳 召信臣》 《後漢書 卷31 杜詩列傳》 곧 원주에 보이듯이 이경함이 남양에서 선정을 펼친 것이 소두와 마찬가지라는 말이다.[주-D004] 기룡(夔龍) : 순(舜) 임금의 두 현신(賢臣)으로, 기는 악관(樂官)이었고 용은 간관(諫官)이었다.[주-D005] 색동옷 입고 봉양하니 : 자식의 효성을 뜻한다. 춘추 시대 초(楚)나라의 노래자(老萊子)는 효성으로 어버이를 섬기어, 일흔 살의 나이에도 자신의 나이가 많은 것을 어버이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색동옷을 입고 어린아이의 놀이를 하여 어버이를 기쁘게 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한다. 《小學 稽古》[주-D006] 공의 계씨(季氏) : 이경함의 막내아우 이경황(李慶滉)이다. 《白軒集 卷40 左參贊鵝川君贈領議政李公諡狀》
    2020-12-31 | NO.263
  • 광산현 제영시서(光山縣題詠詩序)
    광산현 제영시서(光山縣題詠詩序)이 고을은 신라 때 자사의 관할하던 곳이다. 이 때에 왕자 휘(諱) 흥(興)광(光)께서 장차 난리가 있을걸 예견하시고 서인(庶人)이 되어 이 고을 서쪽 한 마을에 오시어 거주하셨다. 마침 한 자제를 낳으시니 그 명함은 식(軾)이요 그 직함은 각간(角干)이라, 식(軾)께서 김길(金佶)을 낳으시니 길(佶)께서는 계교로 려조(麗朝)를 도와 통합하는 왕업에 큰 공이 있어 삼중대광 공신이 되시고 佶께서 좌복야(左僕射) 김준(金峻)을 낳으시고 峻께서 평장사(平章事) 문정공 김책(金策)을 낳으시니 策께서 광묘조에 특과로 뽑히어 상이 특별히 의봉문을 열고 어마를 태워 호송하여 영예를 후인에게 보였다. 策께서 평장사 정준(廷俊)을 낳으시고 廷俊께서 문하시중 문안공(文安公) 양감(良鑑)을 낳으시니 良鑑께서는 희령 갑인년에 송나라에 사신으로 들어가 태묘국자도를 본 떠서 본조에 바쳐 우리 동방에 비로소 창건되었다. 그리고 그 때에 송나라의 유명한 소동파(蘇東坡)가 작별하는 시를 지어 주었으니 이르되 "빌어 삼한 사신에게 주노니 새 그림이 낙랑에 이른다"고 하였다. 良鑑께서는 평장사 의원(義元)을 낳으셨다. 義元은 나의 현조(玄祖)이시라. 후인이 우리 시조 왕자공 興光께서 사시던 곳에 평장사가 많이 났다고 하여 동리 이름을 평장동(平章洞)이라 하였다. 이제 내가 제안(提按)으로서 여기에 와 이 사실을 기록함은 비록 우리의 내향(內鄕)이나 누세를 경과하여 그 고을 사람이 이 본말을 자상히 모르는고로 시에 가로되 "문정공이 해동에 어지시니 홀로 천장에 독보로 이르니 평장 한 마을이 오히려 의연하도다" 대덕 십일년 유월 일 제안 황대전고 김 이 씀(광주 평장동 유허비 음기) *김이(金珥) 구휘(舊諱) 김제(金제) 충렬왕(忠烈王)때 제안(提按) 황대전고(黃臺典誥)를 지냈으며 충렬왕(忠烈王) 신사(辛巳)에 음죽감무(陰竹監務)를 지냈으며, 충렬왕(忠烈王) 정미(丁未)에 광산현제영시서(光山縣題詠詩序)를 찬제(撰製)하였다.  (見高麗史)
    2020-05-17 | NO.262
  • 광산현(光山縣)의 수재(守宰)로 나가는 최 학사(崔學士)를 전송하며 - 택당선생 속집 제3권
    광산현(光山縣)의 수재(守宰)로 나가는 최 학사(崔學士)를 전송하며, 2수. 광주(光州)가 강등되어 광산(光山)으로 불리었는데, 도호부(都護府)의 임무는 그대로 계속 수행하면서 바야흐로 군적(軍籍) 정리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 택당선생 속집 제3권  : 택당(澤堂) 이식(李植 1584~1647)우리 각자 순해의 뜻품고 있다가 / 各有循陔志똑같이 시종신(侍從臣)의 은총을 입었어라 / 俱叨侍禁榮나는 삼장 올렸어도 아직 떠나지 못했는데 / 三章吾未退그대는 백리재(百里宰)로 먼저 나가게 되었구려 / 百里子先行현으로 강등되었어도 목사의 임무는 마찬가지 / 降縣仍同牧백성을 휴식시키려고 군적을 다시 정리하네 / 休民更籍兵경조의 웃음 얘기 익히 알고말고요 / 深知京兆笑의지할 곳 없는 백성 보살펴 주실 줄 믿소이다 / 亦在撫癏惸이(二)호남 땅 일천 가호(家戶) 크나큰 고을 / 湖外千家邑어딜 가도 풍광(風光)이 수려한 촌락 / 風煙處處村풍악 소리 울리는 고대광실 즐비하고 / 歌鍾多巨室꽃과 대 모두가 이름난 정원이라 / 花竹總名園취하거든 임동야도 찾아보시고 / 醉過林東野신 정언과 한 이불 덮고도 자 보구려 / 眠同愼正言노닐기에 평소 지친 답답한 이곳에서 / 平生倦遊處그대 떠나 보내려니 가슴이 아파 오오 / 送子一傷魂[주-D001] 순해(循陔)의 뜻 : 어버이를 봉양하면서 지내려 했다는 말이다. 가사가 없어진 《시경(詩經)》 소아(小雅) 남해(南陔)의 보망시(補亡詩)에 “남쪽 섬돌을 따라 올라가, 난초 캐어 어버이께 바쳐 올리리.[循彼南陔 言采其蘭]”라는 말이 나오는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주-D002] 삼장(三章) : 지방관(地方官)을 청하는 세 차례의 상소문이라는 말이다. 참고로 소식(蘇軾)의 시에 “외직(外職) 청하는 세 차례 상소 글자가 반쯤 기울어져, 혹시 눈병 걸렸냐고 조정의 비웃음을 받았다오.[乞郡三章字半斜 廟堂傳笑眼昏花]”라는 표현이 있다. 《蘇東坡詩集 卷36 七年九月自廣陵召還…》[주-D003] 백리재(百里才) : 지방 장관의 별칭이다.[주-D004] 경조(京兆)의 웃음 얘기 : 한(漢) 나라 준불의(雋不疑)가 경조 윤(京兆尹)이 되었을 때, 그가 퇴근하여 집에 돌아오면 그의 모친이 “오늘은 얼마나 죽을 목숨을 살려 주었느냐?”고 묻곤 하였는데,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구해 주었다고 하면 모친이 기뻐하며 웃고, 반대의 대답이 돌아오면 모친이 노여워하며 밥을 먹지도 않았다는 고사를 말한다. 《漢書 卷71 雋不疑傳》
    2020-09-27 | NO.261
  • 광주 객관에서 묵다〔宿光州館〕- 백담집
    광주 객관에서 묵다〔宿光州館〕- 백담집  : 구봉령(具鳳齡, 1526~1586)저물녘에 광주 객관을 찾아가니 / 黃昏爲訪光州館신선산에 기우는 달빛 보이려 하네 / 要看仙山月影斜괴롭구나, 조물주가 도리어 시기를 좋아하여 / 苦是天公還好妬은해를 현란하게 어른거리게 하네 / 却敎銀海眩生花- 당시 안질로 고생하였다. - [주-D001] 은해(銀海)를 …… 하네 : 은해는 도가에서 사람의 눈동자를 가리킨 말이다. 소식(蘇軾)의 〈설후서북대벽(雪後書北臺壁)〉 시에 “얼음은 옥루에 얼어 추워서 소름이 돋고, 빛은 은해를 흔들어 현란하게 어른거리네.〔凍合玉樓寒起粟 光搖銀海眩生花〕”라고 하였다.《蘇東坡詩集 卷12》
    2020-12-14 | NO.260
  • 광주 대현에서 용구산을 바라보며〔光州大峴望龍龜山 - 백담집
    광주 대현에서 용구산을 바라보며〔光州大峴望龍龜山 - 백담집 제1권 : 구봉령(具鳳齡, 1526~1586)고갯길 부여잡고 오르니 병든 눈이 열리어 / 峴路攀登病眼開용구산 푸른빛이 눈앞에 들어오네 / 龍龜翠入望中來산 앞에서 일찍이 말 멈춘 나그네였으니 / 山前曾是停驂客오늘 머리 자주 돌리는 걸 어찌 견디리 / 此日那堪首屢回[주-D001] 용구산(龍龜山) : 전라남도 담양군 수북면과 월산면에 위치한 산이다.
    2020-12-14 | NO.259
  • 광주 목사 죽음 영공이 경양의 방죽에서 고기 잡는 것을 보고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차운하다- 제호집
    광주 목사 죽음 영공이 경양의 방죽에서 고기 잡는 것을 보고 시를 지었는데 그 시에 차운하다〔光牧竹陰令公觀漁景陽坊築有詩 次韻〕비단 나무 서리에 잎이 지는데 / 錦樹經霜葉脫枝성 서쪽의 더딘 모임을 한하네 / 城西此會恨差遲촌에 일 없고 정무에 짬 많으니 / 村居無事政多暇태수가 출유해도 백성은 모르네 / 太守出遊民不知넓은 물 뛰는 물고기는 기운찬데 / 水闊跳魚鱗鬣壯찬 하늘 병든 학 날개를 거뒀네 / 天寒病鶴翅翎垂무정한 화각소리 참으로 미우니 / 生憎畫角無情極잠시나마 수레가 머물지 못하네 / 不許華軺住少時제호집 제8권 / 시(詩)○칠언율시(七言律詩)양경우(梁慶遇, 1568~1638)는 고려 때 태자 중윤(太子中允)을 지내고 찬화공신(贊化功臣) 용성군(龍城君)에 봉해진 양주운(梁朱雲)의 16세손으로, 본관이 남원(南原)이며, 자는 자점(子漸), 호는 제호(霽湖)ㆍ점역재(點易齋)ㆍ요정(寥汀)ㆍ태암(泰巖)이다. 고조 계옥(啓沃)은 부사직(副司直), 증조 자윤(自潤)은 사포 별제(司圃別提), 조부 의(艤)는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를 지냈다. 아버지는 임진왜란에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켜 고경명(髙敬命)과 함께 활약하다가 순국(殉國)한 청계(靑溪) 양대박(梁大樸, 1543~1592)이다.
    2023-07-05 | NO.258
  • 광주 목사로 가는 신여만을 전송하다, 2수 〔送申光州汝萬, 二首〕- 동명집 제4권
    광주 목사로 가는 신여만을 전송하다, 2수 〔送申光州汝萬, 二首〕- 동명집 제4권 :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 1597~1673)광주부의 고을이야 내 못 봤지만 / 不見光州府서석산의 그 이름은 들어 보았네 / 猶聞瑞石山그 가운데 있는 그대 이은이거니 / 此中君吏隱다음 해엔 임금이 꼭 불러올리리 / 來歲上徵還그리고 또 유명 간에 느낌 있거니 / 且有幽明感내가 전에 계맹 간에 교분 맺었네 / 曾交季孟間성 남쪽서 가는 오마 전송을 하매 / 城南送五馬머리카락 반백 된 걸 퍼뜩 깨닫네 / 偏覺鬢毛斑내 젊어서 선승상을 배알했으며 / 少謁先丞相인하여서 두 아들과 교유하였네 / 因從兩胤遊매번 홍안 행렬의 뒤 따라다니며 / 每隨鴻鴈序여러 차례 봉황루에 올라갔었네 / 屢上鳳凰樓옛 친구라 늘 정겹게 말 나눴거니 / 道故常私語백발 되어 만나 어찌 생소하리오 / 如新豈白頭길 떠남에 임해 되레 말해 주나니 / 臨行還有贈노력하여 걱정 나눈 직분 잘하소 / 努力愼分憂[주-D001] 신여만(申汝萬) : 신익전(申翊全, 1605~1660)으로,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여만, 호는 동강(東江)이다. 신흠(申欽)의 아들이다. 병자호란 뒤에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돌아와 부응교ㆍ사인(舍人)ㆍ사간을 거쳤으며, 이어 광주 목사(光州牧使)를 지냈는데, 신익전이 광주 목사에 제수된 것은 《동강유집(東江遺集)》 권17에 나오는 〈가장(家狀)〉을 보면, 1645년(인조23) 겨울로 되어 있다. 저서로는 《동강유집(東江遺集)》이 있다.[주-D002] 서석산(瑞石山) : 광주(光州)에 있는 무등산(無等山)의 별칭이다.[주-D003] 이은(吏隱) : 관직에 있으면서도 은자(隱者) 같은 생활을 하며 이록(利祿)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을 말하는데, 흔히 경치 좋은 고을의 수령으로 있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주-D004] 그리고 …… 맺었네 : 동명이 신익전의 형인 동양위(東陽尉) 신익성(申翊聖)과도 교분을 맺었는데, 신익성은 신익전이 광주 목사에 제수되기 한 해 전인 1644년(인조22)에 죽었으므로 한 말이다.[주-D005] 오마(五馬) : 말 다섯 마리가 끄는 수레로, 태수가 부임할 적에 이 수레를 타고 갔으므로, 한 고을의 수령을 뜻하는 말로 쓰인다.[주-D006] 선승상(先丞相) : 신익전의 아버지인 신흠(申欽)을 가리킨다. 신흠이 영의정을 지냈으므로 한 말이다.[주-D007] 매번 …… 따라다니며 : 신익전 형제들과 자주 어울려 다녔다는 뜻이다. 홍안(鴻鴈) 행렬은 형제간에 길을 갈 적에 동생이 형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말하는데, 전하여 형제를 뜻하는 말로 쓰인다.[주-D008] 여러 …… 올라갔었네 : 동명 자신이 자주 동양위 신익성의 집에 갔었다는 뜻이다. 봉황루(鳳凰樓)는 진(秦)나라 목공(穆公)이 그의 딸인 농옥(弄玉)을 위하여 만들어 준 누각으로, 봉루(鳳樓)라고도 한다. 농옥이 음악을 좋아하였는데, 소사(蕭史)가 퉁소를 잘 불어서 봉새가 우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이에 목공이 농옥을 그에게 시집보내고 누각을 지어 주었는데, 이들 두 사람이 퉁소를 불면 봉황이 날아와서 모였으며, 이들은 그 뒤에 봉황을 타고 날아갔다고 한다. 《列仙傳》 여기서는 신익성이 선조(宣祖)의 사위이므로 이렇게 말한 것이다.[주-D009] 옛 친구라 …… 생소하리오 : 어렸을 적부터 오랫동안 사귀어서 서로 간에 정이 푹 들었다는 뜻이다. 《사기(史記)》 권83 〈추양열전(鄒陽列傳)〉에 “백발이 되도록 오래 사귀었어도 처음 만난 사이처럼 생소하기만 하고, 수레를 처음 맞댄 사이이면서도 옛 친구를 대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속담이 있는데, 이것은 무슨 뜻이겠는가. 바로 상대방을 알고 모르는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諺曰 有白頭如新 傾蓋如故 何則 知與不知也〕”라고 하였다.[주-D010] 노력하여 …… 잘하소 : 광주 목사의 직임을 잘 수행하라는 뜻이다. ‘걱정 나눈 직분’은 임금의 걱정을 나누어 맡는다는 뜻으로, 지방의 수령이 되는 것을 말한다.
    2020-09-15 | NO.257
  • 광주 목사로 옮기는 경원 부사 이모를 보내며〔送李慶源遷刺光州〕- 미암집
    광주 목사로 옮기는 경원 부사 이모를 보내며〔送李慶源遷刺光州〕- 미암집 제1권 / 시(詩) : 유희춘(柳希春, 1513~1577우뚝한 왕자의 기상 드높고 / 磊落王子氣象高문무를 갖추어 영웅호걸로 추앙되네 / 才全文武推英豪전념하여 이미 오경을 깨치고 / 潛心已發五經庫장한 기상 삼산에 떨치었네 / 壯氣欲掁三山鼇북쪽 관문 지키려면 예전 장수 필요하여 / 北門鎖鑰須舊將변방에 넉넉한 인재 오게 하였지 / 故來邊郡揮牛刀근심 나눔이 곧 임금 가까이 모시는 것이니 / 自謂分憂卽近君밤낮으로 경륜 펴느라 수고로움 잊었네 / 夙夜綜理忘焦勞백 리 내 백성들 어루만지고 / 百里蒼生入撫摩삼군은 모두 하수 막걸리에 취하네 / 三軍共醉河簞醪깃발의 정채 하루아침에 변하니 / 旌旗精彩一朝變오랑캐도 벌벌 떨어 터럭 곤두서리라 / 犬羊凜凜生寒毛위엄이 어찌 변방 풍속만 압도했을까 / 威靈豈徒殊俗壓문풍은 다시 선비들 진작시켰네 / 文風更振靑袊袍삭망엔 대궐에 절하고 예의 가르치며 / 朔望拜闕敎禮義사직단과 문묘에 친히 제사 받드네 / 社壇文廟親焄蒿경서 가르쳐 몽매함 깨치느라 피로함 모르니 / 授經發矇不知倦여러모로 고무시켜 종과 북 울리는 듯하였네 / 多方鼓舞如鍾鼛얼음물 마시고 황벽 먹은들 어찌 괴로우리오 / 飮氷食蘖那自苦백성들로 하여금 임금 은택 젖게 하였네 / 要令赤子沾流膏내가 일찍이 얼굴 뵙고 아량 살펴보니 / 我嘗承顔窺雅量팽려호가 가을에 장강의 물결 접한 듯 / 彭蠡秋接長江濤기민을 먹인 은혜가 굴서에게 미치니 / 哺飢之仁及掘鼠하늘 끝 객지에서 만남이 얼마나 다행인가 / 天涯何幸萍蓬遭임기가 차서 또 남쪽으로 부임하니 / 瓜期又紆南州綬거문고 들고 간 소매자락 바람에 펄럭이네 / 一琴歸袂風颾颾영암읍의 명성이 광주 고을까지 들리어 / 靈邑仁聲入光邑모두들 늦게 왔다 맞으며 간모를 구경하네 / 共迎來暮觀干旄옆 사람들 자주 외직 나감을 의심치 마라 / 傍人莫訝屢出守업후는 벼슬을 두루 거쳐 삼공에서 마쳤다네 / 鄴侯歷試終槐曹멀리서 떠난다는 말 듣고도 송별 못하고 / 遙聞旌旆不相送스스로 겹겹 쌓인 토옥에 갇혀 탄식하네 / 自嗟土屋重重牢원컨대 노인들 얼고 굶주림에서 구제하여 / 但願老老救凍餒냉산의 근심스런 마음 조금 누그러뜨리기를 / 冷山少弛心忉忉[주-D001] 이모 : 누구를 가리키는지 불분명하다.[주-D002] 삼산(三山) : 자라 등 위에 얹혀서 바다에 떠 있다는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州) 등 삼신산(三神山)을 말한다. 옛날 발해(渤海) 동쪽에 신선이 사는 다섯 개의 산이 조류(潮流)에 밀려 표류하자, 천제(天帝)가 큰 자라 열다섯 마리로 하여금 머리로 그 산들을 떠받치게 하였는데, 용백국(龍伯國)의 거인(巨人)이 낚시질하여 여섯 마리를 잡아가는 바람에 지금은 아홉 마리가 세 개의 선산(仙山)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전설이 있다. 《列子 湯問》[주-D003] 북쪽 …… 하였지 : 이모(李某) 장군이 구장(舊將), 즉 경험 많은 장군으로서 북쪽 변방을 자물쇠처럼 굳건히 지키기 위하여 차출되어 변방에서 그의 능력이 발휘되었음을 말하였다. 우도(牛刀)는 변방의 작은 고을을 다스리는데 대도(大道)를 사용했다는 뜻이다. 《논어》 〈양화(陽貨)〉에 “공자(孔子)의 제자 자유(子游)가 무성(武城)의 수령으로 있을 때에 공자가 들렀더니, 글 읽고 거문고 타는 소리가 들렸다. 공자는 자유를 보고 웃으며, ‘닭을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쓸 필요가 있는가.〔割鷄焉用牛刀〕’하였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이 조그만 고을을 다스리는데 나라를 다스릴 때 쓰는 시(詩)ㆍ서(書)ㆍ예(禮)ㆍ악(樂) 등을 씀을 희롱 섞어 칭찬한 말이다.[주-D004] 근심 …… 잊었네 : 경원 부사로 부임한 이모가 스스로 생각하기를 임금의 위임을 받아 지방관의 책무를 다하는 것은 곧, 군주의 역할에 가깝다라고 여겨 스스로 책임을 다하려 했다는 의미이다. 분우(分憂)는 임금의 근심을 나눠 갖는다는 뜻으로, 목민관의 직책을 가리킨다.[주-D005] 삼군(三軍)은 …… 취하네 : 사졸(士卒)들을 아끼면서 동고동락(同苦同樂)한 것을 비유한 말이다. 옛날에 어느 훌륭한 장수(將帥)가 어떤 이가 보내 준 한 병의 막걸리를 가지고 부하(部下)의 모든 병사(兵士)들과 함께 마시기 위해 이 술병을 하수(河水)에 던져 놓고 병사들로 하여금 하수의 하류(下流)로 내려가서 다 함께 그 물을 마시게 했다고 한다. 《三略 上略》[주-D006] 오랑캐도 …… 곤두서리라 : 이모의 소식을 들은 오랑캐들이 겁을 먹었다는 뜻이다. ‘견양(犬羊)’은 원래 하찮은 것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북방의 오랑캐를 지칭한다.[주-D007] 犬羊 : 대본에 ‘大羊’으로 되어 있으나, 문맥의 의미상 ‘犬羊’으로 바로잡았다.[주-D008] 제사 받드네 : ‘훈호(焄蒿)’는 귀신께 정성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예기》 〈제의(祭義)〉에 “…… 그 기가 위로 올라가서 소명ㆍ훈호ㆍ처창함이 되니, 이는 백물의 정기이다.〔……其氣發揚于上 爲昭明焄蒿悽愴 此百物之精也〕”라고 하였는데, 주희(朱熹)는 그 주에서 “귀신이 밝게 드러나는 것을 소명, 그 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이 훈호, 사람의 정신을 두렵게 하는 것이 처창이다.”라고 하였다.[주-D009] 얼음물 …… 괴로우리오 : 어려움 속에서도 청렴결백(淸廉潔白)한 자세를 유지했음을 뜻한다. 백거이(白居易)의 〈삼년위자사시(三年爲剌史詩)〉에 “삼 년 동안 자사로 있으면서, 얼음을 마시고 또 황벽을 먹었네.〔三年爲刺史 飮氷復食檗〕”라는 내용이 있다.[주-D010] 팽려호가 …… 듯 : 경원 부사 이모(李某)의 아량이 넓음을 표현하였다. 팽려호(彭蠡湖)는 ‘파양호(鄱陽湖)’라고도 하는데, 지금의 강서성(江西省)에 있는 파양호(鄱陽湖)를 이른다. 《書經 禹貢》 장강(長江)은 양자강(揚子江)을 말한다.[주-D011] 기민을 …… 미치니 : 선정(善政)이 하층의 백성들에게까지 미쳤음을 뜻한다. 굴서(掘鼠)는 한 무제(漢武帝) 때의 절신(節臣) 소무(蘇武)와 관련된다. 소무는 당시 중랑장(中郞將)으로서 흉노(匈奴)에게 사신 갔는데, 그만 19년 동안 흉노에게 잡히어 온갖 고초를 당하면서도 절개를 지켰다. 특히, 북해(北海) 근방으로 이동되어 양(羊)을 쳤는데, 양식이 없어 들쥐를 잡아먹었다고 한다. 《漢書 卷54 蘇武》[주-D012] 임기가 차서 : 본문의 ‘과기(瓜期)’는 ‘과만(過滿)’, ‘과한(過限)’이라고도 하는데, 지방 관원의 임기가 차는 것을 말한다.[주-D013] 간모(干旄) : 검은 소의 꼬리를 장대 위에 매단 기(旗)로 존귀한 사람이 예(禮)를 갖추어 어진 사람을 초빙함을 뜻한다. 《시경》 〈용풍(鄘風) 간모(干旄)〉에 “우뚝한 간모가, 준읍의 교외에 있도다.〔孑孑干旄 在浚之郊〕”라고 하였다.[주-D014] 업후(鄴侯)는 …… 마쳤다네 : 벼슬을 오랫동안 함이 결코 누가 되지 않음을 뜻한다. 업후는 당(唐)나라 이필(李泌)의 봉호이다. 경조(京兆) 사람이며, 자는 장원(長源)으로 현종(玄宗)ㆍ숙종(肅宗)ㆍ대종(代宗)ㆍ덕종(德宗) 네 조정에서 벼슬을 하였으며, 재상까지 지내는 동안 여러 번 권신(權臣)들의 공격을 받았지만 그때마다 슬기롭게 화를 면하였다. 본문의 괴조(槐曹)의 괴는 삼공(三公)의 자리를 뜻하고, 조는 무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주-D015] 노인들 …… 구제하여 : 선정을 베풀었음을 나타내었다.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나이 오십에는 비단이 아니면 따뜻하지 않고, 나이 칠십에는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다. 따뜻하지 못하고 배부르지 못한 것을 소위 춥고 배고프다고 표현하는데, 옛날 문왕의 백성 중에는 춥고 배고픈 늙은이가 없었다.〔五十非帛不煖 七十非肉不飽 不煖不飽 謂之凍餒 文王之民 無凍餒之老者〕”라고 하였다.[주-D016] 냉산(冷山)의 …… 누그러뜨리기를 : 종성(鍾城) 유배지에 있는 유희춘 자신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냉산’은 송(宋)나라 홍호(洪皓)가 건염(建炎) 3년에 대금 통문사(大金通問使)가 되어 금(金)나라로 사신 갔다가 금나라 점한(粘罕)의 뜻을 거슬러 쫓겨난 곳이다. 그곳은 몹시 추워서 4월이 되어야 풀이 나고 8월이면 눈이 내렸다. 홍호는 이곳에 머물면서 갖은 고생을 다하며 15년을 머물다가 간신히 송나라로 돌아올 수 있었다. 《宋史 卷373 洪皓列傳》
    2020-12-14 | NO.256
  • 광주 무등산 천황봉〔光州無等山天皇峯〕:- 운양집
    광주 무등산 천황봉〔光州無等山天皇峯〕 광석대(廣石臺)와 입석대(立石臺)가 모두 천황봉(天皇峯) 아래에 있다. - 운양집 제1권 / 시(詩)○승평관집(昇平館集) : 김윤식(金允植, 1835~1922)천황의 소매 높이 잡고 / 高挹天皇袂머리 긁적이며 속세와 작별했네 / 搔頭謝俗塵산중에 흰 돌 많고 많은데 / 山中多白石양을 치는 사람은 그 누구인가 / 誰是牧羊人[주-D001] 양을 …… 누구인가 : 《신선전(神仙傳)》 〈황초평(黃初平)〉에 황초평이 금화산(金華山)에서 신선술을 닦아 백석(白石)을 질타하여 양 떼로 만들었다고 했다.
    2020-12-31 | NO.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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