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총 31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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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유-극락원
- 極望平郊豁 광활한 들녘 한눈에 들어오고通流二水長 가로질러 흐르는 두 물줄기 장대하여라雲山分歷歷 또렷이 보이는 구름 덮인 산들煙樹暗蒼蒼 푸르스름 어두운 자욱한 물안개 낀 나무들湖海饒形勝 좋은 경치 넉넉한 호수와 바다光羅接土疆 광주와 나주의 접경이라네郵亭駐征蓋 가던 수레 잠시 역참에 멈춰 서니滿路野棠香 길가엔 찔레꽃 향기가 가득하여라谿谷先生集 卷之二十八계곡(谿谷)·묵소(默所) 장유(張維 1587 선조 20~ 1638 인조 16)가 서창 극락원에서 머물며 읊었던 시에서 시공간을 넘어 당시의 일대의 감회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그는 나주목사와 호남 암행어사로 전라도에 인연이 있었다.
- 2018-07-17 | NO.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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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창우- 만귀팔경 (만귀8경)
- 瑞石明月 무등산에는 밝은 달이 떠 있고龍江漁火 황룡강에는 어부들의 불빛이 있네.馬山淸風 백마산에는 맑은 바람 산들거리며樂浦農船 낙포 농장에는 농사를 위한 배가 오가네 漁燈暮雲 어부들의 등불에 저녁 구름 피어나고松汀夜雪 송정에는 흰눈이 밤을 밝히며錦城落照 나주 금성산에는 아름다운 저녁노을野外長江 들밖에 길고 긴 강물이 흐르네 남원 출신 장창우가 광주 서구 세하동에 자리를 잡고 후학을 가르치며 지은 초막이 1750년경 만귀정이다.
- 2018-07-06 | NO.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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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태경- 鏡湖水(경호의 물)
- 汀蘭崖芷挾郊濶 강가 난초 언덕 지초, 들판 끼고 넓게 퍼졌는데十里烟霞暎不孤 십리에 이내 낀 노을, 비친 영상 외롭지 않구나朝曉夕昏千萬像 밝은 아침 어두운 저녁까지 천태만상 변화하니依俙賀老四明圖 사명광객 하로¹ 닮은 그림일세사명광객(四明狂客) 하로(賀老) : 사명광객은 이백을 적선(謫仙)이라 일컬었던 당나라 하지장(賀知章)의 자호이고, 하로(賀老)는 하지장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하지장이 비서감(秘書監)으로 있다가 고향인 회계산(會稽山) 경호(鏡湖)의 도사(道士)로 나가게 해 줄 것을 청하자 현종이 경호의 섬계(剡溪) 한 굽이를 하사했다. (당서 196 하지장전)
- 2018-07-10 | NO.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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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태경-月夜登凝香亭(달 뜬 밤에 응향정에 오르다)
- 飛閣靈光生別壃 높은 누각, 신령스런 빛이 외진 곳에 생기는데超然仙篆在方塘 초연한 신선 모습, 네모 연못에 있네高標獨立愛山靜 고고한 모습으로 홀로 서서 고요한 산을 사랑하고短杖步虛耽夜凉 짧은 지팡이로 허공을 밟으며 서늘한 밤을 즐기네雨後烟浦天色遠 비온 뒤 이내 낀 포구, 하늘빛은 멀고江千月入水聲長 온 강에 달 뜨니 물소리는 길구나荷花十丈萃山種 크기가 열 길인 연꽃, 화산의 종자이니此地淸香滿羽觴 이 곳의 맑은 향기, 술잔에 가득하네-우잠만고(愚岑漫稿)장태경(張泰慶, 1809~1887)의 자는 자화(子華)이며 호는 우잠(愚岑)이다.
- 2018-07-10 | NO.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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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태경-端陽詩社, 會于柳林(단오절 시사, 유림에서 모이다)
- 老少忘年意轉深 늙으나 젊으나 나이 잊어 뜻이 더욱 깊어지니端陽勝會與相尋 단오절 훌륭한 모임에서 서로 찾는구나長堤過雨風和樹 비 내린 긴 둑, 나무에 바람 불어오고芳草沈烟露結林 안개에 쌓인 향긋한 풀, 숲에 이슬 맺히네佛界光陰花不語 부처 세계 속 시간, 꽃은 말하지 않고文垣鼓吹鳥能音 문단에서 짓는 시, 새도 노래할 수 있지箇中無限沂雩樂 이 사이 끝없는 기우의 즐거움魚躍鳶飛各率心 물고기 뒤놀고 솔개 날아 각각 제 본성 따르네
- 2018-07-10 | NO.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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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태경-題皇華樓(황화루에 쓰다)
- 自從瑞石創胥工 서석산에서 공사 시작하여經始斯樓倚碧空 푸른 하늘에 의지해 이 누각 지었네北極眼通千里外 천리 밖 북극 시계가 트이고南天心豁一軒中 누각 안 남쪽 하늘 마음이 뚫리네黃河休運丁時泰 황하의 아름다운 운세¹ 세상은 태평성대華祝謳歌已歲豊 화봉인의 축원 노래² 이미 풍년이 들었네七事年年無滿假 칠사 행하는 이³ 해마다 자만심 없으니臣民憂樂擧皆同 백성의 근심과 즐거움 어디나 모두 같다네우잠(愚岑) 장태경(張泰慶, 1809~1887)이 황화루에 오르고 읊은 시에서 황화루가 중건했음을 알 수 있다.(題皇華樓) 장태경은 19 세기 조선시대 지방의원으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의학경험담을 모아 후학들에게 귀감이 되고자 엮은 의안(醫案)모음 우잠잡저(愚岑雜著)를 남긴 바 있다.¹ 황하의 아름다운 운세 : 어질고 성스런 임금이 나와 태평성대를 이루었다는 말. 송사 악지에 “백성이 편안하고 풍속이 좋아지면 황하수가 맑아지고 바닷물도 조용하다”라고 했다.² 화봉인의 축원 노래 : 화(華)라는 땅의 봉인이 수(壽), 부(富), 다남자(多男子)라고 하는 세 가지로 요(堯) 임금을 축도하였다고 한다.(莊子 天地)³ 칠사 행하는 이 : 칠사는 수령이 지켜야 할 7조목의 일로, 농상성(農桑盛 : 농상을 성하게 함), 호구증(戶口增 : 호구를 늘림), 학교흥(學校興 : 학교를 일으킴), 군정수(軍政修 : 군정을 닦음), 부역균(賦役均 : 역의 부과를 균등하게 함), 사송간(詞訟簡 : 소송을 간명하게 함), 간활식(奸猾息 : 교활하고 간사한 버릇을 그치게 함)을 이른다.
- 2018-07-10 | NO.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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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태경-柳林藪秋風(유림의 가을 바람)
- 何來軍馬步來濶 어디서 온 군마인데 보폭이 이리 넓은가楚漢兵聲勢不孤 초나라 한나라 군대 함성, 세력이 엄청나네驚開蓬戶挺身立 놀라서 사립문 열고 몸 세워 일어나니風在枝頭形未圖 바람이 나뭇가지 스치는데 그 모습 그리지 못하네
- 2018-07-10 | NO.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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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금남군의 유허에서〔鄭錦南遺墟〕 -매천집 제4권 / 시(詩)○임인고(壬寅稿)
- 정 금남군의 유허에서〔鄭錦南遺墟〕 - 매천집 제4권 / 시(詩) ○임인고(壬寅稿) 병등 차고 일어나 인장 옆에서 잠들다가 / 兵燈蹴起印傍眠자연스레 풍운 빌려 하늘 위로 올렸네 / 穩借風雲送上天똑같이 당대의 참된 안목이지만 / 一種當時眞眼力권공이 의당 이공보다 앞섰으리라 / 權公合在李公先주문과 기맥의 실버들에 봄이 한창인데 / 朱門綺陌柳絲春거꾸로 최장이 날마다 문에 이르렀네 / 倒見崔張日到門사대부는 원래 나에게 달린 것이거늘 / 士大夫原於我在천추에 어리석은 이는 기승진일세 / 千秋痴絶紀僧眞재주 있는 신하는 형세 판단 유독 밝아 / 才臣審勢眼偏明맹약 먹물 바랠 즈음 죽기를 다투었네 / 盟墨將渝判死爭만약 직접 남한의 일 겪었더라면 / 使也身逢南漢日고심함은 결단코 완성에 뒤지지 않았으리 / 苦心端不後完城하사 받은 집에서 여러 해 병상에 누웠더니 / 賜第多年病臥床줄을 이은 어장은 하늘의 향기 띠었네 / 魚麞絡繹帶天香광산의 풀밭 봄이 와도 돌아온 적 없으니 / 光山春艸無歸日못 믿겠네, 영웅이 고향을 그리워한다는 말을 / 不信英雄戀故鄕[주-C001] 임인고(壬寅稿) : 1902년(광무6), 매천이 48세 되던 해에 지은 시들이다.[주-D001] 정 금남군(鄭錦南君) : 조선 인조(仁祖) 때의 무신(武臣)인 정충신(鄭忠信, 1576~1636)을 가리킨다. 자는 가행(可行), 호는 만운(晩雲)이며, 본관은 나주(羅州)이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의 휘하에서 종군하다가 이항복(李恒福)의 주선으로 학문을 배웠고, 그해 무과에 급제하였다. 1624년(인조2) 이괄(李适)의 난에 공을 세워 금남군에 봉해졌고, 1627년 정묘호란 때 부원수(副元帥)를 지냈다. 천문(天文)ㆍ지리(地理)ㆍ복서(卜筮)ㆍ의술(醫術) 등에 밝았고 청렴하기로 이름이 높았다. 저서에 《만운집(晩雲集)》, 《백사북천일록(白沙北遷日錄)》, 《금남집(錦南集)》 등이 있다.[주-D002] 병등(兵燈) …… 잠들다가 : 정충신은 조부 때부터 절도영(節度營)에 속한 정병(正兵)이었고, 부(府)에 예속된 지인(知印)의 직책을 겸하고 있었다. 지인은 인장을 관리하는 천리(賤吏)이다.[주-D003] 풍운 …… 올렸네 : 풍운은 난리를 뜻하니, 난리를 평정하여 조정에 천거되었음을 의미한다.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증헌납사기거전사인징(贈獻納使起居田舍人澄)〉이라는 시에서 자신을 천자에게 천거해 주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양웅에게 다시 〈하동부〉가 있으니, 오직 불고 불어 하늘 위로 올라가길 기다리네.〔揚雄更有河東賦 唯待吹噓送上天〕”라고 하였다.[주-D004] 권공(權公)이 …… 앞섰으리라 : 권율이 이항복보다 먼저 정충신의 재능을 알아보았다는 말이다. 임진왜란 때 권율이 광주 목사(光州牧使)로서 군대를 일으켜 적을 토벌하였는데, 당시 17세였던 정충신이 적을 정탐하겠다고 자원하여 결국 임무를 완수하였으므로 권율이 크게 기이하게 여겼던 일을 가리킨다. 그 일이 있은 뒤, 선조(宣祖)의 행재소(行在所)에 보고를 올릴 때도 그를 믿고 맡겼다.[주-D005] 주문(朱門)과 …… 이르렀네 : 화려한 명문가의 자손이 신분이 미천한 정충신과 어울려 지낸 것을 의미한다. 주문은 붉은색을 칠한 왕공(王公)이나 귀족(貴族)의 주택 대문을 말하고, 기맥(綺陌)은 번화한 도로나 풍경이 아름다운 교외의 도로를 말한다. 모두 신분이 귀한 대갓집과 도로를 가리킨다. 최장(崔張)의 최는 최명길(崔鳴吉, 1586~1647)을 말하고, 장은 장유(張維, 1587~1638)를 말하는데, 이항복의 권유로 정충신과 교유를 맺었다.[주-D006] 사대부는 …… 기승진(紀僧眞)일세 : 사대부는 남이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는 말이다. 제(齊)나라 무제(武帝) 때의 중서사인(中書舍人) 기승진이 사대부가 되고 싶어 무제에게 청하였는데, 무제가 “이는 내가 마음대로 할 수가 없다. 강효(江斆)에게 가보라.” 하므로, 강효에게 나아갔으나 그가 홀대하자, 승진이 기가 죽어 물러나 무제에게 고하기를, “사대부는 참으로 천자가 명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였다. 《南史 卷36 江斆列傳》[주-D007] 맹약 …… 다투었네 : 맹약 먹물이 바랜다는 것은 공신으로서 맺은 맹약을 어기는 것으로, 인조반정(仁祖反正) 때의 공신 이괄(李适, 1587~1624)이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어 역란을 일으킨 것을 가리킨다. 정충신은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전부대장(前部大將)으로 황주와 서울 안산(鞍山)에서 이괄의 군대를 무찔러,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움으로써 진무 공신(振武功臣) 1등으로 금남군(錦南君)에 봉해졌다.[주-D008] 남한의 일 : 1636년(인조14) 병자호란 때 청나라 군대에 의해 포위된 남한산성에서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측과 강화(講和)를 해서 훗날을 기약해야 한다는 측의 주장이 대립하다가 결국 강화론의 주장대로 항복한 일을 가리킨다.[주-D009] 완성(完城) :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 최명길(崔鳴吉)을 가리킨다.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자겸(子謙), 호는 지천(遲川) 또는 창랑(滄浪)이며,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이항복(李恒福)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05년(선조38)에 생원시에서 장원하고, 그해 증광 문과에 급제하였다. 인조반정에 참여하여 공신이 되었고, 이괄의 난과 정묘호란에서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 이후에는 영의정으로서 각종 제도 개혁에 기여하였으며, 호패법(號牌法)을 시행하였다. 양명학(陽明學)에도 조예가 있었다. 문집으로 《지천집》과 《지천주차(遲川奏箚)》가 있다. 척화 일색의 조정에서 홀로 강화론을 주장하여 당시는 물론 성리학적 명분론을 앞세우는 후세 사대부들의 비난을 받았다.[주-D010] 어장(魚麞)은 …… 띠었네 : 임금으로부터 음식물이 내려왔다는 뜻이다. 어장은 어물과 노루 고기로서 귀한 음식물을 가리킨다.
- 2020-09-16 | NO.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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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간공이 시호를 맞던 날 병으로 가지 못했는데 예랑이 시를 지었다는 말을 듣고서〔靖簡公延謚日以病未赴聞禮郞有韻〕 - 노사집 제1권
- 정간공이 시호를 맞던 날 병으로 가지 못했는데 예랑이 시를 지었다는 말을 듣고서〔靖簡公延謚日以病未赴聞禮郞有韻〕 - 노사집 제1권 사문에서 조서를 맞이함이 놀라운데 / 私門驚見紫泥延길을 앞선 북 징소리 먼 하늘에 은은하네 / 先道鼓鑼隱遠天시호 내림이 전례에 따른 것이라지만 / 節惠縱然因典禮은영은 유난히 증현손까지 후하게 내렸네 / 恩榮偏若篤曾玄사람들 고봉의 미덕을 계승했다 하고 / 人稱克世高峯美일은 우연치 않게 면앙 해와 같았네 / 事不偶同俛仰年삼원의 낭관으로 문장이 특별한데 / 郞位三垣文采別병들어 영현을 뵙지 못함이 부끄럽네 / 漳濱慚負接英賢[주-D001] 정간공(靖簡公) : 정간은 기언정(奇彦鼎, 1716~?)의 시호이다.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중화(仲和), 호는 나와(懶窩)이다. 기대승(奇大升)의 후예이다. 1763년(영조39) 10월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벼슬길에 올랐는데 1771년(영조47)에는 정언이 되었다. 당시 기대승의 후광을 입어 1782년(정조6)에는 당상관으로 특별히 초자(超資)되어 승정원 동부승지가 되었으며, 계속 순탄한 벼슬길을 걸었다. 성격이 청렴하고 강직해서 1786년 대사간에 발탁된 뒤, 세 번이나 연달아 이를 역임하다가 1792년에는 대사헌에 취임하여 관원들의 기강을 바로잡는 일에 진력하였다. 1795년에는 다시 공조 판서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성리학에 심취하여 관계서적을 조석으로 암송하였다.[주-D002] 조서 : 본문의 ‘자니(紫泥)’는 자색의 인니(印泥)이다. 임금의 조서(詔書)는 무도(武都)의 붉은 진흙으로 봉한다.[주-D003] 시호 내림 : 본문의 ‘절혜(節惠)’란 군주가 죽은 신하에게 시호를 내려줌을 이른다. 《예기(禮記)》 〈표기(表記)〉에 “선왕이 시호로써 이름을 높이고 한 가지 선으로써 요약했다.〔先王諡以尊名 節以壹惠〕”라고 하였다. 이는 아름다운 시호를 내려 그 이름을 높이되 여러 가지 선행을 다 들기 어려우므로 가장 큰 것을 요약하였음을 말한다.[주-D004] 고봉(高峯) : 기대승(奇大升, 1527~1572)으로, 본관은 행주(幸州),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이다. 32세에 이황(李滉)의 제자가 되었으며, 이항(李恒)ㆍ김인후(金麟厚) 등 호남의 석유(碩儒)들을 찾아가 토론하는 등 학문에 대한 열정이 컸다. 특히 이황과 12년 동안 서한을 주고받으면서 8년 동안 사단칠정(四端七情)을 주제로 논란을 편 편지는 유명한데, 이것은 유학사상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평가된다. 광주(光州)의 월봉서원(月峰書院)에 배향(配享)되어 있으며, 주요 저서에 《고봉집(高峰集)》ㆍ《주자문록(朱子文錄)》ㆍ《논사록(論思錄)》 등이 있다.[주-D005] 면앙(俛仰) : 송순(宋純, 1493~1583)으로,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수초(遂初), 호는 면앙이다. 1519년(중종14) 별시 문과에 급제하였고, 1547년(명종2) 주문사(奏聞使)로 명나라에 다녀와서 개성부 유수(開城府留守)를 지냈다. 1569년(선조2) 대사헌 등을 거쳐 우참찬(右參贊)에 이르러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갔다가 치사(致仕)했다. 문집에 《면앙집》이 있다.[주-D006] 삼원(三垣) : 동양 천문학에 있어서의 성좌의 세 구획인 태미원(太微垣)ㆍ자미원(紫微垣)ㆍ천시원(天市垣)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예조를 가리킨다.[주-D007] 병들어 : 본문의 ‘장빈(漳濱)’은 병이 들어 몸져누웠다는 뜻의 시어(詩語)이다. 삼국 시대 위(魏)나라 건안 칠자(建安七子)의 한 사람인 유정(劉楨)이 조조(曹操)의 아들인 조비(曹丕)와 절친하였는데, 그가 조비에게 빨리 찾아와 주기를 간청하면서 보낸 시의 내용 중에 “내가 고질병에 심하게 걸려서, 맑은 장수(漳水) 가에 몸져누워 있다.〔余嬰沈痼疾 竄身淸漳濱〕”라는 말이 《문선(文選)》 권23 〈증오관중랑장(贈五官中郞將)〉 4수 중 둘째 시의 첫 구절에 나온다.
- 2020-10-04 | NO.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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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광-등서석음(登瑞石吟)
- 瑞石靑春也自好 서석대의 푸른 봄을 좋아하네雖將松岳舊顔來 송악에 있던 나를 누가 데려왔나一回含淚一回哭 한 번 눈물에 또 한 번 통곡하네 水咽出溪鬱此懷 물과 산골짜기 우울한 회포를 삼키네백제 가요 무등산가(無等山歌)는 가사가 전해오지 않으니, 무등산을 소재로 한 시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여겨지는 작품이다. 광주시 남구 진월동에 가면 620년 전에 터를 잡은 기념비적인 공간이 있다. 하남정씨(河南程氏)의 시조, 정사조(程思祖)의 2세인 정광(程廣)이 은거했고, 묻힌 땅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정사조는 원나라 사람으로 1351년 12월에 고려 공민왕의 왕비인 노국공주를 모시고 개경에 들어온 인물이다. 그는 노국공주를 보필하면서 어사대부(御使大夫, 관리의 감찰 업무를 맡는 관청의 정삼품 벼슬)를 지냈고, 훗날 공신으로 책봉되어 정일품인 삼한삼중대광(三韓三重大匡)으로 추증되었다. 그를 따라온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아들 정도(程度)는 오부부사(五部副使)를 지냈지만 후손이 없어 대가 끊겼다. 둘째 아들 정광은 아버지를 따라온 직후인 135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전중성(殿中省, 왕실 살림을 관장하던 부서) 판사(判事)에 이르렀다.
- 2018-09-06 | NO.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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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금남에 대한 만시 십이 운[挽鄭錦南 十二韻] - 계곡선생집 제29권
- 정금남에 대한 만시 십이 운[挽鄭錦南 十二韻] - 계곡선생집 제29권/ 오언 배율(五言排律) : 장유(張維 1587~1638)서석산(瑞石山)의 수려한 기운 한 곳에 모여 / 瑞石鍾靈秀출중한 영재가 세상에 나왔어라 / 英才出等夷높은 나무 옮겨 앉아 굳센 깃털 다시 닦고 / 遷喬刷勁翮천리마 뒤에 붙어서 앞질러 멀리 치달렸지 / 附驥軼高馳 병서(兵書)의 비의(秘義) 통달한 독보의 경지 / 獨達韜鈴秘단소정한(短小精悍)한 자태라고 모두들 일컬었네 / 皆稱短小姿일찍이 절역에 사신으로 가 / 曾充絶域使멀리 그 이름 알리기도 하였다오 / 贏得遠人知대도가 대궐 문을 기웃거리고 / 大盜闚丹極혜성(彗星)이 궁전에 떨어졌을 때 / 妖星隕玉墀공이 그야말로 흉도를 소탕하여 / 公能掃兇孽한 번 싸워 도성을 수복했어라 / 一戰復京師대려처럼 이어질 빛나는 공훈 / 帶礪勳盟重실력과 인망 어울리는 사령관의 깃발 / 旌旄望實宜국궁진췌(鞠躬盡瘁) 그 은혜에 보답하려다 / 酬恩期盡瘁병에 걸려 홀연히 하직하고 말았구나 / 嬰疾遽長辭적막하도다 청상악(淸商樂) 들리잖고 / 寂寞淸商闋소조하도다 대수가 쓰러졌네 / 蕭條大樹萎흉노를 어느 때나 없앨 수 있을런가 / 匈奴幾時滅가신 이의 혼백을 만인이 사모하네 / 精爽萬人思기련과 나란한 금남의 무덤 / 塚與祁連並그 이름 청사(靑史)에 길이 빛나리 / 名應汗簡垂모르긴 몰라도 기린각(麒麟閣) 위에 / 不知麟閣上금남 같은 공신이 다시 나올까 / 誰繼卽圖詞[주-D001] 정금남(鄭錦南) : 금남은 정충신(鄭忠信)의 봉호(封號)이다.[주-D002] 서석산(瑞石山) : 광주(光州) 무등산(無等山)의 별칭이다.[주-D003] 높은 나무 …… 치달렸지 :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의 사랑을 받으며 그 휘하에서 종군(從軍)하던 중, 그의 장계(狀啓)를 가지고 의주(義州) 행재소(行在所)에 갔다가, 당시 병조 판서이던 이항복(李恒福)으로부터 부자지간과 같은 각별한 은총을 받으며 학문과 무예를 닦아 무과(武科)에 급제한 일을 말한다. 《海東名將傳》 《國朝人物考》 높은 나무 운운은 《시경(詩經)》 소아(小雅) 벌목(伐木)의 “出自幽谷 遷于喬木”이라는 구절에서 나온 것으로 신분 상승을 가리키고, 천리마 운운은 《사기(史記)》 백이열전(伯夷列傳)의 “안연이 학문을 독실하게 하긴 했지만, 공자라는 천리마 꼬리에 붙어서 치달렸기 때문에[附驥尾] 그 행실이 더욱 드러나게 되었다.”는 말에서 연유한 것이다. 한편 두보(杜甫)의 시에 “司空出東夷 童稚刷勁翮”이라는 표현이 보인다. 《杜少陵詩集 卷16 八哀詩 1》[주-D004] 단소정한(短小精悍)한 자태 : 작달막한 체구에 정명(精明)하고 강한(强悍)한 것을 말한다. 《사기(史記)》 유협열전(游俠列傳)에 “곽해(郭解)의 사람됨이 단소정한하였다.”고 하였으며, 전주(前注) 두보의 동시(同詩)에 “短小精悍姿 屹然强寇敵”이라는 표현이 있다.[주-D005] 일찍이 …… 가 : 광해군 13년에 건주(建州)로 들어가 후금(後金)의 정세를 탐지하고 돌아온 일을 말한다.[주-D006] 대도가 …… 기웃거리고 : 인조(仁祖) 2년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말한다.[주-D007] 대려처럼 …… 공훈 : 진무공신(振武功臣) 1등에 책훈(策勳)된 것을 말한다. 대려(帶礪)는 “황하가 허리띠처럼 가늘어지고 태산이 숫돌처럼 닳아 없어질 때까지[黃河如帶 泰山如礪]”라는 말이다. 《史記 高祖功臣侯者年表》[주-D008] 실력과 …… 깃발 : 평안 병사(平安兵使)에 이어 부원수(副元帥)에 임명된 것을 말한다.[주-D009] 청상악(淸商樂) : 고대 한족(漢族)의 민간 음악으로 여기서는 군악(軍樂)을 가리킨다. 참고로 백거이(白居易)의 시에 “畫角三聲刁斗曉 淸商一部管絃秋 他時麟閣圖勳業 更合何人居上頭”라는 구절이 있다. 《白樂天詩集 卷17, 河陽石尙書 破迴鶻 迎貴主 過上黨 射鷺???? 繪畫爲圖 猥蒙見示 稱歎不足 以詩美之》[주-D010] 대수(大樹) : 동한(東漢)의 대장 풍이(馮異)가 늘 겸손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논공행상이 벌어질 때마다 혼자 나무 그늘 아래로 피했기 때문에 “大樹將軍”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하는데, 바로 정충신을 가리킨다. 《東觀漢記 馮異傳》[주-D011] 기련과 …… 무덤 : 금남군의 묘역이 높은 산마루에 자리하고 있다는 말이다. 기련(祁連)은 흉노의 말로 하늘[天]이라는 뜻이다. 금남군의 무덤은 서산군(瑞山郡)의 북쪽 마힐산(摩詰山)에 있다.[주-D012] 기린각(麒麟閣) : 공신의 초상화를 걸어 놓고 기념하는 누각을 말한다.
- 2020-09-12 | NO.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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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전- 극복루에서
- 정도전이 용진사 극복루에 오른 것은 무열대사無說大師가 지은 기문를 읽고 오르고자 했다고 그가 읊은 시에서 이르고 있다.曾讀山人記 일찍이 산인(無說山人)의 기를 읽고서思登克復樓 극복루(克復樓)에 오르리라 생각했다오試尋苔徑細 이끼 낀 오솔길을 더듬어 찾아來入洞門幽 깊숙한 동문(洞門)에 들어를 왔네-삼봉집 제2권
- 2020-04-28 | NO.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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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도전-동정의 시운을 받들어 차운함[奉次東亭詩韻]
- 水流竟到海 물은 흘러도 종당 바다로 가고 雲浮長在山 구름은 떠도 항상 산에 있다오 斯人獨憔悴 이 사람은 홀로 시들어 가며 作客度年年 나그네로 한 해 한 해 보내고 있네賃屋絶低小 빌린 집이 너무도 작고 낮아서朝暮熏炊煙 아침 저녁 더워라 밥 짓는 연기有時散紆鬱 이따금 우울증을 풀어 보자고 步上東山巓 걸어서 동산 마루에 오른다茂珍遙望城 아스라이 무진성 바라보니 中有高人閒 그 가운데에 한가한 고인이 있네 目送飛鳥去 눈으로 나는 새를 보내나니 我思空悠然 내 생각 부질없이 유유하구려-삼봉집 제1권조선의 설계자였던 정도전이 창건 전에 광주에 유배왔다가 1년을 보냈다. 이때도 광주가 무진군(茂珍郡)이었음을 알 수 있다.
- 2018-07-06 | NO.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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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봉현-早發光州(아침 일찍 광주를 출발하다)
- 馬車曉待板橋頭 말수레는 새벽에 판교 끝에서 기다리는데 于役關心孰與謀 행역(行役)을 우려하는 마음 누구와 도모할까暑去還愁尋舊襖 더위가 물러가 옛 두루마기 찾기를 근심하고雨來却怕作洪流 비가 오니 홍수가 될까 두려워하네-운람선생문집(雲藍先生文集)정봉현(鄭鳳鉉)은 구한말 시기 사람으로 노사 기정진의 문인이다.
- 2018-07-10 | NO.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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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봉현-留光州城南(광주성 남쪽에 머물다)
- 今過頓殊舊所知 오늘 지나감에 문득 옛 모습과 다르니 方謀西笑故淹遲 서울로 가려다가 일부러 머물렀다네衰年霜髮三千丈 노쇠한 나이에 백발이 삼천장인데卓午鍾聲十二年 정오의 종소리는 12년 전 그대롤세
- 2018-07-10 | NO.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