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귤정 윤구(橘亭 尹衢, 1495~1549) 행장

귤정 윤구(橘亭 尹衢, 1495~1549) 행장

 

조선 중종과 명종 연간에 살았던 귤정 윤구는 호남 사림의 초창기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문장과 절의, 그리고 학문적 교유로 이름을 날렸으며, 기묘명현 중 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의 생애는 개인의 학문적 성취에 머물지 않고, 가학(家學)과 문풍을 이어 지역적·전국적 차원에서 사림의 도학을 실천한 과정으로 평가된다.

 

* 귤정 윤구의 초상화, 이 글의 내용과 증손자인 고산 윤선도의 초상화를 기반으로 인공지능이 그렸다.


윤구는 1495(연산군 1)에 전남 해남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해남, 자는 형중(亨仲), 호는 귤정(橘亭)이다. 조부는 윤경이며, 부친은 해남윤씨 어초은(漁樵隱) 윤효정(尹孝貞)이다. 모친은 해남정씨로, 집안은 학문과 인품을 중시하는 명문가로 알려져 있었다.

부친인 윤효정은 성리학의 대가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금남 최부(1454~1504)가 해남에 거주하며 학문을 강론하던 시기, 그를 찾아가 글을 배우며 학문적 교유를 쌓았다. 총명하고 준수한 인품을 갖추었던 그는 해남의 거부 정귀영(鄭貴瑛)의 눈에 들어 사위가 되었다. 이 인연으로 해남윤씨 가문이 처음으로 해남 땅에 정착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금남 최부와도 종동서 관계를 맺게 되었다.

윤효정은 해남 연동리, 덕음산 아래 백연동에 터를 잡고 자리를 굳혔다. 윤구는 이곳에서 성장하였다. 형제로는 윤항(尹衖윤행(尹行윤복(尹復윤종(尹從윤후(尹後) 등이 있었는데, 그중 아우 윤복은 명종 대에 정계에 나서 청요직을 역임하며 관찰사까지 올랐다. 특히 윤복은 안동부사로 재직하며 퇴계 이황과 서신을 주고받고, 아들을 퇴계의 문하에 보내 수학하게 하는 등 영남 사림과도 활발히 교유하였다.

윤구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학문에 전념하였다. 평택임씨 임휴(林畦)의 딸과 혼인하여 두 아들을 두었다. 장남 윤홍중은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예조 정랑을 지냈으며, 차남 윤의중은 역시 장원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 판서와 의정부 참찬을 역임했다. 가문은 이후로도 인재를 끊임없이 배출하여, 맏손자 윤유기가 과거에 급제해 관찰사가 되었고, 증손자 윤선도는 조선 남인의 거두로 문과에 급제해 예조 참의를 지냈다. 이후 공재 윤두서, 낙서 윤덕희에 이르기까지 문학과 예술의 명가를 이루었다.

윤구는 중종 8(1513)에 사마시 양과에 합격했고, 중종 11(1516) 식년문과 을과에서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어 권지승문원부정자에 제수되며 본격적인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 승정원 주서에 임명되었고, 중종 13(1518)에는 홍문관 수찬과 지제교, 경연검토관, 춘추관 기사관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그는 호당에 들어 사가독서를 하며 이황·유희춘과 함께 학문을 닦았다. 또한 조광조·최산두·박상·김인후·임억령·양팽손·윤개·권운 등과 교유하여 사림파의 주요 인물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성리대전을 강의할 학자 26명을 뽑을 때, 그 명단에 윤구가 포함되었을 정도로 그의 학문적 역량은 당대에 높이 평가되었다.

중종 14(1519) 기묘사화가 일어났을 때, 윤구는 승정원 주서로 재직 중이었다. 사림과 훈구의 갈등 속에서 오해를 받아 예조좌랑 시절 삭직되었고, 이어 영암으로 유배되었다. 정치적 격변의 소용돌이 속에서 억울하게 낙인찍힌 그는 한동안 고향에서 은거하며 학문과 문장에 몰두했다.

그러나 그의 학문과 인품은 여전히 높이 평가되었다. 중종 33(1538) 서용되어 전라도도사로 복귀하였고, 중종 36(1541)에는 순창군수로 부임하였다. 그는 송사를 지체함이 없고 백성을 어루만지는 덕정을 베풀어 칭송을 받았다. 명종 즉위년(1545) 홍문관 부교리로 임명되었으나, 이내 사헌부의 건의로 체직되어 다시 좌절을 겪었다.

1549년 정월, 모친상을 치른 후 병세가 악화되어 별세하였다. 향년 55세였다. 묘소는 해남군 북일면 금당리에 있으며, 후일 해남의 해촌서원에 최부·임억령·유희춘·윤선도·박백응과 함께 배향되었다. 사후에는 이조판서로 증직되었다.

그는 고향 해남에 귤나무를 심고 귤밭 한가운데 정자를 지었다. 여기서 호를 귤정(橘亭)’이라 정하고, 고향의 벗들과 함께 술을 나누고 시를 읊으며 여생을 보냈다. 그의 호에는 고향과 자연, 그리고 은일적 학자의 기품이 깃들어 있다.

윤구는 문장과 절행으로 이름 높았으며, 광양의 최산두, 해남의 류성춘과 함께 호남삼걸로 칭송받았다. 제자로는 풍암 문위세와 사매당 이응종이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며 스승의 학문과 정신을 계승하였다.

그의 문장은 중국에도 전해졌다. 대표작 의제발상론(義帝發喪論)은 중국 과거제의 지방 관문 시험인 향시록(鄕試錄)에 실렸다고 한다. 참판 나세찬(羅世纘)이 북경에 가서 보았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한 학자의 문장이 국경을 넘어선 드문 사례로, 귤정의 문학적 위상을 보여준다.

유고집 귤정유고에는 시·····묘갈명··잡저 등 33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 일부는 연방집1에 목활자본으로 남아 있으며, 2005년에는 국역본이 간행되어 오늘날까지 전한다. 그의 문장은 수신과 절의를 강조하며, 권력자의 오만과 불의를 비판하는 정치관을 드러낸다.

윤구의 교유는 매우 폭넓었다. 그는 하서 김인후, 눌재 박상, 신광한, 심언광, 임억령 등 당대의 문인들과 시문을 주고받았다. 김인후의 上尹員外()橘亭와 최산두가 보낸 시 등이 전한다. 또한 선조 대에 이발의 증조부 묘비 신도비명을 지었는데, 이산해가 글씨를 쓰고 이이가 지문을 남긴 사실은 그의 명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졌음을 방증한다.

윤영표가 엮은 필사본으로 海南 尹氏文獻이라고 하는 당악문헌, 해남 윤씨 어초은공파의 주요인물들의 행적과 그들이 편찬한 글을 수록한 당악유사, 그의 부친 윤효정과 윤구, 윤복이 글이 있는 어초은유고, 해남삼강록사우의 오현사제실록, ‘윤구전이 수록된 기묘록보유, 해남 윤씨 가문에서 200년 동안 각종 서간과 서찰 등을 모은 영모첩등이 있고 또 하서 김인후의 유고집인 하서집, 눌재 박상의 유고집인 눌재집, 신광한의 유고집인 기재집, 김정국의 유고집인 사재집, 심언광의 유고집인 어촌집, 정사룡의 시문집인 호음잡고, 임억령의 문집인 석천집등 외부 문헌에도 귤정에게 보낸 시문, 귤정이 직접 지은 글, 귤정에 관한 만사 등 관련 기록이 추가로 상당수 확인되었다.

윤구의 학문은 가학 전통과 맞닿아 있었다. 해남윤씨 가문은 소학을 중시하는 전통을 지녔고, 그는 이를 토대로 덕과 절의를 실천하였다. 유배와 좌절 속에서도 절개를 지키며 문학으로 도학적 신념을 펼쳤다. 이는 이후 고산 윤선도에 이르는 문풍 형성에 결정적 토대를 마련하였다.

선조 때 동인(東人)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인물인 이발(李潑)이 그 증조부 이달선(李達善)의 묘비(墓碑)를 세울 때 윤구가 그 신도비명을 지었고, 영의정 이산해(李山海)가 그 글씨를 썼다. 또 후면은 이이(李珥)가 지문(識文)을 짓고 친필로 글씨를 써주었다.(송자대전(宋子大全)16) 윤구는 비록 전라도 해남의 바닷가에 있었지만, 이발이산해이이와 같은 당대의 거물들과 교유하였다. 또 이발처럼 동인서인(西人) 양쪽을 드나들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교유하던 사람의 비문을 해남의 윤구에게 부탁한 것을 보면, 윤구의 문명이 호남 지방뿐만 아니라, 전국에 널리 알려진 사실을 알 수 있다.

균형 잡힌 학문과 강직한 절의, 그리고 교유의 폭넓음으로 윤구는 당대 사림 사회의 정신을 대표했다. 그는 호남 학문과 문풍의 뿌리를 굳건히 했고, 가문을 통해 후대에까지 학문과 예술적 명맥을 이어갔다. 그의 삶은 바닷가 해남에 머물렀으나, 그 문명은 조정과 중국에까지 미쳤다.

그는 고향 해남에다 귤을 심고 귤밭 속에 정자를 지은 후에 스스로 호를 귤정(橘亭)이라고 불렀다. 그가 남긴 이름 귤정은 단순한 호가 아니라, 절개와 은일의 정신을 담은 학자의 상징으로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그리고 고향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면서 여생을 보냈다.

 

연표

1495(연산군 1) 전남 해남 출생

1510년대 초반 평택임씨와 혼인

1513(중종 8) 사마시 합격

1516(중종 11) 문과 급제, 권지승문원부정자 제수

1517(중종 12) 승정원 주서

1518(중종 13) 홍문관 수찬·지제교·경연검토관·춘추관기사관 등 역임

1519(중종 14) 기묘사화 연루, 삭직·영암 유배

1533(중종 28) 직첩 회복

1538(중종 33) 전라도도사

1541(중종 36) 순창군수, 덕정으로 칭송

1545(명종 즉위년) 홍문관 부교리, 곧 체직

1549(명종 4) 모친상 후 병세 악화, 별세. 묘소는 해남 북일면 금당리.

해촌서원에 배향되었고, 이조판서로 증직.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광주·전남향토사연구협의회(2003) 광주 향토사 연구 (사)광주·전남향토사연구협의회
광주광역시 동구청(2021) 동구의 인물2 광주광역시 동구청
광주시남구역사문화인물간행위원회(2015) 역사를 배우며 문화에 노닐다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Ⅰ 인물과 문헌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01) 광주남구향토자료 모음집Ⅱ 문화유적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14) 광주 남구 마을(동)지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14) 광주 남구 민속지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남구문화원(2021) 양림 인물 광주남구문화원
광주동구문화원(2014) 광주광역시 동구 마을문화총서 Ⅰ 광주동구문화원
광주문화관광탐험대(2011~16) 문화관광탐험대의 광주견문록Ⅰ~Ⅵ 누리집(2023.2
광주문화원연합회(2004) 광주의 다리 광주문화원연합회
광주문화원연합회(2020) 광주학 문헌과 현장이야기 광주문화원연합회
광주문화재단(2021) 근현대 광주 사람들 광주문화재단
광주북구문화원(2004) 북구의 문화유산 광주북구문화원
광주서구문화원(2014) 서구 마을이야기 광주서구문화원
광주시립민속박물관 옛 지도로 본 광주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시립민속박물관(2004) 국역 光州邑誌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시립민속박물관(2013) 영산강의 나루터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시립민속박물관(2018) 경양방죽과 태봉산 광주시립민속박물관
광주역사민속박물관(2020) 1896광주여행기 광주역사민속박물관
광주역사민속박물관(2021) 광주천 광주역사민속박물관
김경수(2005) 광주의 땅 이야기 향지사
김대현.정인서(2018) 광주금석문, 아름다운 이야기 광주문화원연합회
김정호(2014) 광주산책(상,하) 광주문화재단
김정호(2017) 100년 전 광주 향토지명 광주문화원연합회
김학휘(2013) 황룡강, 어등의맥 16집. 광산문화원
김학휘(2014) 광산의 노거수, 어등의맥 17집. 광산문화원
김학휘(2015) 광산나들이, 어등의맥 18집. 광산문화원
김학휘(2016) 설화와 전설, 어등골문화 21호. 광산문화원
김학휘(2018) 광산인물사, 어등의맥 21집. 광산문화원
김학휘(2019) 마을사이야기, 어등골문화. 광산문화원
남성숙(2017) 전라도 천년의 얼굴 광주매일신문
노성태(2016) 광주의 기억을 걷다 도서출판 살림터
노성테.신봉수(2014) 사진과 인물로 보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광주문화원연합회
박규상(2009) 광주연극사 문학들
박선홍(2015) 광주 1백년 광주문화재단
정인서(2016) 산 좋고 물 맑으니-광주의 정자 광주문화원연합회
정인서 외(2015) 광주의 옛길과 새길 시민의 소리
정인서(2011) 양림동 근대문화유산의 표정 대동문화재단
정인서(2011) 광주문화재이야기 대동문화재단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2016) 광주 역사문화 자원 100(上,下)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천득염(2006) 광주건축100년 전남대학교출판부
한국학호남진흥원(2022) 광주향약 1,2,3. 한국학호남진흥원
  • 광주광역시
  • 한국학호남진흥원
  • 사이버광주읍성
  • 광주서구청
  • 광주동구청
  • 광주남구청
  • 광주북구청
  • 광주광산구청
  • 전남대학교
  • 조선대학교
  • 호남대학교
  • 광주대학교
  • 광주여자대학교
  • 남부대학교
  • 송원대학교
  • 동신대학교
  • 문화체육관광부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 광주문화예술회관
  • 광주비엔날레
  • 광주시립미술관
  • 광주문화재단
  • 광주국립박물관
  • 광주시립민속박물관
  • 국민권익위원회
  • 국세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