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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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양산숙(1561~1592)

양산숙梁山璹의 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회원會元. 기묘명현 학포 양팽손梁彭孫의 손자이며, 대사성을 지낸 양응정梁應鼎의 셋째 아들이다. 광산구 어룡동 박메마을 출신으로 성혼의 문하에서 수업하였으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경서에 전심하였으며 천문ㆍ지리ㆍ병학에도 뛰어났다.

양산숙이 다섯살 난 어느날 아버지 송천공이 그 손목을 잡고 들에 나가 논밭을 살피다가 문득 아들을 시험해 보기 위해 질문했다.

밭을 갈고 있는 소와 말을 가리키며 산숙아 너는 저 소와 말 가운데 하나를 가지라면 어느 것을 갖겠느냐?

이 물음에 어린 산숙의 입에서 거침없이 다음과 같은 대답이 나왔다. 말은 남자의 보배입니다. 천하를 마음대로 돌아 다닐 라면 말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저는 말을 갖겠습니다.

음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다. 그 마음 잊지 않도록 하여라.

산숙은 나이 열 살이 되기 전에 벌써 학문이 깊어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열여섯 살 때 산숙은 아버지가 의주목사(義州牧使)로 부임함에 따라 그곳으로 갔다. 만원(萬院)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그 당시의 대학지인 미암 유희춘(眉岩 柳希春)을 만나게 되었다.

유희춘은 산숙의 기상이 늠름하고 행동이 진중한 것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 아이는 마음이 항상 평온하고 선(善)과 정의(正義)를 좋아하겠다고. 16세 때 형 산룡(山龍)과 병법(兵法)을 논의 하다가 아버지로 부터 진도(陣圖:진터의 그림)를 받아들고 연구한 끝에 합변의 원리(合變의 原理:합하면 변화하는 법칙)등을 익히기도 하였다.

그 뒤에 우계 성혼(牛溪成渾)의 문하에서 학문을 닦았다. 스승 성혼은 양산숙의 영득함에 탄복하여 항상 나이 어린 그에게 유지지사(有志之士)라 존칭을 했다고 한다 .큰 뜻을 품은 선비라는 뜻이다. 그는 성혼문하에서 공부를 마친 뒤 반계(蟠溪)라는 곳에 정사(精舍:학문을 닦기 위해 지은 집)를 짓고 수양에 힘썼다.

그는 1555년 왜구(倭寇:일본해적)가 고흥 손죽도(損竹島)를 침범하자 만호(萬戶) 이대원이 이를 맞아 싸우다 전사했다는 애기를 듣고 슬픔에 잠겨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가 26세 되던 해 가을 대마도주(對馬島主) 다찌바나 야스히로(橋康廣)라는 자가 왜의 사신으로 건너와 강화조약(講和條約)을 맺기를 청해왔다. 양산숙은 남원에 사는 양대박(梁大樸, 義兵장으로 고경명과 같이 금산에서 순절)을 찾아가서 같이 일본사신(日本使臣)의 거동을 살필 것을 약속하고 두 사람은 국왕의 사신(使臣)처럼 가장하고 영남(嶺南)으로 향하였다.

실은 다찌바나란 자는 강화조약을 맺으로 온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방위태세(防衛態勢)를 살피러온 첩자였다. 그자는 우리나라에 상륙하여 동래부사(東萊府使)가 술대접하는 자리에서 일부러 술잔을 떨어뜨려 깨버리는 무례를 저질렀다.

이 말을 전해들은 양산숙과 양대박은 다찌바나가 일본첩자 라는 확신을 가졌다. 얼마 후 양산숙과 다찌바나는 동래부사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 석상에서 다찌바나가 대뜸 시비를 걸어왔다. 물론 통역을 통해서였다.


당신이 찬 칼을 왜 그리 짧으냐? 즉 우리나라의 무방비를 비웃은 것이다. 그대가 가진 창은 너무 길어서 그대의 운신을 그릇칠 것이다.


그러자 다찌바나는 황급히 말에서 내려 나부시 절을 하고 상주(尙州)까지 동행해주기를 간청했다. 다찌바나는 상주에 도착하자 목사 송응동(宋應洞)이 잔치를 베풀고 기생들의 춤이 시작되었는데 다찌바나는 송목사의 늙은 모습을 보고 통역을 시켜 나는 여러 해 동안 싸움터에서 살아서 이렇게 수염과 머리털이 희게 되었소이다만 사또께서는 늘 기생속에 파묻혀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지내셨을 것인데 왜 그렇게 허-였습니까? 하고 비꼬았다.

자리를 같이한 양산숙은 그 말을 듣고 울화통이 터졌지만 상대가 한나라의 사신이니 만큼 꾹 참을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것이 우리의 방비가 없어서 당하는 수모라 생각하니 절분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그는 고향 광산으로 돌아와서 더욱 무예를 닦고 학문에도 힘을 썼다.

1592(선조25년)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산숙은 고향인 박메마을로 와서 형 산룡(山龍) 동생 산축(山軸)과 더불어 목이 메이도록 통곡을 하며 어머니 죽산박씨(竹山朴氏)앞에 자기의 소신을 아뢰었다. 어머님 저희들 삼형제는 나라가 위태로운 이때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치기를 뜻을 모았습니다. 용서를 바랍니다.

여느 어머니 같으면 그 무슨 당찮은 소리냐-. 나라를 지키는 군사들이 있는데. 하고 펄쩍 뛸 것이다. 그러나 박씨부인은 그렇지가 않았다. 오히려 그 뜻을 가상히 여기고 타이르듯 말했다. 우리 집안은 세록(世祿)이 있는 가문으로 나라의 은덕을 많이 입은 가문의 자제로서 마땅히 그래야 하느니라- 돌아가신 아버님께서도 늘 남쪽에 왜침의 징후가 있으니 그때가 오면 나라를 지키는데 신명을 바쳐야 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어머님 저희들의 뜻을 헤아려 주셔서 감사하옵니다.

이렇게 3형제는 거의(擧義)하기로 결심을 했다. 나주에서 창의하여, 김천일을 맹주로 삼고 양산숙은 부장이 되었다. 그 뒤 김천일과 함께 북상하여 수원에 출진하여 활약했다. 강화도로 이진할 무렵, 곽현과 함께 주장의 밀서를 가지고 해로를 통해 의주 행궁行宮(임시 궁궐)에 도착하여 선조에게 호남ㆍ영남의 정세와 창의활동을 자세히 보고하였다. 이 공으로 공조좌랑에 제수되었다.

돌아올 때 호남ㆍ영남에 보내는 교서를 받아 남도에 조명을 하달하였다. 적이 남도로 퇴각하자 김천일과 함께 남하하여 진주성에 들어갔으나 침공하려는 왜의 대군 앞에 군사가 부족하자 명나라 장군 유정의 군진에 가서 군원을 강청하였으나 실패하였다. 할 수 없이 단신으로 입성하여 적과 끝까지 항전하다가 김천일과 함께 남강에 투신 자결하였다.

동서분당 때 서인으로 조헌(趙憲)과 함께 이이(李珥)·성혼을 지지하며 동인 이산해(李山海)·유성룡(柳成龍)을 배격하는 소를 올렸다. 사후에는 좌승지에 추증되었으며, 시호는 충민이다. 나주의 정렬사旌烈祠, 진주의 창렬사彰烈祠에 제향되었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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