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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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평(柳玶 : 1577~1645)


지난해도 봄바람 삼월 봄일 때  /한번 둘러 서로 봐 말로는 그려
이제처럼 또 바래 남쪽은 멀어 /예대로 수양버들 푸릇푸릇 나
去歲春風三月時 一回相見語相思 如今又向南天遠 依舊垂楊

사명대사(四溟大師)가 송암(松庵) 유평(柳玶)과 헤어지며 이 시를 읊었다.

유평(柳玶)은 1577년 설강 유사의 여섯째 아들인 아버지 유경진과 금호 임형수의 딸 평택임씨 사이에서 광주시 광산구 본덕동 창교에서 태어났다. 자는 화보(和甫)이고 호는 송암(松庵)이며, 서산인(瑞山人)으로 을사명신(乙巳名臣)인 광주 호가정 주인 설강(雪江) 유사(柳泗)의 손자이며, 금호(錦湖) 임형수(林亨秀)의 외손이다. 재주가 뛰어나고 체구가 건장하였으며, 용력이 남달라 충장공(忠壯公) 김덕령(金德齡)과 이름이 나란히 하였다. 사계 김장생 문하에서 수업을 받았으며 거인장덕(鋸人長德)이라며 칭하였다.

그는 정유재란 때에는 선생을 따라서 황주(黃州)와 봉산(鳳山) 사이에서 피난하여 3년 동안 머물다가 돌아왔다. 선생이 일찍이 효우(孝友)가 독실하다고 허여 하였는데, 이에 대해서 헐뜯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1624년(인조 2) 갑자식년사마시(甲子式年司馬試)에 진사 3등으로 합격하여 광해군 때에는 폐모론(廢母論)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서 참봉(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사양하고 마침내 과거 공부를 폐한 채 학문을 강마하였는데, 이때 그의 스승 김장생은 이 편지를 보내어 장려하면서 ‘그대의 높은 의기는 하늘에까지 닿았다.’고 하였다.

이때 조선 중기 유학자요 같이 김장생에게 동문수학했으며 의병을 일으키며 유유상종했던  영광출신 성재(省齋) 신응순(辛應純 1572 선조 5∼1636 인조 14)에 이때의 심정을 이렇게 시로 남긴다.

인간세상 허망한 것 멋대로 되라지!/툭 트인 회포는 구주(九州 중국 땅)가 좁다.
초당(草堂)이 높이 누워 이따금 잠을 깨고/양보음(梁甫吟) 읊조리니 귀밑에 가을이 왔구나.

천문(天門)에서 사책(射策 과거시험)하는데 나는 뜻이 없고 /종사(宗社)사 넘어짐을 그 누가 붙잡을꼬?
자유롭고 노는 것이 일월(日月 생명)을 늦추는 것/나라의 안위(安危)는 대신(大臣)들의 근심거리라네

여기서 양보음(梁甫吟)은 제갈량(諸葛亮)이 남양 융중(南陽隆中)에 은거할 때 부르던 노래 이름으로 제(齊)의 태산(太山) 기슭에 있는 양보산(梁甫山) 지방을 노래한 것이다. 어진 사람이 세상에서 박해받음을 탄식하고 제의 안평중(晏平仲)이 모략으로 세 선비를 죽인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 고사다.

두보(杜甫)는 등루(登樓)라는 시에서 "가련타, 후주도 사당에 모셔졌구나. 해 저무는 날 애오라지 양보음을 읊조리네.可憐後主還祀廟 日暮聊爲梁父吟"하며 읊었다.

이후 인조반정을 일으킨 뒤에 사마시(司馬試)에 급제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 1587~1624)이 반란을 일으키자 의곡(義穀)을 끌어 모았다. 정묘년의 난리 때 선생이 공을 뽑아 양향유사(糧餉有司)로 삼자, 그는 의병과 군량을 모집하여 달려와서 동궁을 호위하는 등 공을 세웠다.그는 슬하에 유창익(柳昌翊), 유명익(柳明翊), 유소익(柳昭翊), 유형익(柳亨翊) 4형제를 두었다. 그리고 가훈으로 이렇게 훈계했다.

구세(九世)를 집에서 같이 살았던 장공예(張公藝)는 바로 나의 스승이다.
다만 서로가 화목하게 지내야지 어째서 의(意) 상하고 살아야 하나.

일을 당하면 인(仁)자를 생각하고 심점을 논할 때는 사(私)를 먼저 끊으라
시를 쓰는 것이 진실로 뜻이 있으니 그 누가가 나의 슬픔을 알리요.

시에서 장공예(張公藝)는 당(唐) 나라 수장(壽張) 사람으로 9세(世)의 친족을 한집안에서 거느리며 생활하였다. 이에 당 황제 고종(高宗)이 직접 그 집을 방문하여 그 비결을 물었는데, 그가 지필(紙筆)을 청한 뒤 단지 참을 인(忍) 자만 백여 차례 쓰자 고종이 눈물을 흘리며 비단을 하사하였다 한다. 舊唐書 卷188. 그 뜻은 백 번 참는 것이 한집에서 대가족이 다투지 않고 살아가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병자호란이라는  난리를 맞는다. 전남지역에서 옥과현감 이흥순(李興淳)과 대동찰방 이기순(李起淳) 형제는 순창현감 최온(崔殡)· 전한림(前翰林)  양만용(梁漫容)· 전 찰방 유즙(柳楫) 등과 더불어 '거의격문(擧義檄文)'을 돌려 의병을 모집, 여산(礪山)에서 집결하여 국란을 구제할 것을 외쳤다.

유평(柳坪)은 두 아들 유명익(柳明翊), 유세익(柳世翊)을 거느리고 탁양루(拆楊樓)에서 의병을 거의한다. 당시의 관군들의 한심한 꼴을 고발하는 시를 이렇게  남긴다.

난리의 소식이 진실을 알기 어려워/몇 사람 의를 위해 생명을 버렸던가.
무너진 관군들 앞 다투어 병갑을 버리고/지모있다는 장수들 목숨보전 급급했다.
亂離消息若難眞 仗義忘生問幾人 遺散官軍爭棄甲 智謀諸將競全身

남한산 바라보면 창자가 찢어진 듯/북진을 위한 심정 수건에 눈물 젖는다.
일편의 외로운 성일발 마냥 위태로우니/진평같은 비계를 뉘라서 써보리오
望南漢日膓如裂 拱北辰時淚滿巾 一片孤城危一髮 陣平秘計竟誰陣


여기서 진평(陳平: B.C. ? ~ 179)은 전한(前漢)의 건국 공신이며 정치가로 유방 고조가 흉노에 포위되었을 때 벗어나게 했던 인물이다.

유평은  나주의 김선(金璇)·나해봉(羅海鳳) 등과 더불어 1월 20일 여산에서 모였으며 당시 대사간(大司諫) 으로 있던 정홍명(鄭弘溟)이 소모사(召募使)로 공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정홍명을 대장으로 삼고 칼을 들고서 적진으로 달려가다가 청주에 이르러 화의가 성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고서 되돌아갔다. 이때 유즙(柳楫)에게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읊는다.

서울의 소식은 멀어서 알 수 없으나 /산상의 외로운 성이 포위 속에 있다고
쇄하고 병든몸이 말을 만지며 슬퍼하노니/ 그 누가 이 시대를 구제하는 공을 세울꼬

그러고는 마침내 세상일을 사절한 채 산자락에 집을 짓고는 ‘대명천지 숭정일월(大明天地崇禎日月)’이라는 8자를 써 붙여서 충분(忠憤)의 뜻을 붙였다. 익산군수를 제수받기도 했는데, 제봉 고경명이 죽자(1592), 이듬해에는 권율의 막하로 가서 행주싸움에 참여했던 사람 탄음(灘陰) 고부민(高傅敏, 1577-1642)과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친했다. 그가 보내온 시는

덧없는 인생 뒤숭숭하고 갈림길도 많아 / 우리의 만남 헤아려 보면 지금으로 몇번인가?
서로의 입장과 심정 멀지 않음을 아는데 /소식 한자 받기가 어찌 수후의 구슬, 화씨(천하의 보배)의 구슬 얻기처럼 어려운가?
浮生擾擾路岐多 屈指交遊今幾何 兩地心情知不隔 書來奚 得隋和

조정에서 천거하여 태릉 참봉(泰陵參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사림(士林)들은 대명처사(大明處士)라고 불렀으며, 경렬사(景烈祠)에 향사되었다. 그는 어느날 넋두리 하며 읊은 시로 마무리한다.

이(利)의 이름 돌아오면 세상이 내게 오고/공업(功業)이 이룩되면 유명(有名)하고 능(能)하다고 하니
공(功)과 이(利)가 다투느라 끊날 날이 없이/세상의 사람들은 자기만 잘나려 하는구나.
利名來處世歸我功業成時莫顯能爭功爭利無時己人世人皆好己勝

그는 어느날 광주읍성에 절양루에 올랐다. 공북루(拱北樓)의 옛 이름이다. 1669년 부임한 목사 오두인(吳斗寅)이 절양루를 공북으로 고쳤으며, 1875년 목사 신석유(申錫游)가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절양(折楊)’은 버드나무를 꺾는다는 뜻으로 이별을 의미하는데, 주로 관리들이 이임하며 이별하는 장소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 같은 이름이 붙여진 듯하다.

유평은 ‘병자(1636)년에 의청을 광주의 절양루에 설치했다(丙子說募義廳于 光州折楊樓)’는 통문(通文)을 여러 고을에 보냈다. 청나라가 조선을 침략해 병자호란(丙子胡亂)이 발발하자 병사와 양식을 모아 함께 국난을 이겨내자고 독촉한 글이다.

아! 우리 유림으로 뜻을 가다듬고 학문을 한 사람치고 그 누가 부모님께 효하고 임금께 충하는 의(義)를 강습하지 않을 분이 있겠는가? 어버이께 효하면서 임금께 불충한 사람은 없고 임금께 충하면서 어버이께 불효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충신은 반드시 효자의 문(門)에서 구한다는 것이니 어버이를 위하여 원수를 갚는 것은 사람(人子)의 도리요, 임금을 위하여 원수를 갚는 것은 신하(臣子)의 직분입니다. 이것은 만고에 변할 수 없는 통의(通義)인데 이제 우리 군부(君父)께서 포위의 속에 계시니 신하(臣子)로서 통분을 어떻다고 하리요. 하물며 이 교서(敎書)가 포위(包圍) 속에서 나왔는데 모두가 애통하신 말씀이어서 받들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목이 메어 통곡을 하게 합니다. 즉시 통문을 돌리노니 원컨대 열읍(列邑)의 모든 군자(君子)들은 행여 지체하거나 관망하지 말고 각기 분발하여 소매를 떨치고 일어나 동지들을 규합하여 병량(兵粮)을 도와주어 군부(君父)의 급함을 구함이 어떠합니까? 이는 다만 국가를 저버리지 않는 대의일 뿐 아니라 장부가 공명을 세울 수도 있는 기회입니다. 통문이 도달하면 시각을 지체하지 말고 경내에 돌리고 알려서 힘을 합하고 서로 붙잡아 같이 국난을 건지도록 부디 바라는 바입니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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