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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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재 박상朴祥(1474~1530)

박상朴祥(1474~1530)은 진사 박지흥의 차남이며 훈구파와 사림파가 대립하던 조선 중종 때의 관료로 사림 운동에 전력한 학자이자 정치가였으며 호남 사림의 대부이다. 본관이 충주이며 자는 창세昌世, 호는 눌재訥齋이다. 눌재는 1474(성종5년)년에 광주 방하동 본가에서 성균관 진사였던 부친 지흥과 모친 계성서씨 사이에서 삼 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박씨 집안은 대대로 송경에서 살아왔는데 조고판서공 때 호서의 회덕현으로 이주하였으며 부친인 찬성공이 다시 부인서씨의 고향인 서창 방하동 봉황산 아래로 옮겨 터를 잡았다. 눌재의 아버지가 호남으로 내려오게 된 이유는 부인의 고향이기도 했지만 세조의 왕위 찬탈과 관련하여 벼슬길을 포기한 것으로 눌재의 집안이 절의파 집안이었음을 알 수 있다.

눌재는 태어날 때부터 생김새가 단정하고 얼굴빛이 영명하여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으며 학문적인 집안 분위기에서 자라났다. 눌재의 첫번 째 스승은 아버지인 찬성공이었는데 부친은 그가 1488년 15세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으며 이후 눌재의 백형인 하촌 박정이 눌재의 학문을 담당했다. 학업에 정진하는 동안 눌재의 기억력은 비상하였으며 부친과 백형의 죽음에서 받은 충격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명예와 책임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통감하여 더욱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리하여 경술에 널리 통하였고 문사에도 큰 진보가 있었다. 1496년 진사시를 지냈고 1501년 28세에 정시 을과에 급제하여 출사하였는데 첫 관직으로 교서관 정자를 제수받았고 이듬해 승문원 교검과 시강원 사서를 제수 받았으며 1년 뒤에 병조좌랑을 제수 받았다. 눌재는 관직 생활을 시작하면서 학문으로 닦아왔던 의리정신을 실제 정치현장에서 구현하고자 하였다. 그의 의리 정신이 구체적으로 나타난 사건은 전라도사로 부임하였을 때에 일으킨 김소부리(우부리) 장살 사건이다.

훈구 공신들의 전횡을 지속적으로 고발해 권신들의 미움을 사 관직 대부분을 외직으로 나가있었으며, 가는 곳마다 사림 후배들을 챙겼다. 특히 기묘사화 이후 살아남은 조광조의 문하생들을 거둬 사림 운동의 맥을 이어줬다. 단경왕후 복위에 관한 상소로도 유명한데 이에 대해 생전의 조광조가 '강상의 법도를 세웠다'라고 칭찬한 바 있다. 평소 그의 학식과 인품에 대해 후배였던 퇴계 이황이 하늘이 내린 완인完人(행동과 인품에 흠이 없는 사람)이라 평하기도 했다.

성정은 참으로 곧았다.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하고 정의를 세우고자 노력하였으며 가난한 백성을 위해 아낌없는 선정을 행했다. 전라도사 시절 나주의 우부리가 연산군의 후궁으로 있는 딸의 권세를 믿고 횡포를 자행하자 그의 죄상을 물어 곤장으로 때려죽였다. 그 성품이 얼마나 곧고 굳센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세른 세 살 때인 1506년 사간원 헌납이 되어 사헌부와 더불어 임금의 내척과 외척 등의 성급한 발탁을 간언하는 등 간관으로서의 직책을 다하였다. 당시 중종의 노여움을 사서 하옥되었으나, 태학생과 재신들의 간곡한 상소로 풀려나왔다.

그러나 1년 동안 논쟁이 그치지 않는 가운데 인사행정을 담당하던 이조와 병조 등의 전관에게 미움을 사서 한산군수로 좌천되기에 이르렀다. 사헌부가 대간을 외직에 보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논핵하여 곧 종묘서령, 소격서령으로 옮겼으나, 부모 봉양을 위해 고향이 가까운 전북 군산의 임피현령으로 나아갔다. 임피현령으로 3년을 지내다가 사직하고 향리로 돌아가 독서로 소일했다.

서른여덟 살 되던 1511년 홍문관 수찬을 역임하고 담양부사가 되었다. 마흔 두 살인 1515년 봄 또 다시 필화에 얽혔다. 장경왕후章敬王后 상빈上賓 문제로 바른 말하는 자가 없었는데 순창군수 충암 김정, 무안현감 유옥과 함께 전 왕후 신씨愼氏를 복위시키려 바른말을 하였다.

조광조와 교유했던 박상은 신비복위상소를 올린 후 남평 오림역烏林譯으로 유배를 가자 조광조가 박상을 옹호하며 유배를 풀어줄 것을 주장한다. 조광조는 1519년에 능성(현재 화순 능주)으로 유배를 가며 광주를 거치자 박상은 광주 읍성 남문 밖 10리에 있는 분수원에서 그를 만나 면회하였다.

박상은 모재 김안국과 함께 학문을 토론하였고, 광산 출신의 하서 김인후와는 교분이 깊었다. 임억령, 송순, 정만종 등이 박상의 문하에서는 직접 사사했다. 임억령과 깊은 교유를 한 사람이 고경명이고, 송순의 문하에서 정철이 배출되었다. 이들은 호남지방에 성리학을 보급하고 호남사림을 형성.발전한 대표적 인물이다. 박상은 호남사림의 원조인 셈이다.

1516년에 대한발로 인해 석방되어 향리에 있다가 다시 부름을 받아 의빈부도사, 순천부사가 되었으나 모친상으로 곧 사직했다. 1519년 기묘사화 후 중앙부처에 염증을 느껴 상주목사, 충주목사를 역임하였다. 1526년 일종의 승진시험인 중시에 장원급제했지만 훈구파에 밀려 승진하지 못하고 나주목사로 선정을 베풀다 벼슬에서 물러나 향리에 머물다 15305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시호를 문간공으로 하였으며 광주의 월봉, 순창의 화산, 담양의 구암서원에 제향되었다.

여러 차례의 혹독한 변고를 당하였어도 위엄이 사그러들지 않았으니 퇴계 이황은 그의 고상한 기품과 탁월한 식견을 칭찬하여 행동과 인품에 흠이 없다며 하늘이 내린 완인이라 하였다. 청백리로 추천받았고 문장가로 이름이 높아 성신 신광한, 황정욱과 더불어 서거정 이래로 사가로 높이 칭송되었다. 정조의 시문과 논음, 교지 등을 모아 만든 홍재전서에서 조선 5백년의 으뜸가는 시인이라 일컫는 읍취헌 박은과 비교하면서 눌재 시의 우월함을 찬양하기도 했다.

당대의 명현인 사암 박순과 숙질간이다. 저서는 <눌재집訥齋集> 8권이 있다. 현재 전하지는 않지만 <동국사략東國史略>이라는 역사서를 저술한 바 있다.

눌재가 호남문학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그가 생존했던 16세기부터 17세기를 거치는 사이 호남에서는 훌륭한 시인들이 많이 배출되었으며 그 수준에 있어서도 절정기에 이르렀는데 이 호남 시단의 첫머리에 눌재가 자리하고 있다. 눌재는 주로 호남 선비들과 교유하였다. 이는 자신이 광주 출신이므로 교유의 범위가 호남 위주가 되었을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이들이 대부분 호남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알려진 혁혁한 문사들이었다는 점이 주목된다.

눌재의 교유 시인 중에서 또 하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무리는 기묘사화에 관련되었던 기묘 제현들이다. 눌재는 기묘사화의 한 원인을 제공하였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눌재와 기묘 제현들과의 관계는 밀접하다. 신잠, 김세필, 윤구, 고운, 김정, 소세양, 임억령, 조신, 정사룡, 정만종 등이 눌재의 교유 시인들 중에서도 대표적인 사람들인데 그 가운데 신잠부터 김정까지가 눌재와 함께 기묘명현으로 일컬어지는 시인들이다. 또한 눌재에게 사사하였거나 교유 이외에도 기묘사림과 뜻을 같이 하였던 복재 기준의 조카 고봉 기대승과 기묘명현의 한 분인 하천 고운의 손자 제봉 고경명 등도 눌재의 문하라고 할 수 있다.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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