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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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에서 소개하는 광주의 역사, 문화, 자연, 인물의 이야기 입니다.

광주광역시서구문화원에서는 광주와 관련된 다양한 역사,문화 이야기를 발굴 수집하여 각 분야별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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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암거사 김공 유적비
    광주시 북구 효령동 636(우곡마을 입구)1957년이 모암거사김공유적비(慕庵居士金公遺蹟碑)는 金亨在 짓고 具哲祐 쓰다.
    2018-11-13 | NO.47
  • 모와노공정려유허비
    광주시 북구 일곡동 919-1(일곡마을) 송해당 내1892년효자 광산노씨 노계열(盧啓悅)의 효행을 기리기 위한 비이다. 이 모와노공정려유허비(慕窩盧公旌閭遺墟碑)는 奇宇萬이 찬했다. 1892년 盧啓悅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命旌하고 정려각을 건립했고 年久退落되어 旌閭閣을 毁撤하고 1963년 그곳에 遺墟碑를 건립
    2018-11-13 | NO.46
  • 무진음사기실비
    광주시 남구 중앙로107번길 15(광주공원內)1989년무진음사기실비(武珍唫社紀實碑)는 무진음사 창립의 배경과 회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1989년 건립되었으며 영산 신호열(辛鎬烈)이 짓고, 여산 송성용(宋成鏞)의 글씨이다. 비문에 의하면 원석(圓石) 류종룡(柳鍾龍)이 시학(詩學)이 점차 쇠퇴해져 감을 걱정하여 호남의 선비들과 계를 맺어 광주(光州)의 옛 이름 ‘무진(武珍)’을 따와 무진음사(武珍唫社)라 하였다. 매월 초 9일 광주향교에서 시 짓는 모임을 가져오고 있다.
    2018-06-11 | NO.45
  • 박광옥-회재 박선생 유허비
    광주시 서구 매월동 519-1(전평호수 입구)회재 박광옥(1526~1593)의 고향인 서구 매월동 회산마을 전평호수 인근에는 그의 유허비가 있다.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물리치기 위하여 의병 모집 활동을 주도하고 의병도청을 설치하여 의명의 무기와 군량을 모아 왜적을 토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후학들에게 성리학을 강론하는 등 나라사랑에 귀감이 되었다. 이를 기리기 위해 2004년에 후손들이 유허비를 건립했다. 유허비에는 전평제라는 이름이 나온다. 비문에 의하면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로 나주목사 등 관직을 역임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의병활동을 했다.
    2018-05-25 | NO.44
  • 박영호유적비
    광주시 광산구 지평동 지정마을 안쪽이 박영호(朴泳鎬) 유적비는 지정마을 안쪽에 있다.
    2018-11-18 | NO.43
  • 범세동-복애범선생복룡사유허비
    광주시 북구 생룡동 314(생룡마을 내)1914년이 복애범선생복룡사유허비(伏崖范先生伏龍祠遺墟碑)는 비각을 갖추고 있다. 구조는 사방 1칸으로 정평주초(定平柱礎)위에 평주를 세워 3량집으로 되어 있고 지방은 골기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이 비는 복애 범세동 선생을 기리기 위해 비각과 함께 용호재 입구에 세워졌다. 현재 금성범씨문중 소유이다. 복애 범세동(~ 1397?) 선생을 기리기 위해 비각과 함께 용호재 입구에 세워졌다. 고려 말기의 학자로 본관은 금성, 자는 여명汝明, 호는 복애이다. 정몽주의 제자이다. 《환단고기》에서는 범장范樟 혹은 휴애거사 범장休崖居士 范樟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그가 〈북부여기〉를 썼다고 언급되어 있다.비문은 참판(參判) 동양(東陽) 신두선(申斗善)의 음기(陰記)가 있다.비문光州有伏龍祠乃伏崖先生范公諱世東妥靈之所也公卽麗末杜門洞七十二賢之一其貞忠卓節所以貫日月而亘宇宙者已備於前人之述矣公仕于恭愍朝官至德寧府尹麗運已訖與同志諸賢退藏于萬壽山下東西設門牢關不開世皆艶慕 名其洞曰杜門及脫介山之火遂隱居于羅州名其之曰伏巖自號曰伏崖後建祠于光州號伏龍公之後孫有曰可容號鶴峯曰天培號龍溪二賢固窮讀書學行著稱有曰起生號竹川贈吏曺參議曰起鳳號省窩贈承旨二賢壬辰殉節並追配于祠嗚呼哲人邁軸之地山川草木皆有精彩今俎豆已廢遺墟獨存乃立碑以識之公之後孫瀅植熙德甫繭足遠來謁其文余耄荒無以副而其請愈懇且以托名之榮不敢終辭略以數語以塞之歲壬子首夏東陽申斗善 謹識  庚申三月 日 竪 비문번역광주에 복룡사가 있으니 이는 복애선생 범세동의 신주를 모셔놓은 곳이다. 공은 고려 말 두문동 72현의 한 사람으로 그의 바른 충심과 탁월한 절개는 해와 달을 관통하고 우주에 뻗어나가는 것이었는데 이미 선인들의 저술에 다 나와 있다. 공은 공민왕 때에 벼슬에 나가 관직이 덕령부윤에 이르렀다. 고려의 운이 다하자 동지 제현들과 만수산 아래로 은둔하여 동서로 문을 설치하고 빗장을 굳게 잠그고 열지 않아 세상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고 사모하여 그 동을 ‘두문동’이라고 불렀다. 두문동에 불을 질러 탈출함에 미쳐서 마침내 나주에 은거하여 그곳을 ‘복암’이라고 이름붙이고 자호를 ‘복암’이라고 하였다. 나중에 광주에 사당을 세우고 ‘복룡’이라고 불렀다. 공의 후손 가용 호 학봉과 천배 호 용계 두 사람이 어려운 처지에도 열심히 독서하여 학행이 세상에 드러났다. 기생 호 죽천 추증 이조참의와 기봉 호 성와 추증 승지 두 사람이 임진년에 순절하여 함께 사당에 추배되었다. 아, 현철한 사람의 수레가 지나가는 땅은 산천초목이 모두 정밀한 광채가 있는 법인데 지금 제사가 이미 폐하여 유허만 남았으니 비를 세워서 표지를 하였다. 공의 후손 형식(瀅植) 희덕(熙德)이 다리가 부르트도록 먼 길을 와서 비문을 요청하였다. 내가 늙고 학문이 엉성하여 부응할 수 없었지만 그의 청이 더욱 간절하고, 또 명성의 덕을 입은 영광 때문에 끝까지 사양하지 못하고 대략 몇 글자 써서 책임을 때운다.임자년  4월 동양 신두선 씀  경신년 3월에 세움 
    2018-06-11 | NO.42
  • 삼강정려각중수중건기
    광주시 광산구 용진로 219(북산동)1923년삼강정려각중수중건기(三綱旌閭閣重修重建記)는  있다.창녕조씨 일가 4대의 충, 효, 열 행정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이다. 임진왜란 시 의병으로 활동한 조언수의 충, 그의 손자 조순악과 증손자 조후건의 효, 며느리 문화유씨의 열을 기리는 정려이다. 1923년에 건축된 광주시 문화재자료 제28호이다. 창녕조씨삼강정려각이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훼손되었다.
    2018-06-11 | NO.41
  • 삼산구로유적비
    광주시 북구 효령동 신촌마을1969년이 삼산구로유적비(三山九老遺蹟碑)는 효령동 신촌마을에 있다. 수곡, 신촌, 학동, 종방, 우곡, 학림, 단지 등 효령동 인근 마을에 거주하는 9명의 촌로들이 결성한 계(삼산구노계)의 기적비로 마을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있다. 최윤환이 찬했다.
    2018-12-01 | NO.40
  • 삼산은로비
    광주시 북구 일곡동 31-21984년이 삼산은로비(三山隱老碑)는 대야저수지 맞은편 북구 생룡동 산170번지에 세웠으나 도로확장으로 현 위치로 옮겼다. 비각이 있다.
    2018-11-13 | NO.39
  • 삼상위친계 기적비
    광주시 북구 태령동 212(단지마을 입구)1940년이 삼상위친계기적비(三相爲親契紀蹟碑)는 노문현 짓고 쓰다. 비각이 있다.
    2018-11-13 | NO.38
  • 석천김공유적비
    광주시 북구 용전동 628(용전마을 입구)1951년이 석천김공유적비(石泉金公遺蹟碑)는 金珍鉉 짓고 李錫鍾(대서) 李容瑾 쓰다.
    2018-11-13 | NO.37
  • 석파김해김공자곤유적비
    광주시 남구 노대동 770, 신기마을 양양재1988년이 석파김해김공자곤유적비(石坡金海金公滋坤遺蹟碑)는 남구 노대동 신기마을 뒤편 양양재 제각의 한 편에 있다. 단기4321년에 세웠다.
    2018-11-10 | NO.36
  • 수곡영모계 기적비
    광주시 북구 수곡동 171-1(용강마을 입구)1976년이 수곡영모계기적비(水谷永慕契紀績碑)는 李相南 짓고 쓰다.  
    2018-11-13 | NO.35
  • 신라왕자유허비
    전남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 204번지1739년신라왕자유허비(新羅王子遺墟碑)는 <광주읍지>에 따르면 평장동(平章洞)에 있다. 김진상(金鎭商)의 음기(陰記)에 "광주의 서북쪽에 불대산(佛臺山)을 등지고 서석산(瑞石山)을 바라본 곳에 이른바 평장동(平章洞)이 있는데, 즉 옛날의 서일동(西一洞)으로서 나의 시조 신라왕자 김공의 유허(遺墟)이다. 왕자의 휘(諱)는 흥광(興光)인데 신라말엽을 당하여 국가가 장차 어지러울 것을 알고 이곳으로 와 터를 잡고 은거하였는데 김씨가 광산에서 살게 된 것은 이때부터였다. 흥광(興光)의 아들 휘(諱) 식(軾) 이후 서로 이어 평장사(平章事)가 된 사람이 여덟 사람이었던 까닭에 마을 이름을 평장(平章)으로 고치었는데 고려를 지나 우리 조선에 들어 와서도 자손이 더욱 번창하여 이름있는 벼슬아치와 큰 선비가 혁혁(赫赫)히 서로 이었으니 이는 진실로 왕자의 빛을 숨기고 덕을 길러 길이 후세에 전한 음덕(蔭德)으로 말미암은 것이겠으나 또한 산천의 영수(靈秀)한 기운이 도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 왕자의 무덤이 세대가 오래되어 소재를 잃어버렸으니 후인이 방물(彷彿)히 사모할 수 있는 곳은 오직 유허뿐이다. 그런데 이 유허(遺墟)마저도 세월이 오래되어 잃어버릴까 염려되어 (宗人)들과 논의 하여 돌을 다듬어 기록하였다." 영조 기미년 1739년
    2018-06-17 | NO.34
  • 신재김해김공유적비
    광주시 남구 노대동 707번지 1996년신재김해김공유적비(愼齋金海金公遺跡碑)는 신기마을 뒤편 양양재(洋洋齋) 제각 한편에 있다. 1996년 6월에 김해김씨둔암공종중이 세웠다.가락 김형재가 찬했고, 둔암공 12세손 김호영이 글씨를 썼다.
    2018-09-07 | NO.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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