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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총 이여매의 관소에 나가 접견하다 - 선조 31년

부총 이여매의 관소에 나가 접견하다 - 선조 31년 무술(1598) 2월 3일(무오)      


상이 이 부총(李副總)의 【이여매(李如梅).】 관소에 행행하여 접견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대인 진영의 병사들이 성(城)에 먼저 오르고 힘을 다해 싸워서 적을 참획한 수급(首級)이 매우 많았소. 대인의 은덕에 적지 않게 감격하고 있으나 무엇이라 사례할 길이 없소.”
하니, 부총이 말하기를,
“울산(蔚山)의 싸움에서 이긴 전공을 오로지 저에게만 돌리고 계시니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13일 외성(外城)을 공략하였고 또 14일에는 내성(內城)을 공략하였는데, 토굴(土窟)의 병사들이 함께 힘을 쓰지 않아서 한번에 함락시키지 못했으니, 참획(斬獲)한 공은 있다 하더라도 전혀 면목이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가등청정(加藤淸正)을 사로잡아 온다면 귀국이 그로 인하여 편안할 것이고 조도 조국으로 돌아가는 영광이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싸움을 다시 하게 되면 소요와 피해가 반드시 많을 것이기에 국왕을 대할 면목이 없어 얼굴이 붉어집니다. 그리고 갈 때에는 문 밖에 나와 전송해 주셨는데 올 때 또 나와 맞아 위로해 주시니 감격스런 마음에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소방(小邦)과 왜적은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원수이외다. 그런데 그들이 대인의 영하(營下)에 의해 많이 죽었으니 다시 감사의 뜻을 드리는 바이오. 망극하기 그지없소”
하니, 부총이 말하기를,
“수급을 많이 얻은 것이 무슨 공이랄 게 있겠습니까. 반드시 섬멸시키기를 기필했어야 하였습니다. 거사하던 날에 일제히 힘을 다하였더라면 성공할 수 있었을 것인데, 일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많아서 거의 다 이루어졌다가 실추된 것입니다. 강개(慷慨)한들 무엇하겠습니까.”
하고, 또 말하기를,
“유 제독(劉提督)이 이미 요양(遼陽)에 도착했다 하니 이제 20일간이면 왕경(王京)에 당도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군사를 호남(湖南)에 나누어 보내고 마 제독(痲提督)의 군사는 영남(嶺南)에 머물러 주둔케 해야 합니다. 황상께서 울산의 승첩 소식을 들으시고 은(銀) 5만 냥을 13일에 세운 공로의 상으로 보냈고 또 5만 냥의 은자(銀子)를 보냈다고 합니다. 황상께서 변방의 일에 대해 이와 같이 마음을 다하시고 계시는데 저희들이 어찌 분골쇄신하여 보응하기를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로잡은 왜적을 통하여 적정(賊情)을 탐문해 보았는데, 왜적이 가을 사이에 출동하여 호남으로 길을 잡았다 하였습니다. 천병(千兵)도 이때에 대대적으로 출동하여 섬멸해야 할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주례(酒禮) 행하기를 청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지금 듣건대 제독께서 【이여송(李如松).】 오시어 광녕(廣寧)의 마병(馬兵)을 총괄 한다고 하오. 지난 임진 왜란 때에도 오로지 대인의 덕을 입어 소방이 지금까지 보존 되었으므로 마음에 늘 감격스러웠으나 보답할 길이 없었소. 그런데 지금 듣건대 대인께서 멀지 않는 가까운 곳에 있게 되었다고 하니 소식을 자주 전할 수 있게 되어 매우 다행스럽소.”
하니, 부총이 말하기를,
“제독형이 동토(東土)에서 돌아간 뒤에 5~6년간을 한산(閑散)한 자리에 몸담고 있었으나 마음은 귀국에 있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가까운 곳에 와 있게 되었으니 형께서도 소식을 서로 통할 수 있는 것을 기쁘게 여길 것입니다.”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왜적이 쉽게 사로잡히지 않는다면 대인이 다시 올 수 있겠소이까? 대인이 다시 오기를 소방에서는 밤낮으로 기다리고 있소.”
하니, 부총이 말하기를,
“마 제독이 여기에 있고 유 제독이 잇따라 왔으며 게다가 양 노야(楊老爺)가 경리하고 있는데 어찌 왜적을 평정하지 못할 리가 있겠습니까. 지난번 울산 싸움에서 왜적의 기예(技藝)를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경박하여 용맹스럽지 못하였으므로 왜자(倭子) 30명이 달자(㺚子) 1 명을 당해 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니 섬멸시키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제독이 다시 오기를 기다릴 것이 있겠습니까.”
하고, 또 말하기를,
“능성(綾城)에 김대인(金大仁)이란 사람이 있는데 홀로 산성(山城)을 지키면서 무리를 거느리고 왜적을 막았습니다. 광주(光州)ㆍ나주(羅州) 등 여러 고을이 모두 함몰되었는데도 굳게 지키고 동요되지 않아 홀로 보전하였으니, 참으로 쓸 만한 사람입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분부(分付)가 이와 같이 정녕하시니 감사하오.”
하였다. 부총이 말하기를,
“능성 김대인은 참으로 쓸만하니 파격적으로 크게 기용하소서.”
하고, 이어 말하기를,
“술이 만족하니 그쳤으면 합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대인이 멀리 전장(戰場)에서 돌아왔느데 교외(郊外)에서 맞이하다 보니 조용한 시간을 얻을 수가 없소이다. 오늘은 편안히 주례(酒禮)나 행하기 바라오.”
하였다. 부총이 말하기를,
“노라적(老羅赤)이 근래 노략질하였다는 소식은 없었습니까? 저들이 난을 일으킨다고 하더라도 마 제독이 회군(回軍)할 때 광녕의 제독(提督)과 귀국의 병사가 함께 안팎에서 협공한다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하니, 상이 이르기를,
“수년 전에는 난을 일으켰다는 소식이 있었는데, 그 뒤로는 전혀 형적이 없소이다. 이 적들이 마침내 교화에 불복하고 난을 일으킬 자들이오? 잘 모르겠소이다. 감히 그들의 형세와 강약에 대해 묻소이다.”
하자, 부총이 말하기를,
“이 적(賊)은 정병(精兵)이 7천이고 대갑(帶甲)이 3천인데 이 적 7천 명은 왜적 10만을 당할 수 있습니다. 그의 아비가 저의 아버님에게 죽었는데 그때는 무리가 30명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신이 직접 불러 모은 무리가 7천 명에 이릅니다. 10명을 거느리고 와서 국경을 침범하더라도 즉시 요동에 보고하여 구원을 청하소서. 서북 지방에 달자가 있다고 하나 모두 이 적만은 못하니 소홀히 여기지 마소서.”
하였다. 상이 이르기를,
“이 적과 북로(北虜)는 원래 서로 통하는 유종(遺種)이오? 북로에는 황태길(皇太吉)이 있는데 이 또한 달자의 종류이오?”
하니, 부총이 말하기를,
“황태길은 바로 서호(西胡)입니다. 몽고(蒙古)의 파라나야파라(波羅那耶波羅)가 노라적(老羅赤)을 치려고 황태길에게 요청하여 공격하다가 불리하자 물러간 적이 있습니다. 노라적은 곧 금(金)의 달자(㺚子)를 대신하고 태길은 곧 요(遼)의 달자(㺚子)를 대신해서 적은 숫자로 많은 수의 적을 대항합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대인께서 이와 같이 분부하니 감격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겠소.”
하였다. 이어 승지에게 전교하기를,
“전일 오유충(吳惟忠)ㆍ유정(劉綖)은 모두들 남병(南兵) 10만이라도 왜적을 당할 수 없다고 하였는데, 이들은 북방의 장수로서 왜적의 정세를 모르고서 함부로 한 말이다.”
하니, 우부승지 정경세(鄭經世)가 아뢰기를,
“오유충이 ‘양 노야(楊老爺)는 성질이 급하여 한번에 섬멸하고자 하지만 실은 병력이 당할 수 없다는 것은 모르고 있다.’ 하고, 또 말하기를 ‘도산(島山)을 공격할 때 내가 사람을 경리(經理)에게 보내어 말하기를 「오늘날 미비한 때에 급히 친다면 즉시 항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하자, 경리가 심부름을 간 사람의 귀를 베었는데 이와 같이 하기를 두 번이나 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호민(李好閔)의 장계를 보건대, 사세용(史世用)이 ‘마 제독이 이여매(李如梅)가 공로를 독점하는 것을 꺼리기 때문에 늦장을 부리면서 급히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하자, 상이 이르기를,
“이는 모두 우리 나라가 복이 없는 까닭이니 모름지기 중국 장수들을 원망하지 말아라”
하였다. 상이 서로 읍하고 나왔다.
【원전】 23 집 375 면
【분류】 왕실-행행(行幸) /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외교-야(野) / 군사(軍事) / 인사-관리(管理) / 인물(人物)


※ 광주광역시 서구문화원 누리집 게시물 참고자료

저자(연도) 제목 발행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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