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프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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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철은 한국 현대미술, 더 깊이 들어가면 역사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라 할 수 있다. 그의 작품은 한국 사회의 격동적인 근대사와 현대사 그리고 광주를 보다 깊이 있게 화면에 담아내며 시대를 살아가는 민중의 삶과 정서를 대변해왔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신학철_시대의 몽타주》 전시는 그의 방대한 작품 세계를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이번 회고전은 그의 60여 년의 예술적 여정을 돌아보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그의 독창적인 미학을 통해 예술의 본질과 사회적 역할을 되새길 수 있는 자리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시대의 몽타주
신학철의 예술세계는 시대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동시에, 역사적 사건과 개인의 삶을 독창적으로 형상화한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는 1960년대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 운동과의 깊은 연관을 가지며 자신의 독창적인 미학을 발전시켰다.
아방가르드란 기존의 전통적 예술형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시각적 언어와 표현방식을 탐구하는 운동을 의미한다. 신학철은 이를 한국적 상황과 결합시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한 것이다.
*신학철, 정물, 1965, 캔버스에 유채, 91.3x67.8,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그의 초기 작업은 한국아방가르드협회(AG)의 일원으로서 실험미술에 몰두하며 시작되었다. 당시 그는 다양한 매체와 형식을 통해 전통적 미술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
사진, 콜라주, 오브제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산업사회와 소비사회의 물질적 숭배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현대미술의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다. 이때의 경험들이 오늘날까지 그의 작품에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
1980년대 민중미술 운동을 주도하고, 21세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적 실험을 통해 지속적으로 작품 세계를 확장해왔다. 그의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시공간적으로 분할하고 이를 하나의 몽타주로 재구성하는 독창적인 기법을 통해 현대사회의 모순과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예리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런 작업을 위해서는 수많은 자료수집이 필요했을 것이다. 근대사와 현대사에 등장하는 각종 사진들을 수집하고 분류하는 한국사적인 관점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이들 사진을 포토몽타주 기법으로 스케치하고 캔버스에 그리는 방식으로 하였으니 그의 작업과정은 힘든 노동과도 같았을 것이다.
이번 전시는 크게 세 가지 섹션으로 나뉘어 그의 작품세계를 시대순으로 탐구했다.
첫 번째 섹션인 ‘해체와 재구성의 신체 몽타주’에서는 그의 초기 작품을 집중 조명한다. 이 시기 작품들은 아방가르드 미술의 영향을 받으며 사회적 현실을 탐구하는 독특한 포토몽타주 기법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기 작품에서부터 우리는 신학철이 시대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의 예술적 고민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시대적 현실을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분해하고 새로운 의미로 재구성함으로써 독창적인 시각적 언어를 창조했다.
*신학철, 변신 3, 1980, 패널, 종이에 유채, 잡지, 콜라주, 43×39, 국립현대미술관
예를 들어, 그의 대표작 <변신> 시리즈는 소비사회와 물질주의의 부조리를 비판하며, 일상 사물을 콜라주 형태로 변형하여 작품에 담았다.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기존의 재료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지닌 의미를 새롭게 탐구하고, 관람자에게 새로운 시각적 경험을 제공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두 번째 섹션 ‘망각된 역사의 소환’은 과거의 역사와 현재를 연결하며,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순간들을 작품 속에 담아내고 있다. 특히, 이 섹션은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한국사회의 모습을 비판적 시각으로 탐구한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한국근대사-종합>은 한국의 분단 현실과 소비문화의 병폐를 강렬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관람객에게 시대의 상흔을 되새길 기회를 제공한다.
세 번째 섹션 ‘시대를 위한 기념비’에서는 개인의 삶을 조명하며 그들의 서사를 시대적 맥락 속에서 탐구한다. 그는 노동자, 농민, 중산층 등 다양한 계층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작품을 통해 그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특히 <갑돌이와 갑순이>(1998-2002)는 그의 작품 세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주는 대작이다. 한국 현대사의 굴곡진 흐름 속에서 개인의 삶과 경험을 대서사적 맥락으로 승화시킨 이 작품은 무려 20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화면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이 작품은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시골에서 도시로 이주한 갑돌이와 갑순이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이는 한국 사회의 근대화와 산업화 과정 속에서 개개인이 겪는 삶의 변화를 생생히 그려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단순히 한 쌍의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농촌에서 도시로 이주한 수많은 한국인의 집단적 경험을 상징한다. 갑돌이와 갑순이라는 이름은 한국 민중문학과 대중가요에서 자주 등장하는 평범한 이름으로, 그 자체가 익명의 다수를 대변하는 상징적 역할을 한다.
그래도 알만한 얼굴들이 보인다. 전두환 원동석 백기완 박광태 권인숙 이건희 정주영 김우중 등이 보이고 작가 신학철과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도 있다.
한국 사회와 민중의 삶을 조명한 작품들
신학철의 작품은 단순히 예술적 표현을 넘어 사회적 실천의 의미를 지닌다. 그는 격동의 시대 속에서 서민들의 삶과 이상을 예술적으로 형상화하며,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참여적 미술을 선보였다.
그의 작업은 민중미술과 서민미술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발전해왔으며, 이는 그가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신학철, 모내기, 캔버스에 유채, 162.1 × 112.1cm, 1987(1993 재작업), 개인소장
그는 아방가르드 예술이 단순한 미학적 혁신이 아니라, 사회적 현실에 대한 비판과 개입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대표작 <모내기>는 이를 잘 보여주는 예다.
이 작품은 한국 농촌의 현실을 담아내는 동시에, 도시 소비문화와 군사무기의 폐해를 비판적으로 다루며, 예술을 통한 사회적 실천의 가능성을 탐구한다. 이러한 작품은 예술의 표현적 가능성을 확장하는 동시에, 그 자체로 강력한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한국현대사-초혼>(1993)은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 중 하나인 5·18 민주화운동을 기리며 제작된 작품으로, 그의 예술세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이 작품은 한국사의 굴곡진 여정을 반영하며, 민중의 항쟁과 희생을 예술적 언어로 형상화한 대표작이다.
작품 제목 ‘초혼(招魂)’은 영혼을 불러들여 위로하고 기리는 의식을 의미한다. 이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중심 주제로, 억울하게 희생된 이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동시에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기억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품의 중앙에는 피투성이로 일그러진 시신의 형상이 강조되어 있다. 이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희생된 익명의 청년들을 상징하며, 억압적인 역사적 상황 속에서 희생된 이들의 고통을 시각적으로 전달한다.
이 작품은 신학철이 중요하게 다룬 주제 중 하나인 ‘개인의 서사를 통한 역사적 재해석’을 잘 보여준다. 그는 거대한 사회적 담론이나 국가적 서사를 넘어, 개인의 경험과 서사를 통해 역사를 조명하려 했다.
작품에서 등장하는 희생자들의 얼굴은 극사실적으로 묘사되었으며, 각 인물의 감정이 세밀히 드러나 보인다. 이러한 묘사는 희생자들이 단순히 역사적 사건의 일부로 소비되지 않고, 그들 각자가 살아 숨 쉬던 개인적 존재였음을 강조한 것이라 여겨진다.
시대를 초월한 상징성과 독창성
신학철의 작품 세계는 그가 사용하는 상징성과 독창적인 기법을 통해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그는 포토몽타주, 콜라주, 사실주의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여 시대의 단면을 형상화하며, 관람객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의 작품은 단순히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을 넘어, 관람자와의 소통과 교감을 목표로 한다. 특히, 그의 대표작 <한국근대사> 연작은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적이고 억압적인 측면을 그로테스크한 형식으로 표현하며, 관람객으로 하여금 역사를 성찰하게 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기둥 형식으로 하늘로 치솟는 전개방식은 보는 이에게 변화의 과정을 실감케 만든다.
그의 작품은 시대적 메시지와 비판적 시각을 담고 있지만, 때로는 지나치게 구체적인 상징과 과도한 설명으로 인해 작품의 해석 여지가 제한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그의 대표작인 <모내기>와 같은 작품은 분명히 강렬한 정치적 메시지를 담고 있으나, 그러한 명료함이 관객의 상상력을 억압할 가능성도 있다.
또한, 그의 <한국근대사> 작업은 민중의 삶을 조명하며 현실을 비판하지만, 예술적 실험과 사회적 메시지의 균형이 때로는 무게를 잃는 듯 하는 경우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제한점은 그가 예술을 통해 사회적 실천을 강조한 점에서 오히려 그의 작품이 가지는 독창성을 부각시키는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어떻든 그의 예술세계는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독보적인 가치를 지니며, 그의 작품은 시대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동시에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조명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예술적 유산을 종합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기회로, 관람객에게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향한 희망을 모색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 한국 현대사의 아픔과 인간 존재의 본질을 탐구하며, 예술이 가지는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그는 과거의 상흔을 예술로 치유하며, 시대를 초월한 예술적 통찰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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