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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독립선언 주역 최원순과 현덕신 ‘발자취’
이동순 교수, “독립운동.게몽운동 열정 쏟은 두 사람의 생애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2.8독립선언 주역 최원순과 현덕신 ‘발자취’ 

이동순 교수, “독립운동.게몽운동 열정 쏟은 두 사람의 생애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최원순과 현덕신은 기자와 의사라는 자리에서 자신이 가진 지식을 독립을 위해 썼습니다. 평생을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고 지지하던 열정적인 부부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게 안타깝습니다.”

이동순 조선대 교수는 11월 27일 광주 서구문화원 강의실에서 열린 문화유산 아카데미 특강에서 ‘아름다운 동행, 최원순과 현덕신’이라는 주제로 기자이면서 독립운동가였던 최원순과 광주 최초의 여의사이자 독립운동가였던 현덕신, 두 사람이 펼친 사회활동과 독립운동이 오늘날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를 소개했다.

이 교수는 “석아 최원순은 일본 유학시절 2.8독립선언의 주역이자, ‘조선청년독립단’ 결성을 통해 활동 조직을 규합하는 임무를 맡았다”면서, “귀국 후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면서 이어졌던 3년간의 조선독립에 대한 전국 순회강연 후 신간회 발기인으로 활동을 하였고, 일제 총독정치에 대한 비판 등 다양한 방법으로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지식인이었다”라고 소개했다.

더불어 “기자들이 시대적 소명을 다하지 않으면 기자가 아니다”라고 했던 최원순은 독립운동과 함께 조선인 기자로서의 사회적 소명을 갖고 있던 인물이었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조선인 기자조직인 무명회를 부활시키고 1925년 4월 천도교 기념관에서 조선인 기자 455명과 함께 ‘전조선기자대회’를 열었고, 언론의 자유를 막는 일부 법규 철폐를 주장하는 결의문을 채택하는 등 펜을 통해 일제의 탄압과 조선총독부를 겨냥했던 언론인이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교수는 “최원순의 부인이자 광주 최초의 여의사였던 현덕신은 이화학당 졸업 후 2년간의 교사생활을 그만두고 상대적으로 의료혜택을 못받는 조선여성들을 위해 일본 동경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한 광주 최초의 여의사였다”고 말했다.

또 현덕신은 2.8독립선언에 참여한데 이어 도쿄의 ‘조선고학생동우회’와 ‘조선여자친목회’와 기관지인 《여자계》를 통해 독립의 의지를 밝히고 애국심 고취 등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그녀는 귀국 후 동대문부인병원 부인과와 소아과 의사로 일하며 “병원은 공공을 위해 존재한다”는 소명으로 빈부격차 때문에 의료혜택에 차별받는 걸 경계하였다. 의술뿐만 아니라 간호부들에게 간호학과 생리위생학을 가르치고 전문적인 의료 지식을 대중에게 알리는 일 또한 게을리하지 않았다. 

특히 “현덕신은 조선 여성을 위한 삶을 실천하기 위해 근우회와 조선여자기독교 청년회 활동 등 여성운동을 통해 조선 여성의 지위 향상을 포함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던 인물이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처럼 두 부부가 열정적으로 독립과 사회적 변화운동에 열정을 쏟을 수 있었던 것은 현실을 함께하며 서로를 인정하고 응원하였기 때문이다”고 평가했다. 

특히 당시 여성이었던 현덕신이 이렇게 주체적으로 여성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건 자신의 열정과 함께 남편 최원순의 지지와 응원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건 부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1921년에 ‘천부인권론’이라는 글을 통해 남녀의 인권을 동등하다는 주장의 글을 썼을 만큼 개방적인 사고를 지닌 최원순은 아내 현덕신의 활동에 누구보다 지지하였다. 

이 교수는 두 사람은 이렇게 언론계, 의료계와 더불어 독립운동사에 큰 인물이었지만 이들의 활동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바로 광주로의 이주가 컸다고 추측했다. 최원순이 폐병으로 인해 요양차 광주로 내려올 때 현덕신도 함께 정착하며 광주에서 여성 의사로 현덕신의원을 열었다. 

최원순은 광주에서도 ‘계유구락부’의 일원으로 지역사회의 변혁과 빈민구제 활동에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다 41세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 현덕신 또한 남편 최원순 사후에도 광주에서 사재로 신생유치원과 보육학교를 세워 유아교육에 힘을 쓰고, 광주 YWCA 이사로 활동했으며 대한독립촉성부인회 광주지부 회장을 맡는 등 평생을 지역사회에 헌신하였다. 

지역사회에 큰 역할을 하였지만 지역 내에서도 이를 아는 대중들은 거의 없고 한국 독립운동사와 언론·의료계에서도 중앙 중심적인 시선에서 벗어나며 그 존재가 점점 희미해진 게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만 지난해 《석아 최원순 전집》에 이어 올해 2월 《현덕신》 평전이 발간되는 등 늦게나마 이들의 삶을 조명하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 사진설명

● 1. 이동순 조선대 교수가 광주서구문화원 주최의 ’문화유산 아카데미‘에서 우리 광주의 잊혀진 독립운동가인 ’아름다운 동행 최원순과 현덕신‘을 소개하고 있다.

● 2. 이동순 조선대 교수는 동아일보 기자 출신의 최원순과 광주 최초의 여의사인 현덕신이 일본과 국내에서 독립운동과 계몽운동을 펼쳤던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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